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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직구

회귀없이 야구만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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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직구
그림/삽화
k-young
작품등록일 :
2020.09.29 14:25
최근연재일 :
2020.11.13 09:59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50,248
추천수 :
895
글자수 :
206,768

작성
20.09.29 20:18
조회
1,957
추천
30
글자
11쪽

노력의 끝(2)

DUMMY

“어이, 유리 몸. 뭐 하냐?”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던 중 쇳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안다. 김대후 선배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어떻게 행동하든 달라질 게 없다.

나와 김대후는 오래된 악연이다.

그와 잘 지내려는 노력은 진작 포기했다.


“살살해라. 유리 몸 또 박살날라.”

김대후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내가 대답하지 않으니 열이 받은 모양이다.

내가 대답했다면 말꼬리를 붙들고 비아냥거렸을 것이다. 차라리 씹는 게 낫다.


“저 정도면 유리 몸이 아니라 가루 몸 아닙니까? 공을 던지기도 전에 팔이 작살나고······.”

“덤벨 들다가 뼈 부러지는 거 아냐? 크큭.”


김대후 옆 똘마니들의 수군거림도 들렸다.

몇 년째 계속되는 일이다. 이제 익숙하다.


난 똘마니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들을 미워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그들도 김대후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대후는 앞으로도 10년 정도 라이거즈에서 뛸 스타다. 훗날 감독이 될 수도 있겠지.

권력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건 당연하다.


나는 운동을 계속했다.

오후 6시쯤 되자 피트니스 센터에 나 혼자 남게 됐다.


이제 곧 경기가 시작된다.

다들 그라운드로 나갔다. 계속 이곳에 있을 사람은 1군 엔트리에 있지 않은 나뿐이다.


구내식당에 가서 저녁이나 먹을까?

배가 고팠지만 영 내키지 않았다.

식당에 가면 구단 직원들이 있을 것이다.

올해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한 날 보는 그들의 시선은 썩 유쾌하지 않다.


운동이나 하자.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 형!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잘못 들었겠지.

이건 분명 동윤이의 목소리다.

지금 병상에 누워 의식을 못 찾고 있는.


- 형!

녀석의 목소리가 또 들렸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역시 나밖에 없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헛것이 들리는 건가?

곧 헛것을 보게 되는 건가?

배가 고파서 그런 걸까?

아니면 신경쇠약 같은 걸까?


- 덤벨 15㎏가 뭐야? 힘의 반밖에 안 쓰는 거 같은데?


틀림없다.

이건 동윤이 목소리다.

그리고 녀석은 날 보고 있다. 내가 드는 덤벨 무게까지 알고 있다.


“너, 어디 있어?”

나는 허공에 대고 물었다.

바로 어제 동윤이가 누워있는 병원에 갔다.

녀석이 언제 깨어난 걸까?

의식을 되찾았다고 해도 이렇게 바로 퇴원해도 되는 걸까?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마운드에 섰을 때보다 심박 소리가 더 컸다.


- 형, 나 여기 있어.

내 오른쪽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속삭이는 것만큼 가깝게 들렸다.


“허······.”

나는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소리가 난 곳에는, 아니 그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 형은 내가 안 보일 거야.

“너, 누구야?”


나는 작게 소리쳤다.

놀라서인지 두려워서인지 큰소리가 나지 않았다.

분명 동윤이 목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물었다.


- 누구긴. 형의 하나뿐인 동생이지.

“하······.”

- 귀신은 아니니까 너무 놀라지 마.


이 말에 나는 더 놀랐다.

귀신도 아닌데 목소리만 있단 말인가?


“그, 그럼 뭐야? 혼령이야?”

- 나는 죽지 않았으니까 혼령은 아니지. 그냥 몸과 정신이 분리된 거 같아.

“그, 그게 무슨 소리야?”

- 사고 이후에도 내 정신은 멀쩡했거든. 근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어. 많이 다쳤잖아.

“그래서?”

- 백 일이 지났어. 그리고 갑자기 이렇게 됐네? 몸에서 내가 빠져 나온 거지.


난 꿈을 꾸는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건 너무 생생하다.

김대후의 말은 깡그리 무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윤이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 평정심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 설마 떨고 있는 거야? 내가 귀신일까 봐? 하여간 형은 유리 몸이 문제가 아니라 유리 멘탈이 문제라니까.


