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하준성 님의 서재입니다.

내일의 아침은 이세계에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하얀벤츠
작품등록일 :
2018.12.18 23:38
최근연재일 :
2019.04.09 07:10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2,179
추천수 :
46
글자수 :
227,961

작성
19.02.23 07:10
조회
35
추천
0
글자
22쪽

030화. 어긋남(3)

DUMMY

 

 

 

 

 

 

 

 

 

 

  【030화】어긋남(3)

 

 

 

나와 마티나가 외출하기보다 조금 일찍 시장으로 심부름을 나갔던 루히와 시온.

시온의 말을 빌려 그 이후를 짧게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갑자기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습격을 받은 루히와 시온. 루히는 스펠을 이용해 시온이 도망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고, 결과적으로 집으로 돌아온 것은 시온혼자였다는 것이다.


“······, 그리고 이 쪽지가 문틈에 끼워져 있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다네······.”


쪽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

네놈의 동료를 데리고 있다. 인질을 살리고 싶거든 ‘하준성’이라는 자를 데리고 아래에 표시된 곳으로 해가 떨어지기 전 까지 와라. 조금이라도 수상한 행동을 보이거나, 경비대에 이 사실을 알린다면 두 번 다시 동료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


「어디서든 네 놈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인지하도록·········.」


그리고 케르시안 성벽 밖 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서쪽 바위산 근처에 ‘X’모양의 표시가 되어있었다.


내 이름을 알고 있는 녀석이라고─?

「아니······, 이거 애초에 놈들의 목적이 나라는 이야기가 되는 거잖아.」


“내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 안 될 텐데, 대체 어디서 굴러먹던 녀석이지.”

“이전에 준성이 자네가 마검의 소유자로 신문에 실린 적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자네의 이름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네······.”


「맙소사·········.」


지금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왜 자꾸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건데···?」


동 시각, 내 옆에 있던 마티나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해있었다.

【설마·········, 아니었던 거야······?】

무언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마티나.

“아니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마티나?”

마티나는 시선을 떨어뜨린 채 머릿속으로 무언가 생각을 정리하는 듯 했다.

이내 마티나가 조심스러운 말투로.

“미행이 있었어············.”


「미행······?」


“······, 처음 낌새를 느낀 건 황제폐하를 알현하러 왕궁에 가는 길이었어······.”

“그런데 왜 말을 안했어······?”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인가.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일부러 말 안한 게 아냐······. 나는 틀림없이 내가 아네즈에서 따돌렸던 우리집안 사람들 인줄 알았어······. 본래 나는 아버지에게 감시를 당하고 있는 입장이었단 말이야······.”

마티나의 목소리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그게 루히가 납치당한 거랑 관계가 있다는 거야?”

“그렇다고 생각해···. 미행이 사라진 것은······, 오늘 낮에 하준성 너랑 둘이서 외출을 할 때부터였어······. 우연치고는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지 않아?”


「인질을 확보했으니 더 이상 미행은 필요 없다. 뭐 이런 뜻인가······.」


올리버 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티나 씨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이 사태는 여러분들을 미행하던 자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군요.”

“목적이 나라면 오늘 거리를 활보할 때 습격이라도 했으면 됐잖아─!!”

젠장 빌어먹을······.


「왜 대체 왜! 아리엘을──!!」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하준성······, 일단은 침착하자.”

마티나가 진정하라는 듯한 의미로 내 손목을 강하게 한 차례 붙잡았다 떼었다.


「젠장─!! 이 세계를 너무 얕보고 있었어.」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 그 누가 예상했겠는가.

“미안하네, 준성······, 이 상황은 내 잘못이 크다네······. 딸아이와 루히에게 심부름을 시킨 것은 다름 아닌 나일세······.”

“아니요. 그런 이유로 로렌스 씨 탓을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죠.”.


「루히·········, 젠장······.」


올리버 씨가 손바닥을 맞부딪혀 짝 하고 소리를 냈다.

“지금은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일단 제 생각을 말씀 드릴 테니 방법을 강구하도록 하죠.”

