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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성 님의 서재입니다.

내일의 아침은 이세계에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하얀벤츠
작품등록일 :
2018.12.18 23:38
최근연재일 :
2019.04.09 07:10
연재수 :
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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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19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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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029화. 어긋남(2)

DUMMY

 

 

 

 

 

 

 

 

 

 

  【029화】어긋남(2)

 

 

 

나와 마티나는 지금 에스프릿 참가신청을 마치고 로렌스 씨의 집을 향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중이다.

나는 에스프릿 관계자인 알렌 씨로부터 받아온 책자를 펼쳐보았다.

“어디보자, 개막식은 5일 뒤 낮12시. 개막식이 끝나면 신문으로 개시된 각 종목의 대진표에 따라 당일부터 경기진행.”

“그런 거 말고······, 무차별 듀오에 관한 규칙 같은 거부터 찾아봐.”

“······? 마티나 너도 받았잖아.”

“그런 곳에 신경 쓰면 머리가 또 아파질 것 같단 말이야. 잔소리 말고 빨리 찾아서 읽어줘.”


「나 참······, 아프다니까 참는다 내가······.」


“알겠어, 기다려봐.”

목차에서 무차별 듀오에 관련된 쪽수를 찾아 페이지를 넘겼다.

“무차별 듀오···. 두 명이 페어를 이루어 하나의 팀으로 참가한다. 참가자의 성별, 체급, 신분을 구분하지 않으며, 참가자들은 스펠과 무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승패조건에 관한 내용이 자세하게 명시되어 있었다.


========================

8강까지는 10분 1라운드로 진행.

4강부터 결승까지는 8분씩 3라운드 경기로 진행.


I. 참가선수의 등에는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브로치가 부착되며, 상대 선수의 브로치를 모두 파괴하는 경우 즉시 승리 팀으로 인정.


II. 브로치가 파괴되지 않았더라도 페어의 구성원 중 한명이 전투속행 불가능한 상태가 되거나, 직접 항복을 선언하는 경우에는 패배 팀으로 인정.


III. 제한시간 내에 승패가 결정되지 않는 경우 심판의 판정으로 승리 팀을 결정.


IV. 스펠이나 체술 등으로 상대선수에게 유효 타격을 가할 때마다 포인트가 쌓이게 되고, 판정으로 넘어가게 되는 경우 경기 진행 중에 쌓인 포인트가 승패와 연관 됨.

========================


그나마 다행인 점은 상대방을 때려눕히는 방법 외에 다른 승리요건이 있다는 부분일까.

“있잖아 마티나······, 이거 근데 목숨이 위태로울 수준의 경기는 아니겠지···?”

“뭐······, 아직까지 사망자가 나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어.”


「사망자라니···? 너무 묵직한 단어 아니야?」

어쩌다가 이 상황이 되었는지······, 이제 와서 무를 수는 없겠지······.


「응······?」

아까도 그렇고 대화 도중에 자꾸만 뒤쪽 눈치를 살피는 마티나.

“우리 뒤에 뭐라도 있어? 아까부터 신경 쓰는 것 같던데.”

“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기분 탓 인가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

마티나는 한번 아닌 건 끝까지 아니라고 하는 성격인지라 궁금해도 되묻는 것은 그만뒀다.

나는 괜한 곳에 신경 쓰지 말고 받아온 책자를 이어서 살펴보기로 했다.

규칙 아래에는 상금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무차별 듀오 상금 3위. 케르시안 백금화 3닢······.」


“아니 잠깐만? 백금화 3닢이면······, 금화가 60닢이잖아─?!!”

백금화 1닢은 이전 세계의 화폐로 천만 원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준우승은 백금화 5닢이고, 우승상금은·········.」


“10닢──?! 야 마티나!!!”


「에······?」


“마티···나······?”

나의 옆에서 같은 길을 되돌아가고 있어야 할 미소녀가 자리에 없어진 것이다.

당황스러워 주변을 둘러보자, 한 열 걸음 정도 뒤떨어진 곳에 건물 유리벽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마티나가 서 있었다.

“야 마티나─, 너 거기서 뭐해─?”

뭘 그렇게 유심히 보고 있는 것인지 마티나는 내 목소리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쟤 뭐하고 있는 거야······?」


나는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려 마티나 쪽으로 가다갔다.


「아·········.」


나는 깨달았다.

이것은 여성이 무언가 사고 싶은 것이 자신의 눈에 들어왔을 때 나타나는 표정이다.

