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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421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1.12.21 08:26
조회
25
추천
3
글자
6쪽

Episode240_할아버지의 느린 시계(5)

DUMMY

새빨간 하늘. 새빨간 대지. 피의 웅덩이와 붉은 달, 검붉은 구름.



그 모든 것을 앞에 두고 숨가쁘게 지면을 내달리는 한 여인이 있다.



그녀가 휘날리는 머리카락 역시 붉디 붉은 진홍색.



"이건··· 이건 현실이 아니다. 현실이 아냐, 이 망할···!!"



사라는 몇천번, 몇만번이고 그 문장을 자신의 가슴에 새겼다. 질리도록 입으로 중얼거려도 보았다. 하지만 눈 앞을 가득 메운 이 광경은 너무나 매섭다. 두렵다!



저편에서 꾸물거리는 마귀들이 수십, 수백마리 나타나 그녀를 향해 돌진한다. 저마다의 이빨과 손톱, 발톱을 들이대며 아주 화가 잔뜩 나있다. 이름 뿐 아니라 생김새도 이것저것 마구 뒤섞인 괴이한 마귀가 따로 없으니, 지옥도가 따로 없는 광경이다.



그녀가 보는 이것이 현실이 아님은 확실하다. 사라 본인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또다시 그 요망한 은창이 자신의 의식을 잡아가둔 것이 틀림없다.



지평선을 가득 메운 마귀가 점점 커져가며 그녀의 시야를 가린다. 어느새 눈 앞까지 도달한 그들이 날카로운 손끝, 팔끝, 뿔 끝을 사라에게 휘둘렀다.



두려움과 위기를 감지한 순간 어느샌가 그녀의 은창이 손에 들려있었고, 이를 단번에 휘둘러 다섯마리의 군체를 저 멀리 날려버린다.



그러나 마귀 몇마리가 흩어진 틈새로 마귀 수십마리가 비집고 들어와 사라를 공격한다. 그녀를 둘러싼 괴수의 수는 막대하단 말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사라는 최선을 다해 저항해본다. 창을 휘두르고 충격파를 뿜어대며 그들을 파괴하고 베어내고 분해한다. 그러나 적의 파도는 이미 그녀 수천명이 모여도 당해낼 수 없을 정도로 몰려들었고, 그 마귀들이 뭉치고 뭉쳐 덩어리가 되어 사라를 습격한다.



뿔과 손가락, 칼날이나 작대기, 톱날같은 것이 사정없이 그녀에게 침입한다. 사라를 찌르고 자르고 찢어대며 마구 헤집었다. 피가 죽을듯이 뿜어져나와 폭발하듯 허공에 분사된다.



허나 사라는 멀쩡하다. 날에 베인들 아프지 않고, 심장을 찔린들 죽지 않는다. 박살난 몸은 금세 다시 이어붙어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고, 단지 핏빛 액체만이 마구 새어나와 땅을 적실 뿐이다.



여기 대지를 물들인 혈액이 전부 그렇게 사라에게서 흘러나온 것이다. 수천 수만번의 죽음이 이젠 지겹다 못해 두렵다.



"제발, 좀 그만해!!"



사라는 성을 내며 자신에게 달라붙은 창자더미를 흩어냈다. 자신의 몸에서 튀어나온 창자 수십개와, 마귀의 몸에서 흘러나온 창자 수백개가 바닥에 수북이 쏟아졌다.



"그만하라고, 이제 싸우는건 지긋지긋해!"



산더미처럼 쌓인 미끌거리는 줄들 사이에서 허우적대며 몸을 빼내고는, 갈라진 성대로 소리를 바락바락 질렀다. 메마르다 못해 말 그대로 쪼개진 듯한 목소리다.



"도대체 나한테 뭘 원하는거야? 말을 해, 이대로 날 괴롭히는게 목적이야? 내가 인간이라 싫은거야?!"



처절하기 그지없는 사라의 입장과는 반대로, 마귀들의 대꾸는 매우 차분하고 단호하다. 생김새를 떠나서 보자면 날뛰는 괴수를 상대하는 노련한 조련사와도 같다.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마라."



"여기서 영원히 속죄해라."



그런 훈계조의, 심지어 훈계할 내용을 말해주지도 않는 질책은 빨간머리 괴수의 심기를 더욱 건드릴 뿐이다. 사라는 더이상 참을 수 없다. 여지껏 계속 참지 못하긴 했지만, 이것들에게 계속 못볼꼴을 당하고 나니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한계치도 계속 갱신되는 기분이었다.



