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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노미카의 서재

우리 동아리에서는 내기 게임을 잘 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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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노미카
작품등록일 :
2016.10.17 22:58
최근연재일 :
2019.03.21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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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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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2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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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 7.

DUMMY

※ 이 작품은 픽션입니다. 작중 내에서 표기된 인물, 지명, 단체 등은 모두 허구적 요소입니다.







막간 7. 새 학기 첫날에 있었던 어떤 이야기






더운 날씨만큼이나 이런저런 일도 많았던 성류고등학교에서의 첫 여름방학을 뒤로하고, 다시 찾아온 원래의 일상.


우리 학교 학생들이라면 모두들 하나같이 같은 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 얼굴색까지 같은 것은 아니었다. 시내버스에 만난 어떤 남학생은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하고 팔걸이에 손을 의지한 채 서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내린 곳 바로 앞에 있는 신호등 앞에서는 우리학교 여학생 몇 명이 시끌벅적 떠들고 있었다. 등굣길 내내 나는 다른 애들의 표정에서 만감이 오고가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온 교실 안 풍경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까지 삼삼오오 떠들고 다니는 애들도 있는 한편, 이미 팔베개를 깔고 피로를 달래는 애들도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새 학기면 잊지 않고 옆 반에서 책을 빌리러 오는 애들까지 눈에 보였다.

아, 물론 아침 조례 시간이 다 돼서야 숨을 헐떡거리며 들어오는 지각생들도 있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귀찮고 불편하면서 누구에게는 설레고 기대되는 새 학기. 그러나 그 중에는, 이 모든 표정들과 상관없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새 학기를 맞이하는 사람도 있었다.


... ‘나’ 말이다.


일찍 자둔 덕분에 딱히 피곤하지도 않고, 방학숙제도 다 해서 신경 쓰일게 하나도 없었지만, 딱히 우리 반 애들이랑은 그냥 얼굴만 알고 지내는 사이인지라 정감 있는 얘기는 없었다. 새 학기를 맞이해서 귀찮거나 섭섭한 마음은 없었지만 딱히 기대나 열의도 없었다. 나에게 개학날은 말 그대로 방학 마지막 날의 그 다음날일 뿐이었다.


그런 분위기는 개학식과 2학기 첫 오전수업시간 내내 이어졌다. 아침에 잠깐 대화방으로 몇 마디 주고받던 홍보동아리 친구들도 조용하다. 쉬는 시간마다 가끔씩 집적거리며 덤벼들던 윤정이 마저 오늘은 조용했다. 그러나 딱히 애들이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어차피 방과 후면 만날 애들일 뿐더러, 보나마나 애들도 지금 나랑 똑같은 기분일 테니 애초부터 궁금하거나 걱정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 하루는 동아리 애들 만날 때 까지는 별일 없으려니 하고 생각했었다.




방학 기간 동안은 학교 식당이나 매점이 운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내 식당에서 나오는 밥을 맛보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다. 특히나 오랜만에 먹어보는 제육볶음과 쌈 세트는 보기만 해도 절로 군침이 넘어가게 하는 모양새다.


다들 그 맛을 알고 모였는지 학교 식당 안은 식사를 하기 위해 모인 학생들로 만원을 이루었다. 적당한 자리가 없었던 나머지 이리저리 한 번 주변을 헤매며 돌아다니던 참이었다.


...?


나는 한 구석에서 홀로 식사를 하고 있는... 아니, 식사를 옆에 둔 채 가져온 노트에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익숙한 얼굴 하나를 만났다. 사복이 허락된 방학 때도 지금과 변함없이 교복을 입고 학교에 나오던 그녀는 우리 학교 학생회장인 양은지 선배다.


처음에 홍보동아리 일로 마찰을 빚었던 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 동아리 일에 무척이나 신경을 써주시는 등 잘 대해주신다. 우리 동아리 부장인 김아영과는 중학시절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한 친한 선후배 사이다.


보아하니 지금은 지인이랑 얘기를 나누느라 바쁜 것 같다. 괜히 선배들 이야기 하는데 엿듣고 하는 건 실례겠다는 생각에 나는 다른 자리가 있나 하고 눈을 돌렸다.


음, 다른 데 괜찮은 자리가 어디 있으려 -



- 턱.


