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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준 님의 서재입니다.

개 같은 견주에게 죽고 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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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준
작품등록일 :
2023.12.24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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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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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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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2 4. 의뢰자 이강현 (2)

DUMMY

“자, 이제 김남운의 실체에 대해 알려 줄게.”


저녁을 다 먹었을 즈음, 송시현이 소파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대체 뭘 하려는 걸까 봤더니, 거실 구석에 박혀 있던 정체 모를 물건을 질질 끌고 왔다.


‘저게 뭐지?’


다크 그레이색의 천으로 덮여 있어 위쪽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천으로 가려져 있지 않은 밑부분에 작은 바퀴가 네 개 달려 있는 것을 보고 이동식 화이트 보드구나 알게 되었다.


‘와, 저거 엄청 비쌀 텐데. 이강현은 진짜 부자구나.’


사실 송시현을 따라 이강현이 사는 동네에 왔을 때, 이곳이 부자 동네라는 사실을 알고 약간 주눅이 들었다.


이강현의 아파트는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아파트였다.


텔레비전에서 입주민을 모집한다고 광고하는 걸 몇 달 전에 본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또 집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동네이기도 했다.


우리 집은 가난하지는 않지만 여유가 있을 정도로 넉넉하지도 않아서, 보통보다 약간 아래에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 나보다 잘사는 아이들을 보면 항상 부러웠다.


이강현이 부러웠다.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면 정말 살맛이 날 거야.’


하지만 이강현의 의수와 의족을 보고는 다시 한번 생각에 잠겼다.


‘양팔과 양다리가 온전하게 있고 가난하게 사는 게 나을까, 사지를 잃고 부유하게 사는 게 나을까?’


너무 극단적인 선택지라서 나는 어느 쪽도 쉽게 고를 수 없었다.


‘가난한 건 싫은데, 팔과 다리가 없는 것도 싫어. 이왕이면 멀쩡히 손과 다리가 다 있고 부자로 사는 게 좋지 않을까?’


너무 욕심을 부렸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들켰는지, 송시현이 나를 지목했다.


“예은아, 주목해 줄래?”


송시현이 막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는데, 그때 내가 멍을 때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바로 사과했다.


“미안. 이제부터 잘 들을게.”


내 말에 송시현은 싱긋 웃고는 화이트 보드를 가리고 있던 천을 들어 올렸다.


펄럭!


천이 조용히 바닥에 떨어지자 모습을 감추고 있던 여러 장의 사진과 글씨가 눈에 띄었다.


하긴,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다면 굳이 천으로 가리고 있을 이유가 없지.


드라마에서 형사들이 사건을 수사할 때 화이트 보드에 사건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 적는 것처럼, 송시현이 꺼낸 화이트 보드에는 김남운의 사진이 정중앙에 붙어 있고, 그 사진을 중심으로 이런저런 사건이 이어졌다.


조선 사건, 공길환 사건, 신민철 사건, 안재호 사건, 목줄 사건, 사채업자 단체 분신 자살 사건.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강현 사건까지.


‘뭐가 이렇게 많아?’


화이트 보드에는 내가 처음 보고, 처음 듣는 사건이 적혀 있었다.


‘다 모르는 사건이야.’


송시현이 보드 마커를 집어들었을 때, 나는 화이트 보드 가운데에 붙은 김남운의 사진과 눈이 마주쳤다.


왜인지 모르게, 약간 기분이 오싹했다.


‘저렇게 붙여 놓으니까 꼭 범죄자 같잖아.’


아니, 송시현과 이강현은 김남운을 범죄자 취급하며 범죄자라고 믿었다.


‘이제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때야.’


송시현이 설명을 시작했다.



***



“1년 전에 한 중학교에서 학생 세 명이 다치는 사건이 있었어. 그 아이들의 이름은 신민철, 안재호, 이강현이야.”


이강현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놀라서 이강현을 보았는데, 정작 당사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송시현에게로 돌렸다.


“먼저 신민철 사건부터 설명하자면 신민철은 평소와 같이 등교해서 화장실에 갔어. 그런데 1교시가 시작되었을 때 교실로 돌아오지 않았고, 1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남자 화장실에서 양손이 잘린 채 발견되었지.”


