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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서재입니다.

벨럼 데오룸: 케난그르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게임

완결

FromZ
작품등록일 :
2023.02.28 19:41
최근연재일 :
2023.04.02 07:25
연재수 :
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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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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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
글자수 :
504,944

작성
23.03.0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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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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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0. Prologue. 이교도 (1)

DUMMY

***



신자들의 숫자와 영향력이 신의 힘을 결정하는 오픈 월드 RPG. 벨럼 데오룸(Bellum Deorum).


테렉시스는 이 세계의 젖먹이로 환생(還生)하여 18년의 세월을 보내왔다. 그렇게 살면서 ‘최악의 스타팅’ 장소에 떨어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오늘은 그가 피의 제단에서 성년식을 치르는 날이다.

검은 붕대로 눈을 가린 매부리코 예언가는 마을 사람들 앞에서 그를 불렀다.


“시데레오스 테렉시스.”


“예.”


덥수룩한 회백색 수염과 머리털, 큰 체격, 푸른 눈을 하고 있는 테렉시스는 예언가에게 가서 고개를 숙였다.


“수룡(水龍)이 우리의 항구와 낚싯배들을 보호하는 동안, 그대는 설산을 누비며 굶주림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했습니다.”


마을 사람들 수십 명이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는 박수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품속에 숨겨둔 눈토끼를 모두에게 꺼내 보였다.


“저를 대신하여 항구와 낚싯배들을 보호한 수룡에게 피를 바치겠습니다.”


겁에 질린 눈토끼는 두 귀를 붙잡힌 채 연신 헛발질만 해댔다. 테렉시스는 그런 눈토끼의 목을 단검으로 찔러서 피를 쏟아냈다.

바닥에 쏟아진 피는 차가운 혈로(血路)를 따라 흐르며 따뜻한 김을 만들었다. 이곳 사람들은 그렇게 올라가는 김을 수룡에게 바치는 영혼이라고 여긴다.

반면에 테렉시스는 눈토끼의 피를 쏟으며 달리 생각했다.


‘무의미한 제물이다.’


신자들의 숫자와 영향력이 신의 힘을 결정하는 벨럼 데오룸의 세계관이다. 그래서 이러한 종교적 의식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엄연히 말해 수룡은 신이 아니었다.

그래서 수룡에게 바치는 제물은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


“테렉시스가 바친 영혼이 하늘로 오릅니다. 앞으로도 수룡이 우리의 항구와 낚싯배들을 보살피고···. 이교도로부터 우리의 고향이자 안식처인 ‘우라크’를 보호하길 빌겠습니다.”


우라크는 이 혹독한 섬에 있는 유일한 부족국가이자 마을이다. 그리고 이 섬은 영향력 큰 국가와 종교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북쪽 변방에 있다.

그래서 신과 신자들의 관계가 매우 중요한 세계관임에도 이렇듯 무의미하고, 원시적이고, 비효율적인 토테미즘과 샤머니즘이 혼재하고 있는 것이다.


‘용은 신이 아니라 몬스터라고. 한 마리라도 국경을 넘으면 근처 국가들이 초토화되면서 총력전으로 상대해야 하는···.’


이윽고 가여운 눈토끼의 숨통이 끊어졌다. 사람들의 잡담까지 멈추고 제단에 침묵이 찾아왔다.

추운 기후에서 혈로를 따라 흐르던 피가 식었다. 자연히 연기처럼 피어오르던 김도 사라졌다. 늙은 예언가는 매부리코를 킁킁대며 피 냄새를 쫓았다. 그러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남자를 정중히 가리켰다.


“라노구트. 우라크의 거인이자 족장이시여.”


“내 차례인가.”


라노구트 족장은 시종에게 술잔을 넘기고 제단으로 올라왔다. 그는 이 장소에 있는 누구보다도 덩치가 컸다. 또한 누구보다도 푸른 눈이었다.


“흠흠.”


