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돌출 님의 서재입니다.

텃밭에 엘프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현대판타지

돌출
작품등록일 :
2015.03.17 20:58
최근연재일 :
2017.08.25 16:23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134,470
추천수 :
3,665
글자수 :
324,184

작성
17.08.03 15:29
조회
326
추천
12
글자
10쪽

10. 위험한 꽃밭 (3)

DUMMY

오동이 하얀 벚나무를 올려다보면서 감탄했다.


“이거 정말 크다. 적어도 백년은 넘은 것 같은데?”


“그치? 나도 작년에 알게 된 곳인데, 오동이 제대하면 꼭 보여주고 싶었어.”


수선화가 웃으며 말했다.

란타나는 어느새 발걸음도 가볍게 폴짝거리며 뛰어 나갔다.

그리고는 하얀 벚나무를 꼭 끌어안았다.

란타나에게 있어 오랜 시간 동안 땅에 자리 잡고 살아온 나무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마치 란타나를 반겨주듯이 하얀 벚꽃 잎들이 란타나 주변으로 부슬부슬 떨어져 내렸다.

봄날에 눈이라도 내리는 것처럼.

란타나의 머리와 어깨에 꽃잎이 쌓였다.

란타나의 굳어져 있었던 얼굴이 헤실헤실 풀어졌다.

선화는 그런 란타나를 바라보며 오동에게 말했다.


“오동, 나 물 좀. 목말라.”


“여기.”


“우와, 생수병이 아니라 보온병이라니. 무슨 아줌마야? 오동? 이런 건 또 어디서 난 거야?”


“불평할거면 도로 내놔.”


“싫어, 마실거야.”


오동이 가져온 보온병 안에는 시원한 차가 들어있었다.

란타나가 만든 허브티를 오동이 차갑게 식혀서 넣어온 것이었다.

수선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왓, 이거 진짜 맛있다! 아, 란타나가 탄 거야?”


“응. 맞아.”


수선화가 맛있게 마시자 오동은 내심 마음이 뿌듯했다.

챙겨오길 잘했군.


“이건 마셔봐야 해. 목련 언니, 이것 좀 마셔봐요.”


“응? 맛이 어떤데?”


종이컵에 따라 차를 마신 목련의 표정이 확연하게 변했다.

마치 자신의 입 안에 향기를 가두려는 듯 한 손으로 입술을 누르며 목련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동을 바라보았다.


“어머, 정말 향기롭다. 이거 무슨 차야?”


“글쎄요, 란타나가 가져온 거라서 저도 잘...”


여러 가지 허브를 섞은 란타나 블렌딩이었다.

오동도 그 구성을 알리 만무하다.

수선화는 여전히 나무를 끌어안고 있는 란타나를 바라보면서 오동에게 다시 보온병을 건네주었다.


“그러고보니 란타나는 처음 봤을 때에도 저러던데. 왜 저러는 건지 오동은 혹시 알아?”


“그... 글쎄? 취미 같은 거라고 하던데.”


“취미? 저게?”


수선화가 마뜩찮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오동은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오동의 설명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사실 오래된 나무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란타나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니까.


“란타나는 나무와 이야기하는 건지도 몰라.”


목련이 문득 중얼거리듯 사실을 말했다.

오동은 내심 깜짝 놀랐다.

둔감한 주제에 묘하게 잘 넘겨짚는 사람이다.

오동은 놀란 마음을 일부러 내색하지 않으려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하... 하하, 목련선배까지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박교수님 랩에 있다 보니 물들었나 보네요.”


오동의 말에 선화는 살짝 오동의 안색을 살폈다.

박교수님과 목련에 관련된 일 때문에 몇 년을 가슴앓이한 오동이다.

혹시 또 침울해지는 거 아닌가?

하지만 현재 오동의 머릿속에는 란타나의 비밀을 감춰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백목련이 살풋 웃었다.


“그러게. 그런데 란타나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 꼭 나무의 요정 같다고.”


수선화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왜, 숲의 요정이라는 엘프-”


“쿨럭, 쿨럭!!”


자신도 차를 한 잔 따라 마시던 오동이 사례가 들러 기침을 연발했다.


“오동군, 괜찮아?”


“오동동, 뭐 급한 일이 있다고 그렇게 서둘러 마셔?”


목련은 걱정스럽게, 선화는 한심하다는 듯 오동을 바라보았다.

몇 차례의 큰 기침을 한 후 진정된 오동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미안. 갑자기 차가 기도로 넘어가서...”


깜짝 놀랐다.

설마 목련과 선화, 란타나의 정체를 눈치 채기라도 한건가?

하지만 그러기에는 란타나의 존재가 너무 판타지였다.

대놓고 ‘란타나는 엘프다’라고 고백해도 못 믿을 상황에 그걸 눈치 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선화야, 아까 무슨 얘기 하려고 했었어?”