마티나는 옷가게의 유리벽 너머에 진열된 원피스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깨는 전체적으로 노출시키고 반투명한 양쪽 끈으로 앞뒤를 연결하는 ‘베어톱’형식의 원피스였다. 흰색 바탕에 장미와 비슷한 붉은색 꽃무늬가 장식되어 있었고 허리라인이 자연스럽게 강조되며 무늬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마티나는 검지 끝을 자신의 입술에 살포시 가져다 댄 채,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고 있는 옷을 한번 바라보고, 애절한 소녀의 표정으로 진열된 옷을 한번 바라보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있었다.

“예쁜 원피스잖아.”

내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마티나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아···, 어으···응···.”

“들어가서 입어보지 그래?”

“아, 아니야. 됐어 이런 옷은 금방 더러워지고 오래 입지도 못하고 활동하기도 불편하─앗?!”

나는 솔직하지 못한 마티나의 손을 붙잡았다.

“됐고, 들어가서 한번 입어나 봐.”

“···············.”

의외로 순순히 딸려오는 마티나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밝은 미소의 여성 종업원이 반가운 목소리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앞에 진열된 원피스 좀 입어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안목이 뛰어나시네요! 저희 가게의 자랑이랍니다. 옆에 계신 여자친구 분께서 입으시는 건가요~?”

““그런 사이 아닌데요──!!!””

마치 대본이 있었던 것처럼 나와 마티나의 입에서 이구동성이 터져 나왔다.


난감해 하는 종업원.

“아······ 죄송해요. 손을 잡고 계시 길래···.”

나는 종업원의 말을 듣자마자 ‘앗 차’하고 마티나를 붙잡고 있던 손을 떨어뜨렸다.

당황해 하는 나를 ‘찌릿’하고 노려보는 마티나.


“아무튼······, 얘가 입을 거예요.

“네 손님 잠시만 실례할게요. 어디보자······, 이정도면······.”

종업원은 마티나에게 적당한 거리로 가까이 와서는 양손을 이용해 감각적으로 사이즈를 재는 듯 했다.

“진열된 것은 기장이 조금 크실 것 같구.”

그리고는 마티나가 눈여겨보던 것과 같은 디자인의 원피스 한 벌을 꺼내들었다.

“이걸로 한번 입어보시겠어요?”

종업원이 커튼으로 가려진 드레스룸을 가리키며 말했다.


【훔쳐보면······.】

마티나는 두 눈을 부릅뜨며 나를 향해 손날로 목을 베는 듯한 몸짓을 취하고는 종업원에게 옷을 받아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


「사람 목숨은 하나인데 훔쳐볼 리가 있겠냐·········.」

아참···. 나는 두 개였지···.


그 사이 나는 가게 안을 잠시 둘러보았다.

남성용으로 보이는 옷은 보이지 않았고 여성의류만을 판매하는 가게인 것 같았다.

활동복이나 블라우스 같은 종류도 있었지만,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을 가진 원피스 류가 가장 많이 보였다.

그 외에는 모자나 스카프 같은 것들도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진열된 모자 하나와 원피스 한 벌을 집어 색상을 맞춰 보았다.

「이거 아리엘한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둥그런 베레모 모양으로 머리에 가볍게 걸쳐 쓸 수 있는 모자였다.


「아 그렇지.」


나는 종업원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조그마한 목소리로.

【저기 혹시 지금 쟤가 가지고 들어간 원피스, 가격이 얼마인가요···?】

“저 원피스는 가격대가 조금 있어요 손님. 은화 40닢입니다.”

“네에···?”

옷 한 벌에 은화 40닢······?!


「40만원 이라고─?!」


“저희 가게에서 딱 두 벌만 생산된 디자인이랍니다. 어디 가서 이런 옷 못 구해요 손님!”

두 손을 다소곳이 모은 채 초롱초롱한 두 눈을 무기로 나를 유혹하는 종업원이었다.

“귀하기로 유명한 어린 양에게서 생애 단 한번만 뽑아낼 수 있는 털로 최고급 원단을 뽑아내어 만든 옷이에요. 이정도 품질에 아름다운 디자인, 그리고 이정도 가격! 무엇하나 빠지지 않는 다구요~”

“아하, 네············.”

때마침 스르륵하는 커튼소리가 들려왔다.

하늘하늘 거리는 원피스 차림으로 내가 있는 곳까지 천천히 걸어오는 마티나.

“어머나~ 손님! 너무 잘 어울리세요!!”


「와··················.」


흰색바탕에 예쁜 꽃무늬를 가졌고, 보통의 미니스커트와 비슷한 기장의 짧은 원피스.

마티나의 뽀얀 피부와 소녀 같은 이미지에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작은키를 감춰줄 만큼 날씬하고 볼륨감 있는 마티나의 몸매가 부각되어 있었다.

