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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더라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무협

미더라
작품등록일 :
2023.05.10 23:21
최근연재일 :
2023.05.22 21:56
연재수 :
8 회
조회수 :
148
추천수 :
10
글자수 :
40,419

작성
23.05.10 23:26
조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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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깨어보니 무림

DUMMY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낯선 천장이 보였다.


“이 놈아. 이제 정신이 드느냐?”


옆에서 처음 보는 아저씨가 눈물을 글썽이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중국 영화에 나오는 도사 복장을 한 아저씨였다.


‘뭐지?’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일어나려 했는데, 몸에 힘이 없었다. 고개를 조금 움직이니 삐쩍 마른 작은 손이 보였다.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건 내가 아닌 다른 몸이었다. 이 손은 40대의 손이 아니었으니까.


그때 도사 아저씨 옆으로 작은 고개 하나가 쏙 나왔다.


“이제 오빠 다 나은 거야? 소소하고 놀 수 이써?”


다섯 살 정도 되었으려나? 얼굴이 동글동글한 귀여운 여자 아이였다. 말하는 걸 보면 나와 무척 친한 듯했다.


이게 이쪽 세상에서의 첫 기억이었다. 그리고 진혼문이라는 무림 방파의 제자 하후진이 된 첫 날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40대였던 내가 말이다.


***


이곳에 온 지도 5년이 지났다. 나는 늘 그렇듯 사부와 함께 어두운 숲속을 이동하고 있었다.


딸랑! 딸랑!


사부는 이동하면서 맨 앞에서 방울을 흔들었다.


퉁! 퉁!


그러면 그 뒤로 강시들이 뒤따랐다. 이마에 부적을 붙인 강시 세 구가 통통 뛰어 움직였다. 이게 진혼문의 일이었다. 강시를 고향까지 데려가고, 넋을 달래 저 세상으로 보내는 일.


진혼문은 기문둔갑으로 유명한 모산파의 방계였다. 술법을 위주로 하는 방파라 무림에서는 찬밥 신세다. 아예 무림 방파로 인정하지 않는 곳도 많고.


“그런데 꼭 이렇게 험한 길로 가야 하나?”


동행하는 상인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속삭였다.


사실 강시와 같이 이동하려는 사람은 없다. 시체와 같이 가는 것이니 찝찝하기도 하고, 강시와 있으면 재수 없다는 속설이 있어서였다. 그런데 간혹, 아주 가끔 이렇게 동행을 하는 경우가 있다.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밤에 산을 넘어야 하는 경우. 이 사람도 산동의 창읍에 급히 전달해야 할 물건이 있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가야 한단다. 그래서 오늘 밤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사람들 많이 다니는 곳으로 가면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고 해서요. 가능하면 인적이 드문 길로 다닙니다.”


힘이 있으면 누가 뭐라 하겠나. 강시를 다루는 자들은 무공이 약하다. 게다가 강시는 재수 없다고 알려져 있으니, 만나면 시비 거는 놈들 천지다.


“그런데 이런 건 돈이 좀 되나?”

“에휴. 돈이 되면 저희가 이렇게 입고 다니겠어요?”


앞에 있는 사부의 도사 복장도 다 낡아서 헤어졌고, 내가 입고 있는 옷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오죽하면 이런 데 얘를 데리고 다니겠어요. 간신히 먹고 사는 거죠 뭐.”


내 등에는 소소가 업혀서 자고 있었다. 데리고 다니면 안 되는 거긴 하지만, 집도 없고 봐줄 사람도 없다. 그러니 어쩌겠나.


“우웅..”


내 등에 업혀있던 소소가 잠꼬대를 하는지 뒤척였다. 나는 가능한 한 흔들리지 않게 조심하며 걸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녹림도 우리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거죠.”


이 상인이 우리랑 동행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강시는 객지에서 죽은 원혼이 깃든 시체다. 돈 있는 집이면 그렇게 시체를 버려두겠나. 다들 없는 집 사람들이지.


그러니 돈도 안 돼. 재수도 없어. 그래서 녹림도 굳이 우리를 건드리지 않는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가다 보니 어느새 저 멀리서 동이 트고 있었다. 그리고 산 아래쪽으로 도로도 보였고.


“아이고. 고마웠네. 자네들도 창읍으로 온다고 했지?”


맞다. 우리의 목적지도 산동의 창읍이다.


