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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베 님의 서재입니다.

스카치에라의 투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호이베
작품등록일 :
2017.11.07 22:11
최근연재일 :
2018.02.10 20:35
연재수 :
46 회
조회수 :
4,581
추천수 :
3
글자수 :
520,254

작성
17.11.1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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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Chapter [만남] : 01. 아가씨께서 오십니다.(7)

DUMMY

언제나 적막하던 숲 속 길이 갑작스런 소음에 깜짝 놀란 듯 비명을 지른다.


새들은 푸드덕 날아오르고 양쪽 수풀 속에선 무언가가 사사삭, 하며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 와중에도 우직하게 길을 걷는 행렬.

그들에겐 자신들이 내는 소음에 파묻혀 숲의 비명소리가 들리진 않을테니 저렇게도 무심하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걸어오는 거겠지만..


"먕! 미야앙! 먀아!"


"..알았어 키니..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머리 위에 서선 뒤따라오는 행렬을 바라보며 목청을 높이는 키니의 울음소리에 한숨을 내쉰다.

키니로서는 지금 이 상황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을거다.

뻔질나게 숲을 드나들며 집 주변의 숲 대부분을 자신의 영역으로 만든 키니에겐 저 시끄러운 행렬이 참으로도 무례한 방문객으로 비춰지겠지.


나도 그건 마찬가지.

애초에 내가 살고있는 집을 증축해서 다른 사람과 당분간 같이 지내야 한다는 그 사실이 나는 아직도 그리 마음에 들진 않는다.


"흠..아직 보냈던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았는데...집까진 얼마나 남았니?"


"이제 곧 도착할거에요"


마을과 집을 잇는 길은 이 숲길 하나이다.

필과 사람들이 공사를 끝내고 굳이 숲 안을 통해서 마을로 돌아올리는 없고, 그럼 반드시 이 길을 이용해야할텐데 아직 마주치지 않았다는건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걸까.


"곤란해질수도 있겠구나.."


"...뭐 어떻게든 되겠죠"


머리 위에서 쉴새없이 울어대는 키니때문에 정신이 혼란한것도 있고, 일단 집으로 가자고는 했지만 가서 정작 어떻게 해야할까 조금 막막하기도 한통에 그런 문제따윈 왠지 사소하게 느껴진다.

사소하진 않은 문제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정 안되면 먼저가서 상황을 보고..."


"어? 루시안~!"


슬며시 집을 둘러싼 공터가 보이기 시작할 때 쯤, 그 공터에서 불쑥 빨간 머리의 남자가 튀어나오며 반갑게 손을 흔든다.


"필! 공사는 다 끝난거야?"


"지금 막 다 끝났지~ 와 나 몰랐는데 코브렐 아저씨 손재주가 정말...으헥?! 너, 너 그 사람들은 다 뭐야?!"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노동의 여운을 만끽하던 필은 나에게 다가오던 발을 멈추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도로 몇발자국을 뒤로 물러선다.

그 바람에 필을 따라 공터에서 나오던 몇명의 사람들도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고는 필과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


어떻게든 된다고는 생각했지만..

도리어 필이 저렇게 과한 반응을 보이니까 다른 사람들도 옮은듯한 반응이잖아.

..갑자기 눈 앞에 무장한 사람들이 무더기로 나타나면 당연할 반응이려나.


그럼 이걸 뭐라고 변명해야할까.

친구들? 갑옷을 입고 말 위에 올라탄 수십명의 친구들이 갑자기?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 할 수도 없고..

오다 마주쳐 집으로 초대했다고 할까?

왜?라고 물어본다면? 게다가 어디서 어떻게 마주쳤는지 되물었을땐 뭐라그래.


..혼란하다 혼란해.


"...왜 멈췄는가 루시안?"


설상가상으로 뒤에서 따라오던 첸드릭이 가까이 다가와 내 머리위에 낮은 목소리를 떨어트린다.