그리고 볼이 불그스름하게 적당히 상기된 마티나로부터.

“어···어떤 거 같아······?”

이 모습을 지켜보는 내 얼굴이 조금씩 화끈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지 몰라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 괜찮은 것 같은데···?”

순간적으로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던 마티나는 ‘읏흠’하고 헛기침을 했다.

“너한테 잘 보이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어, 절대로! 죽어도!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말라구······. 아···알겠어─?!”

“어······어, 응······.”

마티나는 전신 거울을 보며 한 바퀴 돌아보기도 하고 가벼운 포즈를 취해보기도 했다.


「저렇게 즐거워 보이는 표정은 처음 보는 거 같네.」


“잘 어울린다!”

진심이었다. 평소에 입고 다니던 옷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리고 여성스러움이 묻어 나왔다.

“응, 응···! 무슨 일이 있어도 살 거야!”


나는 앞서 구경했던 모자하나와 위아래 옷 한 벌씩을 집었다.


「입어주려나···.」


그리고는 종업원을 향해서.

“이거랑 같이 계산 할게요.”

“네에~ 이쪽에서 도와드릴게요. 원피스는 입고 가실건가요~?”

나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에 흠뻑 빠져있는 소녀의 모습을 슬쩍 보고나서.

“아하하······, 그럴 것 같네요. 이것까지 다 해서 얼마죠?”

“은화 40닢에, 가져오신 모자는 은화 3닢이고 블라우스랑 치마는 합쳐서 은화 20닢이에요. 합쳐서 은화 63닢이네요~”

나는 금액에 맞도록 금화 1닢과 은화 13닢을 지불했다.


「한정판···? 아니면 품질의 차이인가······?」


“여기, 이거 받으시구요~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나는 종업원이 정성스레 포장해준 것을 받은 후에, 거울 앞에서 자아도취중인 마티나를 붙잡아 가게를 나왔다.

“야 하준성, 이 옷 가격만큼 내 몫에서 빼줘~”

“아냐 됐어, 내 몫에서 뺐으니까.”

“에·········?”

마티나는 자신의 정수리 위에 커다란 물음표를 띄웠다.

“마티나 네 덕분에 여러 가지로 잘 풀렸으니까. 그동안 고마웠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뭐 그런 의미에서 내가 사줄게.”

“헤에─? 하준성 주제에···,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


마티나가 내 소매를 붙잡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잠시 우물쭈물 하더니.

“고···고마워······. 소중히 입을게.”


「그런 말도 할 수 있었다니.」


“천만에, 어찌됐건 이제 진짜로 파트너잖아. 잘 부탁해.”

“흥···, 방해나 되지 말라구.”

발걸음을 다시 움직이는 나와 마티나.


「············.」


소설이나 만화에서는 보통 이런 타이밍에 자연스럽게 장면을 바꿔줄 텐데.

괜히 오글거리는 멘트를 해서 그런지 묘하게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인적이 많지 않은 고요한 거리를 말없이 걷고 있을 뿐이었다.

“야 하준성···.”

열심히 화젯거리를 찾는 사이 마티나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어, 왜?”

마티나는 손을 만지작거리며 묘하게 뜸을 들이기 시작했다.

이내 한쪽 손을 내 앞으로 내밀 더니.

“·········, 잡아줘······.”

순간 잘못들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뭐···라고?”

“잡아달라고! 손·········.”

마티나의 돌발행동에 당황한 나는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갑자기 왜이래?」


“······, 지금 나랑 손을 잡고 걷자고···?”

“머···머리가 아파서···, 어지러우니까·········. 그래, 부축해 달라는 거야! 다른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고···!”


「아, 그런 뜻이었나.」


“어······, 어···. 알겠어.”

나란 녀석, 여자 손이라고는 초등학교 시절 민아와 등하교를 같이할 때 잡아본 이후로 처음이 아닐까.

분명 고등학교에서 인기는 있었다. 편지나 구두로 고백을 받은 적도 몇 번 있었으니까.

단순히 내가 그 당시에는 빠듯한 생활에 지쳐서 연애 같은 것에 관심이 없었을 뿐.

본의 아니게 눈앞에 떡하니 차려진 예쁜 여자아이의 자그마한 손.

“뭐해······, 빨리······.”


「에라 모르겠다···.」


나는 서로의 손가락이 교차되도록 조심스럽게 마티나의 손을 잡았다.


「따듯···하네···.」


마티나의 손은 아기 피부처럼 부드러웠고 그녀의 체온이 전해져 올만큼 따듯했다.