모두의 시선이 올리버 씨에게로 모였다.

그래, 돌아가면서 신세한탄을 해봤자 아무런 이점도 없다.

“먼저, ‘우리가 데리고 있다.’ 즉, 단독범은 아닌 것 같습니다. 2인조 일수도 있고 어쩌면 조직 단위일수도 있습니다. 지도에 ‘X’로 표시된 곳은 케르시안의 서쪽 ‘로나스 평야’를 지나 이어지는 산맥 근처로군요.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라고 되어있으니 서두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쪽지에 표시된 장소를 지목하며.

“로렌스 씨, 이곳 위치를 아시겠나요?”

“물론일세···. 과거에 사냥을 나다녔던 곳과 그리 멀지 않네.”

“그렇다면···, 저와 로렌스 씨 둘이서 다녀오겠습니다.”

““··················.””

민아와 마티나의 표정에서 동요가 느껴졌다.


“준성 씨 그것은 무모한 생각입니다. 적 머릿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없는 상황이에요. 가능한 많은 전력을 확보하고 가야합니다.”

올리버 씨의 의견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잠시 주저하는 사이 마티나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희가 빠진 틈을 타서 다른 것을 노리는 걸 수도 있어요.”

“그 말도 일리가 있군요. 함정일 가능성도 생각해야겠습니다. 대놓고 집 대문에 편지를 끼워놓고 도망쳤다는 것은 저희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 되겠죠.”


아주 잠시 동안의 침묵이 지나간 후, 마티나가 무언가 결심했다는 듯한 목소리로.

“그러면 제가 따라가도록 할게요. 올리버 씨는 여기 남아서 민아랑 시온, 그리고 소니아 씨를 지켜주세요. 저에게도 이 상황을 만든 원인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듬직한 남성이 한 분이라도 집을 지키고 계셔야죠.”

그리고 마티나가 주먹으로 내 어깨를 툭하고 가볍게 밀쳤다.

【파트너니까······.】


「마티나······.」


마티나의 발언에 올리버 씨가 상당히 고뇌하는 듯 했으나, 이윽고 답을 내놓았다.

“·········.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남아있도록 하죠. 두 분의 호흡이 전력으로써는 더욱 강력하니까요.”

“그럼 옷 좀 갈아입고 올게요. 이런 원피스는 전투에 방해니까.”

“나는 장비를 착용하고 오겠네. 문 밖에 마차를 좀 부탁하네 올리버.”

“알겠습니다 로렌스. 서두르도록 하죠.”


그 사이 나는 마당에 주저앉아 훌쩍이는 시온에게 다가갔다.

“내가 루히를 무사히 데리고 올게. 걱정 말고 있어.”

시온을 품에 안고 있는 소니아씨로부터.

“············. 절대 다치지 마시고······. 부디···, 큰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옆에서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민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시온을 잘 부탁해 민아야.”

“준성아············.”


「아참···, 내 정신 좀 봐라······.」


나는 황급히 입구 쪽에 떨어뜨렸던 종이봉투를 집어왔다.

그리고 그 봉투를 민아에게 건네주었다.

“이거 루히한테 주려고 산 선물인데 상황이 이렇네···, 무사히 돌아오면 루히에게 전해줄래?”

“야 하준성 너 뭐야······, 마치 너 혼자 희생하겠다는 듯한, 그런 식의 말은 다시는 하지 마! 같이 돌아와서 네 손으로 직접 전해주면 되잖아.”

“아······,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는데······, 미안해···.”

눈물을 글썽거릴 뿐, 별다른 대답이 없는 민아.

어쩔 수 없이 등을 돌리고, 발걸음을 움직이려는 순간.

무언가가 내 셔츠 끝자락을 붙잡았다.


「·········?」


세상 슬픈 표정의 은빛머리 소녀. 시온이었다.

“루···히······언니가·········루히···언니가······.

나는 울먹이는 시온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흩트렸다.

“시온이 잘못한건 없으니까, 울지 않아도 돼. 엄마랑, 여기 민아 언니랑. 집 잘 지키고 있어야한다?”