틀림없는 동윤이다.

녀석이 늘 나를 놀리면서, 한편으로는 걱정하면서 한 말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이 황당한 일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말이 안 되지만, 지금 내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을 안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 나도 몰라. 아까 갑자기 내가 누워 있는 모습이 보이더라고. 유체이탈이 된 거지.

“다시 네 몸으로 들어갈 수도 있어?”

- 응. 놀라서 다시 침대에 누워봤어. 그랬더니 내 몸으로 들어가더라고. 죽은 게 아닌 거지. 그래서 다시 나왔어.“여기까지는 어떻게 왔어?”

- 지하철 타고 왔어. 순간 이동은 안 되던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녀석의 썰렁한 농담이 얼마만인가?

반가워서 눈물이 뻔했다.

수술 후 한 번도 누군가와 이렇게 농담한 적이 없었다.


“그러면 뭘 할 수 있는 거야?”

- 나도 모르겠어. 그런데 형을 보니까······.

“응. 날 보니까 뭐?”

- 형의 몸이 보여.

“뭐?”

- 형의 겉모습만 아니라 속이 보여. X-레이 찍은 것처럼.

“뭐래?”


-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지금 형이 드는 덤벨이 근육에 전혀 부담을 안 주는 게 보여.

“허허. 참.”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다.


- 웃지 마. 나도 썩 유쾌한 건 아냐. 여자도 아닌, 남자가 이렇게 속속들이 보이다니.

이 정도면 동윤이가 확실하다.


***


그후로 동윤이는, 아니 동윤이의 목소리는 나를 자주 찾아왔다.

일주일에 한두 번 클럽하우스로 찾아와서 신나게 떠들고 갔다.

친구가 없는 내게는 그게 참 위안이 됐다.

지루한 재활훈련을 하면서도 가끔 웃을 수 있었다.


- 형, 왜 이렇게 몸을 사려? 역기가 아니라 젓가락 드는 거야?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해야 돼. 괜히 무리했다가 탈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된다니까.”

- 그래도 그렇지. 형은 지금 파워를 반도 안 쓰는 거라니까. 내 눈에 다 보여.


동윤이 말이 틀린 것 같지 않다.

사실 웬만한 역기를 들어도 전혀 힘들지 않다. 내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파워다.

내가 정말 동윤이의 피지컬을 갖게 된 건가?


“반은 아니고 70% 정도 힘쓰는 거야.”

- 아닐 걸? 그건 형 생각이지. 내 눈에는 형 근육이랑 인대가 다 보인다니까. 공 던지면 스피드도 꽤 나올 걸?


믿기 힘들 말이지만, 믿고 싶은 말이다.

팔꿈치와 어깨가 작살났는데, 다치기 전보다 스피드가 더 빨라진다고? 꿈같은 일이다.


“일단 단계를 착실히 밟아야 돼. 가을까지 웨이트 무게를 차차 늘리고, 내년 봄에 캐치볼 시작할 거야.”

난 나름대로 계획을 갖고 있었다.

올해는 재활 훈련에 집중하고, 내년 여름에 피칭을 보여줄 것이다. 그때 가능성을 인정받으면 내후년 다시 1군에 도전할 수 있겠지.


동윤이의 말이 아주 틀린 것 같지는 않다.

지금 내 몸이 너무 가벼운 건 사실이다.

웨이트할 때 무게감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사실 이 정도면 공을 던져도 될 것도 같다.

조심, 또 조심할 뿐이다.


“금강!”

라이거즈 운영팀 막내 직원이 나를 불렀다.

“네. 안녕하세요.”

“팀장님이 좀 보자고 하네. 빨리 가봐.”

“팀장님이요? 네. 지금 가겠습니다.”

내가 운영팀장과 만날 일이 뭐가 있을까?

아직 9월밖에 되지 않았으니 연봉 계약은 아닐 거고.

올해 한 경기도 뛰지 못했으니 내년 연봉은 주는 대로 받아야겠지.


샤워를 하고 구단 사무실로 갔다. 운영팀장 자리로 가서 쭈뼛쭈뼛 섰다.

“어 왔어? 회의실로 가자.”

운영팀장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 이런 적이 없는데······, 불길했다.