친절한 목련이 오동이 기침으로 무마시킨 이야기를 다시 들고 나왔다.

이젠 오동이 말릴 방법도 없었다.

오동은 약간 조마조마하게 선화의 말을 듣고 있었다.


“아, 만약 엘프가 있다면 딱 지금 란타나의 이미지일 거라구요. 나무랑 같이 있으니까 정말 그렇죠?”


꿀꺽.

선화는 정말 묘하게 감이 좋다.

이번 여행에서 실수하지 말아야 할 텐데.

잠시 시간이 지나고 란타나는 껴안았던 벚나무에서 떨어졌다.

오동의 마음도 모르고 한껏 나무와 대화를 즐긴 란타나는 차 안에서보다 훨씬 표정이 밝아져 있었다.


“란타나, 벚나무랑 무슨 얘기라도 한 거야?”


선화가 싱글거리면서 란타나에게 물었다.

란타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응.”


“그래? 벚나무가 뭐래?”


“선화가 반갑데.”


“진짜? 날 기억한데?”


선화는 어디까지나 농담이라고 여기면서 란타나의 말을 받아주었다.


“응. 작년에 술이 떡이 돼서는 여기 벚나무 아래 한바가지 토하고는 ‘음주운전은 안 돼! 범죄야!’라고 소리치면서 나무 아래에 주차된 차 안에 기어들어가서 하룻밤 자고 간 노숙자가 여기 있다고. 그런 경우는 별로 없으니까.”


수선화가 깜짝 놀랐다.


“자... 잠깐, 란타나. 너 그걸 어디서 들은 거야?”


“그야 당연히 저 벚...”


오동은 황급히 끼어들었다.


“나, 나야! 내가 얘기해 준 거야! 너 나 면회 와서 그 얘기 한 적 있어!”


“뭐? 내가 그 얘길 했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그래, 기억 안나? 왜 괜히 차 끌고 가서 그런데서 술 마셨냐고 내가 물어봤잖아. 그러니까 네가 꽃 보면서 맥주 한 잔 하고 싶어서 왔다가 그만 과음했는데, 여기까지 오는 대중교통이 없다는 걸 깜박해서 대리기사들이 올 수 없어서 하룻밤 노숙했다고. 기억 안 나?”


“그.. 그래? 내가 너한테 그런 얘길 했어?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선화는 뭔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된다.

설마 진짜로 란타나가 벚나무한테 이야기를 들었을 리도 없고.

물론 방금 것은 오동의 임기응변이었다.

선화는 오동에게 그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오동은 왜 선화가 여기 혼자 와서 술이 떡이 됐는데도 대리를 부르지 못했을까를 주변 상황을 보고 유추해서 말 한 것 뿐이었다.


“란타나도 꽤 농담이 늘었는데? 날 놀릴 생각을 하다니.”


수선화가 쓴웃음을 지었다.

선화의 말에 오동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동은 몰래 란타나를 바라보며 말도 못하고 눈빛과 손짓으로 주의를 주었다.

오동의 기묘하게 꿈틀거리는 눈썹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하던 란타나가 마침내 아차 싶었는지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렸다.

오동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지난번에 마법도 기억나고 한 것 같아서 좀 믿음직해졌나 했더니만, 여전히 허술하다니까. 잘못하면 이러다 진짜 큰일나겠어.

일행은 한동안 벚꽃 길을 걸으며 휴식을 취했다.


“휴식을 취하는 건지, 벚꽃에 취하는 건지.”


“뭐래는 거야, 오동동. 닭살 돋게.”


“오동군, 시적이네.”


“벚꽃도 먹을 수 있어?”


삼인 삼색의 반응을 보여주는 수선화, 백목련, 란타나.

하지만 바람이 불어오고, 수천 수만의 꽃잎들이 시야가 닿는 저편까지 떨어져 내리자 반응은 모두 비슷했다.

다들 할 말을 잃어버리고 그저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잠시 조용하던 일행들 사이에서 수선화가 입을 열었다.


“점심은 계곡에 가서 먹기로 했으니 슬슬 출발해야해.”


“휴우... 어쩐지 너무 예뻐서 떠나기 아쉽다.”


“목련언니, 계곡도 좋을 거예요.”


“란타나, 그 벚꽃잎을 다 어떻게 하려고?”


“주머니에 넣어서 가져갈거야. 이그드라실한테도 뿌려주려고.”


“란타나, 그 이그드라실은 누구야? 외국인 친구?”


“선화야, 운전자가 먼저 타야지! 출발해야 된다며!”


“알겠어, 알겠어. 왜 갑자기 그렇게 서둘러?”


수선화는 오동에게 떠밀려 운전석에 앉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승용차에 탑승했다.

차로 달리는 와중에도 벚꽃 길은 아직 한참이나 이어졌다.

