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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pen 님의 서재입니다.

회한의 마스커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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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pen
작품등록일 :
2017.10.06 18:42
최근연재일 :
2018.02.01 20:17
연재수 :
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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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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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글자수 :
488,151

작성
17.10.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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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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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12. 사기꾼의 종말

Letum non omnia finit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내는 것은 아니다.




DUMMY

프로메테우스는 ㈜수성이 입주한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은 그 건물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골목이었다. 차 안의 시계는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차는 차주 허락 없이 잠시 빌린(?) 것이었다. 추적할 경우를 대비해서 번호판은 폐차장에서 구한 것으로 바꿔 붙인 상태였다. 오가던 행인 중 누군가가 이 차를 기억해도 추적은 불가능했다.


거리에는 어둠이 내려앉은 상태였다. 퇴근 후 한 잔을 즐기려는 직장인들과 학생들이 삼삼오오 얽혀 오가는 까닭에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관찰한 바에 의하면 이 거리에 통행인의 수가 본격적으로 줄어드는 시간은 저녁 9시 이후였다.


배전기의 BMW는 주차장 안에 얌전히 세워져 있었다. (주)수성이 사용하는 3,4층의 불은 7시 가 지나면서 거의 다 꺼진 상태였다. 지금은 3층 한 곳, 4층 한 곳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교육 받을 때의 기억을 되짚어 보니 3층 사무실은 총무과일 가능성이 높았다. 4층은 사장실이었다.


(주)수성 건물 옆에 있는 양고기 레스토랑 안에서 직장인으로 보이는 남녀 서너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행은 떠들썩한 웃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골목길 끝으로 사라졌다.


8시 30분이 지났는데도 3층 총무과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창문 앞에 남자로 보이는 실루엣이 나타났다. 그의 얼굴 부근에서 빨간 불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는 담배를 피고 있었다. 남자의 등 뒤 불빛 아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으로 보아 야근하는 사람이 혼자가 아닌 것 같았다.


생각하지도 않은 변수였다. 하필 오늘 야근을 하고 있다니.


(인명은 재천이라더니 행운의 여신이 사기꾼 편을 들고 있는 건가?)


사람이 하는 일은 아무리 만전을 기해도 한계가 있다는 말이 실감났다. 1시간 이내에 야근하는 직원들이 일을 마무리하고 회사를 떠나지 않는다면 오늘 일정을 포기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했다.


실행을 앞두고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수성의 프랜차이즈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회사가 아니라 성공한 기업가, 도전하는 기업가 배전기의 이미지였다. 그가 죽는다면 투자가나 예비 창업자들은 생각을 달리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누구보다도 곤란해지는 것은 지금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는 업주들이었다.


프랜차이즈에 전 재산을 투자한 그들의 운명을 생각하노라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창업 교육 설명회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은 자신의 운명과 전 재산을 남에게 맡긴 결과를 고스란히 돌려받게 될 것이다.


9시가 되었을 때 3층 사무실의 불이 마침내 꺼졌다. 5분 후에 건물 정문에 두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가 나타났다. 네 사람은 무엇인가를 의논하더니 20m 떨어진 양고기 레스토랑으로 발길을 옮겼다. 늦은 저녁을 먹으려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 프로메테우스는 차에서 나와 거리를 건넜다. 검은색 야구모자와 청색 야구점퍼, 검은색에 가까운 청바지를 입은 그는 어둠 속에 완벽하게 녹아있었다.


엘리베이터는 1층에 멈추어 있었다. 예상한 대로 관리인은 퇴근하고 없었다.


프로메테우스는 발소리를 죽이며 어둠에 잠긴 비상계단을 올라갔다. 두꺼운 고무창을 댄 신발 바닥 덕분에 발자국 소리는 전혀 나지 않았다.


3층 사무실 구역은 한 점의 빛도 없이 캄캄했다.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4층에 오르자 희미하게 조명이 켜진 복도 오른쪽 구석에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장실이 있는 곳이었다.


콜트를 꺼내 소음기를 연결했다. 손아귀에 쥔 콜트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탄피 내의 화약을 뺀 결과 소음을 완벽하게 줄일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다. 파괴력이 떨어지는 것은 대구경 탄알과 탄종 선택으로 충분히 만회할 수 있었다. 어차피 10m 이내에서 사용할 생각이었으므로 정확도의 감소 또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의 가설은 첫 번째 실험에서 명확하게 입증된 후였다.


