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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W

흙수저입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미슬린
작품등록일 :
2023.05.10 15:59
최근연재일 :
2023.06.30 23:00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788
추천수 :
3
글자수 :
184,241

작성
23.05.1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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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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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숲의 아이 6/8

DUMMY

“너 죽은 거 아니었어?”

“..”

들고 있던 목검을 꺼내들고 자기 손바닥에 댄 채로 찰싹찰싹 치면서 다가왔다.


“아하, 그날 너무 쥐어터져갖고 말을 잃어버렸냐?”

“..”

아르보는 고개를 바짝 숙였다.


“거기 코흘리개는 뭐냐, 네 부하냐?”

동네 아이들이 웃으면서 둘을 둘러쌌다.


소녀가 벌벌 떨면서 어깨가 심하게 흔들렸다.

아르보는 뒤로 손만 내민 채, 소녀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맞더라도 자신만 맞으면 될 일.


“이 놈은 아무 관계없으니 보내 주세요.”

그 말은 들은 소녀가 오히려 아르보의 손을 꽉 쥐었다.


“아하, 그러셔?”

따악.

목검의 날이 서지 않은 부분이 그대로 아르보의 정수리를 강타했다.


“그럼 너만 맞으면 되겠다.”

따악.

먹을 거나 밝히는 머저리였지만, 검술실력은 평균이상이었다.

때린 곳을 정확하게 다시 때렸다.

연이은 일격에 아르보의 무릎이 꺾였다.


“어차피 너 때린다고 마을에서 뭐라 할 사람도 없는데.”

티익.

“어?”


기대와는 다른 소리에 동네 아이들이 이상한 눈으로 목검을 쳐다본다.

아르보도 호기심이 커져서, 사알짝 눈알을 위로 들어 상황을 살폈따.


자갈이 있었다.

아르보의 뒤에 있던 소녀가 앞으로 나오며 내민 손에는 자갈이 들려 있었다.

자갈에 빗맞아 튕긴 목검이 멀리 날아가 개울 언저리에 떨어졌다.


“이익, 너 가서 빨리 주워 와.”

“으응? 응!”

부하를 자처하는 동네 아이 하나가 뛰어간 사이, 기세가 흉흉해진 다른 아이들이 더 촘촘하게 포위망을 짰다.

“너네 죽었다. 거기 방울만한 녀석, 너도 각오해. 감히 내 앞을 막다니!”


“..저만 있으면 되잖아요.”

아르보가 외쳤다.

“나..도 있.. ㅇ래여..”

아르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린 소녀는 아르보의 옆에 꽉 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르보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지만, 섣불리 움직였다간 화를 입게 될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단지 다가올 매타작만을 눈을 꽉 감고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르보는 소녀를 가슴으로 꽉 안았다.

그대로 둥글게 몸을 말면, 작은 체구의 어린 아이 하나정도는 커버할 수 있으리라.


“허헉, 여기. 여기 목검 가져왔어.”

착.

선두에 선 아이를 따라 모든 아이들이 목검을 치켜들었다.


“머저리가 검술교본 좀 보더니, 익히라는 검술은 안 익히고 사람패는 법만 익혔니?”

“응? 아니 이건.. 이런 거지같은 놈은 때려도 괜찮잖아?”

“누가? 누가 때려도 괜찮대? 우리 부모님이? 아님 너네 부모가?”

“이잇, 이 놈은 마을에서 죄짓고 쫓겨난 놈이란 말이야. 아니, 애초에 너랑도 엮어 있잖아!”

“그래서? 나랑 엮어있으면 엮인 거지, 네가 뭐라고 나서는데?”


쳇.

선두에 선 아이가 목검으로 땅바닥을 딱, 하고 갈겼다.

“돌아가자. 원래 하던 모험이나 하러 가자구.”


괴롭히던 일행이 사라진 뒤에도 아르보는 잠시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다.

얼굴은 못 봤지만, 모처럼만에 듣는 감미로운 목소리였다.

날이 잔뜩 서 있는 목소리였지만, 그것마저 자신을 변호해주려는 것임에 더욱 아름답게 들렸다.


아이들이 멀어져가는 발걸음소리가 잦아들고 마침내 바람소리만 남았을 때,

아르보는 살짝 눈을 떠 언덕을 쳐다봤지만, 보이는 것은 그저 나무와 수풀 뿐이었다.


그 뒤로 둘은 마을의 변두리에 머물면서 함께 살았다.

아르보와 소녀는 식구나 다름없었다.

“여기, 여기. 약풀 많아요!”

“그래? 여기꺼 마저 캐고 금방 간다.”


아르보는 뿌리작물인 혹감자를 캐고 있었다. 작은 알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불에 구우면 저절로 껍질이 터지면서 먹기 좋게 속살만 쏙 올라오는 먹거리였다.

소녀는 아르보를 기다리면서 약초를 캔다.

