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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웅비의 서재

버스기사의 이세계 슬로우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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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웅비
작품등록일 :
2024.02.01 16:18
최근연재일 :
2024.07.01 19:45
연재수 :
103 회
조회수 :
10,717
추천수 :
302
글자수 :
567,180

작성
24.03.16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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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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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3화 내 집 마련

DUMMY

43화 내 집 마련


바둑용품 제작은 빠르게 이뤄졌다.


바둑판의 경우는 수인이 체력적으로 인간보다 우위여서 그런지 워커가 쉴 새 없이 만들어 하루만에 두 개를 만들었다.


그것도 바둑판을 만들만한 크기의 원목이 없어서 그런 거지 있었으면 충분히 5개를 만들고도 남았을 것이다.


바둑돌의 경우는 한 세트당 361개의 돌을 만들어 내야 했기에 재료 수급에 차질이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미란다의 장점이 톡톡한 효과를 일으켰다.


열매채집 담당이었던 미란다는 길눈이 밝아 숲을 훤히 뚫고 있었기 때문인데, 헤일로가 바둑돌을 설명하자마자 적당한 돌이 있다며 헤일로를 어느 한 계곡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검은색과 흰색의 자갈이 천지에 깔려있어 재료는 5세트를 만들고도 남을 양만큼 수급할 수 있었다.


그렇게 부모님의 연휴 마지막 날 저녁까지 돌을 갈고 닦아 바둑용품 5세트를 만드는데 기어코 성공했다.


“와아! 이제 이게 마지막! 하아...”


헤일로가 작업을 완료한 마지막 돌을 바둑돌통에 넣고는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공방 구석에서 졸고 있던 미란다는 헤일로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다 끝났어요?”


미란다가 누워있는 헤일로에게 다가가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서럽다. 서러워.’


주헌은 부러운 듯 헤일로를 바라봤다.


“응...”


헤일로는 한껏 그녀의 손길을 느끼다가 그녀의 품에 안겼다.


“후~ 다들 고생했네. 다행히 기한을 맞출 수 있어서 다행이야.”


워커도 깊은 한숨을 쉬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워커는 혼자서 바둑판을 만들었는데, 바둑돌 작업에도 같이 나서면서 거의 쉬지도 못했다. 주헌이 제발 잠 좀 자라고 할 정도였으나, 워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결국 주헌도 도와줄 건 없나 살피며 눈치껏 바닥을 정리한다던가 그나마 쉬운 코팅 작업을 도왔었다.


‘다시는 급하게 부탁하지 말아야지.’


주헌은 이번 일로 무엇이든 여유롭게 행동해야 함을 비로소 깨달았다.


“어려운 부탁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이게 내 철칙이네. 그리고 고객과의 신뢰도 중요하지 않나, 괜히 늦어져서 롬멜 상단의 입지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 랫트 마을로서도 큰 손해이니. 밤을 새우더라도 맞춰야지.”


바둑 세트를 주문한 사람은 지부장뿐이었다.

주헌은 예약을 받으면서 딱히 언제까지 주겠다고 약속을 한 것도 아니었다. 주헌이 굳이 5세트를 말한 건 랫트 마을과 그리지를 왔다 갔다 하는 게 시간이 너무 걸렸기 때문에 과감하게 불러본 거였다.


처음에는 10세트를 부탁할까도 했지만, 공방에 워커 혼자 있는 걸 봐서 조정한 게 5세트였다.


그것도 좀 과했던 것 같지만.


“그... 그렇죠! 주문이 좀 들어왔는데, 네브린 남작령에서 오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서 금방 팔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유분까지 좀 부탁드린 거긴 해요.”


“전부다 주문 건이 아니라고?”


“아니었어요?”


워커와 헤일로가 동시에 말하며 주헌을 쳐다봤다.


“이번 바둑용품도 금방 팔릴 겁니다. 이번에 보셨죠? 재고 하나도 없던 거? 롬멜 상단의 입지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이죠. 그런데 문제가 있다면, 사고 싶다는 사람은 많은데 거리가 멀다 보니 바로바로 처리하기가 어렵다는 게 문젭니다.”


“그건 그렇지... 마차로도 2주 정도가 걸렸으니... 그래도 자네 버스인지 뭔지는 2일이면 오지 않나? 그렇다면 크게 무리는 없을 텐데?”


워커의 말은 정곡을 찔렀다.


하지만, 주헌도 사람인지라 이틀 꼬박 운전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집에서 푹 쉬고 나와서 운전한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고 버스에서 쪽잠을 자면서 12시간 이상씩 운전해야 하는 건 피하고 싶었다.


