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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크레임

인류를 구했던 영웅이 용들의 사역마가 된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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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0.07.22 20:34
최근연재일 :
2021.03.0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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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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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에스텔 레이브로스(2)

DUMMY

"늦어."


"어머 앨리스 씨. 저희는 시간에 맞춰서 왔는데요."


"하?! 약속 시각 15분 전에 도착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앨리스였다고 했던가 어제도 저기압이었는데 오늘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이런 유형을 츤데레라고 하던가 문학계에서 한때 유명했던 걸로 기억하지만 나는 딱 질색이다.


항상 가시가 돋친 태도로 사사로운 걸 하나하나 트집을 잡는 게 아니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성격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딘가 하자가 있음이 틀림없다.


물론 지금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마스터에게 미움받는 사역마가 어떤 대접을 받게 될지 너무나도 뻔하기에.


"그런 법이 있었나요? 몰랐네요. 도량이 넓은 앨리스 씨가 이해해 주시길."


"흥! 다음은 그냥 안 넘어갈 테니까!"


"앨리스...너무 열 내지 마. 친구잖아."


파르를 닮은 용, 유리.

내가 계약의 결속을 유지하려고 했던 이유.


그 둘은 자석의 양극성처럼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모습을 봐왔을 때, 상당히 친밀한 관계인 모양이다.


물론 4명의 마스터를 둔 사역마의 관점으로 보면 되도록 사이가 좋은 편이 유리하다. 왜 복수의 마스터를 두게 되었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중 한 명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마스터들과 나에게 어떤 부하가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당장 궁금한 게 산더미같이 많지만, 지금은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괜히 나섰다가 불똥이 다른 학생에게로 번지면 안될 테니까.


"뭐, 아침 인사는 그 쯤하고 학원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들어가지."


똑똑똑.


"학원장님. 아리아 크로스웨인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세요."


간결하고 무뚝뚝하면서도 옛 된 목소리?


익숙하지는 않지만, 어딘가 낯이 익다. 어디서 들어봤지? 하지만 목소리 정도야 비슷한 경우가 많으니 일단 들어가 보도록 하자.


끼익.


문을 열자마자 보인 광경은 고풍스러우면서도 확 트인 모습이었다.

학생회실의 3배 정도가 되는 공간일까. 비싸 보이는 목조 가구가 늘어선 모습을 보니 제법 신경을 많이 쓴 모양이다.


일례로 이렇게 긴 카펫에 먼지 하나 없이 윤기가 흐른다. 물론 입학식이 어제였으니 감안해야겠지만 내가 있었을 때는 보통 사치로는 이런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음...소감은 이쯤 해두고 학원장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기로 한다.


......


......


어라? 안 보인다.

눈높이가 낮아져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 생명체는 없는 것 같다. 분명 목소리는 들려왔는데 마법인가?


평소에 마나가 감지되던 게 이젠 전혀 느껴지지 않아 매우 답답하다. 제길 이 반마력 수갑, 쓸데없이 성능이 좋잖아.


결국, 의미없는 두리번을 반복하다.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야. 지크. 처음에는 누군가의 사칭이라고 생각했지만, 소문이 정말이었네."


"?!"


당황한 채로 소리의 진원지를 확인하니 의자에서 나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큰 키를 가진 여자아이가 뛰어내리는 장면이 보였다.


검은색... 장발의 날카로운 눈? 설마


역시 안 좋은 감은 틀린 법이 없다. 예전에 목숨을 걸고 싸웠던 어둠의 천룡, 칼기의 수하이자 참모장이었던 레그니트.


인간들에게는 재앙 그 자체로 불렸고 용들 사이에서는 칠대천용 다음가는 존재라고 불린다.


그녀를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맹이라고 무시했다가 지옥에 간 인간들을 수도 없이 많이 봐왔는데 실제로는 엄연히 성체 용이며 변화 과정에서 육체 성장에 문제가 생겼을 뿐, 마나 운용 능력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그런 여자가 왜 여기까지 와서 학원장 노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 별로 좋은 일은 아니다.


"아는 사이... 이십니까? 하지만 기록에는..."


"서적에는 그가 어둠의 용들과 대치했던 기록이 명시되어있지 않아요. 자랑스러운 용의 군단이 고작 드래고니안 한 명에게 고전했다는 걸 후대에 알릴 수는 없지요."


"그런 일이....."


"이런 중대한 사항이기에 더욱 여러분의 역할이 중요해진 겁니다. 아직 표면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어둠 속에 암약하면서 정보를 모으고 집단이 있으니까요."


용들에 대항하고 있는 세력이 있다고?