예상대로 사무 구역과 엘리베이터 대기 공간을 분리하는 유리문은 닫혀 있었다. 혼자 야근을 할 경우에는 일종의 보안장치인 셈이었다. 왼손으로 살며시 밀어보았지만 역시 잠겨 있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주머니에서 키트를 꺼내어 재빨리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배워놓은 자물쇠 따기 기술은 여러 가지 경우에 매우 유용했다. 열쇠 구멍에 가져온 키트 중 일부를 가지고 작업을 한 지 40초 만에 유리문이 딸깍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밀려났다.


프로메테우스는 유리문을 연 다음 잠시 안쪽의 인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사무실 안에서는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발소리를 죽이며 천천히 사무실로 접근했다. 사무실 문은 안쪽으로 활짝 열려 있어서 밖에서도 내부의 광경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실내에는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배전기는 특별히 주문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거대한 책상 앞에서 장부 정리를 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의 오른쪽 책상 위에는 5만원 권 현금 뭉치들이 일렬로 하늘을 향해 쌓여 있었다. 배전기의 등 뒤에는 평소라면 절대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 분명한 비밀 금고가 활짝 열린 채 내부를 송두리째 드러내고 있었다.


얼마나 열심히 계산을 하고 있는지 배전기는 사무실 문 앞에 프로메테우스가 서서 그의 행동을 한참 동안 보고 있는데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비록 악당이지만 배전기의 집중력은 보기에도 무서울 정도였다. 재능은 있지만 인성을 갖추지 못한 탓에 본인의 인생을 망친 셈이었다.


프로메테우스가 그의 부족한 인성을 아쉬워할 때 비로소 인기척을 느꼈는지 배전기가 고개를 들었다. 검은색에 가까운 옷차림으로 어둠 속에 서 있는 프로메테우스를 본 그의 얼굴에 잠깐 동안 의아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눈앞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 했다.


그의 시선이 프로메테우스의 얼굴에서 천천히 아래로 이동했다. 프로메테우스의 오른손에 들린 거무튀튀한 물체를 본 배전기는 그제서야 혼비백산했다.


“ 당신, 누구야···?”


권총을 본 배전기가 무엇인가에 튕기듯이 뒤로 물러났다.


“ 어떻게 여길 들어온 거야? 분명히 문을 잠궈 놓았을 텐데?”


배전기의 당황스러운 질문에 프로메테우스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단지 조용히 걸음을 옮겨 배전기 앞으로 다가갔을 뿐이었다.


배전기는 침입자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도망치려 했으나 더 이상 움직일 곳이 없었다. 배전기는 눈치가 없거나 입을 함부로 놀리는 인물은 아닌 모양이었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배전기는 동작을 멈추고 입을 굳게 다문 채 프로메테우스를 빤히 응시할 뿐이었다. 인생의 험로를 수없이 헤쳐 온 노장다운 반응이었다.


그를 정면으로 향하고 있는 총구를 바라보던 배전기의 눈이 책상 위에 쌓인 현금뭉치 쪽으로 옮겨갔다. 돈다발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탐욕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잠깐 동안 배전기의 대담한 행동에 내심 감탄을 금치 못하던 프로메테우스는 그 순간 미련을 버렸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돈에 한눈을 팔다니 역시 안 바뀌는군.)


탐욕과 배신, 기만으로 50년을 살아온 인물이 한순간에 잘못을 회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흔들리던 배전기의 눈빛이 프로메테우스를 바라보며 번들거렸다.


그의 생각이 뻔히 내다보였다. 그는 현금으로 목숨을 협상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역시 장사꾼다운 생각이었다. 표정으로 보건대 자신이 내건 협상 카드가 틀림없이 통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의 앞에 서 있는 인물은 돈을 가지고 협상을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 그의 불행이었다. 세상에는 돈보다 가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극소수나마 있기 마련이었고 지금 그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이 그들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아무 말 없이 총구를 그의 시선과 일직선에 놓았다. 침착을 가장하던 배전기의 안색이 총구가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보고 하얗게 질렸다.


“왜!···왜 이러는 거요! 이러지 마시오. 제발 말로 합시다. 여기, 이 돈을 다 주겠소. 3억 원이오. 원한다면 더 줄 수도 있소..!”


