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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429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1.09.21 00:04
조회
47
추천
2
글자
8쪽

Episode222_이에는 눈, 눈에는 목숨(3)

DUMMY

그들의 의식은 깊고 깊은 지평선 너머로 빠져들었다.


아득한 침묵을 넘어, 바람이 떠도는 하늘을 넘어, 뒤집힌 대지를 거슬러, 그 모든 것이 하나의 환상인 동시에 두 번째 현실임을 하온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저편에서는 그 환상 속에서 허우적대며 헤엄치는 사라의 모습이 보인다. 서서히 선명해지는 그녀의 형태는 사방에 창을 휘두르며 주위의 검은 것들을 물리치려 애를 쓴다.


그 검은 것들. 정말 마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흉칙하고 괴기한 형상을 한 생물적 덩어리들은 저마다의 이빨과 발톱을 꺼내 사라를 막으려 덤벼들었다. 허나 사라의 눈에는 한꺼풀 환상이 덧씌워져, 그녀가 진정 창을 들이밀고 있던 것은 그들이 아닌 허상의 적들이었다.


사라의 눈에 이들의 모습은 마치 인간의 실루엣과도 같이 비추어진다. 그들은 페이이기도, 은강, 금강이기도, 용운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도 수나와 그녀의 정예병과 같은 모양새를 하고있다.


그들 모두를 거칠게 베어가르고, 찌르고 찢어 도륙을 내며, 솟구치는 피와 뇌수에 제 몸을 적신다. 이제 진정 새빨간 괴수가 된 그녀는 끊임없이 충동에 따라 돌진하였고, 지금은 그 어떤 방해도 허락하려 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여기 내면의 세계에서도 익숙한 한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확한 음성으로 들려온 것은 아니다. 다만 말했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가 누굴까? 지금 어디에서 그녀에게 말하고 있는걸까?


모두가 슬퍼한다고 그가 말했다. 쓰러진 자도, 찔린 자도, 찌른 자도 모두 아파하고 있었다.


"시끄러워, 그딴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사라는 애써 고개를 내젓고는 창을 휘두르는 것에만 집중했다. 서슬의 궤적에 따라 갈라져서 사그라드는 실루엣이 다시금 울부짖는다.


눈 앞에서 휘몰아치는 원념의 폭풍. 그 굉음이 모든 소음을 삼킬정도로 그녀의 주위를 넘실대었지만,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 틈새마저 비집고 들어오며 참견을 계속했다.


정말 상관이 없는건지, 이렇게나 괴로워하면서 어째서 굳이 상관 없는 척을 해야하는지, 이대로 정말 괜찮은걸까? 이런 식으로, 피와 아픔과 고통만 남기고, 누군가에겐 삶을 빼앗고 스스로에겐 죄악을 내거는 것이 그에겐 너무나 안쓰러웠다.


"어쩌건 상관 없어, 나라고 하고싶어서 이러는게 아니야!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이란게 있는 법이잖아!"


그렇다면 이유를 말해줄래? 그가 묻는다.


도대체 어떤 상황이길래. 대체 어째서 여지껏 혼자서 끙끙 앓으며,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마음고생을 해왔길래 지금에 이르른건지.


"지켜야 할 약속이 있어, 그게···"


뭐가 널 그렇게 괴롭게 해왔어? 목소리는 이어서 묻는다. 지금까지 뭐가 널 그렇게까지 몰아붙였길래.


"그래, 그것만은 지켜야 해."


무슨 약속이냐고, 누군가가 다시금 재촉한다.


"내가 반드시 지켜야 할 것···. 하온!"





···하온.


"그래, 하온만큼은 지키겠다고 맹세했어!"


하온을 지키고 싶다고? 그가 계속 캐묻는다.


"울 씨가 죽음으로 새기신 약속이야. 마지막으로 남기신 한마디야. 그러니까 날 내버려둬. 이것만은 지키게 해줘."


그렇다면 눈을 떠 봐. 목소리는 재촉했다. 그가 말한다.


"싫어, 눈을 떴다간 더이상 못해낼거야···."


네가 직접 한 일이야. 제 삶을 가진 누군가를 찌르고, 네 손으로 찢어놓았지. 그런데 그 대상이 누구인지를 보는 것은 싫다는거야?


"보기 싫어, 너무 괴로운 일이야. 제발 한번만 봐줘···!"


그렇다면 너는 봐야만 해. 눈을 떠. 사라. 누군가가 계속 말한다. 점차 짙어지고, 가까워지는 목소리···.


"하지만···!!"


사라는 눈을 감고, 이어서 귀까지 닫으려 했다. 애써 그 모든 것에서 거리를 두려 했다. 사방이 서서히 암흑에 빠져든다···.








"당장 눈을 떠!!"


그 벼락같은 목소리가, 사라의 정신을 깨워 퍼뜩 눈꺼풀을 뜨게 하였다.


"제대로 눈을 떠, 그리고 앞을 봐야지! 네가 누굴 찌르고 있는지, 창끝이 어딜 향하는지 네 눈으로 봐야만 해!!"


