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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직구

회귀없이 야구만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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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직구
그림/삽화
k-young
작품등록일 :
2020.09.29 14:25
최근연재일 :
2020.11.13 09:59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50,249
추천수 :
895
글자수 :
206,768

작성
20.10.03 22:42
조회
1,708
추천
29
글자
12쪽

재능의 시작(4)

DUMMY

서울 라이거즈 2번 타자는 김성수였다.

선구안이 좋은 서른다섯 살 베테랑이다.


그는 1번 타자 안치옹에 비해 모든 기록에서 밀린다. 그러나 오른손 투수인 내게 왼손타자 김성수는 안치옹보다 더 까다로운 상대다.

그리고, 그는 내가 라이온즈 타자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친하게 지낸 선배였다.


● 라이거즈 좌타자 김성수

-타율 0.275 / 출루율 0.361 / 홈런 8개

-우투수 타율 0.296 / 우투수 홈런 5개

-강점 : 바깥쪽 상위 25% / 변화구 상위 11%

-약점 : 몸 쪽 하위 43% / 패스트볼 하위 32%

-시즌 상대 전적 : 3타수 무안타 1볼넷


김성수 선배는 타율에 비해 출루율이 높다.

30대 중반이 되어 스윙 스피드는 좀 떨어졌지만, 동체 시력이 여전히 좋다.

콘택트 능력이 좋은 김성수는 삼진을 좀처럼 당하지 않는다. 괜히 삼진을 노리다 투구 수만 늘어날 수 있다.


- 팡팡.

박동수가 포수 미트를 힘차게 때렸다.

첫 타자를 쉽게 잡아서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박동수는 손가락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사인을 냈다.


바깥쪽 체인지업을 전지라고 요구했다.

방금 전 안치옹에게 던진 공이 꽤 마음에 들었나 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9회 말 1점 차에서 1번 타자가 초구를 건드렸다.

그런데 2번 타자가 또 초구를 노린다고?

공 2개로 아웃카운트 2개를 갖다바칠 수도 있는데?

그럴 확률은 10%도 되지 않을 것이다.

아니 2번 타자가 김성수 선배라면 5% 이하라고 봐야 한다.


박동수 선배는 또 언짢은 듯한 몸짓을 했다.

그의 기분이 더 상하기 전에 내가 먼저 사인을 내야 했다. 바깥쪽 패스트볼.

그러자 박동수 선배는 마지못해 오케이 사인을 냈다.

난 심호흡을 한 뒤 와인드업으로 이어갔다.


슉-.

경쾌하게 홈 플레이트 바깥쪽 낮은 코스로 공을 찔러 넣었다.

팍!

박동수가 멋지게 잡아냈다. 스트라이크 존 가장자리(edge)를 통과한 공은 시속 145㎞였다.


어라?

주심의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 이게 볼이라고?

박동수는 공을 잡은 미트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건 스트라이크였다는 항의였다.


‘안 돼! 그래봐야 바뀌는 게 없어.’

난 속으로만 외쳤다.


박동수의 마음은 알겠다. 나도 아쉽다.

그러나 포수가 저런다고 판정을 번복하는 심판은 없다.

오히려 괘씸죄에 걸린다.

다음 판정 때 손해를 볼 수 있다.

지금 저 선배, 뭐하는 거야?


- 확실히 스트라이크존이 짜네.

동윤이가 날 거들어줬다. 녀석이 보기에도 분명 스트라이크였던 것 같다.

한국시리즈 같은 큰 경기에서는 심판들도 매우 긴장한다. 그럴수록 스트라이크 존이 좁아지는 경향이 있다.


“후우~.”

나는 심호흡을 했다.

김성수 선배도 타석에서 잠시 물러났다. 그리고는 빈 스윙을 한번 했다.

난 스트라이크 하나를 손해 봤다.


뭐, 별 수 없다. 야구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경기에서는 강속구를 던지는 마무리 투수가 더더욱 필요한 거다.

스트라이크 존 가운데로 공을 우겨넣어도 안타를 맞지 않을 투수 말이다.


난 그런 투수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박동수가 이번에도 바깥쪽 패스트볼 사인을 냈다.

나도 동의했다. 대신 공 한두 개 정도를 더 안쪽으로 붙일 생각이다.

이번에도 김성수 선배는 스윙하지 않을 거니까.


슉-.

팍!

“스트라이크.”

공은 내가 원하는 대로 정확히 들어갔다. 심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코스였다.

이번 공 스피드는 시속 144㎞였다.


볼카운트 1-1은 타격 타이밍이다.

아무리 볼카운트 싸움에 능한 김성수 선배라고 해도 2스트라이크 이후 타격은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박동수 선배는 바깥쪽 체인지업을 요구했다.