“잘하면 볼 수도 있겠구만. 보게 되면 아는 척이라도 하세. 내가 술은 한 잔 하지.”


흔히들 하는 소리다. 예전 한국에서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렇게 장사치가 떠났다. 하지만 우리는 산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강시들이 머물 곳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강시는 낮에 움직이지 못한다. 햇볕에 노출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빈 사당 같은 데가 있으면 좋긴 한데, 그런 게 없을 때는 그늘진 곳에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진아. 어서 움직이자.”


나는 사부와 함께 강시들이 밤까지 있을 곳을 마련하기 위해 움직였다. 벌써 동이 트고 있었다. 해기 완전히 뜨기 전에 마쳐야 하니 급히 서둘러야 했다.


***


강시들이 위치한 곳에 깃발로 표시를 한 후 나와 사부, 그리고 소소는 근처 마을로 이동했다. 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야 대충 때울 수 있다지만, 사부의 딸인 소소는 아직 어리다. 돈이 없으니 제대로 된 음식은 힘들지만, 따뜻한 거라도 먹여야지.


노점으로 가 소면을 시켰다.


“어여 먹어라.”

“아빠하고 오빠는요?”


소소가 우리를 보면서 물었다.


“우린 아까 오면서 먼저 먹었어. 그러니 어서 먹어.”


노점 주인이 일을 하다 안쓰럽게 우리를 쳐다보았다. 거짓말이라는 걸 아는 거다. 돈이 없어 애만 먹이는 거라는 걸. 주변에서 식사를 하던 사람들도 슬쩍 우리 일행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이내 관심을 끄고 식사를 했다.


가뭄이라 다들 어려운 시기였다. 이런 때일수록 호의 같은 건 기대하기 힘들다.


“그나저나 그 얘기 들었는가?”

“뭔 얘기?”

“아. 요물이 나타나서 마을 하나가 싸그리 몰살을 했다잖아.”


여기 오면서 몇 번 들은 얘기였다. 산적의 짓이란 말도 있고, 요괴의 짓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큰 화제는 되지 못했다. 그거 아니더라도 죽어나가는 사람은 많았으니까.


“저는 필요한 거 있나 좀 돌아보고 먼저 가 있을게요.”

“그래. 그러려무나.”


그렇게 노점 앞을 떠났다. 진짜 필요한 게 있나 살펴볼 생각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꼬르륵 소리가 날 것 같아 자리를 피한 거였다. 속이 비었는데 음식 냄새가 나니 속에서 난리를 쳤다.


시장 거리를 대충 둘러보았는데, 딱히 살 만 한 건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우리가 가진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없었다. 공연히 돌아다녀 봐야 힘만 빠질 터. 나는 강시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산 속에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걸 몇 가지 발견해 입에 넣었다. 맛은 없었지만, 허기는 좀 면하게 해 줄 것이다. 남은 건 조금 이따 사부가 오면 드릴 거고. 풀로 만든 자리에 털썩 누우니 잠이 몰려왔다.


“기왕 무림에 빙의할 거면 천마나 돈 많은 세가 자식으로나 빙의하게 해 주지.”


보통 빙의하면 그러지 않나? 지지리 재수도 없지. 가장 허접한 문파에 특별한 능력도 없다니. 예전에 소설 볼 때 그렇게 욕했던 상태창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능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닌가?”


내 앞에서 알짱거리는 푸르댕댕한 영혼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강시 세 구 중 한 명의 영혼이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에 영혼이 보였다.


- 고맙네. 마지막으로 가족들 보고 갈 수 있게 해 줘서.


그리고 영혼의 말도 들렸다. 영혼은 진심으로 감사해 했다. 우리가 아니었으면 객지에서 원귀가 될 뻔 했는데, 고향으로 가서 장례까지 치를 수 있게 되었으니 고마워할 만 하지.


영혼은 다시 한 번 꾸벅 인사를 하고는 다시 자기 몸으로 들어갔다. 피식 웃음이 났다. 무림에서야 아무짝에도 쓸 데 없는 능력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감사 인사를 들으면 뭔가 뿌듯했다.


“그래.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지.”


가족이 있었으니까.


한국에 있을 때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사고로 가족이 모두 죽었거든. 나만 겨우 살았는데, 나중에 그걸 알고는 의사에게 왜 나만 살려냈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 후로도 실의에 빠진 채 살다가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래도 여기는 나를 정말 아들처럼 아껴주는 사부가 있었고, 오빠처럼 따르는 소소가 있었다. 그거면 됐다.