“ 돈으로 세상을 다 살 수 있다고 확신하는 모양이군. 하지만 세상에는 돈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걸 알아 둬.”


프로메테우스가 나직하게 뇌까리는 순간 배전기의 얼굴이 경악으로 뒤덮였다.


“ 그런···말도 안 되는···!”


그가 손을 뻗으며 뭐라고 대답하려는 순간 콜트가 작은 기침 소리 같은 소음과 함께 탄환을 토해냈다. 고요한 사무실 안이 아니라면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한 소리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배전기의 이마에 새로운 눈구멍이 생겼다. 음속에 가까운 총알의 충격을 받은 그의 몸이 뒤로 펄쩍 밀려났다. 배전기는 중역용 고급의자의 등받이에 부딪힌 후 바닥에 나뒹굴었다.


프로메테우스는 두 팔을 벌린 채 볼썽사납게 구겨져 있는 배전기에게 다가갔다. 확인하나마나 즉사였다. 죽으면서도 억울했는지 배전기는 두 눈을 부릅뜬 상태였다. 프로메테우스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가지고 온 시그니처를 배전기의 바지 왼쪽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매캐하고 자극적인 화약 냄새가 사무실 안을 가득 채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로서는 정을 붙일 수 없는 고약한 냄새였다. 그가 우수한 근무 평점과 선배들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군을 떠난 이유이기도 했다. 재능은 있지만 그곳은 자신의 일생을 걸고 있기에는 편치 않은 자리였다.


바닥에 떨어진 탄피를 주워 주머니에 넣은 프로메테우스의 눈길이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인 현금더미에 머물렀다. 현금더미를 어떻게 할 것인가. 순간적으로 갈등이 일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돈을 가져가기로 했다. 돈을 가져가는 것이 초심을 벗어나는 행동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개 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라’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좋은 돈, 나쁜 돈은 따로 없다. 좋고 나쁨의 문제는 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방법을 선택하는 인간에게 있는 것이다. 악랄하고 비열하게 벌어들인 돈이라도 좋은 곳에 쓰면 그만이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사무실 오른쪽에 있는 옷걸이 밑에서 백팩을 발견했다. 크기가 적지 않은 백팩이어서 책상 위에 있는 현금을 다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프로메테우스는 재빠르게 현금을 쓸어 담았다. 5만원권 뭉치가 빽빽하게 들어간 백팩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백팩을 짊어진 프로메테우스는 천천히 뒷걸음으로 물러나면서 자신이 떨어뜨린 증거물이 있는지 확인했다. 중거물이 있을 리 없었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단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프로메테우스는 고양이 걸음으로 소리 없이 비상계단을 통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유난히 차갑게 느껴지는 형광등 불빛 아래 영혼 잃은 배전기의 시선이 살인자가 사라진 어둠 속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Si vis vitam, para mortem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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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0. 조롱과 굴욕 17.10.27 248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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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4. 미녀와 야수 17.10.19 128 1 9쪽
24 23. 달아오르는 도시 17.10.17 120 1 12쪽
23 22. 프론트라인 17.10.16 116 1 13쪽
22 21. 결초보은 17.10.14 239 1 9쪽
21 20. 회색인간 +1 17.10.14 139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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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 변절의 대가 17.10.10 152 3 11쪽
14 13. 오리무중 +1 17.10.10 152 2 16쪽
» 12. 사기꾼의 종말 17.10.09 156 3 11쪽
12 11. 소리 없는 살인자 17.10.09 162 3 12쪽
11 10. 보이지 않는 거미줄 17.10.09 163 3 10쪽
10 9. 총성의 미스터리 17.10.08 163 4 9쪽
9 8. 기레기와 쓰레기 17.10.08 179 2 10쪽
8 7. 선전포고 17.10.07 177 6 12쪽
7 6. Si vis Pacem, Para Bellum 17.10.07 162 6 11쪽
6 5. 세렝게티의 파수꾼 +2 17.10.07 244 5 13쪽
5 4. 황금빛 신기루 17.10.07 231 7 10쪽
4 3. 축배와 살인 17.10.07 267 6 14쪽
3 2. 운명의 수레바퀴 17.10.06 343 5 10쪽
2 1.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1 17.10.06 499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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