“왜 민준이는 이쪽을 보고도 안본 척 할까?”


“어-!”




난데없이 어깨로 전해오는 충격과 귓전을 간지럽히는 목소리에 그만 등골이 서늘해지고 말았다. 주인공은 바로 고개 돌리기 전 까지만 해도 친구 분과 이야기를 나누던 학생회장. 아까 봤을 때만 해도 분명 날 본 것 같지는 않았었는데.


“회장, 언제 왔어요?”


“그야 지금 왔지. 뭘 그렇게 놀라?”


나의 반응에 덩달아 놀란 듯 보이는 회장. 호들갑을 떨어서 죄송한 마음은 있지만, 고개 돌린 그 틈을 타서 언제 뒤로 와서 떡 하니 툭 건드리며 말하니 안 놀라고 배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없이 와서 툭 건드리는 건 좀 자제해 주세요. 진짜 깜짝 놀랐어요.”


“딱히 놀랠 마음은 없었는데. 민준이 은근히 겁 많네.”


그런 마음 약한 얘기를. 안 그래도 주변 사람한테 그런 얘기 제법 여러 번 듣는데.


“밥 먹으러 온 거야? 그런데 다른 애들은?”


혹시나 누가 또 왔나 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회장.


“오늘은 저 혼자 왔어요.”


“혼자라고? 동아리 애들은 다 어디 가고?”


“다들 바쁜 것 같아가지고요. 아침부터 대화방에 얘기가 한 마디도 없어가지고...”


그러자 말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는 회장. 무슨 일인가 하고 그녀를 바라보자, 이내 입을 열고 하는 말이,


“버렸네.”


“네?”


순간 말을 잘못 들었나 하고 회장에게 되물어보자 방긋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에이, 농담이야. 그럼 마침 잘 됐네. 같이 먹을래? 마침 너랑 좀 할 얘기가 있는데.”


... 농담이라고는 하지만 아침부터 대화방에 아무 말도 없는 걸 보면... 왠지 이 녀석들이라면 충분히 날 버린 채 자기들끼리 어딘가에 모여 내가 모르는 비밀 이야기(어쩌면 내 험담도 포함해서)를 재잘거리며 낄낄거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 네.”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은 나는 그녀의 바로 맞은 편 옆자리에 앉았다.


가져온 쌈에 고기와 밥과 채소를 넣어서 한 입 먹어본다. 고기반찬은 언제 먹어도 배신하는 법이 없다. 물론 삼겹살이라면 더 맛있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훌륭하다.


나는 잠시 회장이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먹고 있는 것은 반 이상이 채소로 된, 우리 학교에서 제일 인기 없다는 알뜰 백반이다. 물론 건강에야 좋긴 하겠지만, 고기반찬이 소시지 두세 조각이라니... 딱 뭐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정갈한 자세로 한입 반찬을 입에 무는 회장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동아리 일은 잘 돼 가고 있어?”


다시 고개를 돌리려던 참 회장에 질문에 다시 눈이 그녀에게 향했다.


“네. 그럭저럭요.”


“그래? 혹시 아영이 부장이라고 아영이만 일시키고 그러는 건 아니지?”


“걔 앞에서 그렇게 하다가는 아주 제대로 욕먹을 걸요.”


“후훗, 그러네. 걔는 책임감 없는 애는 딱 질색하는 성격이거든. 네가 아직까지 별 일 없이 동아리에 있는 것만 보면, 책임감 있게 잘 하는 건 안 봐도 당연하지.”


“아, 네.”


애초부터 성격만 까다로우면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녀석은 자기 맡은 일에는 철두철미한 녀석이기에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주윤정처럼 될 대로 되라는 듯이 행동할 배짱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다시 한 쌈을 입에 물고 바라보니, 이번에는 회장이 펜과 작은 노트를 꺼내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표지가 우리 학교 교장(交章)인걸로 봐서 학생회 관련 수첩 같은데.


“뭘 쓰고 계시는 건가요?”


“아, 회의록. 새 학기 됐으니까 이런 저런 안건 정리하느라고. 2학기는 특히나 더 바쁘니까.”


회장은 방학 기간에도 한 번도 학교에 안 나온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회장은 수능 시험도 얼마 안 남으셨을 텐데... 엄청 바쁘시겠네요.”