테렉시스는 족장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피 빠진 눈토끼를 두 손으로 내밀었다.


“좋다. 테렉시스.”


족장은 눈토끼를 받아주며 이야기했다.


“자네는 웬만해선 울지 않던 젖먹이였지. 그래서 자네의 어미와 아비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르겠네.”


“···.”


“하지만 수룡의 눈을 가진 나는 자네의 부모도 몰랐던 사실을 알아봤지!”


족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예언가, 마을 사람들, 그리고 테렉시스의 부모까지 들으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자네는 전사의 영혼을 타고난 사내였네!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손도끼를 들고 고기를 탐하며, 수염이 자라기도 전에 사냥을 나가겠다고 부모에게 보챘지! 이제는 우라크 최고의 사냥꾼이 되었군! 자, 일어서게!”


테렉시스는 일어서서 족장과 눈을 마주했다. 족장의 키는 테렉시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앞으로도 육지에서 용맹하게 활동해 주길 바라겠네!”


족장은 오른손으로 테렉시스의 뒷머리를 잡고 이마를 맞댔다. 남들이 보기에는 친근함과 신뢰의 표시지만, 이 순간 한껏 목소리를 낮춘 족장의 말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라크의 그 누구도 나를 기만할 수는 없다네.”


“예.”


“이 경사스러운 날에 바치겠다는 제물이 쥐 좆만 한 토끼로군. 자네 실력은 모두가 아는데 말이야.”


테렉시스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다고 족장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줄 수 있는 위치나 힘이 있는 건 아니었다.


“전부터 내게 바치는 사냥감과 제단에 바치는 제물이 불성실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네. 내가 언제까지 이를 눈감아줘야 하는가?”


‘또 시작이다.’


“물론 자네와 자네 부모의 배를 불리는 것도 좋지만, 성인이 되었으니 이젠 좀 눈썰미가 생겼으면 좋겠군.”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앞으로 족장님께서 저의 신앙심과 충성심을 염려하실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늘이 두려운 줄 알면 그래야만 할 걸세.”


족장은 재차 강조했다. 테렉시스가 무엇을 섬기며, 어디서 활동을 이어나가야 하는지를.


“수룡은 우리에게 농사도 짓기 어려운 혹독한 땅을 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탐험하기 버거울 정도로 큰 땅과 드넓은 바다를 주었지! 나는 성인이 된 테렉시스가 장차 우리 땅의 모든 것들을 발견하고 탐험할 것이라 믿고 있네! 자네들도 그러한가?”


“물론입니다!”

“예! 족장님!”

“와아아아!”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테렉시스만이 족장의 생각을 부정하고 있었고,

검은 붕대로 눈을 가린 예언가는 그런 테렉시스를 히죽대며 지켜보고 있었다.



***



야심한 새벽.

성년식이 끝난 후 테렉시스는 아무도 모르게 제단으로 찾아왔다.

고래기름으로 만든 촛불은 모두 꺼져있고 차갑게 가라앉은 적막은 무의미한 희생의 피비린내만 풍기고 있다.

테렉시스는 아까 성년식 때 자신이 섰던 자리로 올라갔다.


“예언가님.”


제단 뒤편의 어둠 속, 달빛이 매부리코를 먼저 맞이하면서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성인이 되어 저를 독대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자마자 찾아오시다니···. 하루의 중심이 되는 시간에 무슨 비밀을 가져오셨는지요?”


“라노구트 족장이 알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대와 제가 이렇게 밀회를 가졌다는 사실을, 제가 스스로 족장에게 밀고할 수도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지 않으실 거잖아요.”


테렉시스는 예언가에게 다가갔다.


“누구보다도 입이 무겁고 누구보다도 앞이 잘 보이는 예언가님. 저는 어려서부터 생각해왔습니다. 성인이 되면 반드시 당신과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요. 아무도 모르는 새벽에, 아무도 모르는 공간에서 말이죠.”