마티나는 나에게 바짝 달라붙었다. 그리고 반대쪽 손으로는 내 팔뚝을 휘감았다.

“마티나──?!”

“뭐해, 이제 빨리 가···!”

자그마한 이 소녀의 키는 겨우 내 어깨까지였고,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샴푸향기가 퍼져왔다.

간간히 지나치는 사람들에게서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기분 나쁜 표정은 절대로 아니었다. 하나같이 부러움의 시선이었으니까.


“마티나···, 궁금한 게 있는데.”

“어···? 뭔데···?”

나는 마티나의 평상시 표정과 말투를 흉내 내며.

“웬일이야? 평상시 같았으면 ‘영원히 궁금해만 하도록 해!’라던가···. ‘애원하면 한번 들어는 봐줄게~’라던가···.”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불만 있으면 하지 말던 가.”

“하으악─.”

결국 나는 마티나에게 옆구리를 꼬집혔다.

“수인족, 수인족! 수인족에 대해서 궁금해가지고, 혹시 아는 거 있나 해서.”

“뭐, 갑자기 수인족은 왜?”


지금 상황에서 어울리는 질문은 아니었지만, 아까 에스프릿 개최장에서 수인족을 만난 김에 물어봐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아까 스타디움에서 봤었잖아. 동물 귀를 하고 있던 여자아이.”

“헤에─, 그런 쪽이 취향이셨나 봐?”

맞잡고 있던 손에 ‘꽈악’하고 힘을 주는 마티나였다.

“아니···그런 뜻이 아니라······.”

물론 아까만난 수인족 여아자이가 귀여운 목소리와 얼굴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수인족에 대해 안 좋은 시선이나 소문 같은···, 뭐 그런 게 있나 해서 물어봤어.”

“아···, 하준성 너 혹시·········, ······루히···?”


「뭐라?」


“뭐야···, 마티나 너도 알고 있었어? 그럼 민아도······?”

“저번에 셋이서 같이 씻으러 갔을 때, 민아가 루히의 모자를 몰래 벗겨버리는 바람에 우연히···.”


「아하하······. 」

생생하게 상상되는 장면. 무언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야 하준성, 오히려 나는 네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게 더 놀라운 데?”

“나도 뭐······, 저번에 루히랑 같이 망볼 때 우연히·········.”

“흐으응─?”

뭐냐고, 그렇게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지 말란 말이야.

“내가 민아처럼 강제로 모자를 벗겼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오산이다······.”


어쨌든, 마티나에게 수인족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상황은 이러했다.

과거에 존재했던 수인족의 나라 ‘미노운’. 인간과 수인은 사이가 좋지 못했다. 수인족들은 모험가나 여행객 할 것 없이 습격과 약탈을 일삼았고 주변국과의 전쟁을 좋아했다고 한다.

40여 년 전, ‘케르시안 제국’은 이웃나라인 ‘알케이나 왕국’과 동맹을 맺었고 연합군을 편성했다.

그리고 수인족의 나라 ‘미노운’에 전쟁을 선포하였으며 무려 7년 동안의 밀고 밀리는 처절한 전쟁을 벌였다.


길고 길었던 전쟁은 연합군이 마침내 ‘미노운’의 수왕을 생포함으로써 ‘미노운’이 국가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고 그리하여 케르시안, 알케이나 연합군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 여파로 생포된 남자 수인족들은 대부분이 사형, 일부는 제국의 노예가 되거나 알 수 없는 실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여자 수인족은 고위층 귀족에게 시녀로 팔려가거나 마찬가지로 제국의 노예가 되었다.

생포된 ‘미노운’의 수왕은 케르시안 제국의 최고수준 교도소인 ‘차티먼’에 아직도 수감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 당시 잡히지 않고 도망친 수인족들이 아직 까지 대를 잇고 살아남아 호시탐탐 혁명을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그래서 아직도 수인족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사례가 가끔씩 신문에 나오기도 하더라구.”


수인족들은 인간족의 3배에 달하는 평균수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타고난 신체조건에서 나오는 근력과 완력은 인간족에게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였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수인족들이 흉악하고 공격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리엘과 같은 고양잇과 수인들은 상당히 온순한 편이라고 한다.


“이건······, 지극히 내 개인적인 추측인데, 루히가 케르시안 제국 영토를 자유롭게 밟고 있다는 것은······, 아마도 루히가 전쟁 당시 도망쳐 나온 수인족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아닐까 해.”

“그래서 정체를 숨기고 생활해야 한다, 그런 뜻이야?”