얼마 남지 않은 수능 공부에 학생회 일까지. 나 같으면 절대로 못 한다.


“그야 무지 바쁘지. 하지만 귀찮거나 한 건 까지는 없어. 오히려 이제 이 일도 나중에 못 한다고 하면 아쉽다는 생각도 들거든.”


아쉽다. 그러고 보니 곧 있으면 벌써 9월이다.


“학생회 선거가... 수능 끝나고 바로 다음 주였나요?”


“응. 겨울방학 들어가기 전에 인수인계는 마쳐야 하니까.”


“음, 왜 굳이 선거를 그 때 하는지 모르겠네요. 차라리 여름 방학정도에 하면 남은 시간동안 공부에 전념하실 수 있어서 좋을텐데 말이죠.”


“괜찮아. 어차피 중요한 안건은 학기 초에 다 끝났고, 수능 때까지는 형식적인 거 말고는 학생회 일은 별로 없어. 그마저도 부회장이랑 임원들이랑 다들 도와주니, 부담될 건 별로 없어.”


그렇게 하는 말을 도중에도 글을 쓰는 회장의 손은 멈추질 않는다. 애초부터 옆에 밥을 두고 있다는 것도 잊은 것 같이 보일 정도였다.


“민준이 너한테 역시 이런 일은 안 어울리나보네.”


... 솔직히 말하자면, 맞는 얘기다. 학생회장은커녕 나에게는 학생회 일 자체가 상극이다.


“아니 뭐...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이상해 할 거 없어. 너 같은 나이의 애들은 원래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거야. 오히려, 잘못 생각하고 있는 쪽은 나일지도 몰라. 솔직히 난 지금도 너희들이 동아리 활동을 하는 데 게임 같은걸 하는 게 진짜 이해가 안 되거든.”


쌈을 한 입 더 입에 물던 참, 푸념 섞인 회장의 말. 무슨 말이 이어질지 잠시 집중을 하였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없었다. 물론 나는 쌈을 먹고 있느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침묵은 내가 입에 물던 쌈을 다 씹어 삼킬 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생각을 털어놓았다.


“역시, 저희들이 동아리 활동 하는 거가-”


“너희들이 잘못했다는 말이 아니야. 너희들은 충분히 나한테 귀감을 보여줬으니까.”


잠시 말이 없었던 회장이 딱 잘라 이야기한다. 마치 아니라는 것을 단언하는 듯이.


“그 때 아영이가 내가 꼭 마음을 바꿀 수 있게 너희들이 노력해서 보여준다고 했었잖아. 너희들은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그걸 충분히 보여줬어. 너희들은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그 믿음을 확신하고 지금까지 잘 동아리를 이끌어나갔던 거라고 생각해. 물론 앞으로도 잘 해나갈 거고. 그런 점에서 너희들은 잘 하고 있어. 너희들이 그렇게 하는 게 잘 하고 있는 거야.”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린 채, 수첩에 무언가를 계속해서 써내려가면서 회장은 이런저런 말들을, 푸념을 이어나갔다.


“사람은 너무 이성적으로만 사는 것도 못 쓰는 것 같아. 괜히 애들 발상 같다고 부끄러워하면서 피하고. 너희들 이해해 주면서 공감해주고 싶은데, 마음 같이 그게 안 돼. 그게 틀린 거가 아닌 건데도. 그런 공감도 못 하면서 명색이 학생회장이라니...”


이렇게 이 자리에서 들을 줄은 생각도 못 했지만, 회장이 우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그간 궁금하기는 했다.


“미안, 쓸데없는 얘기 했네. 하지만 혹시나 말해두는 거야. 혹시 아직도 너희들이 내가 동아리 하는 거에 못마땅해 하고 그런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할까봐. 절대 그건 아니야. 너희들은 잘 하고 있어. 너희들 이해를 못하는 건 순전이 내 잘못인거지... 하아.”


어떻게든 이해를 해야 한다는 회장의 생각. 우리를 헤아리는 회장의 마음이 내 마음에까지 충분히 와 닿는다.


“저희들도 알고 있어요. 회장이 언제나 저희 신경 써 주시고 어떻게든 이해해 주시려고 하는 걸. 회장이 지금 어떤 마음으로 이야기 하시는 건지 알 것 같아요. 그렇지만...”