송시현은 자기가 말한 사건이 실린 기사 조각을 보드 마커 끝으로 툭툭 쳤다.


-학교에서 양손이 잘린 채 발견된 남중생. 학생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충격적인 사건!-


나는 그 기사의 제목을 보고, 송시현이 말한 사건이 정말 있었던 일이구나 알게 되었다.


“······양손이 잘려?”


증거가 눈앞에 있어도 쉽게 믿을 수가 없어 확인차 물어보았다.


송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제대로 들었음을 알려 주었다.


“응, 양손. 손가락이 있는 부분이 깔끔하게 잘려 있었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쳐서 괜히 무서워졌다.


“신민철은 그 사건 이후로 정신에 문제가 생겨서 정신 병원에 입원했어. 현재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고. 아마 제정신으로 돌아오기는 힘들 거야.”

“헉. 그럼 범인을 찾지 못한 거야?”

“응.”


송시현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두번째 사건은 안재호 사건이야. 안재호는 학교가 끝나고 공원으로 갔는데, 그 공원에서 양다리를 잃는 일을 겪어. 그리고 경찰 조사에서 김남운의 이름을 입에 올렸지. 그 녀석이 범인이라고.”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왜겠어, 뻔하지. 그놈이 범인이니까.”


이강현이 끼어들었다.


마침 송시현이 이강현 사건을 이야기하려던 때였다.


“내가 이야기하기는 좀 그러니까, 네가 말할래?”


송시현이 이야기꾼 자리를 일시적으로 양보해 주었다.


이강현이 바로 말을 받았다.


“난 그날 학교에 안 갔어.”


내가 왜 하는 눈으로 쳐다보자 이강현이 두리뭉실하게 대답했다.


“그냥 안 갔어. 가고 싶으면 가고, 안 가고 싶으면 안 가는 곳이 나한테는 학교거든.”

“얘 부자야. 그래서 그래.”


송시현이 옆에서 작게 설명해 주어서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좋겠다. 가고 싶으면 가고, 안 가고 싶으면 안 가는 곳이 학교라니.’


내가 부러워하고 있을 때, 이강현이 나머지 설명을 했다.


“밖에 있는데 김남운이 찾아오더라. 아, 나랑 김남운은 같은 학교 같은 반이었어. 놈이 나한테 와서는 왜 학교에 안 왔냐고 묻고는, 갑자기 내 손을 잘라버리더군.”

“어어······?”


이야기가 왜 갑자기 그런 쪽으로 진행이 되는 걸까.


나는 이강현이 농담이라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강현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후에 김남운은 나를 다른 세계로 데리고 갔어. 뭐라고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현실 세계가 아닌 다른 곳이었던 건 확실해.”


순간 이동?


아니면 차원 이동을 했다는 말일까?


“김남운은 농구장을 만들더니 나보고 게임을 하라고 했어. 양손 없이 골대에 골을 넣어야 한다고 했지. 하지 않으면 보내주지 않을 기세라 겨우 골대에 골을 넣었어. 양팔이 잘려서 없는 상태라 머리를 이용해 넣었지. 그랬더니 놈은 내 양다리도 잘랐어. 그리고 나한테 이런 말을 하더라. 양팔과 양다리가 없는데 살아서 뭐 하냐고. 얼른 포기하고 빨리 죽으라면서 악담을 퍼부었지.”


나는 솔직히 이강현이 하는 말을 믿기 힘들었다.


송시현이 설명할 때는 그나마 납득이 되었는데, 이강현의 이야기에는 개인적인 감정이 너무 실려 있어서 뭐가 사실이고 뭐가 거짓인지 분간하는 것이 어려웠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김남운이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내가 그 말을 하자마자 이강현은 주먹을 불끈 쥐면서 흥분한 채로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그놈이 그랬어! 지금은 양처럼 순진한 척 연기를 하고 있어서 넌 모르겠지만 나는 알아! 난 놈을 잘 알아! 그놈은 악마야! 미친 괴물 새끼라고!”


내가 이강현 팔을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닌데, 이강현은 나를 죽일 듯이 매섭게 노려보았다.


“미안해. 나는······.”


나를 노려보는 이강현을 송시현이 얼른 진정시켰다.


“진정해, 너무 흥분했다.”


송시현의 말에 이강현은 심호흡을 했다.