시온은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리고 익숙한 은색플레이트를 착용한 로렌스 씨가 마당으로 걸어 나왔다.

“그럼, 출발하세.”

“마차도 준비 다 됐습니다.”

문 밖에서 들려오는 올리버 씨의 목소리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민아를 향해,

“그럼 다녀올게.”라고 말했다.


로렌스 씨가 문 앞에 대기 중인 마차의 고삐를 잡고 나와 마티나는 뒷좌석에 올라탔다.

“루히는 반드시 데리고 올 테니 모두들 걱정 말게.”

그렇게 우리는 소니아 씨를 비롯하여 남아있는 모두를 뒤로하고 편지에 표시된 지역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로렌스 씨, 이것들은 범죄자가 아닙니까? 어떻게 이런 자들이 황도의 검문을 통과해서 영지 안에 있을 수 있죠?”

“명확하게 검거되어 신상정보가 공개되어있는 것이 아니라면 황도 입구의 검문정도는 통과할 수 있었을 걸세.”

“로렌스 씨의 말이 맞아. 전과가 없으면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을 거야······.”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다.

도심 한복판에서 납치극이 형성될 정도로 치안이 형편없다는 것이 아닌가.


「경비대를 이끌고 가면 녀석들이 정말로 루히에게 위협을 가할지도 모르지만, 어디서든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겁을 주기 위한 허세겠지···.」


케르시안의 서문을 통해 성벽 밖으로 빠져나와 서쪽으로 한참을 이동했다. 영지 근처에서 완전히 벗어나 주변은 온통 수풀과 나무가 우거진 숲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 로렌스 씨가 숲의 한복판에서 마차를 정차시켰다.

그리고는 반대편이 바위산으로 가로막힌 왼편의 숲을 가리키며,

“여기서 부터 저쪽너머로 들어가야 하네. 이 근처에 마차를 숨겨두고 걸어서 이동하세.”라고 말했다.

우리는 마차를 나무와 풀숲에 최대한 가려지도록 숨겨두고 걸음을 택했다.


나뭇잎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해는 어느새 산머리에 걸려있었다.

마티나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지체 했다가는 시간을 맞추지 못하겠어요······.”

“내 예상대로라면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을 걸세. 이걸 봐 주겠나?”

다름 아닌 쪽지에 그려진 지도였다.

“여기 이쪽에 그려진 산맥들이, 바로 이 바위산을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다네.”

그리고 로렌스 씨가 산 모양 기호의 뒤편을 검지로 짚었다.

“지금 우리는 케르시안의 서쪽 ‘로나스 평야’를 지나서 이 바위산의 뒤편에 와있는 거야. 이제부터 놈들이 바위산 앞쪽에 ‘X’로 표시한 구역의 뒤를 노리고 들어가는 걸세.”

그리고 로렌스 씨가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앞장 설 테니 조심히 따라오게.】

나와 마티나는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숨죽여 로렌스 씨의 뒤를 따랐다.


우리는 산등성이를 따라 나무와 풀이 우거진 숲을 가로질러 바위산의 반대편을 향해 걸었다.

고요하고 햇빛이 얼마 들어오지 않는 이곳에는 우리의 불규칙한 숨소리와 바스락 거리는 발소리, 그리고 이따금씩 먼 거리에서 들려오는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전부였다.

거친 지형을 계속해서 이동한 탓에, 조금 힘들다라고 느껴질 만 한때쯤.

【거의 다 빠져나온 것 같네. 좀 더 속도를 줄이도록 하지···.】

묘한 긴장감에 쿵쾅거리는 내 가슴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평정심을 유지하자···.」


마차에서 내린 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앞서가던 로렌스 씨가 잠시 기다리라는 듯 왼손을 들어 올리고는 제 자리에 멈춰 섰다.

““······.””

그리고 손끝을 까딱이며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라는 신호를 주었다.

나와 마티나는 로렌스 씨의 양 옆으로 나란히 다가섰다.

