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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한스그레텔 님의 서재입니다.

검마전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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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그레텔
작품등록일 :
2024.01.23 19:39
최근연재일 :
2024.06.14 20:10
연재수 :
10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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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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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15,038

작성
24.02.0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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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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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글자
13쪽

흑사방(4)

DUMMY

카각-!

카가각-!

카앙-!


성검련 장원 외각에 마련된 연무장.

이곳은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이른 새벽부터 간부들과 휘하 무인들은 살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간부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무인들이 검술을 펼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힘이 너무 들어갔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힘을 빼라!”

“예!”


그래도 그동안 무현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다.

지난 일 년에 걸친 적응을 위한 노력과 이를 악물며 참은 수많은 순간이 작금에 이르러서야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무인들의 고함과 비명이 끊임없는 연무장.

그곳을 무현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괜찮군.’


무현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칭찬.

거듭된 순환 속에서 무인들의 무위는 나날이 발전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흑사방을 칠 수 있겠지.


“문도들이 이토록 노력하는데, 나 역시 솔선수범을 보여야겠지.”


무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내비치곤, 연무장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이제 내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만 남았나.’


건곤신결의 경지는 후반부에 다다랐다.

약간의 계기만 충분하다면 환골탈태의 경지를 넘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사지에 철환을 차고.

무거운 묵철검을 허리춤에 차며.


‘움직이자.’


무현은 개인 연무장으로 향했다.

오직 성검련의 주인, 무현을 위해 지어진 연무장.

무현은 그 안에서 검을 휘둘렀다.

한번.

열 번.

백 번.

만 번.

수많은 시간이 흐르고, 아침 해가 완전히 저물어 창백한 달로 바뀌기까지 무현의 단련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이어지던 찰나.


“무슨 일이지?”


무현의 시선이 향한 곳엔.


“물어볼 게 있어서요.”


한 명의 무인이 서 있었다.


***


여인의 검술에 대한 이해도는 무현이 봐도 놀라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모든 검술을 통달한 건 아니었다.

성검련에 머무르면서 그녀 역시 성장했고, 무현을 만난 덕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 그 깨달음의 열기가 점점 식어가고 있었다.

여인은 어떻게 검술을 펼쳐야 효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무현에게 질문했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배움을 청했다.


“막힌 부분이 있다고?”

“네.”


여인은 고심 가득 한 말투로 답했다.

무현은 여인의 말을 들으면서 점점 흥미가 당긴다는 듯 그녀를 응시했다.


‘재밌군.’


본래 무인은, 오만과 허영심으로 빚어 만들어진 광기의 산물이다.

죽는다면 죽었지, 절대로 고개를 숙이는 일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여인의 행동은 무현의 흥미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러서도, 무현이 만난 무인들 가운데 먼저 고개를 숙이고 배움을 청한 무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검을 들어라. 무인으로서 해답을 듣고 싶으면 검을 뽑아야 설명하겠지.”

“···알겠습니다.”


여인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티 하나 없이 순수하고 맑은 검날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현은 오라며 손을 까딱였고, 여인은 이에 응답했다.


“가겠습니다.”


여인은 대지를 박차며 나아가 힘차게 검을 찔렀다.


쐐애애애애액-!


화살처럼 나아가는 검 끝을 마주 보며, 무현은 가볍게 검을 내질렀다.


‘유연하군.’


기본 골조는 쾌검(快劍)이지만, 변칙적으로 무수히 많은 묘리를 섞으며 펼치고 있었다.

게다가 검을 휘두를수록, 그 유연함의 정도는 눈으로 보고도 쉽게 알아채기 힘들었다.


만검(萬劍)의 묘리.


천하의 모든 검학을 집대성한다면 눈앞의 모습과도 같달까.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카앙-!


일자로 내리긋는 장검의 일격이 공기를 가른다.

그 일격은 여인의 검에 세월의 정취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깊이가 부족하다.

모든 걸 터득했지만, 각각 따로 놀고 있었다.

말하고 싶고, 그리고 싶고, 표현하고 싶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내공의 문제라기보단, 경험이 부족하다.


‘실전의 부재. 아직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검을 섞지 못했던 건가.’


무현의 눈에 은근한 열망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순수한 가르침이었다.


‘좀 더 내게 보여라.’