"루, 루시안?! 네 이름을 저 사람이 어떻게 알아?! 아는 사이야?!"


"...아우..."


머리아파.

공터에 도착해서도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면 변명을 어찌해야할까, 어떻게 필과 사람들을 납득시켜 돌려보낼까도 떠오르지 않던 판에 이렇게 불쑥 마주치다니..

물론 공사를 다 끝내고 돌아오는 도중에 마주친거라 수고는 덜었더라도 막상 이렇게 마주치니 뭐라해야할지 떠오르질 않네.

일단 집으로 가자고 끌고오긴 했는데 그 이후가 참 막막하다.


"필"


"으, 응? 아! 네, 네 조합장님!"


"그래서, 공사는 다 끝났다는거지?"


머리를 싸매고 끙끙거리며 고민하던 내 옆에서 조합장님이 필에게 재차 되묻는다.

우리 뒤에 있는 행렬로부터 신경을 빼앗아보려는걸까. 이미 늦은것 같은데..


"공사는, 다 끝났는데요...그러니까 조합장님 저 사람들은..."


"그러냐. 그럼 빨리 돌아가는게 좋을게다"


"..네?"


밑도 끝도없는 조합장님의 그 말에 눈이 동그래진 필이 조합장님을 의아한 얼굴로 빤히 바라본다.

그 얼굴 표정에 어려있는 감정이 옮은건지, 나도 조합장님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건지 몰라 고개를 돌려 올려다보니,


"다들 축제에서 같이 어울릴 파트너를 정하기 바쁜데, 너는 급하지 않느냐 필?"


...파트너?


"파트너? 응? 파트...아, 아아아아아!!"


"뒤에있는 자네들도일세. 다들 슬슬 결혼도 해야하지 않겠나? 이번 축제가 좋은 기회일걸세만..."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는 조합장님의 그 말씀에 고개를 갸웃거리는건 나 혼자뿐.

경악한 표정으로 소리를 지른 필과 분위기가 싸악, 하고 바뀐 필 뒤에 서있던 수명의 사람들은 어느새 눈빛을 불태우고있었다.


"...이봐 코브렐, 자네 파트너는 생각해두었나..?"


"..케이시. 자네는?"


".......케이시"


""!!!""


소곤소곤 무언가를 서로 소근거리던 사람들이 맹렬한 기세로 마을을 향해 달려나간다.

벙찐 나나 의연한 표정으로 서 계신 조합장님, 심지어는 갑옷차림으로 말 위에 올라타있던 기사들과 마차들에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그들은 민첩한 야생동물들처럼 꽉 들어찬 길의 양쪽 옅은 숲 속에서 빠른 속도로 행렬을 지나쳐갔다.

서로가 경쟁하듯, 서로 먼저 누군가의 옆으로 가야한다는 일념 아래에서.


순식간에 눈 앞에는 얼굴을 감싸쥔 채 고개를 숙이고있는 필 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저기 필, 파트너라는게..."


"..도린"


"?"


도린? 학교에서 가끔 보이던 조그맣고 눈이 동그란 다람쥐 닮은 그 여자아이?

데릭 아저씨네 빵집과 가까운곳에서 가죽을 가공해 파는 배나온 티먼 아저씨네 딸인 그 도린말하는건가?

갑자기 걔는 왜...


"나는, 나는 도린이 좋단말이다아아!!!"


갑작스런 고백을 숲 안에 쩌렁쩌렁 울려내며 얼굴에서 손을 떼곤 하늘을 보며 표효하는 필의 모습에 움찔 놀라 한걸음 물러나버린다.

기백이, 기백이 정말 장난아니다.

이정도면 첸드릭과도 기백만큼은...


"..호오. 꽤나 나쁘지않은 기세를 가지고있구만.."


본인이 인증했다.

대체 뭐길래 필이 이정도로..


"다 비켜어!!"