차 안의 분위기는 처음 출발했을 때보다 훨씬 화기애애해져 있었다.


“란타나, 기분은 좀 나아졌어?”


“응. 예쁜 나무를 보여줘서 고마워.”


란타나가 솔직하게 감사했다.

수선화가 씨익 웃었다.

오동도 미소지으면서 란타나에게 말했다.


“다행이네, 란타나.”


란타나의 표정이 다시 뚱해졌다.


“오동한테는 아직 다 안 풀렸어.”


하지만 아까보다는 확실히 표정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미, 미안.”


“고문확정.”


“저기, 정말 그것만은 어떻게 안 될까?”


백목련이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란타나가 고문이라고 얘기하는게 대체 무슨 의미야? 설마 정말로 고문한다는 건 아닐텐데.”


란타나가 눈을 깜박였다.

저건 설명하려는 태세다.

오동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 그냥 우리끼리의 얘기예요!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운전을 하는 수선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오동, 대체 뭘 숨기는 거야? 란타나, 고문이 무슨 뜻이야?”


“란타나, 절대 얘기하지 마!”


“란타나, 아까 벚꽃을 보여줘서 고맙다고 했지? 그럼 대가로 알려줘.”


“수선화, 그건 치사하잖아!”


아옹다옹 거리는 두 사람을 보고 백목련이 쿡쿡 웃었다.

란타나는 다시 창 밖을 바라보았다.

마침 열어 놓은 창문으로 나풀거리며 날아 들어온 벚꽃.

문득 란타나를 돌아본 오동은 마치 나비를 놀리듯이 꽃잎을 손끝에서 놀리며 미소짓는 란타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무에 가까이 갈수록 숲에 가까이 갈수록 란타나는 엘프로서의 모습이 드러난다.

상식인인 백목련과 수선화가 설마 정말로 란타나의 정체를 눈치챌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심해야겠다고 오동은 생각했다.


작가의말

요즘 글이 드라이한가요ㅎㅎ

다음번엔 촉촉하게 미스트 좀 뿌려야겠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텃밭에 엘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종이책 출간으로 인해 '텃밭에 엘프'는 중단중입니다^^;; +3 17.11.11 337 0 -
56 10. 위험한 꽃밭 (4) +10 17.08.25 389 15 11쪽
» 10. 위험한 꽃밭 (3) +6 17.08.03 327 12 10쪽
54 10. 위험한 꽃밭 (2) +5 17.07.26 380 15 11쪽
53 10. 위험한 꽃밭 (1) +6 17.07.20 363 14 9쪽
52 9. 엘프의 사냥법 (10) +3 17.07.15 350 14 9쪽
51 9. 엘프의 사냥법 (9) +3 17.07.11 336 18 17쪽
50 9. 엘프의 사냥법 (8) +3 17.07.10 357 18 8쪽
49 9. 엘프의 사냥법 (7) +5 17.07.05 371 14 10쪽
48 9. 엘프의 사냥법 (6) +23 17.06.30 439 28 9쪽
47 9. 엘프의 사냥법 (5) +23 15.09.29 1,366 60 14쪽
46 9. 엘프의 사냥법 (4) +11 15.09.09 1,284 39 11쪽
45 9. 엘프의 사냥법 (3) +4 15.09.09 1,211 33 16쪽
44 9. 엘프의 사냥법 (2) +1 15.09.09 1,161 32 9쪽
43 9. 엘프의 사냥법 (1) +5 15.09.09 1,306 35 11쪽
42 8. 하얀 벚꽃 (8) +17 15.08.26 1,515 53 19쪽
41 8. 하얀 벚꽃 (7) +31 15.08.22 1,512 60 17쪽
40 8. 하얀 벚꽃 (6) +8 15.08.11 1,685 52 11쪽
39 8. 하얀 벚꽃 (5) +9 15.08.09 1,804 53 17쪽
38 8. 하얀 벚꽃 (4) +7 15.07.25 1,770 55 12쪽
37 8. 하얀 벚꽃 (3) +8 15.07.21 1,725 52 17쪽
36 8. 하얀 벚꽃 (2) +9 15.07.16 1,791 57 9쪽
35 8. 하얀 벚꽃 +16 15.07.08 2,244 63 23쪽
34 7. 꽃피는 오늘 (8) +6 15.05.13 2,476 65 14쪽
33 7. 꽃피는 오늘 (7) +8 15.05.12 2,038 62 9쪽
32 7. 꽃피는 오늘 (6) +3 15.05.12 2,050 55 12쪽
31 7. 꽃피는 오늘 (5) +4 15.05.11 2,205 66 9쪽
30 7. 꽃피는 오늘 (4) +5 15.05.10 2,478 66 9쪽
29 7. 꽃피는 오늘 (3) +11 15.05.08 2,399 68 8쪽
28 7. 꽃피는 오늘 (2) +9 15.05.07 2,366 70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