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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준 님의 서재입니다.

개 같은 견주에게 죽고 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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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글

이하준
작품등록일 :
2023.12.24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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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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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8. 김남운의 일기장

DUMMY

"앞으로 두고보자."


남자아이 무리가 나를 흘겨보며 화장실을 나갔다.


참으로 가소로운 협박이었다.


나는 학교의 모든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갔다.


집에는 여자가 있었다.


‘회사에 안 갔나?’


쉬는 날인 걸까.


집에 들어갔는데, 내 얼굴을 보자마자 여자가 거실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 얼굴이 왜 그래?”

“아, 별 거 아니에요.”


그딴 변명이 통할 리가 없었다.


내 얼굴을 이리저리 훑어보던 여자가 핸드폰을 꺼냈다.


“당장 경찰에 신고를―.”

“―괜찮아요.”


나는 황급히 여자를 말렸다.


‘경찰에 잡혀가서 처벌을 받게 하면 안 돼. 놈들에게 복수는 내가 할 거야. 그 귀한 기회를 남에게 양보해 줄 수는 없지.’


길을 걷다가 넘어졌어요.


나는 여자가 속든, 안 속든 거짓말을 했다.


당연히 여자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너는 내가 넘어져서 생긴 상처랑 맞아서 생긴 상처를 못 알아볼 줄 아니?”


으음.


그 말에는 대꾸를 못했다.


“좋게 말해도 말을 듣지 않는구나, 그놈들은······!”


여자가 이를 으득 갈았다.


나는 여자가 말하는 그놈들이 누구인지 이제는 알았다.


아까 학교에서 나를 화장실로 불러 때린 세 명의 남자아이.


그놈들은 그 아이들을 뜻하는 것이리라.


“내가 대체 뭘 더 어떻게 해야 하지?”


잠시 가만히 있던 여자는 화를 참지 못하고, 현관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놈들을 만나러 가려는 거야.’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여자의 팔을 잡고 버텼다.


“진정하세요.”


여자는 세찬 기세로 내 손길을 뿌리쳤다.


“놔! 학교에 찾아가서 따질 거야! 널 괴롭히는 그놈들에게도, 학교 폭력을 방관하는 네 담임에게도,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학교 교장에게도! 전부 다 따져서 고개를 못 들게 만들 거야!”


여자는 자기 아들이 학교에서 맞고 오자 속이 상한 듯 보였다.


물론 나도 놈들에게 맞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이렇게 흥분하는 것을 바라고 있었기에 놈들이 원하는 대로는 움직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잠깐만요. 그런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나는 결국 놈들에게 맞은 것을 인정하고, 그 후에 여자의 마음을 돌리는 데 노력했다.


“법이 이 모양, 이 꼴인데, 누구를 원망하겠어요.”

“너 다 기억난 거니? 응, 그런 거야?”


여자는 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그것 때문에 몸이 마구 흔들렸다.


“진정하세요.”


나는 머리가 어지러워 여자를 진정시켰다.


“기억이 난 건 아니고, 학교에서 놈들이 저에게 말을 했어요. 제가 수면제를 먹어서 자살 시도를 했다고―.”


내가 말을 하면서 슬쩍 반응을 살피자 어깨를 잡고 있던 여자의 손이 순식간에 떨어졌다.


나는 여자가 양손을 내린 채, 멍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았다.


‘이 반응을 보아하니, 그놈들이 한 말이 사실인 것 같네.’


나를 눈앞에 두고도 여자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때를 생각하는 걸까?’


놈들의 말대로라면 나는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죽지는 않았다.


‘김남운이 자살 시도를 했다가 실패했는데, 그 충격 때문에 내가 기억을 잃었다고 여자는 생각하는 거야.’


김남운의 수면제 자살 계획이 실패하고, 그 후에 내가 김남운의 몸에 들어온 것 같았다.


누군가는 살아났지만 결국 누군가는 죽었다.