그리고 필도 떠나간 다른 사람들처럼 엄청난 기세로 우리들을 지나쳐갔다.

물어 볼 새도없이 그렇게 눈 앞에서 사라진 필의 뒷모습을 따라가보려 급히 고개를 돌리지만 순식간에 그 특유의 붉은 머리는 눈 안에 담기지 않게된다.

..어떻게든 됬네, 어떻게든 되긴 했는데...


"..저기 조합장님"


"허허..그래 왜 그러느냐 루시안"


"파트너, 라는게 제가 생각하는 그게 맞나요?"


저 건장한 남자들이 끓어오르는 혈기를 숨김없이 모두 바깥으로 쏟아내며 지금 이 순간 품고있던 모든 의문들을 저 멀리 날려보낼만큼의 힘을 가진 그 단어.

아니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고있었지만, '축제에서 어울릴 파트너'라는 이야기에 순간 뒤죽박죽이던 머리가 반응을 하지 못했었다.

그러니까 그런거지?


"그래, 이 작은 마을에 평소 가족처럼 지내던 사람들이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언제 '그런 감정'을 표출할 수 있겠느냐.

그저 빨리 공사를 끝내게 하기위해 골라 보낸 사람들이었는데 이게 이렇게도 도움이되는구나"


"..효율적이라고 해야할지 악독하다고 해야할지 도저히 갈피를 못잡겠네요"


"어른은 때론 한없이 더러워지길 두려워해선 안된단다"


"어른이 되기 싫어지는 말이네요..."


"너도 이미 훌륭한 어른인데 무슨소리냐"


껄껄 웃는 조합장님에게 한숨섞인 시선을 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어찌되었든 당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니 좋은게 좋은거라고 생각하자.

당장 내일이 축제의 시작인데다 같이 준비해둔 환영식에서 공작영애를 소개할테니 지금 이 순간만 모면하면 되는거겠지.

내일 사람들이 축제의 흥분에 정신이 무뎌질때까지는 이런식의 주먹구구식으로 상황을 모면해나가는 것도 나쁜 방법을 아닐거다.

좋게말해, 이런게 임기응변이라는 것일테니까.


뒤편 지근거리에 다가와있던 첸드릭에게 고개를 끄덕여 괜찮다는 신호를 주고 다시 눈 앞에 보이기 시작한 공터로 발을 옮긴다.

살짝 그늘이 져있는 숲과는 달리 햇빛이 온전히 내리쬐는 공터에서 터져나가듯 덮쳐오는 햇빛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꿋꿋히 걸어가니 익숙한 공터의 모습이..


"....."


익숙한, 공터의, 모습이...?

익숙...?


"허어...이거 참, 아예 집을 새로 지어놓은 수준이구만"


털썩.


태평스레 감탄을 흘려낸 조합장님의 옆에서 그만 다리에 힘이풀려 주저앉고만다.

이, 이게 무슨....


"그 짧은 사이에 이만큼의 가건물을 지어놓다니, 역시 우리 마을의 젊은이들은 대단해. 허헛"


"지금 그런 말이 나와요?!"


넒은 공터 한가운데에 호젓하게 놓여있어야 할 나의 따뜻한 집.

통나무를 쌓아 올린 소박한 단칸방의 우리 집이..


"미, 미야...미야아아아...?"


머리위에서 구르듯이 내려온 키니가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공터 한가운데를 향해 걸어간다.

녀석도, 눈 앞의 풍경에 어지간히 충격을 받은게 아닌듯.


쏴아, 바람 한자락이 숲을 들썩이며 불어와 공터를 휩쓸고 지나간다.

그 바람의 건너편에서,

햇빛이 내리쬐는 밝은 그곳에 놓여있는 것은 나의 그리운 집이 아닌 생전 처음보는 커다란 목조 건물이었다.





"....."


"그렇게 너무 풀죽어하진 말거라 루시안. 그래도 집이 넒어져서 좋지않느냐"


"네, 좋지 않네요.."