잠시 후에 이강현은 이성을 되찾았다.


“나는 양팔과 양다리를 잃은 채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혼자 두려움에 떨었어. 김남운 그 미친 새끼가 나를 교실에 놔두고 혼자 가 버린 거야. 다음 날에야 발견이 되어서 병원으로 이송됐어. 경찰이 찾아와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길래 김남운이 그랬다고, 그놈이 범인이라고 말했어. 그런데 얼마 안 가서 다시 나를 찾아와서는 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을 하고 병실을 떠났어. 어떻게 알고 왔는지, 딱 그 타이밍에 김남운이 나타났어. 꼴 좋다고, 앞으로 잘 살아보라고 날 놀렸지. 그리고 병실을 나가기 전에 자기는 신이기 때문에 내가 못 잡는다고, 못 죽인다는 말을 했어. 그놈은 미친 놈이야! 넌 지금 그 미친 놈이랑 같이 학교 생활을 하는 거고.”


이강현은 자기 이야기를 끝마치고 대뜸 나에게 물었다.


“넌 그 녀석이 안 무섭냐? 분명 너도 죽이려 들 거야. 그러니 그 전에 달아나. 그게 네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솔직히, 아직 잘 믿지 못하겠다고 했다.


“증거가 없잖아. 증거가 있으면 믿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증거는 없지만, 심증은 있어.”


그 말을 하며 송시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신민철 사건, 안재호 사건, 이강현 사건은 다 같은 날에 일어난 사건이야. 한 학교에 학생 세 명이, 그것도 같은 반 학생 세 명이 거의 동시에, 아니, 순서대로 그런 일을 당한 거야. 이건 누가 봐도 의도적이지.”“응. 나도 그건 인정해.”

“사실 김남운은 학교 폭력 피해자였어. 신민철과 안재호, 강현이가 김남운을 괴롭혔지.”


송시현이 이강현을 힐끔 보자 이강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인정해. 그때의 나는 철이 덜 들어서 같은 반 아이를 괴롭히는 일진이었어. 그중에서 김남운을 제일 괴롭혔지. 하지만 이제는 안 그래. 반성을 했고, 후회도 많이 했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내 목표야.”


말투에서 진심이 묻어나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송시현이 말을 이었다.


“앞서 말한 세 명은 끔찍한 일을 당하기 전에 김남운을 만났다는 공통점이 있어.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들 모두가 한 입으로 김남운이 범인이라고 말했어. 아, 신민철은 빼고. 사건 조사서를 보여 주면 네가 내 말을 믿을 텐데, 일반인은 그걸 구할 수가 없어서 그 점이 아쉽네.”


“cctv에 안 찍혔어? 양팔을 자르거나 양다리를 자르거나 하는 일은 옷에 피도 많이 튀기고 증거도 남을 것 같은데. 아무리 흔적을 안 남기려고 해도.”


내가 묻자 송시현이 고개를 저었다.


“신민철 사건은 학교 화장실에서 벌어진 일이라 카메라가 없고, 안재호 사건 때는 김남운이 공원에서 나가는 장면만 찍혀 있고 들어가는 장면은 없어. 반대로 강현이 사건은 김남운이 농구장에 들어간 모습만 찍히고, 나온 모습은 찍혀 있지 않아.”

“뭐야, 그게?”

“한 마디로 제대로 된 증거가 하나도 없다는 말이야. 피해자들이 모두 김남운을 지목해도 김남운이 범인이라는 증거가 없는데, 경찰이 뭘 어떻게 하겠어? 아무것도 못하지.”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송시현이 말했다.


“김남운이 저지른 사건은 그것뿐만이 아니야. 더 있어.”

“또?”


송시현이 보드 마커로 동그라미를 쳤다.


조선 방화 사건.


공길환 아사 사건.


중랑천 개물림 사건.


사채업자 단체 분신 자살 사건.