한국이었으면 바로 문제가 되었을 테지만, 여기는 이세계라 주헌의 입장을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무리는 아니죠... 그런데 제가 이번에 마부길드 타란 지부에 소속이 되는 바람에 그... 의뢰도 채워야 하고 그런 사소한 문제들이 겹치다 보니 좀 곤란한 부분이 있어서 말이죠. 일단 제가 너무 무리한 부탁을 드린 게 잘못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어려운 일을 ‘장인’ 정신을 발휘해 완벽하게 만들어주셔서 제가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일부러 ‘장인’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면서 최대한 추켜세우듯 말하니, 워커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허허허! 장인이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네. 물론! 200년 동안 나 같이 같은 일을 해온 이들이 적어서 문제지! 언제든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하게.”


주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잘 해결했다고 생각하는데 뒤통수가 따가웠다.


누워있던 헤일로가 어느덧 앉아서는 원망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급한 일이 생기면 굴려지는 것은 공방 가족들일 테니...


‘쳐다보면 뭐! 사회생활이 원래 이런 거지.’


주헌은 당당히 문제 있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이틀 뒤 타란.


주헌은 바둑용품 5세트를 챙겨 타란에 입성했다.


그렇게 버스를 마부길드 공터에 주차하고 지부장에게 줄 바둑용품을 챙겨 내리는데 달칵하는 문소리와 함께 익숙한 얼굴이 주헌에게 걸어왔다.


까맣게 탄 피부에 순수한 시골 농부 인상을 가진 지부장이었다.


주헌은 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다. 굳이 2층 지부장실까지 안 가고 바로 바둑용품을 건네주면 됐으니.


“안녕하세요.”


“역시 자네였구만, 자네가 끌고 다니는 버스는 특유의 소리가 있지. 그동안 잘 쉬었고?”


“일하느라 바빴죠...”


“무슨 일? 연휴에도 운행했나?”


“제가 이거 때문에 고생 좀 했습니다.”


주헌이 바둑용품을 건넸다.


“오오! 벌써 다 만들었나?”


지부장이 광이나는 바둑판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그러면서 표정은 미소가 끊임없이 번지고 있었다.


“원래 시간이 좀 걸리는 건데, 제가 지부장님이라서 특별히 빨리 해드린 겁니다.”


“오! 고맙네! 이야... 때깔부터가 완전 고급품처럼 보이는구만. 어때? 나랑 한판 두겠나?”


“좋죠!”


주헌은 지부장을 따라 마부길드 2층으로 올라갔다.


허름한 건물과 마찬가지로 각종 도구들과 테이블 역시 오래되어 보이는데 오히려 지부장실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고급스러운 느낌이 흠씬 들었다.


“내가 말이야 연휴에 플로라네서 오목을 좀 두면서 실력을 늘렸다네. 허허! 내가 말이야 10판을 둬서 10판을 다 이겼지. 아무리 자네가 경험이 많다고 해도 쉽지 않을 거야.”


‘그럴 리가.’


“하하. 이거 제대로 집중해서 둬야겠네요.”


지부장이 바둑판 위에 한 수 착수했다.


“그런데 자네랑 같이 다니는 그 친구가 안 보이는구만?”


탁.


“엘로요? 걔는 일주일 뒤에 제가 데리러 가야 해요. 아직 판매할 물건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일단 남아있기로 했습니다. 여관비만 두 배로 나가잖아요.”


탁.


“그리지 집에서 지내면 되지. 굳이 타란에 와서 여관에 있을 생각이었나?”


탁.


지부장은 주헌이 집이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지 주민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저... 집 없는데요.”


탁!


돌아갈 집이 없다는 건 주헌에게 조금 서러운 일이었다.


“그럼, 이때까지 여관에서 계속 지냈단 말인가?”


“그렇죠...”


지부장은 딱히 비꼬려고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주헌 입장에서는 그 나이에 집도 없이 뭐하냐는 듯한 기분이었다.


“자네 이번에 어마어마하게 벌지 않았나? 타란 지부 역대 최고 수입일 텐데? 자네가 족히 300명은 넘게 태웠잖나?”


주헌이 낸 지부 수수료와 운행일지로 수익을 대충 파악하고 있던 지부장이 의문을 가지며 말했다.


주헌이 이번에 번 돈은 자그마치 110골드였다.


주헌은 아직 이세계의 경제관념이 익숙치 않았기 때문에 돈통과 엘로랑 같이 사용하는 공용 주머니에 그대로 넣어두고 지내고 있었다.


“제가 먼 곳에서 이주했다 보니, 시세를 잘 몰라서 집값이 보통 얼마나 하죠?”


주헌은 빵과 맥주값을 기준으로 집값을 예상했다.


예상했을 때 110골드는 집을 사기엔 한참 부족한 금액 같았다.


“그리지 시세는 내가 잘 모르지만, 타란 같은 경우 변두리 쪽 오두막은 쌀걸세 100골드면 될 거야.”


“100골드요? 집이 그거밖에 안 해요?”


“타란이 다른 곳에 비해서 싸긴 하지, 다들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서 빈집이 많거든, 상인 길드에 의뢰하면 더 싼 곳도 많을 거야.”


‘그렇다는 건 그리지는 더 싸지 않을까?’


탁!


주헌은 최대한 돈을 아끼기 위해 머리를 굴리며 흰돌이 5개가 되는 지점에 돌을 착수했다.