혼자살 집이 넓어서 무슨 필요야..

전에 살던 집도 혼자살기엔 넓은편이었다. 애초에 부모님 두분과 함께살던 집이니 당연한거겠지.

근데 이건, 이건...


"..이거 나중에 허물어 주시는거죠?"


"..꼭 그래야 하겠느냐? 이대로 사는건.."


"싫어요"


"..그렇다면 허물어주마. 그때까진 조금만 참아다오"


커져버린 우리집, 아니 대체 어떻게 지은지 모를 커다란 건물때문에 좁아진 공터의 공간 이곳저곳에 기사들이 일사분란하게 흩어지는 모습을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내 얼굴을 살핀 조합장님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뒷 머리를 긁는다.


처음엔 익숙하던 내 집은 온데간데 없고 이런 건물이 들어서있길래 있던 집을 허물고는 새로 지은건 줄 알았는데, 충격에 힘이 빠져 비척거리는 걸음걸이로 가까이 다가와보니 그런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보다 더 희안한 집을, 이 짧은 시간동안 어떻게 이런걸 만들었는지 의심이 갈만한 구조로 만들어진 모습을 보곤 경악했더랬다.


"..이게 뭐에요 이게.."


기사들에게서 눈을 돌려 등지고있던 문을 잡아 연다.

그리곤 눈 앞에 펼쳐지는 익숙한 모습.


"집에다 집을 '씌워'버리는 생각은 대체 어떻게한거에요.."


"..이건 솔직히 나도 놀랄수밖에 없구나"


겉에서 보면 높이도 높은데다 넒이도 넒은 집의 입구를 여니 공간은 자그마한 단칸방?

깜짝 놀라 문을 닫고 다시 열어봐도 눈 앞의 풍경은 변함없는 익숙한 우리 집이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된일인지 혼란스러워 다시 건물에서 몇발자국 떨어져 이리저리 둘러보니 의외로 그 이유는 간단한데에 있었다.


나란히 거리를 둔 채 떨어져있는 또 다른 문 하나.

열어보니, 아니나다를까. 넓디넓은 공간이 휑하니 눈 앞에 나타났다.

꿈꾸고있는건줄 알았어...악몽같은거.

이럴거면 우리 집에 문은 왜 바꿔단거야..

저쪽 문이랑 짝을 맞춘건가?


"굳이 이런식으로 지어야 할 필요는 없었잖아요.."


"어떻게 지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들의 재량껏 지은것 같다만...평범하게 지으면 될걸 이렇게까지 지은 이유가.."


"....."


"....."


순간, 조합장님과 눈이 마주친다.

조합장님은 무엇을 생각하고있는지,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 눈동자에 어린 빛은 같은 것을 가리키고있었다.


""필....""


그 녀석이다.

그 바보! 필이라면 충분히 이런짓을 하고도 남아!

증거는 없지만, 확신하고도 남을 만큼 필은 그런 녀석이니까..!


"..필의 말에 따른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테지만..."


그건 그렇긴하지.

그럼 내가 복수할 사람들이 몇명인거지? 하나, 둘, 셋...


"대화 도중에 실례해도 되겠소?"


불쑥, 문을 활짝 연 채 앞에 서서 손가락만 접던 나와 그런 나를 내려다보며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하는 조합장님에게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며 다가온 첸드릭이 말을 걸어온다.

아, 그 전에 할일이 있었지.


"아 네, 괜찮아요"


"이 공터 주변을 탐색해보러 기사 몇명을 보냈고, 나머지는 혹시모를 위험에 대비해 공터를 둘러싸 전개를 끝마쳤소.

이제 그쪽만 준비가 끝난다면 아가씨를 모시고 싶소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것 같지만, 정신이 반쯤 나가있던 내가 아닌 조합장님과 이야기를 나눈 첸드릭은 공터 곳곳에 기사들을 배치하고 마차를 끌어와 집 앞에 세워두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미 이 주변은 키니의 영역이다. 내 영역이기도 하고.