큰 탁자를 사이에 두고 운영팀장과 마주 앉았다. 둘 사이에는 아무런 서류가 없다.


“요새 운동 열심히 한다며?”

“네. 몸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내 대답을 듣고, 운영팀장은 오히려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을 길게 끌 것도 없지. 우린 내년에 너랑 계약하지 않을 거야.”


운영팀장은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선수에게 사형선고를 하면서도 그는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야구 잘하는 선수에게는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하면서, 날 앞에 두고는 간을 빼먹을 것처럼 저런다.


“네?”

“무슨 말인지 몰라? 올 겨울에 방출할 거니까 다른 팀 찾아보라고.”

“······.”

“그나마 너 배려해서 일찍 풀어주는 거야. 나중에 단장님께 고맙다고 인사나 드려.”

운영팀장은 이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 버렸다.


잘린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그 동안 수없이 얻어맞고 패배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미래가 있어서였다.


더 노력하면, 더 기다리면 내년에는 올해보다 나을 거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그런데 내년이 없어지다니.

난 이제 겨우 스물여섯 살인데.

한때는 1군 불펜 유망주였는데.

잘리고 나서 감사 인사를 해야 한다고?


***


그날 난 라커룸에서 짐을 뺐다.

구단이 나가라는데 버틸 재간은 없다.

선수는 1년 마다 계약을 경신하는 신분일 뿐이다. 야구만 잘하면 슈퍼 갑처럼 행세할 수 있지만, 못하면 먼지처럼 사라진다.


난 지금 먼지다.


라이거즈 유니폼을 반납했더니, 가방에는 운동복과 청바지, 티셔츠밖에 없었다.

잠실야구장에서 원룸 오피스텔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다.

수천 번 오간 그 길이 오늘은 길고 멀었다.

오늘따라 나는 내가 무척 초라하게 여겨졌다.

그래도 다행이다. 날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서.


이건 참 웃픈 일이다.

잠실야구장 근처에 사는 건장한 20대 남자, 대낮에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오는 나를 아무도 몰라본다.


얼마나 야구를 못했으면 이럴까?

1층 경비 아저씨도, 옆집 사는 사람들도 프로야구 선수 금강을 모른다.

그게 오늘은 조금 고마웠다.


집에 오자마자 매트리스에 드러누웠다.

아까는 분명 배고팠는데, 지금은 속이 쓰리다.


하얀 천장에는 운영팀장 얼굴이 떠올랐다.

내게 해고를 통보하면서, 미안해하기는커녕 귀찮아했다.

오늘 웨이트 트레이닝장에서 마주친 김대후 얼굴도 떠올랐다.

1군 선수도 아니면서 왜 자꾸 여기에 들락거리느냐는 표정이었다.


라이거즈에서 잘렸으니, 이제 그 새끼들을 보지 않아도 된다.

프로야구 선수는 팀을 선택할 수 없다. FA라고 불리는 프리에이전트가 되기 전에는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다.


난 이제 프로야구 선수가 아니다.

즉 직업 선택의 자유가 생긴 것이다.

오른팔이 작살난 뒤에 자유가 얻다니.


웃자니 황당했고, 울자니 서글펐다.


그런데, 이제 난 뭘 하지?

내일 당장 뭘 해야 하지? 내년에는?

혹시 나를 데려갈 다른 구단이 있을까?

동윤아, 넌 어떻게 생각해?


속으로 아무리 불러도 동윤이는 오지 않았다.

난 누운 채로 천장만 멀뚱멀뚱 쳐다봤다.

동윤이가 찾아오지 않으니,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의식이 멈추자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렇게 큰 수술을 할 때도 울지 않았다.

몇 번을 2군으로 쫓겨나도 울지 않았다.

그런데 미래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서글프고 두려울 수 없었다.

그날 밤, 난 그렇게 울다 지쳐 잠들었다.

1년 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말이다.


이듬해 가을, 나는 한국시리즈 마운드에 섰다.

서울 파이터스와 서울 라이거즈가 처음으로 잠실야구장에서 벌이는 한국시리즈 말이다.


작가의말

이제 드디어 던지는 건가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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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노력의 끝(1) +6 20.09.29 2,327 30 12쪽
1 프롤로그 +2 20.09.29 2,432 29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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