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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풍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강풍호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섭풍(囁風)
작품등록일 :
2023.12.09 06:19
최근연재일 :
2023.12.15 19:22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454
추천수 :
22
글자수 :
69,175

작성
23.12.11 14:57
조회
32
추천
2
글자
12쪽

S#6 준비

DUMMY

나는 곧바로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여태까지 깨닫지 못했던 놀라운 점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본래의 인생에서 언제나 나의 발목을 잡았던 필력이 크게 상승하였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막힘없이 술술 적혀가는 문장들을 보며 스스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마 강풍호의 능력이 그의 몸을 통해 나에게 전달된 것이 아닐까?


[어떻게 잘 진행되고 있나요?]


“고···곰?”


고개를 돌려보니 의자의 등받이에 곰 인형이 매달려 있었다.


[하하하. 여전히 생각보다 별로 놀라시지 않네요? 처음엔 매우 놀라서 꽤 즐거웠는데 말이죠. 아쉽네요, 그것이 나의 소소한 재미인데.]


“너무 놀랄 일들이 많아 이젠 웬만해선 그런 기분조차 들지 않는다고.”


[어때요?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은 낯설어. 게다가 눈앞에 닥친 일들부터 풀어야 하고.”


[전부 당신을 이 시대의 대단한 거물로 만들려는 큰 그림인 거죠.]


“누가? 그분이?”


[당연하죠.]


내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자 곰 인형이 킥킥거리며 말을 이었다.


[당신뿐이 아니에요.]


“뭐가?”


[그분이 후원한 사람이 말이죠.]


“지금 또 다른 사람을 후원하고 있단 말이야?”


[정확히는 과거죠. 가장 최근에 후원했던 사람이 아마 레오나르도 다빈치였죠?]


희대의 천대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내가 그와 비교된다는 건가?


뭐 어쨌든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


“뭐야? 엄청 오래됐잖아.”


[그 또한 본래는 미래에 있던 인물이었어요. 자기가 가진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죽게 될 처지에 있던 자였죠.]


“도대체 왜 죽을 사람들을 과거로 보내 후원하는 건데?”


[예술을 사랑하니까요. 그분은 인간들의 예술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계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인간승리 드라마에 대한 우리 세계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죠.]


“그분이라는 것이 혹시 신이야?”


[비슷해요. 그리고 또 한 분이 아니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의 연속이었으나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직접 경험을 하고 있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시나리오가 꽤 괜찮게 나왔군요?]


곰 인형은 시험삼아 출력한 나의 시나리오를 살펴보고 있었다.


제법 이쪽 분야에 잔뼈가 굵은 기획자의 포스를 풍기면서···.


[그런데 이 시대에는 프린터 출력물보다는 원고지에 쓰는 것이 격에 맞을 텐데요?]


“아무래도 읽기 편한 것이 보기도 좋으니까.”


곰 인형은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하긴, 원고지에 갈겨 쓴 것보다는 이것이 보기 좋긴 하죠. 가독성이 훨 낫다라고나 할까?]


곰인형이 책상 위에 주저앉더니 자신의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게다가 이 시대의 사람들은 아직은 자극적인 것들에 노출도가 많지 않죠.]


“자극적인 것에 노출도가 적다고?”


[약간의 자극만으로도 쉽게 감동시킬 수 있단 말이에요. 좀 난이도가 쉬운 편이라고나 할까? 인내심도 대단한 편이니 얼마나 좋아요? 당신에겐 매우 유리한 일이죠.]


곰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가장 큰 난관은 이 시대의 사람들과 나 사이에는 경험과 생각에 있어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나의 정서와 감성이 지금 시대의 관객에게 제대로 먹힐지는 그야말로 미지수라는 것이지.


이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어려운 만큼 도전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시나리오도 완성되었다.


굳이 말하자면 내 평생 써봤던 시나리오 중에서 제일 빨리 완성했고 가장 마음에 들었다.


물론 원작은 강풍호의 것이었지만 말이다.


이제 남은 것은 주인공을 누구에게 맡겨야 최대한의 결과를 뽑아낼 수 있을지이다.


* * *


아침부터 눈이 펑펑 내렸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충무로 골목에 위치한 작은 식당.