야생동물들 중에서도 위험도가 높은 맹수들은 저 멀리 쫒아내버린데다가, 예전에 한창 들끓던 마을 주변의 도적이나 강도들 또한 손 봐두었으니 이 공터만큼은 위험할 일이 없지만, 그의 입장에선 이것도 아까 마을 입구에서와 같은 맥락으로 본다면 이해가 가는 일이기에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게 마무리된 지금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해야하는 거겠지.

나는 장소를 빌려줄 뿐이니 대화는 이 둘이서...

장소...장소.....


"...하윽"


"..로번 조합장. 루시안 군은 갑자기 왜 우는것이오?"


"...한창 그럴 시기이지요"


"젊구려"


아까의 냉랭하던 분위기는 어디로 치웠는지 같은 자세로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이는 덩치만 큰 웬수들 두명을 잡아먹을 듯 올려다보다가 문득 잊고있던 것에 생각이 미친다.


"근데...집을 이렇게 크게 지었다는 건.."


설마,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입 밖으로 꺼내기 두려운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 하는거니까.

아니길 바라지만...


"다들...여기서 묵는건가요?"


처음 커다란 집을 보고나서 바로 든 의문이었다.

그게 공터에 퍼져나가는 기사들을 바라보며 더욱 강하게 들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세대의 마차중 한대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조립하기 시작하는게 그런것때문은 아닐까?


"이곳에서 말인가? 그럴리가"


고개를 젓는 첸드릭의 낮은 목소리가 정수리 위로 떨어져 내려온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의 목소리인듯...


"전부는 아닐세. 둘러보니 모두가 묵을 수 있는 공간으론 부족하더군. 로번 조합장, 마을에 따로 체류할 수 있는 곳이 있소?"


"광물출하일과 맞물려 임시로 지어놓은 간이숙소들이 조금 남아있습니다. 이용하실 수 있도록 협조하도록 하죠.

물론 그 전에 해야할게 있겠지만"


"그렇겠지. 그럼 나는 아가씨를 뫼시러 다녀오겠소.

이 집 안으로 뫼시고 오면 되겠소?"


"괜찮겠니 루시안?"


"...맘대로 하세요 다들. 이제와서 뭘 물어요.."


포기다 포기.

'소규모의 행렬이라고는 하지만 마을은 포화상태이니 너희 집이 있는 공터에 간이숙소를 짓는거란다'라던 조합장님의 말을 들으며 설마했지만 그걸 나는 그저 공작영애와 그녀를 호위할 몇명만 묵게되는거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게 이 사람들 대부분이었다니...


"약간이 아니라 엄청 시끌벅적해지겠네..."


"미야아앙..."


풀이 죽은 내 어깨에 축 늘어져있는 키니도 이제부터 몇일간 일어날 일들을 상상했는지 한숨을 내쉬고있었다.

조용하고 평온한 우리들의 일상이 하루사이에 이렇게 변해버리다니...


"..미안하다 루시안. 네 부담을 이렇게까지 늘려버리다니"


어깨를 토닥이는 조합장님과 집 안으로 들어선 나는 테이블의 의자를 빼어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내 옆에 나란히 앉은 조합장님의 얼굴에는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이 가득 차있었다.


"...후우.."


"네게 참으로도 큰 짐을 주게되었지만..마을엔 너밖에 없으니.."


"...그렇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고있긴 했어요"


"네가 알고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마을에서 네가 제일 '안전'하니까"


"..."


역시나 조합장님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셨던거구나.

아까 추측했던 것과 같은 생각을 하고계셨다는걸 알게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질 않네.


"그건 알겠지만, 그렇지만..."


머리는 이해를 하더라도 마음은 따라주지 않는게 분명 있는거다.