그러자 풀숲과 나무사이로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놈들인가······!!」


바위산을 등지고 높은 언덕으로 둘러싸인 형태의 커다란 공간. 사람의 손길이 닿은 듯 정교하게 그 영역을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 그리고 나무와 풀을 깎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놈들의 영역 안쪽으로 이어지는 길.

바위 언덕으로 둘러싸인 공간의 입구 쪽에는 튼튼해 보이는 철문과 감시탑이 설치되어 있었다.

철문의 좌우에는 붉은색 배경에 검정색 해골마크가 새겨진 커다란 깃발이 세워져 있었고, 그곳을 지키는 보초가 둘 보였다.


마티나가 결의에 찬 눈빛으로.

【정확히 찾아온 것 같군요.】

【······, 아무래도 조직단위의 그룹인 것 같구만.】

울타리와 높은 바위언덕에 가려 철문 안쪽이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로렌스 씨.】

【지금 보이는 건 둘이지만, 저 철문 안쪽으로 얼마나 많은 적들이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군······.】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저곳으로 들이박는다고 해서 과연 아리엘을 무사히 구해낼 수 있긴 한 것인가. 애초에 아리엘이 이곳에 확실히 있기는 한 것인가?

이렇게 친절히 지도까지 그려서 우리를 본인들이 원하는 장소로 불러내는 것이라면···.


「저 녀석들······, 우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접근하든 자신이 있다는 뜻이 아닐까.」


로렌스 씨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큰일이구만···, 저 높은 언덕을 몰래 넘어서는 건 불가능 할 테고, 그렇다고 정면으로 돌파하는 건······.】

【상대의 전력을 파악하지 못한데다가, 아리엘이 더욱 더 위험해 질 수도 있어요.】

【그렇겠지·········.】

우리는 시간에 쫓기면 쫓길수록 정신이 무너져가고 있었다.

나는 마티나에게 어떡하면 좋겠냐는 의미의 눈빛을 보내봤지만, 그녀 역시 명쾌한 결정을 내리기에는 어렵다는 듯, 걱정스러운 눈빛의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릴 뿐이었다.


그 순간.

《············.》


““─────?!””


「발소리──?!」


나는 발소리가 들린 뒤편을 향해 재빨리 검집에서 아스카론을 꺼내들었다.


《채앵─》


날붙이가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의 무방비한 등을 노린 검날을 저지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지금 눈앞의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주변은 어느새 뒤쪽에서 몰래 접근한 남자들에게 포위되어 있었고, 그 숫자는 자그마치 아홉이었다. 검정색 복장에 복면, 그리고 손에는 각자 무기를 들고 있었다.

무방비한 줄만 알았던 철문쪽 보초는 어느새 감시탑에 올라 언제든 스펠로 공격할 수 있도록 우리가 있는 곳을 조준하고 있었다.


「······, 포위···됐어······?」


로렌스 씨는 등 뒤의 대검을 뽑아들었고, 마티나 또한 스펠을 영창할 자세를 취했다.

나와 검을 맞댄 녀석이 일단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우리가 앞서 살펴보던 철문 쪽에서 누군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곧바로 로렌스 씨와 마티나가 뒤로돌아 나와 등을 대고 발소리가 나는 방향을 경계했다.


‘타박, 타박’하는 발소리가 세 네 차례 들리고 난 뒤에.

“케헤─? 네 녀석들, 인질의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로구나?”

남자치고는 높은 톤에 비아냥거리는 듯한 목소리.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곁눈질했다.


「이곳의 리더인가······?」


남자의 팔뚝에는 철문 옆에 세워진 깃발의 문양과 같은 것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고, 다른 놈들과는 다르게 붉은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크헷, 이 자비로운 ‘쟈프’님께서 딱 한번만 기회를 주지. 후회하기 전에 무기들 버려.”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루히는 어디에 있지?!”

“하아─? 건방진 녀석이···. 질문은 우리가 네놈들에게만 하는 거야. 내가 언제 네 녀석에게 말 할 기회를 줬지?”