식당 문 앞에서는 연탄불에 올려진 석쇠에서 맛있는 소리와 함께 고등어가 구워지는 냄새가 풍겨나왔다.


식당으로 들어가자 영호를 비롯한 모두가 나를 반겼다.


“형!”


“풍호선배!”


“좀 많이 나아지셨어요?”


“덕분에···.”


“그래도 불행 중 다행입니다. 이만하길 다행이지요.”


“일단 음식부터 시키자!”


주인 아주머니께 주문을 한 후 테이블을 둘러보자 모두의 얼굴이 밝아보였다.


‘아무래도 이들에게는 강풍호가 매우 소중한 존재인가 보구나.’


그때 한 쪽에 위치한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지난 이틀동안 레바논 남부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폭격 및 함포공격과 기총소사를 통한 대규모 공격을 진행했습니다. 이로인해 백명이상의 민간인 사망자와 백오십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하며 이스라엘과 레바논 사이에 맺어진 휴전이 와해될 위기에 이르렀습니다.]


민식이 말했다.


“또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거 아냐?”


내가 고개를 저었다.


“중동에서 이전같은 큰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거야.”


“네? 선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정소영이 물었다.


“소규모 충돌만 있을거란 말이지.”


“선배는 마치 미리 본 것처럼 이야기하십니다.”


정소영의 말이 맞다.

중동지역의 정세에 대해서는 예전에 해당 방송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하였던 적이 있기에 잘 알고 있다.


그뿐인가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대부분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지금 태어나기도 전의 시대에서 책으로만 읽어보았던 일들을 실시간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선배, 그건 그렇고 시나리오는 어찌 되었습니까? 우선은 그게 가장 시급한 문제인데 말입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미 완성되었으니까.”


모두가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와···완성되었다구요?”


“그래.”


나는 가방을 열어 프린트해 온 시나리오들을 한 부씩 나눠줬다.


영호가 그것을 보고 놀란 표정이다.


“형! 이거 인쇄한 거예요? 멋진데요?”


“소량인쇄는 비싸지 않습니까? 제작비도 만만치 않을 텐데 여기다 돈을 써버리면 안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레이저프린터에 대해 이야기해봐야 지금 시대에 알 리가 없다.


그 낡은 도트프린터조차 없던 시대니까 말이다.


“이건 집에서 프린트해온 것이니 제작비 생각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 형네집엔 인쇄기까지 있단 말예요?”


나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오늘은 시나리오 전체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해보고 대략적인 일정에 대해 조율하도록 하자.”


이미 시나리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던 정소영에게 물었다.


“어때? 괜찮아?”


정소영이 안경을 매만지며 답했다.


“좋습니다. 정말로 아주 좋습니다. 선배는 어느 틈에 이걸 쓰셨답니까?”


“다른 사람들 생각은 어때?”


“전 좋아요.”


“이야기가 흡입력이 있는데요? 주요 인물도 둘밖에 되지 않으니 촬영이 힘들 것 같지도 않고.”


“좋아. 그럼 시나리오는 이걸로 정하도록 하지.”


“아참! 형, 이거 어제 말씀하신 거요.”


영호가 무엇인가 빼곡히 적혀있는 노트를 나에게 건넸다.


그것은 지금 선화대 연극영화과 학생들 중 연기전공자들의 목록이었다.


깔끔하게 그려진 표엔 그들이 속한 팀과 역할, 연극이나 영화에서의 비중이 적혀있었다.


“이 별표는 뭐지?”


“그건 이미 현역배우로 활동 중이라는 표시예요.”


하긴, 연극영화과인 만큼 이미 아역배우로 이름을 날리던 이들이나 탤런트 공채시험에 합격하여 활동 중인 학생들의 수가 꽤 많을 수밖에.


예상했던 대로 대다수 인물들은 일정이 꽉 차 있었다.


그러나 그 많은 이름 중 유독 한 사람의 이름에 시선이 갔다.


김무영!


지금 나, 강 풍호의 한 학번 선배.


그는 삼십 중반까지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배우였다.


하지만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무기력한 참전용사의 역할을 맡아 가히 폭발적인 연기력을 보여준다.


나는 그가 본래부터 연기력이 출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학창 시절 한국 영화사 수업 시간에 보았던 수많은 영화들 속에서 특히 내 눈에 띄었던 배우였으니까.