이제와서이긴 하지만, 갑작스러웠잖아. 미리 언질이라도 주었으면 좋았을걸.

물론 바쁘셨다는 건 이해를 하지만, 그래도 이런 중요한 일이있으면 미리 말해주면 얼마나 좋아.


나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일을 이렇게 갑작스레 떠맡겨진데에 대해선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고. 혼란스럽기도하고.

휩쓸리듯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편안한 내 집에 돌아와 앉아있다는 지금 이 순간에 조금이나마 여유로워진 머리속이 다시금 그런 사실들로 뒤죽박죽이 되어간다.


"미야앙, 미양"


어깨에서 팔을 타고 테이블 위에 올라 선 키니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마주하며 애써 미소를 지어보인다.

토닥토닥, 키니의 짧은 앞다리가 테이블 위에 올려둔 내 손을 토닥이며 위로를 건네주는 그 모습에 조금은 마음의 진정을 찾아가던 그 때,


똑, 똑.


[들어가도 되겠소?]


"아 네, 네! 들어오세요!"


그래도 손님이니까, 이렇게 앉아서가 아닌 일어나서 문을 열고 맞이해줘야 하지않을까하는 생각에 반사적으로 일어난 그 순간 벌컥 열린 문 바깥에서 햇빛이 새어들어온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뒤에 첸드릭과 키가 큰 여성을 거느린 채 앞에 서있는 나와 비슷한 키의 여성.


열린 문에서 새어들어오는 햇빛이 반짝이며 곱게 부서져내리는 밝은 금빛의 긴 머리카락 밑으로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눈썹아래의 눈동자는 흔들림없이 내 쪽을 굳게 바라보고있었다.

오똑한 콧대와 하얀 피부에 대조되는 선분홍색의 자그마한 입술.

작은 얼굴 안에서 하나하나가 특유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존재감을 여실없이 드러내는 그 이목구비는 조화롭게 어울려 여성의 분위기를 매우 신비롭게 자아내고있었다.

그건 그녀의 갸냘프면서도 굴곡있는 몸매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맞물려 마치 조각상과 같다는 생각이 들게끔 했다.

살면서 몇번 본 적 없던 조각상은 확실히 아름다웠으니까.


예를들어, 교회를 가본적은 없지만 아마 '천사'라는 존재를 조각상으로 표현해낸다면 저런 느낌이 아닐까?

차분하지만 당당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그녀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다가와,


"만나뵙게되어서 반갑습니다. 저는 글렌로우드 공작가의 장녀, 에밀리 글렌로우드라고 합니다"


조합장님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오는 것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차분한 목소리로.


"...에밀리?"


"..?"


문득 입에서 새어나온 내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시선을 나에게 옮기는 그녀, 에밀리 공작영애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본다.


에밀리라는 이름은 그렇게 흔한이름이 아니다.

탄트라 마을이란 작은 곳에서도 멀리 떨어져 살던 통에 사람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나지만, 적어도 마을 안에선 '에밀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이름을 지녔던 또 한명의 여인은 자신의 이름을 대륙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거라며 자랑스러워했었다.

흔해보이는 이름이지만, 아무나 지닐 수 있는 이름이 아니라며.


어머니는, 그렇게 자신의 이름에 자긍심을 가지고계신 분이셨다.

눈 앞의 이 여인처럼..아름다우셨었고.


갑작스레 불쑥 튀어나온 그 이름에 나는 그만 주변의 모든걸 시선 바깥으로 밀어내며 그녀의 얼굴을 그렇게 하염없이 바라보고만있었다.


작가의말

오오 에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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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hapter [만남] : 01. 아가씨께서 오십니다.(1) 17.11.08 90 0 13쪽
2 Chapter [어딘가에선] : 00. 지금 소녀와 소년은.(2) 17.11.07 119 0 38쪽
1 Chapter [어딘가에선] : 00. 지금 소녀와 소년은.(1) 17.11.07 235 2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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