그러자 예언가는 달빛 아래에 심히 뒤틀린 미소를 보였다. 그 뒤틀림은 행복보다 쾌락에 가까웠고, 답답했던 것이 해소되면서 위험한 흥미를 돋우는 듯하였다.


“저의 거처로 모시지요. 이곳에서는 눈토끼가 엿들을 수도 있습니다.”


테렉시스는 예언가와 함께 제단의 지하로 내려왔다.

수룡을 상징하는 조각품, 기이한 글귀가 피로 적힌 가죽, 오래되어 썩기 직전인 책, 구린내 풍기는 가죽 침대 따위를 촛불이 밝히고 있다.

예언가는 자신의 침대에 앉아서 미소를 싹 지워버렸다.


“시데레오스 테렉시스···. 이 늙은이는 그대가 태어난 날, 꿈속에서 그대의 모습을 엿보았지요.”


테렉시스는 지체 없이 질문했다.


“당신의 영험한 눈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그대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우리 족장의 목에 도끼를 겨누고 있었답니다.”


“제가 라노구트를 죽이게 됩니까?”


“거기까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대의 머리 위에 있는 ‘어떤 분’의 형상을 보았지요.”


테렉시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현실의 예언가라면 믿기 어렵지만 이 세계의 예언가는 희귀한 직업이다. 신빙성은 충분해.’


“그분의 형상은 심히 초췌했답니다···. 새우처럼 굽은 허리에 앙상한 갈빗대가 다 드러났고 온몸에 채찍질의 자국이 있었지요.”


‘다른 신들한테 처벌을 받았구나.’


“하지만 그 초췌하고 앙상한 신은 테렉시스, 그대를 보며 호탕하게 웃고 계셨습니다. 그때 저는 지팡이를 든 채 그분을 보며 광인처럼 웃었지요.”


“신의 이름은 이콘입니다.”


“이콘···. 제가 드디어 진짜 신의 존명을 듣는 날이 왔군요. 어쩐지 이상했습니다.”


예언가는 마치 이 순간만 기다려왔다는 듯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서슴없이 꺼냈다.


“저는 현실과 영혼의 틈에서 늘 신의 목소리를 듣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라크에서 섬기는 건 바다의 수룡이지요.”


“예.”


“고백하자면 저는 63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수룡의 목소리를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한 번쯤은···. 제가 죽기 전에 한 번쯤은 그 목소리를 듣고자 수많은 제물을 바치고 기도를 올렸지만 말이지요.”


“수룡은 신이 아닙니다. 마을의 그 누가 수룡을 섬겨서 힘을 얻었다고 합니까? 예언가님은 저보다 오랜 세월을 이곳에서 존재하셨으니 아실 겁니다. 수룡에게 제물을 바쳐서 무언가를 얻은 자가 지금껏 단 한 명이라도 있었습니까?”


“없었지요.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라 ‘의심’되는 자들뿐···.”


예언가는 탁상에 놓인 수룡의 조각품을 어루만졌다.


“확실히······. 주신(主神)의 허락을 받은 자는 특수한 스킬을 쓸 수 있다고 들어본 바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이름, 레벨, 속성, 특성까지도 알 수 있는 스킬이지요.”


“그건 ‘정보 열람’이라는 스킬입니다.”


“그대는 주신의 허락을 받았는지요?”


“받았습니다. 이콘교의 영향력을 확대하라는 뜻을 듣고 18년간 아무 소통이 없었지만요.”


“제단, 교리, 의식이 갖춰지지 않아서 그렇지요. 신의 계시는 정성이 있어야 받을 수 있답니다.”


“맞습니다. 이콘교라고 하기엔 저 말고 아무도 모르는 신이었으니까요.”


“어쨌든 이콘님께서 그대를 택하셨다면···. 그대는 세상 누구도 모르는 이 늙은이의 이름을 볼 수 있겠군요.”


지금 예언가는 테렉시스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그가 정말로 신의 선택을 받았는지 증명하라고.

물론 그것은 테렉시스에게 무척이나 간단한 일이었다.


