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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리안 님의 서재입니다.

버닝하트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SF

톨킨사랑
작품등록일 :
2018.06.19 22:37
최근연재일 :
2019.04.23 11:15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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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수 :
191,073

작성
18.06.2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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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vs 사무라이

DUMMY

실내 농구장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버스 정류장에 한 소년이 서 있었다. 작은 키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검은색 뿔테안경이 잘 어울리는 귀여운 샌님 타입의 소년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표정이 굉장히 초조해 보였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지 계속해서 아랫입술을 깨물었고, 시계를 보며 계속해서 발을 동동 굴렀다.  

 

 “이제 곧 시작인데. 도대체 승태는 언제 오는 거야?”  소년이 볼멘 표정으로 그렇게 투덜댔다. 그는 오늘 아침에 아버지 상헌에게 승태를 제시간에 무사히 데려오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는 그가 승태의 같은 반 친구이자, 그를 이 게임의 최초의 사용자로 추천한 장본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승태가 대회 시간을 코앞에 두고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여. 김재민. 조금 늦었다.” 


 결국, 정확히 경기 시작 5분을 남기고 그가 뻔뻔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왼손을 주머니에 푹 찔러 넣은 채, 오른손을 천천히 흔들고 있었다. 


  “너. 지금 몇 시줄 알아? 너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재민이 강한 어조로 승태를 힐난했다. 숨이라도 헐떡이면 화가 덜 날 터인데, 승태는 여유를 즐기며 천천히 걸어온 탓에 매우 호흡이 안정적이었고, 거기에 화사한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왔잖아. 아직 5분이나 남았는데.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자고.”

 

 책망하는 재민의 목소리에 승태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지금 왔다니. 너 설마 늦은 이유가, 주인공은 항상 나중에 등장하는 법이라는 그런 해괴망측하고 황당한 이유 때문은 아니겠지?” 

“빙고.”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자자 가야지 네 말대로 늦었잖아.” 


 승태가 재민의 말을 서둘러 끊고 앞장서서 걸어갔다. 재민의 잔소리를 더는 듣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갑자기 말문이 막힌 재민은 볼멘 표정을 지으며 툴툴대었지만,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총총걸음으로 승태를 따라갔다. 


  “그나저나 어차피 게임인데. 왜 굳이 경기장까지 만든 거야?”   승태가 눈 앞에 농구장 건물을 보며 이해가 가지 않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농구장은 얼마 전에 손보았는지 깔끔하게 페인트칠 되어 있었고, 주차장에는 이 시합을 보러 온 온갖 자동차들로 가득했다.

 

 재민이 승태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승태의 그런 반응은 절대 무리가 아니었다.  게임은 가로세로 2m 정도 크기의 게임 상자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었다. 즉 굳이 이렇게 특정 장소에 부를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건 나를 따라와 보면 자연히 알게 됩니다.” 


 이어서 건물 입구에 도착한 재민이 손짓을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구구절절한 설명보다는 백문이 불여일견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민에 이어서 승태가 곧 따라 들어갔다. 


“이건 너무 멋있잖아!”


 건물 안에 들어간 승태가 황홀한 표정으로 외마디 탄성을 내질렀다. 엄청난 크기의 직육면체 기계를 눈앞에서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직육면체는 농구 코트가 있어야 할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었다.

 

 크기도 딱 농구 코트 규격에 맞추어 가로가 28m, 세로가 15m 정도였고, 높이가 3m 정도 되어 보였다. 또한, 관중석이 있어야 할 자리에도 의자 대신 기계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다. 저 기계가 오늘 경기를 치르게 될 경기장임이 분명했다.

 

 헌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그 경기장 주위에 의료진들이 언제든지 출동할 채비를 갖추고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 의료진은 뭐야?"

 

 승태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러자 재민이 그답지 않은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만약을 위한 대비 같은 거야."

 "만약을 위한 대비?"

 

 승태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 이번 대회 참가자들은 우리 회사에서 준비한 최첨단 특수 장비를 입고 직접 싸우게 되거든. 그래서 이렇게 거대한 경기장이 필요했던 거지.” “그래서 의료진들이 있는 거구나?”


 승태가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재민의 설명대로라면 이제 직접적인 격투가 일어나게 된다. 물론 장비는 선수들의 안전을 최대한 고려하여 설비되어 있겠지만, 부상을 아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는가?


 “이거 재밌겠는데,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원하는 거라고. 모름지기 대회라면 이렇게 짜릿하고 가슴이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어?”

 

 승태가 기쁨에 겨워 포효하듯 소리쳤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특이하다. 재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보통은 이럴 때는 말도 안 된다며 화를 내거나, 두려움에 몸서리치는 것이 정상인데, 승태는 오히려 이것을 즐기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기대되면 빨리 안으로 들어가.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고.”

 

재민이 책망하듯 말하며 승태의 등을 떠밀었다. 이제 정말로 시합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한 승태가 손잡이를 잡아당겨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그가 게임에서 평소에 입던 갑옷과 무기들이 실물로 제작되어 걸려 있었다. 


“아까 말한 특수 장비가 이것을 말하는 건가?” 


서둘러 갑옷을 입고 검을 집어든 승태는 천천히 블라인드를 지나 그 앞에 쳐진 검은색 커튼을 걷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갑자기 우레와 같은 함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발끝으로 모랫바닥의 촉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경기장은 그가 기대했던 것처럼 굉장히 넓은 공간이었다. 그런데 왠지 이 경기장이 그에게 그리 낯설지가 않았다. 영화에서 봤던, 로마의 콜로세움과 매우 흡사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다음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상대였다. 그는 일본의 전통 갑주인 오요로이를 착용하고 있었고, 갑옷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체격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나의 이름은 다츠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버닝하트. 내가 바로 그 유명하신 버닝하트라고요.”