‘내가 죽어서 김남운이 살아난 걸까, 김남운이 죽어서 내가 살아난 걸까?’


김남운의 의식은 이곳에 남아 있지 않았다.


김남운의 몸은 나의 몸이 되었다.


‘그래. 김남운은 이미······.’


더 생각하지 않아도 답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멍한 얼굴의 여자에게 말했다.


“저, 놈들을 만나고 기억을 되찾고 싶어졌어요. 만약 그 일 때문에 충격을 받아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거라면,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과거에 일어난 일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기억을 찾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여자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내가 기억을 찾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여자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저었다.


“기억하지 않는 게 좋아. 네 기억상실증이 그때 일을 잊고 싶어서 발생한 거라면, 더더욱 난 네가 죽을 만큼 힘들어했던 과거를 이야기해 줄 수 없어. 지금 이게 바로 네가 원하던 거니까.”


여자가 잔잔한 눈으로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은 조금 답답할지라도, 나중에 가면 잊고 살기 잘했구나 생각이 드는 날이 올 거야. 남운아. 우리 같이 그날을 기다리면서 살 수는 없을까?”


여자는 우리가 곧 이사 갈 거라는 말을 했다.


내가 자살 시도를 했다가 실패하고 긴 잠에서 깨어난 날에, 이 지긋지긋한 동네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역으로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그게 바로 어제라고.


“이사 준비 때문에 휴가를 냈어. 이사는 일주일 뒤에 갈 거야. 그때까지 너는 학교에 가지 않아도 돼. 학교생활이 많이 힘들어도, 학교는 빠지지 않고 가던 성실한 학생이었거든······.”


그 말을 하고 여자는 눈물을 보였다.


어제 차에서 울 때는 왜 울지 이해가 안 갔는데, 모든 일을 알고 난 다음에 여자의 눈물을 보니 괜히 내 마음이 먹먹했다.


‘저 눈물의 의미를 아니까 더 슬픈 거야.’


울지 마세요.


나는 눈앞의 여자가 친엄마처럼 느껴져, 여자를 내 품으로 끌어당겨 안아 주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위상우가 아니라 김남운의 영혼이 내 몸에 들어갔다가 나온 기분이었다.


“저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결정이라는 거 알아요. 마음 같아서는 저도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고 싶어요.”

“그러면 그렇게 하면 되잖니?”


여자는 제발 그렇게 하라는 투로 말했다.


나는 웃었지만,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결정을 하면 제가 평생을 후회할 것 같아서요.”


나는 여자를 설득했다.


“기억을 잃은 후의 이 모습도 저지만, 기억을 잃기 전의 모습도 결국에는 저잖아요. 저는 그때의 저를 기억하고, 저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으로 성장을 하고 싶어요. 이번 기회로 성장을 하고, 그렇게 해서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거예요. 다시는 바보 같이 도망가는 길을 택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엄마가 도와주세요. 제가 지금보다, 과거보다 훨씬 용감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요.”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말을 내뱉었다.


고개를 들어서 보니, 여자는 눈물을 멈추고 나를 보고 있었다.


나도 여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걸 원하니?”


여자가 물었다.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가 다시 물었다.


“정말로 그걸 원해? 무척 힘든 길이 될 텐데. 차라리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났었다고 후회할 수도 있어.”


그 말에는 내가 나중에 자기를 원망할지도 모른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후회는 제 몫이죠. 적어도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을 거예요.”


나는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말했다.


“······그래.”


내 단호함에, 여자가 힘없이 대꾸했다.


“잠깐만 기다려 봐.”


여자는 방에 들어갔다가 몇 분 뒤에 나왔다.


여자의 손에는 일기장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이건 네 일기장이야. 정확히는 네가 기억을 잃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힌 일기장.”


여자의 말에 따르면 김남운은 매일 일기를 적는 습관이 있었다고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일기를 썼는데, 그게 중학생이 되어서도 이어졌다고.


‘신기하네. 습관에서부터 성격이 드러나는구나.’


