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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출 님의 서재입니다.

텃밭에 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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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출
작품등록일 :
2015.03.17 20:58
최근연재일 :
2017.08.25 16:23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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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469
추천수 :
3,665
글자수 :
324,184

작성
15.05.12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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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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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글자
12쪽

7. 꽃피는 오늘 (6)

DUMMY

오동을 앞서 걸어가던 란타나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쩐지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기분인걸.’


오후의 따뜻한 공기에 나른해하며 오동은 란타나를 놓치지 않도록 눈으로 좇았다.

문득 오동의 시야에 란타나의 백금발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약간 부스스한 란타나의 머리카락이 봄바람에 나풀나풀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오늘 빨리 나온다고 머리도 안 감고 나왔구나.

란타나 정도로 긴 머리는 감는 것도 고생이다.

그리고 어젯밤에 감고 잤으니 별로 상관은 없겠지.


란타나는 바람결에 뺨에 달라붙는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간지러운지 자꾸 머리를 뒤로 넘겼다.

조금 불편해 보였다.

머리를 묶으면 될텐데.

거기까지 생각하던 오동은 한 가지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란타나는 머리끈이 없었다.

보통 여자들이 흔히 팔목에 하나씩 묶고 다니는 밴드 하나조차 란타나에게는 없다.


란타나는 생존에 관련된 생필품들은 뻔뻔할 정도로 오동에게 확실히 요구하지만 그 이외에는 철저히 절약하는 스타일이었다. 심지어 속옷도 한 벌만 사려고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사실은 남자인 오동과는 또 다르게 여자인 란타나는 머리끈도 필요하고 그 이외에도 사소하게 필요한 것이 많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일방적으로 신세를 지는 상황이라 란타나는 가능한 오동의 부담을 줄이려고 참고 있는 것이 많았다.


마침 두 사람은 잡화점 앞을 지나고 있었다.

가게 앞을 지나는 란타나의 시선이 잠시 악세사리에 머물렀다.

각양각색의 머리끈, 머리띠, 귀걸이, 목걸이들이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란타나는 잠시 시선을 주다가 곧 그 앞을 지나쳐 걸어가려 했다.

어쩐지 그 뒷모습이 약간 시무룩해 보였다.


오동이 란타나를 불러 세웠다.


“란타나, 잠깐만.”


“응? 오동, 왜 그래?”


“잠깐 이리로 와봐.”


오동은 다가온 란타나를 이끌고 잡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바깥보다 훨씬 많은 수의 악세사리가 가득했다.

란타나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오동을 바라보았다.


“오동, 여기 왜 들어온 거야?”


“너 머리끈 필요하잖아?”


자신이 생각만 하던 것을 오동이 너무 당연하게 이야기하자 란타나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오동이 알았지? 이 둔한 남자가.


“괜... 괜찮아! 없어도 딱히 불편하지 않은데 뭐 하러 이런 거 사. 그리고 이런 건 비싸잖아?”


란타나가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어째서인지 양 뺨이 발갛게 들떠 있었다.

눈길이 가기는 가는 모양이군.


“물론 개중에는 비싼 것도 있겠지만.. 여기는 그렇게 비싼 편이 아닌 걸. 몇 가지 정도라면 충분히 살 수 있으니까 골라봐.”


대량생산 자본주의가 여러 가지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옛날에는 비쌌던 물류가 저렴해진다는 점은 확실히 장점이다.

그래도 계속 망설이는 란타나에게 오동이 못을 박았다.


“보는 내가 불편해서 그래. 여기서 뭐라도 하나 사기 전에는 안 나갈 거야.”


오동은 팔짱까지 끼고서 아예 란타나가 가게에서 못나가도록 버티고 섰다.

그제 서야 란타나는 못이기는 척 조심스레 머리끈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것 치고는 란타나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모습이 상당히 기뻐 보였다.

평소에는 이런 거 전혀 관심 없어 보였는데.

어쩌면 여자에게 필요한 많은 것들이 당장 필요한 의식주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기억을 잃은 란타나가 필요한 것들을 오동에게 세세하게 말할 수도 없고, 남자인 오동은 알아서 챙겨줄 수도 없다.