 “소문으로 듣던 버닝하트의 정체가 겨우 이런 꼬맹이였나? 뭐 어쨌든 좋다. 검을 뽑아라.” 


버닝하트와 다츠다가 거의 동시에 무기를 빼어 들었다. 버닝하트의 무기는 사생아검, 다츠다는 일본도였다. 그의 도는 한눈에 봐도 검 날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 달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명검으로 보였다. 둘은 경기장 한가운데에서 서로 노려보며 천천히 원을 그렸다. 그러면서 상대의 빈틈을 찾는 것이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선제공격을 감행한 것은 역시 버닝하트였다. 그는 오른발을 강하게 구르며 상대에게 달려가, 검을 빗겨 들고 대각선으로 후려쳤으나, 다츠다가 보법을 가볍게 뒤로 밟으며 피해냈다. 버닝하트는 계속해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하단을 노리고 한 번, 다시 상단을 노리고 한 번, 마지막으로 중단을 노리고 다시 한 번 수평으로 베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공격은 허공을 휘저었다.


 다츠다는 최소한의 동작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고 있었다. 그에 반면 버닝하트의 동작은 하나같이 동선이 컸다. 즉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불리하다는 것이다. 아마 상대는 이렇게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방어만 하다, 그가 제풀에 지쳐 쓰러질 때 한 번에 몰아칠 생각일 것이다. 대로 계속 간다면 그에게 반전의 기회는 없다. 어떻게든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순간 다츠다의 공격이 들어왔다. 그는 뒤에 둔 왼발의 발꿈치를 살짝 들고, 오른발이 앞으로 나오며 전진했다. 무릎을 굽히며 체중을 싣고 뒷발은 스치듯 따라오는, 동시에 머리 위로 올린 도를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내려쳤다. 버닝하트가 서둘러 검을 대각선으로 들어 막았지만, 손목으로 느껴지는 시큼한 고통이 상당히 묵직했다.


또한 전광석화처럼 빠르고 정확했다. 검을 올리는 그의 손동작이 조금만 느렸어도 경기는 그대로 끝났을 것이다.  버닝하트는 저 동작을 알고 있었다. 그건 분명 검도에 머리치기. 그것도 상당한 실력의 선수가 틀림없었다. 그 역시 선수출신 사범에게 검도를 배웠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다츠다의 머리치기는 사범의 그것보다 더 빠르고 정확했다.  


‘야 이거. 장난이 아닌데.’


그런데 그 순간 사범의 한마디가 번개처럼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는 그 상대의 방심과 오만을 역이용해라. 


“됐어. 안 할래.” 


관중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버닝하트가 갑자기 검을 내려놓은 것이다. 그는 심지어 팔짱을 끼고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결투 중에 무슨 짓이냐? 어서 검을 다시 집어라.” 

“안 한다니까. 재미가 없어졌거든.”

 “너는 이 경기를 보고 있는 저 수많은 관중에게 부끄럽지 않으냐?” 

“거 말은 똑바로 합시다. 관중에게는 당신이 부끄러워해야지. 눈앞에 상대에게 온 힘을 다하지 않는 것이 그 유명한 사무라이 정신인가?” 


다츠다의 얼굴이 순간 붉어졌다. 소년의 일갈에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이다. 사무라이의 승리는 달라야 한다. 적을 상대로 이기는 것보다 자신을 상대로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 눈앞에 상대에 집중하지 않고 그다음을 생각한 순간 그는 이미 이겨도 지는 것이다. 이게 바로 그가 아는 사무라이 정신이었는데, 버닝하트가 바로 그 점을 꾸짖은 것이다. 결국, 자신을 향한 부끄러움은 상대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다츠다의 호흡이 흥분으로 가빠오기 시작했다. 그는 버닝하트를 매섭게 노려보며 나지막하기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검을 집어라.” 

“글쎄, 난 생각이 없다니까 그러네.”


 하지만 말처럼 더는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다츠다의 매서운 도가 그의 머리를 노리고 빠르게 들어 왔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머리를 방어할 생각이 없었다면 경기는 그대로 끝났으리라. 사람이란 흥분해서 평정심을 잃게 되면, 가장 익숙한 행동을 취하는 법이라 하였다. 검도를 하는 사람이 습관적으로 가장 많이 취하는 자세는 무엇일까? 바로 머리치기일 것이다.   챙그랑! 쇠와 쇠가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엄청난 힘이다. 시큼한 충격이 팔꿈치까지 전이 될 정도였다. 이제 하나의 도박을 더 해야 한다. 버닝하트는 순간적으로 손잡이를 쥔 손을 느슨하게 풀었다. 자연히 검은 아래로 떨어졌다. 말 그대로 무방비 상태가 된 것이었다. 다츠다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버닝하트가 노린 것이었다. 그는 분명 다츠다의 일본도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었지만, 반대로 검을 놓음으로써 일신이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순식간에 오른쪽으로 회전하며 상대를 스치듯 지나가 뒤를 점한 후, 허벅지에 꽂아 두었던 단검을 꺼내 들어 상대의 뒷목을 그었다. 불의의 공격을 받은 다츠다가 그대로 쓰러졌다. 버닝하트의 전략의 승리인 것이다.  만약 상대가 흥분하지 않았다면, 그의 얕은수가 통했을까?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도발에 성공했고, 그 결과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그는 환호하는 관객들에게 손짓하며, 마음속으로 그의 스승에게 감사하다고 끊임없이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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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첫번째 전투. 내가 바로 버닝하트다. 18.06.21 73 0 7쪽
1 프롤로그 18.06.20 18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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