또 저러네.

김성수 선배는 분명 변화구를 노릴 텐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몸 쪽 패스트볼 사인이 나왔다.

바로 그거다.


슉-.

내 공이 큰 대각선을 그리며 김성수 선배를 향했다.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를 향하는 것 같은 공이 점점 무릎 쪽으로 가까워졌다.

누가 봐도 스트라이크다.


딱!

김성수의 방망이가 공을 맞혔다.

그가 당겨 친 타구는 별로 강하지 않았다. 급하게 휘두른 스윙에는 힘이 실리지 않았다.

패스트볼이 3개 연속으로 들어올 거라고는 김성수 선배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재빨리 1루로 뛰었다. 베이스 커버를 위해서였다.

서울 파이터스 2루수가 타구를 안정적으로 잡아 1루로 던졌다. 2아웃.


“와~!”

함성이 들렸다.

안치옹을 잡았을 때도 분명 환호성이 났을 것이다. 그때는 듣지 못했다.

이제는 들린다.

3루 관중석에서 나오는 응원도, 그리고 1루 관중석의 침묵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아웃카운트는 단 1개 남았다. 라이거즈 3번 타자는 박용길이었다.


● 라이거즈 우타자 박용길

-타율 0.311 / 출루율 0.351 / 홈런 24개

-우투수 타율 0.316 / 우투수 홈런 17개

-강점 : 몸 쪽 상위 8% / 패스트볼 상위 15%

-약점 : 바깥쪽 하위 73% / 변화구 하위 66%

-시즌 상대 전적 : 3타수 1안타


박용길은 지난겨울 라이거즈와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했다. 난 그와 한 팀에서 생활한 적이 없다.

내가 라이거즈에서 뛸 때는······.

젠장, 박용길에게 홈런을 맞은 적이 있구나.

하필 왜 지금 그게 생각나는지.


- 형, 이제는 그때의 금강이 아니잖아?

놀리는 건지, 격려하는 건지.

“나도 알아.”

나는 낮게 속삭였다.

동윤이 말에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 말은 하고 싶었다.


나도 안다.

예전의 금강이 아니라는 걸.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다.

한국시리즈 최종전을 마무리할 헹가래 투수로.


박동수 선배가 초구로 바깥쪽 커브를 요구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어설픈 변화구는 이런 상황에서 위험하다.

그러나 내가 행잉(hanging) 커브를 던질 리 없다고 포수는 믿었다.

나도 동의했다. 볼로 던질 거니까.


슈육~.

내 손을 떠난 커브는 대각 방향으로 떨어졌다.

눈높이로 공이 날아들자 박용길이 방망이를 꽉 쥐었다.


그러나 공은 바깥쪽으로 멀리, 땅바닥을 향해 푹 꺼졌다.

박용길은 스윙 하지 않았다. 시속 118㎞ 볼.

팽팽한 긴장감을 뚫고 느린공이 날아들자, 관중석의 팬들은 일제히 “후~” 하는 한숨을 토해냈다.


나는 곧바로 2구째를 던질 준비를 했다.

이번에는 바깥쪽 낮은 코스의 패스트볼 사인. 좋다.


슉-.

나는 박용길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다음 공을 던졌다.

초구와 달리 낮게 날아드는 공.

이번에는 떨어지지 않고 쭉 비행했다.


퍽!

“스트라이크!”

시속 147㎞.


“와~!”

내 최고 스피드였다.

사흘 전 김대후를 때린 공을 제외하고는 그랬다.

박용길은 타석에서 벗어났다.

허를 찔린 듯 한숨을 쉬었다.


그가 기습을 당한 건지, 당한 척 하는 건지는 사실 알 수 없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전개는 내게 나쁘지 않았다.


박용길은 바깥쪽 코스에 약하다.

구종으로는 커브와 체인지업에 약점을 보인다.

그러나 그건 착시 효과다.

몸 쪽 패스트볼을 워낙 잘 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일 뿐이다.

그에게 어설픈 공을 던졌다가는 얻어맞는다고 봐야 한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볼카운트 1-1. 이번에는 무슨 공을 던져야 할까.

머릿속으로는 수십 번 상상했던 상황.

정답은 없다. 위험부담이 낮은 선택지 중 하나를 결정하는 수밖에.

나는 투수판에서 발을 빼고 어깨를 풀었다.

이렇게 주위를 환기시키면서 지금이 승부처라는 사실을 박용길에게 알려줄 필요도 있었다.


이 와중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김대후가 대기타석에서 도끼눈을 뜨고 있었다.

라이거즈 공격이 2번 타자부터 시작됐으면 어땠을까?

이번 이닝에서 4번 타자인 김대후와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이렇게 긴장되지는 않을 것이다.