약초를 담은 바구니가 금새 찼다.

소녀는 눈썰미가 좋아, 금새 약이 되는 풀과 독이 되는 꽃을 구별했다.


“오, 많이 모았네. 그리고 잘 캤다. 깔끔해.”

“헤헤.”

아르보의 칭찬에 소녀는 쑥쓰러운 듯 웃었다.


아르보나 소녀나 나뭇가지 등짐이 한가득에, 허리춤엔 약재로 쓸 허브나 먹을거리가 담긴 주머니가 대롱거리고 있었다.

마을 어귀까지 약속시간에 맞춰 모두 옮겼다.


"자, 내가 등짐한 거랑 네 꺼랑 합치니까 어른 세 몫의 나무등짐이 완성되었다."

"와아~"

"우리는 이것으로 빵 한 개를 번 것이다."

"예이~"

"문제는 하루에 빵 한 개가 아니라 실제론 반 개에 불과하다는 것이지만."

"우우.."


'어쩌니 저쩌니 해도 제 몫은 하네. 저 꼬마애가.'

어떻게 여기까지 굴러들어 온 건지, 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 아르보에겐 유일한 동료다.


"어? 저기 마을 사람 온다. 저 쪽에 숨어 있어."

휙.


초반의 꺼려하던 모습은 많이 사라지고, 이제는 아르보를 제법 따랐다.

그래도 낯을 가리는 모습은 여전했고, 아르보와 함께 마을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기뻐하는 듯 보였다.


아르보도 마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 수치를 두 번 당하는 것은 사절이다.


“오늘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날이다!”

“와아!”


그동안 쌓아 둔 약초가 돈과 빵으로 바뀌는 날이다.

약방의 약초할아범이 몰래 아르보는 찾으러 오는 날이다.


마을 어귀에서 봉변을 당한 이후, 아르보는 마을 근처로는 발길을 끊었다.

약초가 아쉬운 약방의 노인만 숲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와야 해서 발품을 더 팔아야만 하게 되었다.


"오셨습니까? 어르신."

"헐헐. 나한테까지 그렇게 겸양 떨 필요는 없네. 쓸모없는 약방 늙은이인걸. 그나저나 오늘은 뭘 가져왔으려나."

아르보는 약방 영감을 위해 챙겨 둔 자색 로즈마리 뭉치와 사슴뿔 버섯, 그리고 벨라돈나 두 줄기를 엉거주춤 꺼내들었다.


"오호. 이거는 뿌리채 잘 캤는데. 솜씨좋은 채집꾼 다 되었어."

"헤헤."

노인은 돋보기를 꺼내 버섯과 로즈마리를 가만히 살폈다.

"좋다, 좋아. 제철인데다 흠집하나 나지 않았으니 상등품이다. 이 정도면 될까."

노인이 동전을 보였다.

"그 가격만큼 빵과 밀가루로 바꿔 주시면."


"좋네, 좋아. 내 몰래 가져다 둠세. 장소는 자네가 지정한 수풀 안 쪽이면 되겠지?"

“네.”

“예전 만났던 곳이 가까워서 좋았는데, 에잉. 동네 개구쟁이 놈들 때문에 나만 더 길이 멀어졌어.”

"늘 감사합니다. 어르신."

"다시 말하지만 고마워할 것 없네. 나로서는 이익이 큰 거래니까."

노인은 말을 마친 뒤, 선금조로 미리 가져온 빵바구니를 건넸다.


가져온 짐을 다 털고 빵 덩어리를 가지고 돌아가는 보람찬 길이다.

딱딱한 빵 덩어리 하나씩을 들고 사그작사그작 갉아먹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

“빵 많으니까 막 먹어도 돼.”

“헤에, 넹.”

크고 작은 그림자 두 개가 달빛을 받아 나란히 빛나고 있었다.


"오늘은 좀 더 숲 안 쪽으로 들어가 보자."

"어둔 숲은 위험해여.."


아르보가 위험을 무릅쓰려는 이유가 있다.

곧 겨울이 다가온다.

아르보는 집 근처에 비밀스레 땅을 파 창고를 만들었다.

빵보다는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밀가루, 아니면 아예 밀알을 되는대로 구입한다.

그 뿐 아니라, 소시지나 훈제육도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

둘 모두 한창 먹을 때였다.


"그제 낙진이 왔었으니까 이제는 안전할 거야. 숲은 바람이 잘 안 통하니까 아무래도 마을보단 낙진이 더 남아 있겠지만.. 하루 지났으니 괜찮을 테지."

"그럼 늑대얼굴.. 괴물.. 은.."

"그렇게까진 깊이 들어가진 않을거야. 내가 노리는 건 달맞이꽃. 늦가을에 피는게 가장 약효가 좋다고 책에 쓰여있더라. 그걸 달여마시면 일년간 누워있던 사람도 벌떡 일어난대."