갑작스레 다시 밝아진 시야는 너무나 어지럽고 또 눈부시다. 온 세상이 흐린 가운데, 가장 가까이 있는 누군가만은 차츰 형태가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눈을 떠, 사라!! 네 앞에 있는 게 누군지···!!"


지금껏 들려온 목소리도 모두 그의 것이었다.


그리고 아득한 침묵을 넘어, 사라의 의식이 완전히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제서야 사라는 자신이 여태껏 누구를 찌르고 있었는지가 눈에 들어왔다.


"하온···?"


그녀의 의식이 흐려진다. 사라의 등에 난 모든 다리와 촉수가 지면에 뿌리를 뻗고, 필사적으로 바닥을 질질 끌며 그녀의 돌진을 멈추었다.


아직도 현실을 완전히 깨닫지 못한 사라를 하온이 품에 꼬옥 안는다. 얼마 남지 않은 힘을 간신히 짜내 최대한 힘껏 끌어안았다.


"괜찮아, 이제··· 다 괜찮아. 내가, 앞에 있어."


그녀가 이제껏 은창으로 찔러 꿰뚫고, 잔혹하고 우스꽝스럽게 메단 채 내달리고 있었던 대상은, 그녀가 그토록 아끼고 보호하던 하온이었다.


하지만 사라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그리 많을 것을 생각할 틈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진작에 쓰러졌어야 할 의식은 이미 너무 많은 유예를 가졌다.


"많이 힘들었구나··· 그렇지?"


자장가처럼 들려오는 하온의 목소리와 함께, 피로에 찌든 사라의 정신은 누군가의 무수한 손길에 이끌려 암흑 속으로 떨어져갔다.


"이제 잠깐 쉬자. 그동안 정말 열심히 했어···."


하온, 미안해. 정말 미안해.


간절히 되뇌인 그 말은 끝내 사라의 입으로 나오지는 못한 채, 조용히 사그라들며 의식과 함께 잠들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제 하온에게는 충분히 전해졌다.


깊이 만족한 하온의 정신도 함께 잠들며, 이번에는 조금 긴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



광기의 돌진은 그렇게 끝났다. 창은 수나의 바로 앞에서 멈춰선 채, 사라의 의식과 함께 고요히 잠들어 개미만큼의 미동도 없이 정지했다.


그 다섯갈래 창끝의 길이가 서서히 줄어든다. 은빛 광채도 점차 사그라들며 혈색을 띄기 시작한 표면은, 곧 타고난 부드러움을 되찾아 본래의 손의 형태로 되돌아갔다.


검은 형체로 감싸였던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온갖 생물의 형체가 뒤섞인 기괴한 덩어리들은 그 부피를 잃어가며 스물스물 뒤로 물러갔다.


여기저기 패였던 상처도, 창이며 화살에 꿰뚫린 구멍도 언제 그랬냐는듯 모두 말끔히 사라진 채, 다만 의식 하나 없어진 채로 사라는 모든 힘을 잃고 수풀 위로 쓰러졌다.


하온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를 끌어안은 채 쓰러져 더는 눈을 뜰 힘을 가지지 못했다. 허나 그의 복부를 꿰뚫은 상처 하나만은 미처 치유하지 못한 채 남아, 그리로 새빨간 피가 새어나오며 가까이 있는 잔디와 사라의 옷가지까지 적셨다.


실로 오랜만의 안식이었다. 아무런 걱정도 고통도 없이 둘은 아기처럼 무력히 깊이 잠들어버린다.


"...전원, 정지."


그 모든 광경이 이 적들의 한복판, 어안이 벙벙한 수나의 눈 앞에서 이루어졌다.


작가의말

염치없게도 일주일이 걸려서 돌아왔습니다. 이제껏 계속 써먹은 핑계를 대봤자 더 구차해질테고, 그저 죄송한 마음만 들 뿐입니다. 다시금 정상연재 체계를 지속해보겠습니다. 기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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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Episode218_도착(3) 21.08.30 33 4 8쪽
217 Episode217_도착(2) +2 21.08.25 34 3 10쪽
216 Episode216_도착(1) 21.08.23 33 4 14쪽
215 Episode215_이런 정신나간 것을 보았나(3) +2 21.08.12 42 4 8쪽
214 Episode214_이창 21.08.09 30 4 10쪽
213 Episode213_너무나 깊게 흉터난 벽(4) +2 21.08.06 36 3 8쪽
212 Episode212_너무나 깊게 흉터난 벽(3) 21.08.04 28 3 10쪽
211 Episode211_너무나 깊게 흉터난 벽(2) +2 21.08.02 33 2 9쪽
210 Episode210_너무나 깊게 흉터난 벽(1) +2 21.07.28 36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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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Episode208_선각자의 개인사(4) +1 21.07.23 36 4 8쪽
207 Episode207_선각자의 개인사(3) +2 21.07.21 33 3 9쪽
206 Episode206_선각자의 개인사(2) +2 21.07.19 43 4 9쪽
205 Episode205_선각자의 개인사(1) +2 21.07.16 42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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