“응, 정확한 건 본인에게 직접 들어보지 않으면 모르지만 말이야. 그리고 아까 스타디움에서 봤던 수인족 여자아이는 좀 특이한 경우야.”


종전 당시 사형을 면제받은 개과, 고양잇과 수인족들만이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물론 노예와 시녀의 신분으로 말이다.

종전 이후 시간이 지난 지금,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나 온순한 성격으로 개과와 고양잇과 수인족의 평판은 상당히 좋아진 편이다.

하지만 여전히 수인족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적지는 않기 때문에 수인족이 대놓고 길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극히 드문 경우라고 한다.


“아마, 그 고양잇과 여자아이도 같이 있던 남자에게 소속된 시녀가 아닐까 싶어.”

“······, 제법 독특한 팀이네······.”

그렇게 대화의 한 단락이 끝이 나자, 마티나가 나와 맞잡고 있던 손을 살며시 풀어냈다.

“이···이제 됐어···. 거의 다 왔으니까.”

“아, 응······.”

손바닥에는 마티나의 따듯한 온기가 남아있었다.

내심 ‘아쉽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마음속으로 의미 없는 미련을 남기고 있던 찰나.

“너···너의 그런 점은 좋아하니까·········.”


「에─?」


마티나에게 예고 없이 심장을 피격당한 나는, 제 자리에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머···뭐···? 너 지금······날 좋아한다고······?”

동요하지마라 나, 갑자기 녀석이 온순해 졌다고 해서 착각하면 안 돼.

“차···착각 좀 하지 마! 단순히 너의 다정한 성격이 마음에 든다는 뜻이라고······!”

“그······그게 좋아한다는 거 아니야?”

마티나의 얼굴은 마치 금방이라도 폭발해 버릴 것처럼 새빨개졌다.

“아니이──!! 루히를 생각해 주는 거, 내 걱정을 해주는 거! 이런 걸 말하는 거라고──!!!”

마티나는 내 팔뚝과 등에 자그마한 두 주먹을 인정사정없이 내지르기 시작했다.

“아악─ 알겠어! 알겠다고!! 무슨 뜻인지 알겠다니까──!!!”

마티나 최종02.jpg

가쁜 숨을 ‘씩씩’하고 내뱉는 마티나.

“씨이·········, 얼마 전에도 켈베로스한테 목숨을 구해준 거······. 그런 것들을 말하는 거야. 이제 알겠어?”

“넵·········.”


다소 소란스럽긴 했지만, 나와 마티나는 에스프릿 참가신청을 순조롭게 마치고 로렌스 씨의 집으로 돌아왔다.

문 앞에 도착했을 무렵, 집 안쪽의 마당에서 제법 떠들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렌스 씨. 저희 왔어요. 준성입니다!”

안쪽에서 ‘타박타박’하고 문 앞으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컥》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문을 열어준 것은 반쯤 울상이 되어있는 민아였다.

““민아야·········?””

“준성아!! 티나!! 너희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지금 큰일 났단 말이야아───!!”

마티나는 그런 민아를 일단 다독이며,

“민아야 일단 진정하고, 우리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 있었어?”라고 말했다.

마당에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로렌스 씨의 딸 시온이 보였고, 그런 시온을 다독이는 소니아 씨. 그리고 주변에는 로렌스 씨와 올리버 씨가 서 있었다.


고개를 떨군 채 힘없이 내 쪽으로 다가오는 로렌스 씨.

“자네들 왔는가·········.”

그리고 로렌스 씨는 편지처럼 보이는 종이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로렌스 씨·········?」


나는 짤막한 글씨와 지도가 그려져 있는 편지를 천천히 읽어보았다.


「·········.」

이···이건 설마·········.


“이보게 준성······, 루······루히가···············.”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옷이 담긴 종이봉투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납치를 당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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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025화. 서광의 나라(2) 19.02.05 50 1 13쪽
25 024화. 서광의 나라(1) 19.02.02 43 1 15쪽
24 023화. 여동생과 비밀친구 사이(2) 19.01.29 52 1 9쪽
23 022화. 여동생과 비밀친구 사이(1) 19.01.26 50 1 15쪽
22 021화. 회상(2) 19.01.22 43 1 9쪽
21 020화. 회상(1) 19.01.19 41 1 12쪽
20 019화. 미녀와 마수(4) 19.01.17 41 1 12쪽
19 018화. 미녀와 마수(3) 19.01.15 37 1 16쪽
18 017화. 미녀와 마수(2) 19.01.12 53 1 9쪽
17 016화. 미녀와 마수(1) 19.01.10 49 2 14쪽
16 015화. 귀족(2) 19.01.08 40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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