잘하면 그를 피할 수 있다.

재수 없으면 그와 만나야 한다.

지금 같은 상황이 더 혼란스럽다.


만약 지금 박용길에게 출루를 허용한다면?

그리고 김대후를 잡고 한국시리즈를 내가 끝낸다면?

최고의 시나리오다.

그러나 그건 너무 위험하다.


- 형. 김대후까지 가면 안 되는 거 알지?

긴장감을 담은 목소리가 들렸다.

동윤이 녀석도 장난칠 여유는 없나 보다.


안다. 알아.

누구보다 내가 그러고 싶다.

아마 영리한 박용길도 그걸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든 자신과 승부를 보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걸 노려야 한다.


바깥쪽 먼 곳으로 체인지업을 떨어뜨려야 한다. 눈에 보이지만 배트는 닿지 않을 만큼, 적당히 멀리.


박용길이 욕심을 크게 낸다면 헛스윙이 될 것이다. 배트를 휘두르지 않으면 볼이 되겠지.

상관없다. 승부는 4·5구까지 가야 할 테니까. 그래도 볼넷을 내주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까.


나는 힘차게 와인드업을 했다.

온몸에 힘을 꽉 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어쩌면 박용길은 내 폼을 보고 패스트볼이 날아올 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슉~.

내 오른손을 떠난 공이 타자 바깥쪽을 향했다.

박용길을 현혹한 공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클 체인지업이었다.

낙하하면서 동시에, 몸 쪽으로 살짝 휘기도 했다. 좋다. 확실한 볼이다.


딱!

어라? 공이 박용길의 방망이 끝에 맞았다.

그는 중심이 앞으로 무너진 채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받아쳤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20㎝ 이상 빠진 공인데?


“와~!”

함성이 들렸다.

3루 쪽 파이터스 응원석에서 나는 소리였다.

박용길이 밀어 친 땅볼 타구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2루수가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파이터스 팬들은 믿고 있었다.


나는 베이스 커버를 위해 1루로 뛰었다.

너무 빨리 뛰면 별로 폼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이건 두고두고 역사에 남을 우승 장면이다.

좀 멋있고, 여유로워야 하지 않을까?


다행이다. 박용길이 욕심을 내줘서.

덕분에 쉽게 승부를 끝낼 수 있게 됐다.


“와~!”

이번에는 1루 쪽 라이거즈 응원석에서 환호성이 쏟아졌다.

땅볼을 잡은 파이터스 2루수가 송구 동작에서 빠뜨린 것이다.


[아! 이게 웬일입니까? 파이터스가 우승까지 아웃카운트 1개를 남겨놓고 결정적인 실책을 저질렀습니다.]

[믿기 어렵습니다. 천천히 송구했어도 아웃시킬 수 있었는데 뭐가 그리 급했을까요?]

[파이터스 2루수 나재민 선수. 프로 2년생 선수인데 너무 긴장했나 봅니다.]


다 끝날 줄 알았는데, 이게 뭔가?

난 글러브로 얼굴을 감싸고는 짧게 욕 한마디를 했다.


“XX!”

허공에 대고 이렇게라도 해야 했다.

“후우~.”

자, 정신 차리자.

지옥에 떨어진 것 같았다.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

승부는 아직도 내게 유리하다.

한 타자만 잡으면 된다.


나는 2루수 나재민을 봤다.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한국시리즈 최종전 9회 말에 이런 실책이 나온 적은 KBO리그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이 위기를 넘기지 못하면, 나재민에게도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난 나재민을 향해 손을 들어줬다.

괜찮다고, 힘내라고, 이제 집중하라고.

나재민은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큰일이다. 그는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다음 타자는, 김대후다. 2루수 방향으로 강한 타구를 자주 날리는 풀히터(pull hitter)다.

나재민이 또 실수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김대후가 저벅저벅 타석에 들어섰다.


나도 물러설 수는 없다.

그를 똑바로 쳐다봤다.

김대후는 특유의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에게도 부담스러운 승부일 텐데, 얼굴에는 살기가 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킬러-K’다.


최악의 경우, 1루에 있는 박용길은 동점 주자가 된다.

김대후가 아무리 까다로운 타자라도 볼넷으로 내보낼 순 없다.

그러면 그가 역전 주자가 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떡이 되든 내가 여기서 승부를 내야 한다.

타석에 선 김대후가 방망이를 휘휘 돌렸다.

그리고 배트 끝으로 나를 가리켰다.


마치 칼을 겨누는 것 같았다.


나는 방망이가 아닌 그의 눈을 응시했다.


김대후는 씩 웃었다.


나도 슬며시 웃었다. 아니, 웃는 척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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