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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준 님의 서재입니다.

개 같은 견주에게 죽고 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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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준
작품등록일 :
2023.12.24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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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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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 장례식장에서 (2)

DUMMY

엄마는 장례식장과 그리 멀지 않은 공원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에는 어떤 여자가 미리 도착해,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는 엄마와 짧게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나는 방금 엄마가 만난 여자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았다.


어디에선가 본 얼굴이었다.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누구였지?’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천천히 기억이 났다.


엄마가 만난 여자는 내가 위시를 미용할 때 맡기는 반려견 미용샵 겸 애견 카페의 주인이었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온 걸까?’


헤어진 후에 엄마의 손을 보니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그건 줄이었다.


강아지 목줄 줄.


‘왜 저걸 가지고 있어?’


위시는 이미 죽지 않았나.


나처럼 장례를 치뤄주기 전에 마지막으로 깨끗하게 미용을 한 것일까.


‘그런데 그럴 거면 목줄이 왜 필요하지? 위시는 이미―.’


그럴 리 없다.


그럴 리 없겠지만, 그래도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하나 떠올랐다.


‘만약 위시가 살아 있다면······.’


내가 서 있는 위치에는 덤불이 크게 자라 엄마의 모습이 반은 보이고 반은 보이지 않았다.


상체는 보이는데 하체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든 목줄 줄이 팽팽하게 유지되는 것을 보고서 확인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아지가 없는데, 저 줄이 당겨질 리는 없잖아.’


희망을 가지고 덤불을 헤쳐, 엄마가 든 목줄 끝이 향하는 쪽을 보았다.


한 마리의 개가 있었다.


진한 갈색 털의 미니어처 푸들.


위시.


그 개는 위시였다.


“어떻게······!”


너무 놀라 생각이 그대로 튀어나왔다.


덤불이 떨리면서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위시가 짖었다.


비록 몸통과 발에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틀림없이 위시가 짖었다.


여느 때처럼 귀엽고 씩씩하며, 우렁찬 목소리로.


“누구죠?”


덤불이 흔들리자 엄마가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람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늦은 저녁 시간이라 눈앞에 있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인가, 아닌가 경계하는 듯 보였다.


“······아, 저, 저예요.”


나는 바보 같이 말을 더듬으며 엄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이 상황에서는 모습을 드러낼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냥 몸에 투명화를 걸고, 아무도 없는 척을 하면 되었다.


그러나 차마 엄마에게는 그런 행동을 할 수 없었다.


적어도 엄마 앞에서는 떳떳하고 싶었다.


“학생? 아까 본 학생 맞죠?”


엄마는 금세 나를 알아보았다.


“네? 네······.”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내가 왜 여기에 있나 궁금한 눈치였다.


“그, 집에 가는 길인데 개가 보여서······.”


나는 엄마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서둘러 변명을 했다.


“제가 개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개가 너무 귀여워 보여서 그만 몰래 지켜봤어요, 죄송해요.”


고개를 숙이고 엄마의 반응을 기다렸다.


잠시 후에 엄마는 그런 거였냐면서, 가까이 와서 만져 봐도 된다고 말하며 웃었다.


‘웃었어.’


행복한 미소라기보다는 슬픈 미소였다.


하지만 나는 그 미소에 힘을 얻었다.


엄마는 여전히 강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면서 안심했다.


“그러면 조금만······.”


개를 좋아한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는 개를 좋아했고, 그래서 유기견 센터에서 위시를 입양해 집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내가 팔을 뻗어 위시를 만지기 전에 위시가 먼저 나에게 달려왔다.


위시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엄마가 손에서 목줄을 놓쳤다.


나는 위시가 귀를 펄럭이며 나에게 달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개는 정말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겁이 많아 낯선 사람은 경계하는 위시가, 웬일인지 나에게 달려와 안겼다.


나는 위시를 만지려고 무릎을 구부렸다.


그러다 위시가 두 발로 서서 내 팔에 두 손을 올렸을 때, 순간적으로 내가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평상시처럼 품에 안아 버렸다.


내가 위시를 안은 모습을 보고 엄마가 말했다.


“어머, 신기해라! 위시가 겁이 많아서 모르는 사람한테는 안 안기거든요.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 신기하네.”


엄마는 신기한 듯 나에게 안긴 위시를 바라보았다.


