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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룡 님의 서재입니다.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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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룡
작품등록일 :
2020.12.29 11:21
최근연재일 :
2021.06.03 19:00
연재수 :
1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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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3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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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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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6화

DUMMY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36화


잠시 횡설수설하던 시우는 큭, 하고 웃었다.


“진짜 넌 너무 그분하고 닮았어. 고해성사하는 기분이잖아. 부모님 앞에서 뭐, 잘못했어 안했어? 다 말해 봐, 이런 말 듣는 거 같아. 하아. 왜 내가 긴장하고 있냐? 그래, 너도 헌터니까 마석이 뭔지는 알지?”


“네.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강한 마력을 머금어 수정체화된 몬스터의 심장, 혹은 심장 근처에 생기는 주먹 두 개 정도의 크기의 마력결정체 아닙니까?”


“그래. 맞아. 블루문 길드에서는 게이트 하나를 공략하고 나면 B급, A급 몬스터들의 심장을 공로와 기여도에 따라 헌터들에게 나눠줘. 몬스터 심장이기 때문에 쓰려면 한번 정화시켜야 하지만, 일단 정화하고 나면 사용처도 무궁무진하고, 일단 거실 유리 진열장에 받침대 세워서 쭉 진열해 놓으면 엄청나게 뿌듯하거든.”


시우는 잠시 기쁜 표정으로 숨을 골랐다. 자신의 응접실에도 방금 말한 유리 진열장이 있었다. 붉은색, 푸른색, 남청색, 황록색, 자신의 업적과 아프고 슬프고 명예로웠던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남 비서는 사용인들에게 맏기라고 잔소리했지만 시우는 그 진열장과 마석들을 늘 스스로 닦았다.


“나는 블루문에서 꽤 오랫동안 일했어. 미르한 님과 초창기부터 같이 활동했던 1세대는 아니지만, 2세대 중반에 합류했으니까 벌써 10년 가까이 됐지. 모아놓은 마석도 꽤 있었어. 그걸로 가방 예약금을 냈어.”


“현물거래가 통하는 거야?”


“안 통할 건 또 뭐야? 정화한 마석은 쓰려면 어디든 쓸 수 있어. 예약금액 다 받지도 않으셨어. 안 그래도 A급 마석 필요한 거 어떻게 알았냐면서 라지아 님이 직접 챙겨가셨지. 여기서 문제가 생겼어.”


“뭔데?”


“법이 바꿘 거야.”


그로부터 잠시 동안 시우의 설명이 이어졌다. 마수의 피와 살은 본래부터 체굴 부산물의 지위를 받고 있었다. ‘게이트-광산’은 놀랍게도 정식 명칭이었다. 실제로 적용되는 법이나 행정적 절차 역시 금광, 철광 등을 관리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러다 최근, 본래는 법적으로 그냥 돌맹이였던 마석이 ‘재산’에 해당하는 법적 직위를 받았다. 졸지에 길드로부터 ‘양도’받아 ‘취득’한 물건이 되었다.


“이번 법은 소급적용이 안 돼서 그 전에 받은 마석은 문제가 없었지. 하지만 내가 라지아 님에게 드린 건 꽤 최근에 얻은 마석이었어. 진짜, 아무 생각 못하고 내 버린 거야.”


“그럼,”


“졸지에 이 가방은 탈세한 돈으로 산 물건이 되 버린 거지.”


“탈세액만 값으면 되는 거 아니야? 부자잖아?”


그렇기는 한데, 하고 중얼거리며 시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잘못하면 가방을 통째로 압류당할 수도 있어.”


“말도 안 돼. 아무리 A급 마석이라도 마석 하나 때문에 삼천억짜리 가방을 압류해간다고?”


정화가 끝난 A급 마석은 분명 고가의 물건이었다. 하지만 아공간 마법이 걸린 마도구에 비교할 물건은 아니었다. 하물며 정화하기 전에는 그저 독을 품은 예쁜 돌덩어리에 불과했다.


“내가 탈세한 물건의 가격이 얼마나 되느냐, 가 내가 토해 낼 가격이 되는 거잖아. 그런데 마석은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고 했지. 그래서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서 가치가 엄청나게 달라져.”


“무슨 뜻이야. 어려서 잘 모르겠어.”


“우리 블루문 본사는 리빙캐슬 시스템이라는 걸 적용했는데, 이거 연구하고 구축하는 데 1조 원이 넘게 들었어. 그 시스템의 핵심이 A급 마석이야. 이런 용도로 썼을 때의 마석하고, 그냥 전시장에 넣어 두고 뿌듯한 기분을 즐기는 데 쓴 마석하고 가치가 다르다는 거지.”


잠시 인상을 찌푸리고 시우는 말을 지었다.


“삼천억 마법 물품의 예약금으로 쓰인 마석이니, 원가의 50%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다고 볼 수도 있지.”


마법 물품은 만드는 과정도 험난하다. 대충 스킬 한 방에 빛이 쫙 뿜어나오고 툭 튀어나오는 게 아니다. 옛 대장장이들처럼 마법의 불이 타오르는 화로에서 금속판을 달구고, 단단한 모루에 두고 가공 스킬을 사용하며 마법 망치로 두들기며 하나 하나 만들어야 한다. 마법이 더해진다는 점을 빼면 단조 칼이나 갑옷을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때문에, 고위 제작계 헌터들은 예약금을 원가의 50% 이상으로 세게 받는다. 그 고생을 해가며 기껏 다 만들었는데 혹여나 예약이 취소당한다면, 대부분 마법 물품이 맞춤형인 점을 고려했을 때 되팔 수도 없는 악성 재고가 된다.