‘정보 열람.’


곧 테렉시스는 예언가의 정보를 볼 수 있었다.


「이름: 갈드 구르」

「레벨: 3」

「종족: 인간」

「속성: 무(無)」


“갈드. 구르.”


테렉시스가 그 짧은 이름을 입에 담자, 예언가는 수룡의 조각품을 바닥에 버렸다.


“아아···. 정말로···.”


그러더니 의욕적으로 테렉시스에게 다가와서 그의 두 손을 강하게 붙잡는 것이다.

간절하게 떨리는 목소리였다.


“이콘······. 이콘님이라고 하셨지요···?”


“맞습니다.”


“왠지 모르게 그분이 그대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을 거란 예감이 생깁니다. 어째서 그 초췌한 신이 그대를 편애하고 있는 건지요?”


“인간이 신의 속내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신의 뜻을 해석할 수는 있지요. 신의 뜻을 알기 위해 정성을 다할 수 있고 점을 볼 수도 있지요.”


“그걸 예언가님께서 해주시면 되겠네요.”


신자들의 숫자와 영향력이 신의 힘을 결정하는 세계.


“현재로서 저는 이콘님의 유일한 신자이자, 샤먼입니다.”


“샤먼···?”


“신의 선택을 받아서 신과 영적인 교류를 할 수 있는 종교 관계자입니다.”


이런 변방의 섬 말고 대륙에서는 종교에 따라 주교, 메시아, 선지자, 성직자 등 다양한 형태로 불린다. 샤먼은 그런 자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만약 제가···. 이콘님을 추앙한다면 그대에 이어서 두 번째 신자가 되는 것이겠군요.”


“이콘이 기뻐할 겁니다.”


“이콘교···. 그분의 형상을 돌이켜보면 천계에서의 박해가 심했던 모양이군요. 힘이 없고···. 마치 죄수 같은 형상이셨으니까요.”


“예. 말씀을 듣고 보니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저지른 신 같네요.”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이라 함은 유추되는 게 있으신지요?”


“확신하는 게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요?”


“지금 저한테 정보 열람을 써보시죠. 그분이 귀중한 두 번째 신자를 거부하실 리가 없습니다.”


“예···?”


“제가 태어난 순간부터 그 신을 믿어오지 않으셨습니까. 이콘이라는 이름만 몰랐을 뿐이지.”


예언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다.


“구르. 당신이 그토록 찾던 신과의 연결점이 아닙니까?”


그러자 예언가는 다시 고개를 들고 테렉시스를 마주했다.

예언가가 개종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별도 달도 없는 영원한 밤하늘 속에서 등불을 발견한 날벌레의 행동처럼 말이다.


“정보···. 열람···?”


예언가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는 스킬 발동이었다. 이콘교의 신자로서 신앙심이 크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는 단계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콘은 그런 예언가를 환영했다. 이콘의 입장에서는 신자가 무려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마침내 예언가는 생애 첫 스킬을 발동할 수 있었다.


“오···. 이런···.”


예언가는 괄목할 수밖에 없었다. 테렉시스의 속성이 이제껏 예언가가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제가 알기로 이 세상에는 여섯 가지 속성이 있지요.”


“불, 물, 흙, 바람, 빛, 어둠이지 않습니까.”


“예···. 그리고 속성이 없는 자의 무 속성까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대의 속성은 비정상적이고 이례적이군요.”


“이콘이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서 그런 형상을 하고 있는 겁니다. 당신이 말했듯 천계에서 힘이 없고 초췌하고 앙상한 몸을 하고 있는 신이죠.”


“규율에 어긋나는···. 이해가 됩니다. 이 세상에 결코 존재해선 안 될 힘을 그대에게 내려주셨군요.”


뭐가 먼저인지는 모른다. 이콘이 테렉시스에게 있어선 안 될 힘을 주었기 때문에 박해를 받고 있는 건지.