김남운의 취미 생활로 추측해 볼 때, 김남운은 성격이 소심한 아이였던 것 같다.


‘소심하니까 괴롭힘을 당하고, 또 복수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죽으려고 했던 거겠지······.’


나는 일기장을 받았다.


여자는 처음에 나에게 일기장을 주지 않으려고 꽉 잡고 있다가 내가 그만 놔 달라는 눈으로 쳐다보자 그제야 못 이기는 척 손에 힘을 풀었다.


“혹시라도 그걸 읽고서 밤에 혼자 자는 게 무서우면―.”


여자는 약간 뜸을 들이다가 나와는 다른 쪽을 보며 말했다.


“······언제든지 엄마 방으로 와. 악몽을 꾸지 않도록 도와줄게.”


나보다는 그 말을 하는 여자의 안색이 더 안 좋아 보였다.


“네, 엄마.”


이 여자는 내 엄마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여자가 나에게 베푸는 모성애에 감동을 받았다.


‘이런 게 모성애구나.’


여자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



일기에는 그동안 놈들이 김남운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나는 첫 장에서부터 천천히 일기장을 읽어 내려갔다.



[20xx년 3월 x일]


「새 학기 첫날이었다.

나는 키가 작은 편이라서 앞에 앉아야 하는데, 아침에 늦잠을 잔 것 때문에 학교에 늦게 도착해서 빈 자리가 맨 뒷자리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 앞에 앉은 키가 큰 아이에게 자리를 바꿔줄 수 있냐고 물었다.

“자리를 바꿔 달라고?”

남자아이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나에게 발을 걸었다.

나는 넘어졌고, 멍한 표정을 지으며 남자아이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남자아이가 왜 쳐다보냐며 다짜고짜 뺨을 때렸다.

나는 그게 무슨 상황인지 몰랐다.

“이 새끼 표정 봐라. 존나 멍청하네.”

뺨을 때린 남자아이가 손으로 내 머리를 잡았다.

“야. 너 좀 귀엽다?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그건 내가 그 아이에게 찍혔다는 소리였다.

내 학교생활은 시작부터 망했다.」



[20xx년 3월 x일]


「오늘, 그 아이가 나에게 빵 심부름을 시켰다.

나는 내가 빵셔틀에 당첨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돈을 달라고 했다.

그 아이가 갑자기 나를 때렸다.

반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나는 누군가 한 명 정도는 그 아이를 말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반에서는 이미 그 아이가 왕이었다.

나는 교실에서도, 화장실에서도 맞았다.

내일부터 돈을 잘 가지고 다니겠다는 약속을 한 뒤에야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xx년 3월 x일]


「나를 괴롭히는 남자아이의 이름은 이강현이었다.

이강현은 초등학생 때부터 유명한 일진이었는데, 흔한 일진이 아니라 초등학생 때 일짱을 할 정도로 싸움을 잘하는 애라고 했다.

그런 아이에게 나는 찍힌 것이다.

망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이강현 무리에게 빵을 사 주느라 한 달치 용돈을 다 썼다.

가진 돈이 없는데, 돈을 안 가져가면 맞는다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엄마 지갑에서 돈을 슬쩍했다.

이 사실은 평생 비밀로 할 것이다.

내가 죽고 난 다음에, 이 일기장을 보고 엄마가 그 사실을 알지 않는 한은.」



3월 달에 적힌 일기는 이강현 무리가 김남운을 괴롭히는 게 내용의 전부였다.


나는 3월 달에서 4월 달로 넘어갔다.



[20xx년 4월 x일]


「안재호와 신민철은 이강현을 따라 나를 괴롭혔다.

둘은 이강현의 부하 비슷한 존재였다.

이강현의 명령 한 마디면 그 아이들이 나를 때리고, 발로 밟았다.

나는 내가 그 아이들과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안재호가 나를 발로 차고, 신민철이 내 뺨을 때려도 하지 말라고 울면서 비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난 걸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나인 것에 불만을 품었다.