콰아앙-!


폭음과 함께 뒤로 튕겨 나간 여인이 몸을 회전하며 검을 휘둘렀다.


쐐애애액-!


회전력을 더한 검이 무현에게 날아갔다.

찰나의 사이 목덜미에 닿을 것처럼 날아들었던 검은 무현의 단순한 대응으로 쉽게 무너졌다.


카가가각-!


하단에서 상단으로 검을 휘둘러 여인의 검을 올려 쳐 흘려냈다.


‘서로 다른 검의 길을 추구하는 자들끼리의 대련이라.’


만검(萬劍)을 추구하는 여인과.

검(劍)의 근본(根本)을 추구하는 무현.


길은 다르지만, 추구하고자 발버둥 치는 노력 속에서, 점점 서로를 닮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둘 사이에 검이 어지럽게 섞이고, 마침내 이 대련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쩌어어어엉-!


귀청을 찢는 파공성과 함께 두 사람은 뒤로 물러났다.


“문제가 뭔지 알겠군.”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잡생각이 너무 많아.”


무현이 미간을 좁힌 채로 여인을 노려봤다.


“···잡생각이요?”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몸이 따라주질 않겠지. 검술을 펼칠 때마다 빈번히 괴리감이 느껴질테고.”

“···맞습니다.”

“인간의 몸은 지극히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졌지. 동시에 극한의 효율성을 띠도록 진화한다. 검술도 마찬가지다. 예부터 현재에 이르러서 검술은 발전했으며, 효율적으로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으니.”


무현이 싱긋 웃었다.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주는 편이 좋겠지.”


무현은 검을 들어 허수아비를 가리켰다.


“직접 보고, 느껴보거라.”


후웅-!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현재에 이르러서 선보이는 일검(一劍).

검마(劍魔) 무현의 일검이 지금 이 순간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


침묵이 일었다.

무현이 보여준 무위, 무공은 보는 이에게 열락의 무아경을 선사했다.

여인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부우우웅-!


무현의 검이 상단으로 향하며 하늘을 가리켰다.


바로 그 순간.


콰아아아앙-!


이내 엄청난 굉음과 함께 연무장 내의 짙은 먼지구름을 동반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허수아비는 갈가리 찢겨, 형체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하······!”


매사에 점잖던 여인의 탄성.

평소 그녀의 성격을 생각하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만큼 충격이 큰 것이다.

그렇게 여인은 한참 말이 없었다.

표정이 심각한 것을 보니 뭔가를 깊게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분명 허수아비를 벨 때 내공을 쓰지 않았다. 근데 어떻게 허수아비를 박살 낼 수 있었을까?”


무현이 여인을 향해 걸어가며 질문을 던졌다.


“조금 전, 내가 상식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했지.”


무인의 강함은 내공의 유무로 결정된다.

그것은 무림의 법칙이자, 불변의 진리였다.

하지만, 눈앞의 장면을 직접 목격한 여인의 상식엔 큰 혼란이 찾아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말이 결정타를 먹였다.


“무인은 구더기다.”

“······!”

“제대로 된 사고도, 제힘으로 나아가지도 않은 채 추잡한 입을 벌리고 들어오는 부패물만을 우적거리는 구더기. 그게 바로 무인이다.”


무현은 말을 이었다.


“작금의 무림은 고이다 못해 썩었다. 무인이란 존재는 싸우고, 투쟁하여 스스로의 행보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지곤 한다.”


무림은 무인들이 사는 세계다.

예로부터 무인은 존경받는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이 말은 즉.

명예, 인맥, 재산.

이 듣기만 해도 군침이 돋는 세 가지를 모두 얻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무림이라는 곳이다.


“무인은 칭송받아서는 안 된다. 별호가 생겼다는 사실에 창피해하고 자신의 나태함과 헛되이 산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설명이 이어질수록, 여인의 반응이 거세져만 갔다.

그럼에도, 무현의 거침없는 설명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대세가, 구파일방. 그들은 고작 해봐야 고급 비단으로 잘 싸여 포장된 돼지다.”

“···!!”

“수많은 혜택을 누리면서도 그 정도밖에 성장하지 못한 구더기들을 따르고, 칭송해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작금의 무인은 애초에 협객이 되어 양민들을 구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목적에 대한 갈망.