아니면 박해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테렉시스를 선택하여 그런 부정행위를 저지른 건지.


“인간, 마족, 엘프, 몬스터, 종을 가리지 않고 종교가 있는 놈들이라면 누구든 절 경계하겠죠. 이 세계에 있어선 안 될 속성이니까.”


“축복이지만 저주와도 같은 면모가 있군요.”


축복이자 저주 같은 힘.

신자의 숫자가 극단적으로 부족한 종교.

쓸데없이 수룡이나 섬기고 있는 부족국가.

너무 강한 극소수의 몬스터, 잡아도 큰 경험치는 기대할 수 없는 짐승들.

위험천만하고 극단적인 플레이를 해야 성장할 수 있는 북쪽 변방의 섬.

최악의 스타팅.


‘그냥 게임이었다면 죽고 다시 만들면서 나름 도전하는 재미가 있었겠지만···. 벌써 18년 전의 이야기지.’


따라서 그에겐 많은 수행과 각오가 필요했다.


“이콘의 영향력을 확대하라는 뜻을 18년 전에 들으셨다면···. 눈도 뜨지 못했을 때 그분의 목소리를 들으셨다는 말씀이군요.”


“그렇게 됐습니다.”


테렉시스는 오래된 기억을 회상했다. 갓 태어났던 그때는 정말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두려워서 미친 듯이 절규하며 울었다.

그는 능력 좋은 현대인이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사회에서 자신이 이룬 모든 것들과 모든 인간관계로부터 끊어진 채 갑자기 이 세계에 떨어졌으니, 절규하며 우는 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것이 18년 전의 일이다.


“그대는 이콘의 영향력을 확대하셔야겠군요. 그것이 그대가 받은 계시입니다.”


‘이콘의 뜻이든 아니든 그건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 세계관이 그런 세계관이니까.’


물론 예언가한테는 이렇게 말해도 될 것이다.


“물론입니다. 저는 마땅히 주신의 뜻과 함께할 생각이죠. 그리고 예언가님도 저와 함께 이콘교의 영향력을 확대해야만 합니다.”


“그대가 가지고 있는 속성은 그것을 이루기 위한 힘이군요.”


날 때부터 가질 수도 있는 ‘특성’은 없지만 특별한 ‘속성’은 가지고 있으니 어쨌든 그것이라도 써먹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도태와 죽음뿐인, 전쟁으로 얼룩진 세계다.


“훗날 그대의 특별함이 세상에 널리 알려질 것 같군요. 예언은 아니고 이 늙은이의 작은 바람입니다.”


속성이란 불, 물, 흙, 바람, 빛, 어둠 그리고 무.

하지만 이콘이라는 신이 테렉시스에게 내려준 속성은 축복이자 저주였으니.


「이름: 시데레오스 테렉시스」

「레벨: 2」

「종족: 인간」

「속성: 플라스마」



***



“아, 그리고 예언가님.”


“말씀하시지요.”


“이콘이 제게 이런 속성은 줘놓고 특성은 주지 않아서 말입니다. 혹시 제게 주어진 특성까지 이콘이 미리 정해둔 거라면, 그것의 획득 조건이 뭔지 알 방법이 있을까요?”


특성은 위인이 될 수도, 병종이 될 수도, 어떠한 역사적 사건명이 될 수도, 신화 속 신의 이름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지상에서 오로지 한 존재만이 획득할 수 있는 칭호 같은 것이며, 18년 전 현대의 기억을 떠올리자면 종류가 너무 많아서 벨럼 데오룸의 유저들이 다 찾아내지도 못했다.

게다가 같은 이름의 특성이라도 세계가 바뀌면 매번 그 효과와 획득 조건이 무작위로 정해진다.


‘이런 배경이면 바이킹일 것 같긴 한데 획득 조건을 모르겠네.’


그때 예언가는 정론을 내놓았다.


“그대에게 주어진 운명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지요.”


작가의말

반갑습니다.