적어도 다른 아이들처럼 키가 크거나 싸움을 잘했다면 좋았을 텐데.」



[20xx년 4월 x일]


「그 아이들은 내가 모자라서 태어나자마자 아빠가 집을 떠난 거라고 놀렸다.

남의 불행한 가정사를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빠가 나를 버리고 집을 떠난 건 사실이라서 할 말이 없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내가 아니라고 대꾸하지 못하자 이강현 무리가 낄낄대며 웃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웃음소리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방에 들어와 양쪽 귀를 틀어막고 울었다.」



‘아.’


나는 이 부분을 읽고, 김남운의 성이 왜 여자의 성과 같은지를 이해했다.


김남운의 아빠는 김남운이 태어나자 김남운과 여자를 버리고 도망갔다.


‘무책임한 새끼.’


그래서 여자는 김남운에게 자기 성을 준 것이었다.



[20xx년 4월 x일]


「엄마는 아빠가 집을 떠난 것에 내 잘못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전부 내가 문제인 것만 같았다.

내가 모자라서 아빠가 집을 떠나고, 또 내가 멍청해서 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거라고.

‘죽으면 될까? 죽으면 이 고통이 끝날까?’

그냥 시험 삼아 커터칼로 손목을 그어 보았다.

피가 났다.

아팠다.

나는 내가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이 정말 원망스러웠다.

‘아프지 않으면 죽을 수 있는데. 아파서 죽을 수가 없어. 무서워.’

내가 죽어야 이 고통이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죽는 것이 무서워, 아무 의미 없는 이 생을 끝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엄마에게 학교에서 아이들이 괴롭힌다고 말을 해 볼까 싶었지만, 엄마 회사는 늦게 끝났다.

퇴근해서 지친 엄마의 모습을 보면 내 고민은 고민 같지도 않게 느껴졌다.

‘됐어. 말하지 말자.’

나는 오늘도 엄마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지 못했다.

그냥 엄마 앞에서 웃었다.

상처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상처가 드러내지 않을수록 나는 더 괴로웠다.

이걸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넌 잘못 없어.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김남운이 옆에 있었다면 나는 바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남운은 내 옆에 없었다.


그 아이는 이미, 너무 멀리 떠나 버렸다.



[20xx년 5월 x일]


「괴롭힘의 강도가 점점 심해졌다.

내가 당한 짓을 여기에 다 적을 수는 없지만, 나는 그 아이들에게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며 지내고 있다.

학교에 가는 게 괴롭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그냥 내가 이대로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았고, 내일 또 학교에 가야 한다.

여전히 죽음이 두렵다.

그러나 제일 무서운 것은 내가 내일 학교에 가서 그 아이들의 얼굴을 봐야 한다는 것.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죽는 것이 학교에 가는 것보다 덜 무섭지 않을까, 하는 생각.」



[20xx년 5월 xx일]


「엄마를 생각하면서 참았다.

내가 죽으면 엄마가 많이 슬퍼할 테니까.

나에게 엄마밖에 없는 것처럼, 엄마에게도 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너무 힘들다.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내가 지하철 선로로 뛰어들어가 모든 것을 던져 버릴 것만 같다.

그래서 잠에 들기가 무섭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조금씩 미쳐 가고 있는 것 같다.

나조차도 나를 믿을 수가 없다.」



‘불쌍한 녀석.’


나는 말없이 다음 장을 넘겼다.



[20xx년 6월 x일]


「아무 문제 없는데, 모든 것에 문제가 있다.

그 문제가 일어난 원인은 나다.」



[20xx년 6월 x일]


「“힘들면 죽어. 뭐 하러 살아 있냐? 어차피 넌 살아봤자 이 세상에 도움도 안 되잖아.”

오늘 신민철이 나에게 한 말.

나는 그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맞는 말 같았다.

‘죽을까?’

다이소에서 칼을 샀다.