다만 그에게도 초년에는 운이 따르지 않았던 것 같다.


애석하게도 그가 맡았던 배역이나 연출을 맡았던 감독들 또한 그의 숨은 재능을 끌어낼 만한 역량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연기력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나는 자신이 있었다.


내재한 능력을 밖으로 폭발시킬 수 있도록 유도할 능력이 말이다.


이것은 그의 이미 드러난 재능을 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행히 영호가 작성한 목록에는 연극팀에서 김무영의 비중이 단역, 10% 미만이라 적혀 있었다.


“무영이 형을 캐스팅하시려구요?”


“그래. 그런데 어째서 4학년인데 단역을 맡은 거지?”


“그거야 연출을 맡은 정사용 선배에게 찍혀서 그렇지요.”


“찍혔다고?”


“네. 무영선배가 워낙에 느리니까 성격 급한 정 선배의 마음에 들 리가 없죠.”


“다른 팀으로 가면 되잖아?”


“정 선배 팀인데 다른 팀에서 데려가려 했다간 난리가 날걸요?”


“그것참 악취미군. 마음에 안 들어하는 사람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니 말이야.”


“정 선배가 좀 워낙에 특이해서 그런 거죠. 어쨌든 김무영 선배를 캐스팅하는 건 지금 말씀드린 이유 때문에 쉽지 않을 거예요.”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께.”


정소영이 물었다.


“선배, 정말로 김무영 선배를 캐스팅하시려는 겁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황에선 그가 최적이다.

그런데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할 순 없다.


* * *


그날 밤 나의 작업실 컴퓨터에 새로운 알림이 떴다.

그것은 뉴스아카이브의 동영상이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김무영에 대해 캐스팅하려 하였더니 그와 관련된 인터뷰가 떴군.’


동영상을 클릭하자 한 토크쇼에출연한 김무영의 모습이 나타났다.


적게 잡아도 50은 넘은 모습.


[졸업작품을 할 때였어요. 우리 읍내라는 작품이었는데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정사용 씨가 연출을 맡았었죠.]


[아! 그러고 보니 정사용 씨도 선화 대학교 출신이었죠.]


[네. 제 한 학번 선배였어요.]


[그때 맡으신 역할이?]


[대사 하나 없이 옆에 서 있는 역할이었죠.]


[아! 그래도 너무 한 것 아닌가요? 후배들도 있을 텐데 대사 하나 없는 역할이라니요.]


[맞아요. 당시 사학년이었으니 그런 역할을 맡을 학번은 아니었죠. 사실 자존심이 매우 상했었어요. 보통 그런 역할은 신입생들에게 돌아가거든요.]


[그렇죠. 보통은 그것이 맞는데.]


[하지만 아무리 존재감 없는 역이라도 공연 전까지 매일같이 하는 연습을 빠질 수가 없었어요.]


[그렇군요.]


[정말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죠. 하지만 뭐 내색을 할 수가 있어요? 그냥 시키는 대로 옆에 서 있을 수밖에요.]


[어쨌든 천하의 대배우 김무영 씨에게 그런 시절도 있었군요.]


[그런데 그 정사용 씨가 성격이 직설적이고 아주 괄괄해요.]


[연극계에서 유명하죠.]


[내가 그때 서 있다가 잠깐 딴생각을 했었나 봐요. 대번에 알아보고 와서 대본으로 내 뺨을 후려치는 거예요.]


[김무영 씨 뺨을요?]


[네. 정말로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허허.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야단을 치는 거죠. 네놈은 연기력이 안 되면 서 있는 역할이라도 제대로 해야 할 거 아냐! 당장 때려치워! 간판을 가져다 세워놔도 너보단 낫겠다. 라고요.]


[어이구 저런··· 후배들 앞에서 망신을 준 거네요.]


[정사용 씨 말이 맞죠.]


[그래도 그건···]


[사실 그날 이를 악다물고 결심했어요. 그냥 병풍으로 서 있는 한이 있더라도 적어도 배우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 연기로 욕을 먹진 말자고요.]


[어쨌건 결국 정사용 씨가 김무영 씨가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던 셈이네요.]


[하하하.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셈이죠. 그래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의 말은 그저 방송용 멘트에 불과할 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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