“장난치지 말고 쉬어. 이따가는 갈 길이 머니까.”


다른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오려 해서 야단을 쳤다. 그런데 마침 소소와 함께 근처에 와 있던 사부가 그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사부는 소소를 쉬게 하고는 내 옆으로 와서 이야기했다.


“진아. 내가 한 말 명심하고 있지?”

“그럼요. 다른 사람들 있는 데서는 영혼한테 뭐라고 하지 않잖아요.”

“정말 조심해야 한다. 절대로 영혼이 보인다거나 말소리가 들린다는 말도 해서는 안 되고.”


온화한 성품의 사부가 이 말을 할 때는 굉장히 엄한 표정이 되었다. 나는 얼른 알았다고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하면 이 말 뒤에는 따라오는 얘기가 한 보따리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이야 정파나 사파나 다들 우리를 무시하지만, 한 때는 그 누구도 모산파의 힘을 무시하지 못했다. 우리 진혼문도 마찬가지였지. 진혼문의 3대 장문인께서는..”


나는 얼른 사부의 손을 잡았다. 놔두면 한 시진이고 두 시진이고 계속 애기를 하실 거다.


“알죠. 그럼요. 잘 압니다. 사부도 피곤할 텐데 어서 쉬셔야죠.”

“허허. 녀석. 알았다. 나는 소소하고 좀 놀아주고 있을 테니 먼저 자거라.”

“먼저 주무세요. 제가 놀아줄 테니까요. 소소는 저하고 노는 걸 더 좋아하잖아요. 그리고 이거 좀 드세요.”


나는 남겨 놓은 먹을거리를 내려놓고는 일어서서는 소소에게 향했다. 주변에서 꽃구경을 하고 있던 소소는 내가 다가오자 활짝 웃으면서 달려왔다.


“오빠. 이거 예쁘지?”


소소의 손에는 작고 예쁜 초롱꽃이 들려 있었다.


해가 이미 떠서 훈훈한 기가 느껴졌고, 솔솔 부는 바람은 시원했다. 풀내음과 새소리가 기분을 상쾌하게 했고. 거기에 아이의 웃음소리가 얹어졌다. 먹고 살기 팍팍한 상황이었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


다시 밤이 왔다. 어둑어둑해지자 준비를 했고, 사부가 나에게 초혼령을 내밀었다. 초혼령은 강시들을 인도하는 방울이었다.


“진아. 네가 좀 맡거라.”


오늘은 움직여야 할 거리가 좀 됐다. 그러니 내가 나서야 했다.


딸랑!


방울을 울리자 강시들이 벌떡 일어났다. 아까 영혼이 보이고 들린다고 이야기했는데, 그거 말고도 능력이 더 있었다.


바로 강시를 다루는 능력이었다. 똑같은 방법을 사용해도 내가 하면 술법이 더 잘 먹혔다. 강시들이 더 빠르게 움직여 빠르게 이동해야 할 때는 내가 초혼령을 잡았다.


“자. 가자.”


오늘은 터보 모드다.


딸랑! 딸랑!


초혼령이 울리자 강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으으..”

“그으으윽!”


사부가 했을 때와는 달리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움직였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그냥 처음부터 그랬다. 영혼이 보이고 들리는 것과 뭔가 연관이 있나 싶긴 했는데, 자세한 건 알 수 없었다.


“힘들면 얘기하세요.”


강시가 움직이는 속도가 사부가 했을 때의 두 배 이상이었다. 그 속도로 계속 움직이면 사부와 소소는 금방 지친다. 그러니 적당히 속도를 조절해야 했다.


딸랑! 딸랑!


“그에엑..”

“구워억..”


그렇게 산속을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이동했다. 산속은 벌써 어둠이 깔렸지만, 하늘은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이었다. 구름이 노을에 물들어 하늘에 불이 난 것 같았다. 참 장관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 앞에 떨어졌다.


“멈춰라!”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는데, 어느새 내 목에 칼이 닿아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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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창읍 23.05.20 13 0 10쪽
5 습격 23.05.19 12 0 12쪽
4 의문의 인물 23.05.18 11 2 12쪽
3 멈춰! +1 23.05.12 27 3 11쪽
2 무림맹 조사단 +1 23.05.11 27 2 12쪽
» 깨어보니 무림 +1 23.05.10 4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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