"속죄? 그래, 죄라면 많이 지었지! 죽을 죄도 지어봤어! 하지만 너희같은 괴상한 눈깔들한테 이깟 취급 받을 짓은 한 적 없어! 항상 설명 한번 해준적도 없으면서, 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그런 엉킨 감정으로 악바리를 지르는 것은 이제껏 수만번 창을 휘두른 것보다도 훨씬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어서, 이 이상 가는 굉음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소리를 지른 사라는 단숨에 힘이 빠져 고개를 풀썩 숙이고 숨을 가다듬었다.



“허억··· 허어억··· 나한테··· 뭘··· 허억···”



그러나 피에 취한 그녀의 주사를 마귀들은 여전히 요지부동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 중 몇몇이 한꺼번에 입을 열었을 때, 각기 다른 마귀들이 입을 맞추어 하모니를 자아내듯 각자의 할말을 뱉었다.



"항상··· 항상 우리에게 피를 묻혀왔잖냐."



다음에는, 다른 마귀 다섯마리가.



"우리는 그래도 믿었는데···."



이번에는, 또다른 마귀 일곱마리가.



"그런 능력을 허용해준건, 너라면 다를 줄 알고···."



이제껏 억울하다는듯이 소리를 질러댄 사라는 그들의 말에서 느껴지는 예기치 못한 떨림에 흠칫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뭐? 하지만, 난··· 그건···."



그럴리가. 설마 그걸 가지고 이렇게 화가 난건가? 사라는 믿을 수 없었다. 믿지 못하겠다는 그녀의 얼굴에 대고 마귀들이 몰려들어 다그친다.



"정말 네 죄를 모르겠더냐?"



사라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자신의 죄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죄를 묻고있는 눈 앞의 이 괴물들을 도저히 모르겠다.



"상관없잖아. 물론 부른 건 나여도, 그래도···!"



마귀들은 인간을 싫어했던게 아니었던가?



"약속을 깨트렸다, 사라!!"



"다신 못지울 피를 묻혔다!"



"우리를 배신했다!!"



이들은 너무나 슬퍼한다. 나를 미워한다. 혼란에 빠져서 사라는 숨조차 멎었다. 그리고 수천, 수만가지 눈과, 손가락과, 입과, 증오가 그녀를 향해 방향을 돌려 소리친다. 네 죄를 네가 알리라!



"속죄해라!! 살인자 사라!!"



그 증오 앞에서 차마 변명다운 변명도 못하고, 사라는 피로와 혼란에 찌들어 고개를 쳐들어 소리쳤다.



"내 탓이 아니란 말야!!"


작가의말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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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Episode249_재회(2) +4 22.02.07 60 3 8쪽
249 Episode248_재회(2) +2 22.02.05 40 3 6쪽
248 Episode247_재결합(5) 22.01.31 34 3 8쪽
247 Episode246_재결합(4) +2 22.01.26 35 3 8쪽
246 Episode245_재결합(3) +1 22.01.21 28 3 10쪽
245 Episode244_재결합(2) 22.01.17 39 3 10쪽
244 Episode243_재결합(1) 22.01.14 30 3 8쪽
243 Episode242-2_할아버지의 느린 시계(7) +5 22.01.07 40 3 7쪽
242 <Episode242-1_할아버지의 느린 시계(7)> +1 21.12.29 29 3 6쪽
241 Episode241_할아버지의 느린 시계(6) +2 21.12.24 37 3 9쪽
» Episode240_할아버지의 느린 시계(5) 21.12.21 26 3 6쪽
239 Episode239_할아버지의 느린 시계(4) +1 21.12.13 34 3 7쪽
238 Episode238_할아버지의 느린 시계(3) +5 21.12.10 38 3 7쪽
237 Episode237_할아버지의 느린 시계(2) 21.12.02 30 3 10쪽
236 Episode236_할아버지의 느린 시계(1) 21.11.29 28 3 7쪽
235 Episode235_이런 정신나간 것을 보았나(4) +2 21.11.24 35 3 9쪽
234 Episode234_앞담화(6) 21.11.19 30 3 9쪽
233 <Episode233_앞담화(5)> 21.11.17 33 4 8쪽
232 <Episode232_앞담화(4)> 21.11.13 24 3 7쪽
231 <Episode231_앞담화(4)> +1 21.11.10 28 3 9쪽
230 Episode230_앞담화(3) 21.11.03 35 3 9쪽
229 Episode229_앞담화(2) 21.10.20 35 3 7쪽
228 Episode228_앞담화(1) +2 21.10.13 37 3 8쪽
227 Episode227_뒷수습(5) 21.10.11 32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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