차마 집에 있는 칼을 더럽힐 수는 없어서.

하지만 사 놓기만 하고 포장은 뜯지 않았다.

칼을 베개 아래에 놓고, 언제 죽을까 기회를 엿보고 있다.」



[20xx년 6월 xx일]


「내가 어떻게 죽어야 엄마가 그나마 덜 슬퍼할까?

그것에 대해 고민하느라 죽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슬슬 한계다.

조만간 어떻게든 끝이 날 거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내 몸의 상태는 내가 제일 잘 아니까.」



[20xx년 6월 xx일]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김남운이 미쳐 가는 과정이 나에게도 생생하게 전달되어, 일기를 읽는 것이 조금씩 힘들어졌다.



[20xx년 7월 x일]


「나는 죽어야 한다.

그래서 죽기로 마음먹었다.」



[20xx년 7월 x일]


「정신과에 갔다.

불면증을 핑계로 수면제를 받아 왔다.

나는 약을 먹지 않고 계속 모았다.」



‘이다음 내용은 누가 봐도······.’


읽고 싶지 않았지만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읽는 것으로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그 일을 당한 당사자는 어땠을까?’


아마 이 글을 쓰면서 손이 덜덜 떨리지 않았을까.


나는 엄살 부리지 말라고 나에게 말하며, 억지로 다음 장을 넘겼다.



[20xx년 8월 x일]


「나는 곧 나에게 벌어질 일을 알고 있다.

수면제를 먹고 죽는다.

그게 내 미래였다.

지금 이 글을 적는 책상 위에는 그동안 먹지 않고 모아두었던 수면제가 있다.」



[20xx년 8월 20일]


「나는 나의 구원, 나의 희망인 수면제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드디어 죽을 수 있어.’

이대로 가기 미안해서 유서를 적었다.

유서에는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의 이름을 적었다.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손이 덜덜 떨려서 여기에 그 이름은 적지 못하겠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이것만큼은 알아 주었으면 한다.

내가 많이 사랑한다고, 내가 죽어도 그건 절대 엄마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해 보면 엄마 덕분에 내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나는 엄마가 다음 생에서도 내 엄마였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다.

다수의 의견은 중요하다.

소수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다수를 위해 소수인 나를 희생시키기로 결심했다.

약을 먹었다.

느낌이 이상했다.


······기분이 좋다.」



***



일기는 여기까지였다.


나는 일기장을 읽으면서 김남운은 아무 잘못이 없고, 이강현과 안재호, 신민철 같은 놈들은 죽어 마땅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김남운이 아닌 내가, 사적인 감정으로 남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옳다고는 말 못해. 그렇다고 옳지 않다고 하지도 못해.’


둘 중 무엇을 선택해도 찜찜한 결과가 남는다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다.


아, 역시 나는 복수를 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이 몸에 들어왔으니.


‘어쩌면 김남운은 누군가가 자기 대신 놈들에게 복수를 해 주기를 바라며 죽은 것 아닐까? 그래서 원래 죽기로 되어 있는 내가 이 몸으로 들어왔고, 김남운은 나에게 복수를 맡기고 사라진 거지. 그래. 나는 신의 선택을 받은 게 아니라 김남운의 선택을 받은 거야. 김남운은 복수자로 나를 선택했어. 그러니까 최대한 그 기대에 부응을 해 줘야지. 이 두 번째 인생은 나를 위한 것이지만, 결코 나만을 위한 게 아니야. 나와 김남운, 우리 둘을 위한 거지.’


나는 얼굴만 알뿐,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김남운이라는 남자아이에게 내적 친밀감을 느꼈다.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널 한번 만나보고 싶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말이야.’


김남운의 일기장을 덮고, 아직은 어색한 느낌을 주는 큰 침대에 누웠다.


‘개새끼들!’


그리고 내일을 위해 눈을 감았다.


작가의말

'개 같은 견주에게 죽고 신이 되었다'는 줄여서 '개 같은 신'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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