나는 은근히 그 시선을 즐겼다.


그리고 혼자 감동했다.


‘엄마도 나를 못 알아보는데, 개가 나를 알아보네. 이건 분명히 날 알아보고 안긴 거야. 얼굴이 달라져도 내가 자기 주인이라는 걸 아는 거야. 개는 정말 위대하구나.’


위시가 모르는 사람에게는 안기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개의 주인인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를 찾아와 안긴 위시를 품에 꼭 안고, 숨이 멎을 것 같이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난 네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어. 내 앞에서 그 덩치 큰 개한테 물렸으니까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지. 그런데 아니었구나. 나는 죽었어도, 너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구나.’


그때 든 안도감.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한동안 위시를 안고 있다가 엄마의 눈치가 보여 슬쩍 바닥에 내려놓았다.


위시가 또 안기려고 하자 엄마가 싱긋 웃으면서 제안했다.


“잠깐, 걸을까요?”



***



“개 이름이 왜 위시예요?”


엄마와 공원을 산책하면서 나는 그 이유를 모르는 척 그렇게 물었다.


엄마는 위시의 이름이 위시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우리 아들이 어릴 때부터 개를 키우고 싶어 했는데, 개를 집으로 데려온 날에 소원이 이루어졌다, 해서 위시라고 지었어요. 원래는 소원이라고 부르려고 했는데, 아들 성이 위 씨니까 자기 성을 따른 거죠. 꽤 잘 지은 이름이라고 생각해요.”

“아, 그래서 위시군요.”


다 아는 이야기인데, 엄마의 입에서 그 말을 들으니 위시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 옛 추억에 잠기고 말았다.


‘그때 위시가 날 얼마나 경계했는데. 밥도 안 먹고 나를 피해다녀서 다시 유기견 센터에 돌려보내야 하나 많이 고민했지.’


잠시 말없이 걷던 중에 문득 위시가 왜 여기에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근데 왜 개를 여기로 데려오신 거예요? 개가 조금 다친 것 같은데,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하지 않아요?”


위시가 걱정되는 마음에 한 질문이었다.


위시는 대형견에게 물린 상처 때문에 한쪽 다리를 쩔뚝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엄마가 위시를 들어 올려 안았다.


위시는 1순위가 나였고, 2순위가 엄마였다.


나 다음으로 엄마 품에 안기는 것을 좋아했기에, 그런대로 만족한다는 얼굴로 엄마 품에 안겨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맞아요. 병원에서는 입원 치료를 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병원은 밤에 개를 혼자 놔두고 문을 닫는다고 하더라고요. 위시가 분리불안이 심해서 집에서도 혼자 못 있는데, 밤에 병원에 혼자 놔둘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어요. 조그만 게 얼마나 무서울까 걱정이 되어 차라리 오늘 제가 데리고 있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정장 병원에 직접 갈 수가 없어서, 미용샵 아주머니께 부탁해서 개를 데리고 와 달라고 한 거예요.”


위시는 푸들이라 분리불안이 진짜 심했다.


집에 놔두고 나오면 하도 난리를 쳐서 엄마와 외식을 하는 날마나 미용삽에 맡겨 잠깐 봐 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그렇구나. 병원에서는 밤에 혼자 두니까, 엄마가 직접 봐 주려고······.’


내가 키우고 싶다고 졸라서 키운 개가 바로 위시였다.


그러나 내가 죽은 후에도 엄마는 위시를 잘 돌봐주고 있었다.


귀찮다고 무시할 수도 있는데, 나 때문에 많이 힘든 와중에도 내가 좋아하던 개를 챙겨 주는 모습을 보자 가슴이 뭉클했다.


역시 엄마는 엄마였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


‘고마워, 엄마.’


이 말을 엄마에게 직접 할 수 없어 아쉬웠다.


“푸들이 분리불안이 심하다는 말은 들었어요.”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울기 전에 서둘러 말을 꺼냈다.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가 말을 받았다.


“그냥 심한 정도가 아니라 엄청 심해요. 집을 비워야 하는 상황이 오면 개를 항상 미용샵에 맡겨야 할 정도예요. 임시방편이죠. 하지만 미용샵에 가서도 얼마나 난리를 피우는데요.”


엄마는 그 말을 하고 입을 닫았다.


“······.”