아니면 내전인가?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칠대천용이 협의체를 구성하여 의사를 결정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상이고 실제로는 어둠과 번개의 천용에게 힘이 많이 실렸다.


인간의 법을 따왔지만 결국은 무력이 강한 세력에 힘이 많이 부여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심 권력에서 소외된 계층의 반란인가... 라고 예상했지만


".... 반란을 꾀하고 있는 세력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반대에요. 아마... 드래고니안이나 인간 쪽일 겁니다."


어라? 이미 멸족했다고 하지 않았나.

아니, 그렇군. 이것도 표면상으로만 공표되어있는 사실인가.

갑자기 알고 있던 사실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잠깐만요! 이 나라에 아직 인간이 남아있었나요? 하지만 어둠의 천룡님과 용의 군단이 남김없이 베어버리셨다고 들었는데요."


"앨리스......"


"괴멸상태까지 몰고 간 건 사실이지만 이 넓은 나라를 일일이 구석구석 찾아다니기는 어려워요. 그건 어디까지나 선전의 한 형태죠. 오히려 하나도 남김없이 처리했다고 보는 게 더 부자연스럽습니다."


앨리스라는 여자로부터 왠지 모를 적의를 느꼈다.

그게 나를 향한다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증오로 느껴졌는데 새삼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전쟁의 여파는 아무리 세대를 거쳐도 여전히 남아있으니까.


그런 이유로 인간의 편을 들었었던 나를 적대시했던 거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결코 한두 번의 용서나 양해를 구해서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뭘까 이 찝찝한 느낌은. 나의 삶 자체가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이다.

파르, 나는 정말 옮은 일을 한 걸까?


"입학식에서 공공연하게 떠벌린 이상, 소문이 퍼지는 건 막을 수 없겠지만 칼기님께 알려지는 건 최대한 늦춰보겠습니다. 여러분도 협조해주세요."


"그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에스텔이 이해가 안된다는 듯 말한다.


"아, 거기 있는 사역마씨가 승부도 보지 않고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우리 어둠의 천용 님께서 잔뜩 약이 오르셨었거든요. 저는 학원장으로서 학원을 지킬 의무가 있답니다. 제 말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죠? 지크?"


"하하. 그거 영광이네. 최강의 용께서 미천한 나에게 관심도 가져주시니 말이야."


무자비한 그녀의 무력이라면 이 거대한 학원도 한낱 잿더미로 만드는 건 쉬운 문제다. 레그니트가 학원장으로서의 입장을 우선시해서 정말 다행이군. 나를 본다면 분명 눈이 돌아갈 테니.


일시적이겠지만 마음속에 내내 담아왔던 걱정을 일부 덜어냈다. 후... 단단히 벼르고 있는 용들이 어디 한둘이어야 말이지.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군.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사실 여러분을 부른 이유는 지크가 소환된 사건에 대한 중대한 결정을 통보하기 위해서랍니다. 세부적인 사항은 아직 고심 중입니다만 당사자들에게는 미리 알려야 할 것 같아서요."


"저... 학원장님. 실례지만 제가 들어도 되는 내용입니까?"


학생회장, 아리아 크로스웨인.

그녀는 나름 높은 위치에 있지만, 엄연히 따지자면 나의 마스터는 아니다.

물론 학원의 일인만큼 알아두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용들의 사회는 생각보다 더 보수적이니 조심스러울 수도 있겠지.


"네. 꼭 들어야 하는 이야기입니다. 학생회장으로서 이보다 중요한 임무는 없을 테니까요."


레그니트의 눈빛이 사뭇 진지해졌다.

처음 봤을 때의 그 인상이 그려진달까, 확실히 보통 용은 아니다. 그저 칼기의 수하로 끝났다면 절대 용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진 않았겠지.


모두의 시선이 레그니트에게로 향한다. 전달해야 할 중대한 사항이라는 게 뭘까?


"학생회장을 비롯해 여러분들은 A,B,C 중 한 반에 소속되어있을 겁니다. 그걸 학원장 직권명령으로 취소하고 어떤 학년에도 해당되지 않는 별개의 특별 클래스를 만들 예정입니다."


"네?!"


모두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을 들어서 그런지 감정 표현이 잘 드러나지 않던 바이올렛조차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나야 정규 교육과정 같은걸 밟아본 적이 없으니 이 결정이 얼마나 파격적인지는 실감을 잘 못 하고 있지만 어떤 조직이든 정해진 틀은 쉽게 바꾸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추어볼 때, 이런 반응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 하지만 이미 수업일정이 정해진 상태에서 강사님께서 따로 시간 내시긴 어려울 텐데요..."


"그 점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앞으로 개설될 새로운 클래스는 제가 직접 담당할 예정이니까."


"...?!"