급한 현생의 문제들을 처리한 후 1년 만에 새 작품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다시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__)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2

  • 작성자
    Lv.63 gm******..
    작성일
    23.03.03 11:57
    No. 1

    선생님 오셨군요

    절필하시는건 아닐까 조마조마하면서 내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글 써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FromZ
    작성일
    23.03.03 21:10
    No. 2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 또한 독자님의 낯익은 닉네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ㅎㅎ 지난 작품으로부터 거의 1년이나 시간이 지났음에도 기억해주시니 정말 죄송스러우면서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계속 힘내서 정진해보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6 청늪
    작성일
    23.03.11 11:30
    No. 3

    음음. 신호듣고 왔습니다. 다시 집필해주셔서 다행이에요.

    플라즈마인 만큼, 혼자 소드마스터짓을 할 수 있지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기대하겠습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68 여행가즈아
    작성일
    23.03.11 12:17
    No. 4

    복귀 감사합니다.

    '내 아이들이 우주에 들끓는다'란 작품을 매우 인상적으로 봐서 신작이 나올때만을 기다렸습니다.

    아무튼 파이팅이에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30 야채빵
    작성일
    23.03.11 17:22
    No. 5

    ㅋㅋㅋㅋㅋㅋㅋ뭐가 플라즈마인가 했더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돌겠다 ㅋㅋㅋ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FromZ
    작성일
    23.03.11 18:57
    No. 6

    저는 머리가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6 피히이
    작성일
    23.03.12 00:12
    No. 7

    다차원의 강령술사, 내 아이들이 우주에 들끓는다 두 작품 모두 실시간으로 따라가서 본 작품이면서 동시에 세번째 작품마저 실시간으로 따라가는건 8년차 독자로써FromZ 작가님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매력적인 글을 쓰시는 작가님이기에 이번에도 여지없이 믿고 따라가겠습니다 파이팅입니다 작가님!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FromZ
    작성일
    23.03.12 13:05
    No. 8

    반갑습니다ㅎㅎ 이번 작품은 전작보다 확실히 잘 썼다고 자신합니다. 따라서 많이 난해하고 수위가 매우 잔인하고 꿈도 희망도 대리만족도 없는 전작을... 흑흑... 재미있게 보셨다면 이번 작품은 그보다 몇 배로 재미있게 즐기실 수 있으리라 희망 회로를 돌려봅니다...!
    정말 제게는 과분한 응원의 말씀에 그저 감사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독자님께 즐거운 시간, 행복한 시간, 추후에는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__)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53 빈둥티아
    작성일
    23.03.13 08:28
    No. 9

    갑시다 작가님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FromZ
    작성일
    23.03.14 17:00
    No. 10

    아이고 반갑습니다! 많은 회차가 쌓여있으니 끊김 없이 재밌게 즐겨주셨으면 좋겠네요ㅎㅎ 굵직한 에피소드마다 좋은 장면을 넣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7 현고삐리
    작성일
    23.03.14 07:42
    No. 11

    잇쿠-! =͟͟͞͞( •̀д•́)))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FromZ
    작성일
    23.03.14 17:03
    No. 12

    (존야)

    반갑습니다ㅎㅎ 이번엔 겜판 느낌의 신작을 써봤습니다. 하드SF도 아니고 다크판타지도 아닌 작품을 써보는 건 처음이지만 많은 시간을 들여서 이렇게 보여드리게 되었습니다. 재밌게 즐겨주셨으면 좋겠네요ㅎㅎ 또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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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 첫 습격 (1) +1 23.03.04 406 10 19쪽
5 0. Prologue. 이교도 (5) +2 23.03.04 413 13 16쪽
4 0. Prologue. 이교도 (4) +2 23.03.03 439 11 18쪽
3 0. Prologue. 이교도 (3) +1 23.03.02 488 13 18쪽
2 0. Prologue. 이교도 (2) +1 23.03.02 620 21 19쪽
» 0. Prologue. 이교도 (1) +12 23.03.02 1,047 29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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