오동은 아무래도 선화한테 여자한테 필요한 게 뭔지 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갖가지 모양의 머리끈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란타나가 오동을 돌아보았다.


“오동, 오동은 어떤 게 좋아?”


“응? 그냥 네 마음에 드는 걸 골라.”


오동의 말에 란타나의 입술이 뾰로통하게 튀어나왔다.


“오동이 데려왔잖아. 오동도 같이 골라줘.”


오동은 어쩔 수 없이 란타나 옆에서 머리끈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나 이런데 별로 센스가 없는데.. 이건 어때?”


오동은 과일 모양 장식물들이 달린 머리끈 하나를 내밀었다.

오동이 내민 머리끈을 바라보던 란타나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주렁주렁 달린 건 싫어.”


“그럼 어디보자... 이런 건 어때?”


“음... 리본이 너무 커. 그리고 내 머리색이랑 안 어울릴 것 같아.”


지금까지 옷이고 패션이고 전혀 관심 없었으면서 묘하게 까다롭다.

노숙자 복장으로도 당당할 수 있으면서 머리끈을 왜 이렇게 열심히 고르는 거야?

아니, 어느새 오동이 주로 열심히 고르고 란타나가 그 머리끈을 검열하고 있었다.


란타나가 연신 헤매는 오동을 바라보다가 한마디 했다.


“오동. 진짜 센스 없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이런거 자신 없다고. 그냥 네 마음에 드는 거 고르라니까.”


란타나가 오동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오동 돈으로 사는 거잖아. 오동 마음에도 들었으면 좋겠어서 그래.”


“그래도.. 잘 몰라서 말이야.”


“오동. 아까부터 그냥 머리끈만 보고 고르잖아.”


“응? 당연히 그렇게 고르는 거 아냐?”


란타나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오동이 머리끈을 사준다고 하기에 란타나는 기뻤다.

지금까지도 여러 번 오동에게 신세를 지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좀 느낌이 달랐다.

자신이 요구한 것이 아니라, 오동이 처음 사주겠다고 한 것이었다.

란타나로서는 오동에게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선물인 것이다.


그래서 기대했는데.

자신을 생각하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물건을 골라줬으면 했다.

자신에게 제대로 ‘선물’을 해줬으면 했다.


하지만 오동은 평소처럼 그저 생필품을 사듯이 머리끈을 뒤적이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오동의 태도에 란타나의 표정이 부루퉁해졌다.


“그럼 됐어. 머리끈 필요 없어.”


갑자기 기분이 가라앉은 란타나를 보고 오동은 당황했다.

왜 갑자기 저러는 거야?


“란타나, 왜 그래? 아까만 해도 필요하다면서. 마음에 드는 게 없어?”


마음에 드는 것?

오동에게는 말 안했지만 란타나에게도 마음에 드는 물건이 몇 가지 있었다.

다만 그것을 오동이 골라주길 바랬을 뿐이었다.


“응. 그냥 나갈래.”


아무리 봐도 어딘가 삐친 것 같은데.

뭔가 자신이 원인이 되어 여자가 삐친 것 같은데 그 원인을 모르겠다.

남자들의 최대 고민을 지금 오동은 하고 있었다.

아, 정말 인간이고 엘프고 여자들 마음은 알 수가 없다.


란타나는 고개를 숙이고 가게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오동은 당황했다.

어쩐지 이대로 나가면 안 될 것 같았다.

음... 어쩌지?


그 때 당황한 오동의 순간적으로 눈에 꽃모양 장식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어? 저것은...

오동은 무심코 그 머리끈을 손으로 집었다.


“란타나.”


“왜?”


란타나의 목소리가 딱딱했다.

오동은 개의치 않고 란타나의 눈앞에 자신이 집어든 머리끈을 보여주었다.


“이거 어때?”


란타나가 오동이 집어든 머리끈을 빤히 쳐다보았다.

물빛의 푸른 꽃이 겹겹이 겹쳐진 것 같은 장식.

수국 장식의 머리끈이었다.

란타나를 보고 다시 머리끈을 보고서야 오동은 알았다.

란타나는 백금발에 회색 눈동자.

보통 검은 머리인 한국 여성들과는 외모가 많이 달랐다.