송시현은 그 사건들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조선 방화 사건은 범인이 조선이라는 이름의 남자를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른 사건이야. 침입자가 있었고, 그 침입자로 인해 살해당한 게 명백한 사건인데 화재로 인해 증거가 하나도 남지 않아 범인을 잡지 못했어. 공길환 아사 사건은 공길환이라는 남자가 굶어 죽은 사건이야. 집에 먹을 게 많이 있었는데 굶어 죽은, 참 이상한 사건이지. 손과 발도 멀쩡했는데 말이야. 중랑천 개물림 사건은 여자 두 명, 남자 두 명, 이렇게 네 명의 남녀가 개에게 물려 죽은 사건인데, 아직도 어떤 개에게 물려서 죽은 건지 밝혀진 바가 없어. 전문가 말로는 대형견보다 훨씬 더 큰 초대형견일 거라고 하던데, 그런 개는 아직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거든. 그래서 사람 소행이 아니냐는 말도 돌아.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잔인하게 물어뜯어 죽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아마 짐승 짓이 맞을 거야. 그리고 마지막은 사채업자 단체 분신 자살 사건인데, 이건 정말 끔찍해. 사무소에 있던 사채업자 일곱 명이 전부 불에 타서 죽었어. 경찰은 자살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그건 절대 자살이 될 수가 없는 사건이야. 사무소에 있던 남자가 모두 죽고 난 다음에 건물에 붙이 붙었거든. 나중에 어떤 사람이 그걸 밝혀 냈는데, 아직까지 재수사가 되지 않고 있어. 이미 한번 내린 결론을 바꾸기 싫은 거지. 뭐, 경찰들에게는 흔히 있는 일이야. 그놈의 자존심이 그렇게도 중요한가?”


그 말을 하는 송시현은 약간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어, 그러면······?”

“그래. 따로 불을 지른 누군가가 있는 거지. 사채업자들을 죽이고, 건물에도 불을 지른 범인이.”

“그런데 왜 그 사건의 범인이 김남운이라고 생각해?”

“내가 지금 말한 이 네 가지 사건은 다 미해결로 수사 종료된 사건이야. 경찰이 풀지 못한 사건이지. 그리고 이 네 개의 사건에 전부 김남운이 관련되어 있어.”

“진짜? 어떤 식으로?”


내 물음에 송시현이 답했다.


“첫째. 네 개의 사건이 일어난 지역은 모두 같은데, 김남운이 그 지역에 산다. 둘째. 김남운은 조선 방화 사건, 공길환 아사 사건, 중랑천 개물림 사건, 사채업자 단체 분신 자살 사건 때 알리바이가 전부 없다. 이건 내가 따로 조사를 통해 알게 된 내용인데, 확실해. 그 사건이 벌어졌을 때, 김남운이 집을 나오는 모습이 cctv에도 찍혔어. 셋째. 네 개의 사건 중 세 개의 사건이 개와 얽혀 있다. 김남운을 미행했으니까 알 거야. 김남운은 개를 좋아해. 아주 좋아하지. 사실 세 가지 사건의 피해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어. 모두 개를 키운다는 거야. 첫 번째 피해자인 조선은 사나운 개를 키우는데, 목줄을 하지 않고 다니다가 목줄을 하라고 한 남자를 칼로 찔러 죽인 살인자고. 두 번째 피해자 공길환은 유기견을 돌보는 사람인데, 주변 사람 말로는 항상 돼지 껍데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길을 지나가는 개에게 줬다고 해. 죽고 나서 그 사람에게 당했다는 글이 댓글에 많이 달렸어. 돼지고기 알레르기가 있는 개한테 돼지 껍데기를 먹여서 그 개가 죽은 사건이 있기도 했고. 나쁜 사람은 아닌데, 그렇다고 주변 평판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어. 세 번째로 중랑천 개물림 사건의 피해자들은 모두 개에게 목줄을 하지 않았어. 그것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이 많았고, 그래서 죽었을 때 잘 죽었다고 많은 사람이 말했지. 나는 김남운을 몇 번 미행한 적이 있어. 김남운이 개를 무척 좋아한다는 걸 알지. 개를 너무 좋아하는 마음이, 그런 식으로 변질되어서 잔인한 폭력성으로 드러난 건 아닐까 하고 추측해. 겉으로는 조용한 사람이, 실은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말을 하는 거야, 지금.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


그 부분에서는 소름이 돋았다.


왜 자꾸 김남운은 이런 어두운 일과 엮이는 걸까.


어쩌면 이건 모함이 아니라 정말로 김남운이 저지른 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


“······갑자기 소름이 돋았어.”