“엇! 이게 언제 이렇게...”


지부장은 바둑판에 얼굴이 붙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서는 주헌이 착수한 지점을 보며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그 이후 지부장의 재촉에 주헌은 여러 번 오목 상대를 해주었다.


정확히 23판.


23전 23승의 연승행진을 달리자, 저혼자 흥분한 지부장이 몸이 좋지 않다며 주헌을 거의 쫓아내다시피 내보냈다.


마침 계속 이겨서 지루했던 주헌은 쫓겨난 김에 옆에 있던 상인길드에 들어가 보았다.


바빠 보이는 카운터와 가득 찬 대기석에 절로 거부감이 들었다.


한국인의 특성상 기다리는 것은 제일 힘든 일이었다.


그러다가 문뜩 게시판이 눈에 들어왔다.


‘마부길드처럼 상인 길드에도 의뢰게시판이 있나?’


마부길드와 달리 상인길드 게시판에는 빈 공간 하나 없이 종이가 가득 붙어 있었다.


“하하. 이건 좀 신기하네.”


게시판을 살펴보니 한국에서 전봇대에 붙어있는 부동산 매매 전단지나 과외 전단지 같이 종이 밑단이 뜯어가기 쉽게 찢어져 있다.


그곳에는 위치 정보가 적혀있었다.


한국에 있던 추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미소짓던 주헌은 다른 것들도 살펴보다가 유독 눈에 띄는 전단지를 발견했다.


- 그리지 폴의 목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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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그리지 마을 폴?’


주헌은 이 전단지를 보자마자, 두 가지에 시선이 갔다. 첫째는 ‘폴’ 둘째는 ‘주택’이었다.


주헌은 시세를 알아보고자 상인길드를 잠깐 방문한 것이긴 했지만, 타란에 거주할 생각은 없었다. 타란에 거주하려면 이주해야 하는데, 그리지 주민이 된 지 얼마 안 됐을뿐더러 아무런 일면식도 없는 주헌을 기꺼이 받아준 그리지를 배신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본 전단지에 폴의 이름이 있어 왠 떡이냐 싶었다.


폴은 일리아나 사건 때 고맙다며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주헌에게 얘기했었다.


그리고 집을 사거나 일을 맡길 거면 아는 사람한테 맡기는 게 더 좋을 것 같았기에, 곧바로 폴에게 가기로 결심하고는 게시판에 있던 폴의 전단지를 뜯어버렸다.


이제부터 자신의 집을 지어야 될 사람이기에 집에만 집중하길 바랐으니까.


전단지는 나중에 운행하면서 들러 새로 붙이면 되는 일이기도 했고.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진웅비 입니다.


오늘도 제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드백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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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5화 일꾼을 데려오겠습니다 24.04.03 88 1 13쪽
44 44화 내 집 마련(2) 24.04.01 88 2 12쪽
» 43화 내 집 마련 +1 24.03.16 115 3 11쪽
42 42화 장인 +2 24.03.15 101 2 14쪽
41 41화 폭탄 돌리기 24.03.14 99 1 12쪽
40 40화 혼자가 아니야 24.03.13 96 1 12쪽
39 39화 주문 예약 24.03.11 111 3 12쪽
38 38화 나 혼자 +2 24.03.10 104 2 13쪽
37 37화 만원 버스 24.03.09 105 3 12쪽
36 36화 일복 터진 호구 +1 24.03.08 106 2 13쪽
35 35화 따뜻한 포토푀 24.03.07 112 5 11쪽
34 34화 진흙탕 +2 24.03.06 110 5 12쪽
33 33화 첫 배차 24.03.04 112 5 12쪽
32 32화 의뢰인 +1 24.03.03 117 3 14쪽
31 31화 장사천재 성주헌 24.03.02 118 2 14쪽
30 30화 특허 등록 +2 24.03.01 121 3 12쪽
29 29화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24.02.29 123 3 12쪽
28 28화 마부길드 24.02.28 123 5 13쪽
27 27화 졸음운전 24.02.27 126 3 12쪽
26 26화 바둑판과 바둑돌 24.02.26 131 2 12쪽
25 25화 유행의 선구자 24.02.25 134 4 13쪽
24 24화 치즈지옥에 피자 강림! 24.02.24 135 2 13쪽
23 23화 또띠아 24.02.23 142 3 12쪽
22 22화 치즈 치즈 치즈 제발 좀 그만! 24.02.22 148 2 13쪽
21 21화 꿈은 크게 가져라 24.02.21 153 5 12쪽
20 20화 공황장애 +2 24.02.20 155 5 12쪽
19 19화 경사 났네, 경사 났어! 24.02.19 158 6 12쪽
18 18화 타란 마을을 구경해요 24.02.18 166 6 14쪽
17 17화 어디서나 뇌물은 통한다(2) 24.02.17 169 7 13쪽
16 16화 어디서나 뇌물은 통한다 24.02.16 179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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