나는 엄마가 조금 신이 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사실 그건 신이 난 게 아니라 정신을 억누르는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발버둥 같은 거였다.


그걸 뒤늦게 깨닫고 보니, 애써 밝은 척을 하는 엄마가 너무 안쓰러웠다.



***



장례식장에 거의 도착했을 때 즈음, 나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기.”


내가 걸음을 멈추자 엄마도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 제가 다음에 위시를 산책시켜도 될까요?”


두 번째 인생을 살 기회를 얻었다고 해도 나에게는 엄마와 위시가 세상의 전부였다.


나는 나를 위해서라도 둘을 가져야 했다.


떨어져 있을 수 없었다.


‘안 보면 그리우니까. 보고 싶으니까.’


엄마가 나를 멀뚱히 쳐다보길래 나는 거절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아, 부담스러우시면 거절하셔도 돼요. 강요하는 게 아니라 제가 정말 개를 좋아해서 위시와 이렇게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그래요. 전에 상우 형한테 위시에 대해서 몇 번 듣기는 했는데, 이렇게까지 귀엽고 예쁠 줄은 몰랐어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새 위시한테 반했나 봐요······.”


나는 조금 오글거리는 말을 내뱉으며 엄마가 부담스러워하지 않도록 끝을 맺었다.


“무리한 부탁을 해서 죄송합니다. 이만 가 볼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정말 뒤돌아서 떠나려고 했다.


엄마는 이번에도 나를 붙잡았다.


“······그래요. 다음에 위시를 산책시키러 와요.”


엄마의 말에 나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정말요? 정말 제가 그래도 되나요?”


위시를 또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 나는 살짝 흥분을 한 상태였다.


엄마는 흥분한 나를 보며 웃었다.


“네, 정말이에요. 위시가 학생을 좋아하니까 저도 학생이 좋아요. 이대로 헤어지면 위시가 아쉬워할 것도 같고요.”


엄마의 품에 안긴 위시는, 그 순간에도 나에게 오고 싶어서 열심히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 위시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우리, 다음에 또 보자.”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위시가 멍 짖었다.


나와 엄마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전화번호를 알려 줄래요?”


나는 내 전화번호를 몰랐다.


아니, 나에게 핸드폰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몰랐다.


환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로서는 꽤 곤란한 상황이었다.


나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제가 상우 형한테 들어서 집 주소를 아니까, 다음에 찾아가면 안 될까요? 갑자기 전화번호가 생각이 안 나서요.”


조금 황당한 변명이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에 연한 미소를 띠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해요.”


그리고 잘 가라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나는 엄마에게 허리를 굽혀 꾸벅 인사했다.


‘엄마에게 아주머니라니······.’


나는 속으로 내가 불효자라고 생각하며 몸을 돌렸다.


엄마는 위시를 안고 장례식장으로, 나는 내 집으로 걸음을 향했다.


장례식장과 집은 정반대 방향이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사실대로 말하자. 장례식은 치르고 말하는 게 낫겠지.’


나는 위시가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되어,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다.


머리는 기억하지 못해도 몸이 기억하는 듯 내 다리는 내가 모르는 집을 잘만 찾아갔다.



***



거실 불은 꺼져 있었다.


‘내가 꺼 놓고 갔나?’


나는 신발을 벗고 집으로 들어가 거실 불을 켰다.


그때, 주방 쪽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거니?”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집 안에 누군가가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옆걸음질을 치며 오른쪽을 보았다.


식탁 의자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 여자는 양팔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다소 냉랭한 시선으로 나를 응시했다.


‘아.’


여자를 보자마자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퍼뜩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지금 이 분위기만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


‘······저 여자는 이번 생의 내 엄마야.’


장례식장에 갔다가 돌아오니, 집에는 나의 두 번째 엄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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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7. 상황 파악 완료 +1 24.07.19 133 3 12쪽
7 6. 미친 여자 +1 24.07.18 142 2 12쪽
» 5. 장례식장에서 (2) +1 24.07.17 162 2 12쪽
5 4. 장례식장에서 (1) +1 24.07.16 176 3 11쪽
4 3. 조선 잡기 (3) +1 24.07.15 191 3 12쪽
3 2. 조선 잡기 (2) +1 24.07.15 222 3 12쪽
2 1. 조선 잡기 (1) +1 24.07.14 267 3 12쪽
1 0. 환생하다 +1 24.07.14 280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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