나는 손으로 팔을 문질렀다.


“조선 사건, 공길환 사건, 중랑천 사건, 사채업자 사건. 나는 이 네 개의 사건을 김남운이 저질렀다고 보고 있어. 물론 이건 나만의 추측이야. 아닐 가능성도 조금은 있어. 하지만 내 직감은 이렇게 말하고 있어. 김남운이 이 모든 사건의 범인이다, 라고.”


송시현은 자기 직감을 믿는 확신에 찬 눈으로 나를 보았다.


“현재 김남운은 살인을 쉬고 있어. 사람을 죽이는 데 질려서 더는 사람을 죽이지 않지. 아니, 어쩌면 중독이 되어서 자제하려고 일부러 조용히 사는 것도 같아. 살인에 중독이 되면 그것 때문에 사는 게 많이 힘들거든. 하지만 언제까지나 가면을 쓰고 살아갈 수는 없을 거야. 내가 그 가면을 벗길 거고, 그것 때문에 전학을 왔으니까.”

“그래서 같이 사는 거야?”


이 질문에는 이강현이 대신 답했다.


“도움을 요청했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김남운이 범인이라고 말해도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았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심부름 센터에 의뢰를 했어. 그 심부름 센터에는 송시현이 있었고, 송시현은 내 말을 믿어줬어. 나는 내 말을 믿어준 것에 대한 신뢰의 대가로 일정 부분의 편리함을 제공하는 거야.”


송시현이 나를 보았다.


“조사는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어. 나는 김남운이 살인자라는 걸 확신해. 놈이 강현이에게 한 말. 자기는 신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이강현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깨달았지. 과거에 나는 그런 비슷한 사건을 맡은 적이 있거든.”

“어? 정말? 어떤 사건이었는데?”

“자세한 건 말 못해. 하지만 자기가 신이라고 한 놈이 정말로 신이었고, 그놈이 수많은 사람을 죽였고, 내가 놈을 잡았다는 것.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야. 그래서 나는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진실을 믿어. 김남운이 정말 살인자라면 놈은 벌을 받아야 해. 한두 명 죽인 게 아니라 열 명 넘게 죽인 거니까. 사람을 열 명 넘게 죽인 살인자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사회를 버젓이 돌아다니는 건 잘못된 거잖아?”


그 말을 하고 왜인지 송시현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때 이강현이 나에게 말했다.


“너, 김남운하고 같은 반이라고 하던데. 혹시 괜찮다면 나를 조금 도와줘라. 나는 김남운의 실체를 밝혀서 놈이 벌을 받게 하고 싶어. 하지만 그 전에 먼저, 그놈과 둘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왜 나한테 그런 짓을 했냐고. 그때 일을 후회하지는 않냐고. 나한테 미안하지는 않냐고. 물어볼 게 무척 많아. 하지만 김남운은 나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내가 사람을 보내 단 둘이 대화하자고 했지만, 거절했지. 오히려 한 번만 더 찾아오면 나를 죽여 버리겠다고 사람들을 통해 나를 협박하기까지 했어. 아직도 잊히지가 않아. 벌써 1년 전 일인데, 나는 여전히 악몽을 꾼다. 꾸는 법만 알고 벗어나는 방법은 몰라. 매일, 매일, 제자리 걸음이다. 이제는 그만 나아가고 싶어. 더는 과거에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아. 놈은 이미 내 전부를 앗아갔어. 여기서 더는 빼앗기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나는 이강현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알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어서 나 스스로도 답답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히 알았다.


‘이강현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아. 사실을 말하고 있어.’


이강현뿐만 아니라 송시현도, 진심을 다해 나에게 진실을 이야기했다.


사실 처음부터 줄곧 같은 말을 했는데, 지금 이 순간이 되어서야 인정하게 되었다.


‘김남운이 정말로 살인자라면. 이강현을 저렇게 만든 게 김남운이라면······.’


나도 송시현처럼 이강현을 도와 김남운의 실체를 밝혀 내는 일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할 수도 있어. 위험해지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볼 거야.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시작 안 했는데, 겁을 먹고 움츠러들기는 싫어.’


송시현과 이강현이 하는 말을 이제는 51% 정도 믿을 수 있었다.


나는 나머지 49%도 채우고 싶었다.