뭐라고? 어째서 그렇게까지...

분명 학원장도 자신의 일정이 있을 텐데 이런 결단을 빠르게 내릴 수 있다니 정말 의외다. 나를 완전히 자신의 통제 아래에 두겠다는 건가?


"여러분들은 아직 자각이 부족해요. 자신들이 어떤 존재를 사역마로 두고 있는지. 파르님의 힘을 일부 양도받았던 상태였긴 해도 그때의 지크는 분명 우리를 압도했습니다. 만약 그가 완전히 용들을 절멸시키려고 마음먹었다면 지금 쓰인 역사는 인간의 것일지도 모르죠."


아... 저 여자가 쓸데없이 띄워주는 바람에 괜히 경각심만 더 높아진 거 같은데.

일단 장기적으로는 사역마에서 벗어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나라고 해서 지속적으로 구속된 삶을 살아가고 싶지는 않으니까. 물론 그런 상황이 오는 걸 용들이 가장 경계하고 있겠지.


그렇다고 쫓기는 신세가 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 생활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든지 이미 겪어봤기에 또다시 감수할 의향은 전혀 없다.


결국,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는 건데 괜히 모험을 할 바엔 일단 가만히 있어 보자는 결론이 나왔다는 뜻. 한 번 당해보니 너무 뜨거워서 도저히 도전적인 방향으로 생각할 여유가 없다.


"무시무시한 이력을 가진 사역마인 만큼 학원 입장에서 최우선으로 신경을 써서 관리할 예정입니다. 솔직히 아직 보완해야 할 점이 많아요. 마음만 같아서는 24시간 감금시켜 밀접감시를 시키고 싶지만 여긴 그럴 인력도 시설도 되지 않으니까요."


우와...... 무섭네. 반대로 말하면 여건이 될 경우엔 그렇게 하겠다는 이야기잖아.

어쩐지 반마력 쇠고랑을 채운 뒤로는 자유롭게 풀어주는 분위기였는데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역시 섣불리 움직이지 않기로 한 판단이 옳았던 건가. 조금만 딴짓하는 궁리를 보여도 바로 응징을 당할 테니.


"그러니 조금씩 경각심을 가지고 학원생활 해주시길 바래요. 특히 학생회장은 같은 반에 있으면서 신입생분들을 잘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거기 있는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종잡을 수 없으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


뭐 내가 종잡을 수 없는 유형이긴 하지.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존재를 건드려 버렸으니. 심지어 그 제일 가는 심복이 여기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레그니트를 만난 건 오히려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녀라면 분명히 진상에 대해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없어질 동안 파르와 인간들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인지한 존재는 레그니트정도 밖에 없을 것이다.


"일단 드리려던 말씀은 간략하게 드렸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별도로 통지하죠. 그 밖에 궁금하신 사항있나요?"


"저... 학원장님."


내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유리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눈을 똑바로 맞추지 못하는 걸 보니 눈치를 많이 보고 있는듯하다.


"네. 말씀하세요."


"저 사역마분을 저희에게서 해방할 방법은 없는 걸까요?"


한가지 일단락되려던 찰나, 주변 분위기가 갑자기 냉각되었다.

레그니트가 화낼 것으로 예상했으나 의외로 그녀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음... 질문의 요지가 무엇인가요?"


"어떠한 이유로 용들과 적을 두긴 했지만 지크는 물의 천용 님과 각별한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용 자체를 증오하지는 않는다는 뜻이겠지요. 지금은 그에게 어떤 조치를 내리는 것보다 대화가 우선 아닐까요?"


"....?!"


순간적으로 유리가 파르와 희미하게 겹쳐 보였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담대함과 용기가 느껴진 파르의 잔상.

윤회했어도 결국 그녀는 그녀라는 것일까.


마찬가지로 레그니트 또한 나와 비슷한 걸 느꼈는지 놀란 기색을 하고 있다.

오히려 나보다도 봐왔던 기간이 긴 그녀가 더 잘 알고 있겠지.

하지만.


"그만둬. 네가 나를 변호해줄 필요는 없어."


"에...?"


"너는 너의 입장만 생각해. 괜히 무서운 학원장 앞에서 첫날부터 찍히지 말고."


그래, 이러면 된 거야.

그녀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권력자의 심기를 거슬렀는지 아닌지의 여부. 처신할 때는 힘에 눈치를 보는 것이지, 도덕에 눈치를 보는게 아니다.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은 당연히 고맙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우선이다.

괜히 어설프게 남을 위했다가 불이익 받지 않았으면 한다.


결국 다시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벽걸이 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주변을 어설프게 달래주고 있다.


작가의말

원래는... 진작에 썼었는데요. 어렵다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렇게 되었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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