녀석의 목소리에서 살기가 전해져왔다.

“···············.”


인질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으로 보아 일단 아리엘이 살아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하지만 이 불리한 상황을 타개할 만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로렌스 씨에게 다음과 같이 속삭였다.

【일단 아리엘은 무사한 것 같습니다. 지금은 놈들이 시키는 대로 하죠.】

나와 로렌스 씨는 무기를 바닥에 천천히 내려놓았다.

“케하하하, 조금은 상황이 이해가 됐나본데. 놈들의 손을 묶어라.”

““··················.””


「젠장, 이대로 가만히 있어야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야박했다. 놈들은 잠시 고민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놈들은 손에든 검을 우리의 목에 겨누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는 양 손을 등 뒤로 하도록 하여 수갑과 비슷한 형태의 금속 팔찌를 우리들의 손에 채웠다.

내심 이 정도는 언제든지 스펠을 이용해서 끊고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몸 안에 있는 마력이 손으로 방출되지 않고 몸 안에서 겉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서···설마······이거······.」


링크의 생성을 위해서는 손바닥으로 체내의 마력을 흘려야하는데 마치 손목에 채워진 팔찌를 경계로 마력이 밖으로 흘러나가지 못하게 통제당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하읏·········.】

뒤쪽에는 두 눈을 질끈 감은 마티나의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뻔한 루트로 숨어들어 오다니, 케하하. 우리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나?”


「당했다······. 전부 간파당하고 있었어.」


이곳을 근거지로 삼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이 근처의 지형지물이나 지리는 전부 파악하고 있었겠지.


「이 정도도 고려하지 못하다니···. 하준성······, 왜 이렇게 물러터진 거냐······.」


우리는 아리엘이 붙잡혀 있다는 이유로 일호의 반항도 하지 못한 채 놈들에게 붙잡혔다.

결국 목 근처에 칼끝이 다가와 있는 상태로 스스로를 ‘쟈프’라고 칭한 녀석을 따라 철문안쪽으로 끌려갔다.

안쪽에는 물건을 나르거나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에 열중인 일원들이 눈에 띄었다. 하나같이 자발적으로 일하는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한쪽 구석에는 바닥에 쓰러진 노역자를 걷어차는 모습도 보였다.


「······, 대체 뭐하는 녀석들이지?」


진행방향의 앞에는 커다란 동굴의 입구가 있었다.

철문 안쪽 공간이 예상했던 것 보다는 작다고 생각했는데 놈들의 본거지는 바로 이 동굴의 안이었던 것이다.

바위산을 인위적으로 깎아서 내부를 확장한 듯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동굴 안에 이런 공간을 만들다니······.」


두 번 정도의 갈림길을 지나 마침내 널찍한 공간에 도착했다.

눈앞에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루히──!!””

우리와 같은 형태의 팔찌가 채워진 채로 사각형 테이블 앞에 앉아있는 아리엘의 모습이었다.


「아리엘······! 무사했구나···.」


그리고 아리엘의 옆에는 한쪽 팔을 턱에 괸 채로 무언가를 먹고 있는 남자가 앉아있었다.

“카슬란님, 놈들 데리고 왔습니다. 케헷.”


「카슬란······?」


묘한 웃음소리를 가진 쟈프라는 놈은 이곳의 실세가 아니었던 것이다.

쟈프의 목소리에 아리엘의 얼굴이 잠시 우리 쪽을 향했다.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린 아리엘의 표정이 급격하게 울상으로 변해버렸다.

마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리엘은 눈을 질끈 감으며 울지 않으려 노력했다.


“먹으라니까 먹지를 않는군.”

“카···카슬란님. 이 녀석들 어떻게 할까요.”

놈이 이끄는 대로 우리는 아리엘과 정체불명의 남자가 앉아있는 테이블의 앞까지 끌려왔다.

“여기 앉혀놓고, 가서 그 녀석 불러와.”

“알겠습니다, 케헤.”

쟈프는 우리를 바닥에 일렬로 꿇어 앉혔다.