모두가 입을 모아 김남운이 악마라고 말한다면, 정말로 김남운이 악마일 가능성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


송시현의 말이 인상 깊었다.


‘정말로 김남운이 살인자인 거라면 큰일이야. 얼른 김남운의 실체를 밝혀내야 해. 그래야 이 세상에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지.’


이윽고 나는 결정을 내렸다.


“결정했어. 나도 너를 돕고 싶어.”


내 말에 이강현은 감격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


“고맙다. 날 도와주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게. 조사가 끝나면 사례도 할게.”


송시현에게 미행비 삼십만 원을 받았고, 이강현의 집에 와서 비싼 햄버거까지 얻어 먹었는데, 그것보다 더 많은 걸 받고 싶지는 않아 손을 저었다.


나는 그렇게까지 염치가 없는 년은 아니었다.


“사례는 안 해도 돼. 부끄럽지만 송시현에게 이미 받았거든. 대신 나중에 네가 맛있는 거 하나 사줘. 엄청나게 비싼 걸로!”


웃으면서 말하자 이강현도 그제야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었다.


“······그래.”


나는 잘 부탁한다는 뜻으로 악수를 청했다.


이강현이 내 손을 잡았고, 나는 이강현의 손이 차갑지만 따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가 널 이렇게 만들었는지, 이제 나도 그게 조금 궁금해졌어.’


이강현의 배웅을 받으며 아파트를 나왔다.



***



송시현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말은 아이 같이 하는데 잘 보면 어른 같고, 또 어른 같은데 은근히 아이 같고.


반짝거리는 두 눈은 장난기로 가득한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척 진지하고 어두웠다.


송시현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나는 그 비밀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대체 뭔데, 나를 이렇게까지 혼란스럽게 만드는 걸까?’


송시현이라는 남자아이를 지금보다 조금 더, 많이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김남운에 대해 조사하면서 동시에 송시현에 대해서도 조사하자고 생각했다.


“잘 가.”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을 때, 송시현이 말했다.


나는 아까 김남운과 헤어질 때 했던 인사가 생각났다.


그때 나는 잘 가라고 했는데, 김남운은 잘 자라는 말로 알아듣고 잘 자라고 했다.


하지만 송시현은 나에게 먼저 잘 가라고 말했다.


‘통했어······.’


나는 살짝 놀라며, 작게 잘 가라고 말했다.


“내일 보자.”


그 말을 하고 송시현은 사라졌다.


나는 송시현이 사라진 쪽을 보다가 천천히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정말 바쁜 하루였어.’


이곳저곳 열심히 돌아다녔다니, 발이 아팠다.


집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한 다음에는 침대에 누웠다.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제 더 바빠지겠네······.”


아마 내일부터 제대로, 김남운 실체 파헤치기 작전을 실행할 것 같다.


송시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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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시즌2 19. 납치 24.08.28 24 0 12쪽
48 시즌2 18. 결석 24.08.27 27 0 15쪽
47 시즌2 17. 안재호의 묘 (2) 24.08.26 28 0 13쪽
46 시즌2 16. 안재호의 묘 (1) 24.08.25 27 1 11쪽
45 시즌2 15. 김남운의 실체 24.08.24 34 1 13쪽
44 시즌2 14. 송시현의 병문안을 가다 (2) 24.08.23 28 1 16쪽
43 시즌2 13. 송시현의 병문안을 가다 (1) 24.08.22 32 1 11쪽
42 시즌2 12. 삼자대면 (2) 24.08.21 30 1 13쪽
41 시즌2 11. 삼자대면 (1) 24.08.20 32 1 11쪽
40 시즌2 10. 놀이공원 데이트 24.08.19 32 1 11쪽
39 시즌2 9. 송시현의 수첩 24.08.18 32 0 11쪽
38 시즌2 8. 조별 과제 (2) 24.08.17 34 1 16쪽
37 시즌2 7. 조별 과제 (1) 24.08.16 34 1 11쪽
36 시즌2 6. 박정후를 이용하라 (2) 24.08.15 36 1 11쪽
35 시즌2 5. 박정후를 이용하라 (1) 24.08.14 36 1 13쪽
» 시즌2 4. 의뢰자 이강현 (2) 24.08.13 40 1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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