감히 말하기는 조금 그럴지 몰라도, 회장이라면 이해해 줄 것 이라 생각한다.


“회장 말이 일방적으로 틀렸다고 말씀하신 거,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실례를 무릅쓰고, 솔직하게 말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회장이 동그랗게 눈을 뜬 채 나를 바라본다. 순간 침이 넘어갈 정도로 긴장이 되었지만, 이내 회장이 아무 말도 없이 나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나서 나는 마음을 한 번 진정한 후 말을 이어나갔다.


“저도 처음 아영이 만났을 때만 해도 회장이랑 똑같은 생각이었어요. 난데없이 와가지고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동아리 활동하자는 것도 모자라서 갑자기 벌칙 떡 가져와서 게임하자고 하고... 어렸을 적부터 이런 게임 하는걸 좋아했던 저였는데도 이해가 안 됐어요. 게다가 윤정이. 걔는 지금도 솔직히 이해가 안 가는 녀석이에요. 제대로 하는 것도 없는 주제에 입은 엄청 살아가지고. 솔직히 얘들이랑 같이 동아리 활동은 하고 있지만, 성격 공감은 못 하겠더라고요.”


나는 혹시나 회장이 하고 싶은 말이 있을지 몰라 잠시 하던 말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쓰던 것도 멈춘 채 나를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역시 아무 말도 없었다.


말을 이어도 될 것 같다.


“그렇지만 그걸 누가 잘못됐다 하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게 틀리다고는 생각 안 하지만, 걔들이 생각이 틀렸다고도 생각하진 않아요. 그냥 내 생각도 맞고 걔들 생각도 걔들 나름대로 맞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어쩌면 그런 애들이랑 지금까지 어울릴 수 있던 것도 그런 ‘서로 다른 면’을 인정해 줬으니까 그러는 것 같아요. 물론 윤정이 그 녀석은 수시로 나한테 집적거리긴 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그냥 무시하면 되니까.”


억지로 그래야 한다는 통념에 맞추기보다는 아영이대로, 윤정이대로, 그리고 수진이대로 인정해주는 것, 그러면서도 내기 게임이라는 하나의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이 중구난방 멤버들이 동아리를 이끌어나가는 길인 것 같다.


“저는 회장이 항상 저희들을 이해해주시려고 노력해주시는 모습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저희가 이렇게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결국 회장 덕분이에요. 아무리 저희들이 동아리로 하나 되자 말해도 그 날 회장이 마음먹고 안 된다고 딱 잘라버렸으면... 무슨 의미가 있었겠어요. 그렇게 안 주셔도 그만이었을지도 모르는 내기 게임 기회를 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저희들을 그대로 인정해주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홍보동아리와 양은지 학생회장. 이건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저희들은 괜찮아요. 저희들 생각에 꼭 맞추어서 이해해주지 않으셔도 되요. 그냥 회장이 생각하는 그 ‘다른 모습’ 그대로 이해해주시는 것만 해도, 저희들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 날, 아영이가 회장에게 내기 게임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 약속은 회장이 생각을 바꾸도록 설득한다는 의미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저 보여주는 것만으로, 회장이 그런 홍보동아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의미를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후훗. 그 때도 나한테 말을 되게 잘 했던 것 같은데... 딱 봐서는 우리 학생회 후보인데?”


“아,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괜히 이상한 소리해서.”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회장의 반응에 주책없이 말한 것 같인 기분이 든 나머지 나는 뒤늦게 사과를 하였다.


“기다려달라고 한 거... 약속 지키기를 잘 한 것 같네. 역시 시간이 답이었던 것 같네.”


다행이 싫어하는 표정은 없으신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런가... 그냥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면 만사 오케이인가. 그게 어떤 의미인지 확 와 닿는 건 아니지만, 왠지 그거라면 어렵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드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한 마디만 할게.”


하지만. 비록 내가 그렇게 말은 하고 회장도 납득을 해 주었지만...


“시간 되면 조만간 한 번 내기 걸고 게임 한 판 하자. 오랜만에 한 번 해봐야지.”


어쩌면 이미 회장은 처음부터 우리와 공감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요. 얘기만 해 주세요. 저희들은 언제나 준비 돼 있으니까요.”