“눈을 깔아라. 이 분은 조직 ‘베르단’의 정점에 계신 척안의 사신, ‘카슬란’님이시다.”


「척안의 사신······?」

이놈이 이곳의 우두머리인가······?


“그럼 금방 데리고 오겠습니다. 카슬란님.”

쟈프라는 놈이 ‘카슬란’이라고 칭한 이 남자는 상당히 다부진 체격의 거한으로, 길게 늘어진 앞머리에 한쪽 눈이 가려진 것이 특징이었다. 매서운 붉은색 눈동자와 흉측한 팔뚝의 상처가 이 남자의 위험도를 대신해서 말해주는 듯했다.

눈앞에 손만 길게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에 아리엘이 있었지만 두 손이 자유롭지 못한 내가 지금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리엘이 앉아있는 자리 앞에는 죽과 같은 음식이 놓여 있었고, 남자의 앞에는 과일처럼 보이는 것들이 놓여 있었다.


【준성오빠······. 흐윽···흑···.】

아리엘은 참지 못한 눈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리고 말았다.

“루히 이제 괜찮아······, 어디 다친 곳은···?”

고개를 좌우로 젓는 아리엘.

과연 이것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일까.


그리고 ‘카슬란’이라는 남자가 마침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누가 죽었나? 아직 다 살아있지 않은가.”

““·········.””

제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주눅들만 한 목소리였다.

“네 놈이 하준성인가. 내가 왜 너를 이곳으로 데려왔는지 알고 있나?”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놈이었다.

“짐작 가는 곳이 없군. 루히를 납치한 이유가 대체 뭐지?”

“내 밑에 놈 중에 너를 어떻게든 만나고 싶어 하는 녀석이 있거든. 다시 만나보면, 아주 재미있을 거다.”

“·········?”

나는 녀석의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시 만나보라고······?」


그리고 카슬란은 눈짓을 통해 나에게 뒤를 돌아보라는 듯한 암시를 전달했다.

나는 카슬란의 의도대로 천천히 뒤쪽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앞서 우리를 이곳으로 끌고 왔던 쟈프가 누군가와 함께 이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를 따라 뒤를 돌아본 로렌스 씨와 마티나.

붉은색 복장의 쟈프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옆에 있는 누군가의 얼굴이 또렷해졌다.


““··················!!!””


한쪽 입 꼬리만을 올린 기분 나쁜 표정.

당연하게도 우리 중에 그것을 알아본 것은 나와 마티나였다.


「저······, 저 녀석은 설마······.」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내일의 아침은 이세계에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5 034화. 분노 19.04.09 20 0 14쪽
34 033화. 실체 19.04.02 25 0 15쪽
33 032화. 악연, 그리고 인연(2) 19.03.05 33 0 15쪽
32 031화. 악연, 그리고 인연(1) 19.02.26 26 0 15쪽
» 030화. 어긋남(3) 19.02.23 36 0 22쪽
30 029화. 어긋남(2) 19.02.19 35 0 21쪽
29 028화. 어긋남(1) 19.02.16 30 0 12쪽
28 027화. 만찬 19.02.12 32 1 16쪽
27 026화. 황제 19.02.09 45 0 15쪽
26 025화. 서광의 나라(2) 19.02.05 50 1 13쪽
25 024화. 서광의 나라(1) 19.02.02 43 1 15쪽
24 023화. 여동생과 비밀친구 사이(2) 19.01.29 52 1 9쪽
23 022화. 여동생과 비밀친구 사이(1) 19.01.26 50 1 15쪽
22 021화. 회상(2) 19.01.22 42 1 9쪽
21 020화. 회상(1) 19.01.19 41 1 12쪽
20 019화. 미녀와 마수(4) 19.01.17 41 1 12쪽
19 018화. 미녀와 마수(3) 19.01.15 37 1 16쪽
18 017화. 미녀와 마수(2) 19.01.12 53 1 9쪽
17 016화. 미녀와 마수(1) 19.01.10 49 2 14쪽
16 015화. 귀족(2) 19.01.08 40 2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