란타나가 할 거라고 생각하면 당연히 그녀에게 어울리는 것을 골라야 하는데.

하지만 오동은 방금까지 전혀 그런 고민 없이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물건을 골랐을 뿐이었다. 여자 선물을 사본 적이 거의 없고 이런 고민을 해본적도 없는 오동은 그런 점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란타나는 오동을 흘낏 쳐다보았다.


“이게 왜?”


퉁명스러운 말투였지만 둔한 오동은 곧이곧대로 대답을 했다.


“이거, 예쁘다고 생각해. 그리고 네 백금발에 잘 어울릴 것 같아.”


오동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물론 마음에 안 들면 어쩔 수 없지만.”


잠시 오동을 빤히 쳐다보던 란타나가 손을 뻗었다.


“......줘 봐.”


란타나는 수국 장식 머리끈을 오동에게서 받아 자기 머리카락에 갖다 대었다.


“괜찮아 보여?”


란타나는 그렇게 묻고는 오동의 표정을 살짝 살폈다.

오동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정말로 잘 어울려.”


진심이었다.

수채화같은 물빛의 수국 장식이 란타나의 머리카락과 아주 잘 어울렸다.

오동은 사실 센스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여러 가지로 둔감할 뿐이지.


“그래?”


미소짓는 오동의 얼굴을 바라보는 란타나의 표정도 어느새 풀려 있었다.


“그럼 이걸로 할래.”


음.

어쩐지 란타나의 기분이 풀린 것 같다.


“그럼 이제 갈까?”


하지만 오동의 선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계산대로 향하는 란타나에게 오동이 말했다.


“잠깐, 필요한 것 몇 가지만 더 사자? 머리끈 하나만 살수는 없잖아.”


란타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오동, 오늘 왜 그러는 거야? 혹시 나한테 뭐 원하는 거 있어?”


“원하는 거는 무슨. 너 평일에는 저녁까지 알바잖아? 필요한 거 있으면 오늘 나온 김에 다 사는 게 나으니까.”


“음.. 하기는. 지금은 오동한테 줄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


란타나가 갑자기 장난스런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혹시 몸으로 갚기를 원하는 건 아니지?”


“란... 란타나!!!”


식겁한 오동이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들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오동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그 얘기는 봉인하라고 했잖아!! 여자애가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라고!!”


란타나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랬지.”


“그런데 왜 그래?”


“오동이 과민반응하는 게 재미있어서?”


 란타나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찡긋 웃어보였다.

오동은 기가 막혔다.

갑자기 기억을 잃은 엘프를 주워서 같이 살았더니만, 이제는 그 엘프가 사람을 놀려먹고 있습니다, 여러분.


“너... 절대 그런 농담 하는 거 아냐. 그게 무슨 뜻인지나 알아?”


“전부터 궁금했는데, 그게 무슨 뜻인데?”


란타나가 호기심 어린 눈동자로 오동을 바라보았다.

오동은 말문이 막혔다.


“응? 오동, 무슨 뜻인데 그래? 나 궁금해.” 


“저기... 란타나...”


“왜? 오동.”


오동은 삐질삐질 땀을 흘리다가 결국 말을 돌리고 말았다.


“저 머리띠 예쁜 것 같지 않아? 노란 꽃 달린 거.”


오동이 가리킨 머리띠는 실제로 예뻤다.

다섯잎의 작은 노란색 꽃이 작은 진주모양 구슬장식과 함께 머리띠를 따라 촘촘하게 달려 있었다. 봄에 어울리게 화사하고, 란타나에게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위급상황이 되니 센스가 올라가다니.

란타나는 속으로 살짝 웃으면서 오동에게 속아 넘어가 주기로 했다.


“응. 그거 예쁜 것 같아. 그런데 좀 비싼 거 아니야?”


오동은 아까보다 훨씬 더 열심히 란타나에게 어울리는 물건을 이것저것 골라서 그녀에게 대령했다. 란타나의 표정이 아까보다 한결 더 밝아져 있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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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꽃피는 오늘 (6) +3 15.05.12 2,050 55 12쪽
31 7. 꽃피는 오늘 (5) +4 15.05.11 2,205 66 9쪽
30 7. 꽃피는 오늘 (4) +5 15.05.10 2,478 6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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