아르보는 약효를 특별히 강조하기 위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런 엄청난 게 이 근처에 있어여?"

"응응, 꽃이 많이 자라는 곳을 내가 알 것 같거든. 지리적 특성이 아주 딱 맞아."

"대단해, 그런 건 다 어떻게 알았대요?"

"헤헤. 약방 할아버지가 아예 챙겨주더라. 내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어찌나 좋아하던지 아예 필요한 약초들 이름이랑 설명을 직접 써서 줬어."


하나씩 읽어보던 아르보가 주목한 것이 달맞이꽃.

달맞이꽃은 언덕배기 달이 잘 비치는 곳에서 잘 자라는데 이게 약간 그늘진 곳일수록 좋다. 달빛을 대놓고 받고자란 달맞이꽃은 커서 좋지만 대신 성글다. 약효도 떨어진다. 모름지기 달빛을 은은하게 받아 꼭꼭 여물은 녀석들이 약으로서의 가치가 상급이다.


언덕배기에 위치해서 달빛을 직접 받을 수 있으면서, 동시에 동굴 안이거나 흙천장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달빛이 은은하게 배어드는 곳.

그런 곳을 찾으려면 조금 숲 안 쪽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거의 다 왔어. 내가 본 게 이 쯤이었거든."

조금 큰 그림자가 앞, 작은 그림자가 붙듯이 뒤따라가며 고개를 넘고 수풀 사이를 통과했다가 언덕을 올랐다.


보름달이었다.

파닥거리는 나뭇가지들 사이로 달빛이 내려앉아 마구 흔들린다.

이 정도로 밝으면 횃불도 필요없다.


아르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길을 안내했다.

머리 속에 박힌 인상과 실제 지형을 비교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저기다!"

아르보가 팔을 쭉 펴서 가리킨 곳에는 과연 달빛이 지면에 구름처럼 깔려 있었다.

달맞이꽃이 달빛 색실을 타고 융단처럼 펼쳐져 있었다.


"저기 동굴 보인다. 저 안에 있는 걸로 잘 채집한 다음에 동굴 안에서 하룻밤 자고 가자. 아침 일찍 돌아가자. 알았지?"


약초 채집은 가지를 똑, 꺾는 게 아니라 잔뿌리까지 상처없도록 조심스레 캐내는 게 핵심이다.

아르보가 자리에 앉아 꽃 주변의 흙을 조심스럽게 파내면, 소녀는 흙을 손으로 받아 멀리 뿌린다.

아르보는 최대한 손가락 끝마디에 힘을 주어 신경을 집중했다.

한뿌리 한뿌리를 캐낼 때마다 이마에서 땀이 흐른다.


"..됐다."

"이야. 이대로 심어도 될 것 같아요!"

"흐흐."

아르보는 씨익 웃었다. 많이 캘 필요도 없다. 이 정도의 상급품이면 서너뿌리만 가져가도 일주일 치 식량은 문제 없을 거였다.


"좀만 더하고 쉬자."

아르보는 채집 장인이라도 된 듯 잔뿌리에 묻은 흙먼지를 섬세하게 털어냈다.

절대 입김을 후, 불어넣어서는 안 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약효가 사라져 가치가 떨어진다고 했다.

그렇게 살살 긁고 털어낸 뒤 조심스럽게 바구니에 옮긴다.


"저기.."

"잠시만. 잠시만 있어. 조금만 집중하면 또 한 뿌리 제대로 될 것 같다."

"..그게."

“조금만 기다려 봐.”

"..불빛.. 불빛이 너무 많아요.."

"응?"


건성으로 듣던 아르보가 생각치도 못한 말에 고개를 들었다.

66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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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만남의 광장 4/11 23.06.16 15 0 13쪽
25 만남의 광장 3/11 23.06.15 1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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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기다리는 숲 3/7 23.05.29 19 0 12쪽
17 기다리는 숲 2/7 23.05.26 20 0 12쪽
16 기다리는 숲 1/7 23.05.25 21 0 13쪽
15 미스티리카는 맛으로 먹는게 아니죠 6/6 23.05.24 17 0 14쪽
14 미스티리카는 맛으로 먹는게 아니죠 5/6 23.05.23 17 0 11쪽
13 미스티리카는 맛으로 먹는게 아니죠 4/6 23.05.22 20 0 15쪽
12 미스티리카는 맛으로 먹는게 아니죠 3/6 23.05.20 19 0 14쪽
11 미스티리카는 맛으로 먹는게 아니죠 2/6 23.05.19 19 0 15쪽
10 미스타리카는 맛으로 먹는 게 아니죠 1/6 23.05.18 1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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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숲의 아이 7/8 23.05.16 21 0 13쪽
» 숲의 아이 6/8 23.05.15 26 0 11쪽
6 숲의 아이 5/8 23.05.14 2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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