종착점도 없는 길목을 누비며 주입된 욕망에 끌려가는 망령된 존재.

무현이 경멸하는 부류 중에서도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 어리석은 녀석들.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 성향, 재능을 파악하려고도 하지 않는 병신들.


“그들이 특별할 것이라 착각하지 마라. 놈들의 가치는 먹이 그 이상도 아니다. 그들의 상식은 곧 우물 안의 개구리이며, 스스로에 도취해 연방 수음하는 존재들의 말로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히 그들이 무림의 꼭대기에 있다고 해서 존경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두 발로 온전히 서 있어야 하며, 그런 사람을 무리가 떠받들 정도의 무언가를 갖추고 있어야 진정한 무인이라 칭할 수 있다.

아무런 자격도 없는 놈들이 그저 혜택을 누리는 꼴은 너무나도 역겹기 짝이 없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으면, 처음부터 차근차근 밟아라. 사선 베기, 종 베기, 횡 베기, 찌르기 단 하나라도 완전히 터득해라.”


상식은 인간이 만든 부산물이다.

인간은 상식을 이용해 발전한다.

허나, 작금의 무림은 그저 알려진 제한된 정보만을 상식으로 삼고 있다.

인간의 발전을 위해 존재해야 할 상식이.

일종의 족쇄로 작용한 것이다.


***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잊지 못할 조언이 끝나고 나서도, 여인의 머릿속엔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했다.

쉽사리 몸은 진정되지 않았다.

머리는 차가웠지만, 몸은 이상한 치만큼 뜨겁게 달궈있었다.


‘현 무림의 상식은 고여있다.’


그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그의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작금의 무림에 큰 불만을 품은 것일까.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단순히 치기 어린 의견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막혔던 둑이 단숨에 뚫린 것처럼, 막힘없이 시원하게 나아갔다.


‘일단···.’


검을 휘두른다.

눈앞의 허수아비를 보던 여인은 자신이 너무 깊이 생각에 잠겼다는 것을 인지하고, 천천히 숨을 고르며 약간의 미소를 보였다.


“···제게도 철환을 줄 수 있나요?”


각오 어린 말투를 자아내며 당연하다는 듯이 무현에게 요구했다.


“내일 중으로 갖다 놓도록 하지.”


무현은 여인의 태도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사람 자체가 범상하고, 여기에 자신의 뜻이 확고하기까지.

그가 여인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보는 이유다.

무현이 바라본 여인은, 필요하다면 모든 검술서를 탐닉할 수 있는 소유자였다.

천고에 준하는 재능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바로 배우고자 노력하는 자세였다.


“만약 모든 일이 마무리가 된다면···.”


무현은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곧장 이곳을 떠나라.”

“······!”

“곧 감숙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흑사방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각지의 흑도들이 송곳니를 들이댈 거야. 그 과정에서 수많은 피가 흐르겠지.”

“······.”

“이 과정에서 네 생사는 장담할 수 없다. 네가 죽는지, 말든지 이젠 내 소관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무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저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니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 그냥···.”

“상관없어요.”

“뭐?”

“이곳에서 죽는다면 제 목숨은 여기까지고. 살아남는다면 제 앞날은 달라지겠죠. 당신이 말했죠. 무인으로서 존경을 얻고 싶다면, 말보단 행동으로 보이라고.”


무현은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허.’


여인의 말투에서 치기 어린 자존심은 보이지 않았다.


‘걸물이군.’


태풍에 흔들릴지언정, 쓰러지지 않는 거목을 보는 듯했다.

게다가 저 자세라니.

무현은 솔직하게 감탄했다.


“제 이름은 무애(無涯)입니다.”


무애(無涯).

처음이자, 그녀가 스스로 밝힌 이름.

너무나도 투명해서 듣는 이로 하여금 오싹함을 느끼게 하는 말투.

그리고, 무인으로서 증명하겠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선언하는 배짱까지.

애써 거두었던 웃음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이곳에 남고 싶다면 증명해라. 내 앞이 되었든, 중원 무림이 되었든. 네가 원하고자 한 목표가 있다면.”


무현의 눈이 번뜩였다.


“부패물을 탐내는 구더기가 아닌, 꽃과 하늘을 주유하는 한 마리의 나비가 되겠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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