물론 그걸 말로 꺼내고 물어본다면 그건 또 다른 설득이 될지 모르니, 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 비웃네? 너 봐준다고는 생각하지 마? 나도 승부욕은 있는 사람이라고?”


“저도 진다고는 안 말했어요.”


애초부터 이런 제안을 주고받고 하는 것이 두말 할 것도 없는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하하.”


“호호.”


그것이 바로 회장이 말했던, ‘게임으로 이상적인 사회를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수업 첫날이다 보니 모처럼 일찍 끝나기를 바라는 애들도 있었건만, 오늘 일과는 철석같이 평소 끝나던 시각에 끝이 났다. 아쉬움을 토로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동아리 일과만 끝나면 나머지는 자유 일과인 우리 학교에서 이 정도는 감지덕지로 받아들여야한다고 생각한다.


아영이와 수진이는 일 때문에 늦는다고 하니 지금 가면 아무도 없던지 윤정이 한 명만 있을 것이다. 녀석 분명 날 보자마자 새 학기부터 멍청민준이니 뭐니 하면서 떠들어 대는 게 눈에 보이긴 하지만... 이미 한배를 탄 운명이니 어쩌겠나.


아니, 내가 애초부터 저 녀석에게 눌려야 할 이유도 없다. 이번 학기는 진짜 그 못난 죽순을 뽑아버릴 각오로 힘껏 당겨줘야 할 것 같다.


“끼야악~! 또 졌어!”


별관 3층에 도착하고 몇 걸음 걷지 않아 이미 저 편에서 벌써부터 익숙한 비명 소리가 들린다. 그 경망스러운 톤이며 듣자마자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느껴지는 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안 봐도 뻔한 것 같다. 과연 또 새로 맞이한 한 학기동안 얼마나 내 속을 썩일 것인지...


어찌됐건 들어가야 하는 건 매한가지이니 들어가 보기로 한다.


- 덜컥.


“아~ 너무 잘해! 윤정이 좀 봐줘어~!”


부실 문을 열자마자 역시나 바로 눈에 걸리는 가시 같은 녀석.


그리고... 그 맞은편에 앉아있는 한 여자애?


“기본적인 방법은 가르쳐줬잖아.”


톡 쏘아 붙이긴 했지만 아영이와는 확실히 구분되는 말투에 보아하니... 뭐야, 누군가 했더니 여동생인 나영이다.


“어, 왔다.”


손에 들고 있던 카드를 내려놓고 나를 바라보는 나영이. 책상을 바라보니 트럼프 카드가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아, 이 타이밍에 멍청민준 와서 더 기분 잡쳤네.”


그리고 한 치의 예상도 없이 개학 첫날부터 들은 누군가의 첫 모욕.


“난 첫날부터 그런 소리 들어서 기분 잡쳤다.”


“끼야아~!”


물론 나 역시 새 학기 처음 느끼는 고통을 그녀에게 안겨준다. 첫날부터 헛소리를 지껄여대는 녀석의 죽순을 있는 힘껏 세게 쥐어 잡아 뜯는 참, 나는 얼핏 눈이 다시 나영이에게 향했다.


교복이다. 처음 얼핏 봤을 때는 사복으로 착각했었는데, 가만 보아하니 교복이었다. 반팔 셔츠에 넥타이 대신 매고 있는 빨간 리본을 하고 있었다. 특히 갈색과 밤색이 어우러진 체크무늬 치마 차림이 눈에 띈다. 나도 여러 학교 여학생의 교복 차림새를 보긴 했지만 얘가 입은 것처럼 사복으로 착각할 만큼 정도의 화려한 디자인은 처음 본다.


‘우리 학교’ 교복만 해도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그야말로 평범 그 자체인 디자인인데...


... 응?


가만, 우리 학교?


그러고 보니 여긴 우리 동아리 부실인데.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여긴 ‘성류고등학교’인데.


...


나는 눈을 한번 껌뻑이며 다시 그 곳을 바라보았다.




“뭘 멍하니 봐. 오빠.”




... 그야 멍하니 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 상황이 이해가 된 나의 반응은.




“김나영, 너 여기 왜 있어!?”




성류고 홍보동아리 부실 안에, 예림여중 교복을 입고 있는 나영이가 떡하니 앉아 있었다.








- 막간 7. 새 학기 첫날에 있었던 어떤 이야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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