“그래서 던전에 가서? 설마 날 데리고 A급 마수를 잡을 거라는 이야기는 아니지?”


“두가지 방법이 있어. 그건 지금은 말 못해줘. 이해해주기 바래.”


43호는 안도하며 마지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사라지면 헌터관리지원실의 요원님들과 연구원님들은 놀라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시우가 쫓기는 상황이 아니였다면? 헌터관리지원실과의 협상을 위해 자신들을 살려놔야 할 이유가 없었다면?


‘바로 목이 따였겠지. 옛 주군을 모욕한 끔찍한 생물들이라면서. 지금도 쫓기도 있다는 다급함에 분노를 잠시 재워둔 것 같지만, 이 일이 해결되는 대로 헌터관리지원실을 파들어갈 거다. 만약에 블루문 길드의 다른 헌터들에게 말하기라도 한다면 우린 다 끝이야. 최소한 도망칠 수 있을 힘은 길러 놔야 돼.’


“시우. 지금쯤이면 44호랑 67호 일어났을 거 같은데, 시우 따라간다는 거 말해 둘게. 친한 애들이고, 시우가 우리 알았다는 거 교관들은 모르게 해야 돼. 미리 말 맞춰야지.”


“아, 그래. 걔들이 있었지.”


잠시 고개를 기웃거리는 시우는 클러치 가방 안에서 납작한 검은 피어싱 두 개를 내밀었다.


“언제 쓸 수 있을 거 같아서 남겨둔 건데, 잘됐네. 하루에 30분 정도 이야기 할 수 있는 마법 물품이야. 던전 밖에서는 스마트폰보다 못하지만, 던전 안에서는 훨씬 좋지. 하나는 너 가지고, 하나는 애들 줘.”


“고마워. 빨리 갔다올게.”


“그래. 가서 이야기 하고 와. 나는 류트 짜고 있을 거니까.”


동공 안에서 44호는 허벅지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67호는 누덕누덕해진 왼손을 달각거리며 훑어보았다.


43호는 최대한 기감을 기울이며 시우가 따라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어떻게 된 거야?”


44호가 효과 좋은 녹음기로도 들리지 않을 것처럼 낮게 속삭였다.


43호는 손짓하며 67호를 불러들였다.


“말하지 말고 듣기만 해. 우리 다 망했어. 다 죽거나 폐기당할지도 몰라.”


“뭔데?”


“들어. 일단 들으라고. 저 헌터, 우리 원형하고 아는 사이야. 우리 원형은 대단한 S급 헌터였던 거 같아. 저 헌터는 우리를 어디서 만들었는지도 알아냈어. 화도 많이 났어. 그게 일반적인 고위 헌터들의 반응일 거야.”


67호는 곧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상대는 자신들을 창조한 헌터관리지원실에 쳐들어가 뒤집어 엎을 수 있는 헌터였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데? 그럼 우리 다 망한 거 아니야?”


“들어! 저 헌터 지금 쫓기는 중이야. 누명을 뒤집어쓰고 있고, 그 누명을 풀으라고 헌터관리지원실에 압력을 넣기 위해 나를 데려갈 생각이야. 누명을 풀어주지 않으면 너희가 이런 애들을 만들었다, 하고 폭로해 버리겠다는 거지.”


44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얼마나 심한 누명이었으면 그러지?”


“응?”


“아니 그렇잖아. 우리 원형인 헌터가 그 시우라는 헌터보다 강한 거 같은데.”


“맞아. 우리 원형이 블루문 길드의 길드 마스터였데.”


“이런 미친.”


초대형 길드 하나를 통째로 적으로 돌릴 수도 있었다. 아니, 대한민국의 길드들이 개인적인 인맥과 절절한 친분으로 이어져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모든 대형 길드들을 적으로 돌릴 수도 있다.


“아무튼, 그런 상관?을 복제해 만든 생명채들을 만났는데 화는 안 내고 협조를 청한다고? 누명 때문에?”


44호의 지적에 43호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에게 화가 난 건 아닌 거 같아. 저 사람의 분노는 우리를 만든 사람들에게 향하고 있어...내가 이빨로 앙념을 좀 쳤지. 오히려 내가 그분을 닮았다고 말까지 놓으라고 하더라. 아무튼, 나는 저 사람 따라서 갈 거야. 이미 나수빈 연구원님과 헌터관리지원실의 계획은 몽땅 망한 거나 다름없어. 최대한 강해지는 것만 생각해. 그래야 도망이라도 칠 수 있어.”


잠깐, 하며 44호는 말을 끊었다. 위험하고 도전적이면서도 탄탄하던 인생 계획이 망했다는 걸 받아드릴 시간이 필요했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던전을 돌고 혈통에 따르는 마력적 자극을 받아, 차곡차곡 B급을 향하고 A급을 향하면 되는 게 전부가 아니게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좋아. 그럼 교관님들에게는 네가 죽었다고 말할게. 아, 만약에 네가 저 사람에게 끌려갔다가는 걸 알면 굳이 말할 것도 없겠지.”


정곡을 찌른 발언에 43호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그, 그래. 여기. 시우 헌터가 준 거야. 하루에 30분. 어디 있던지 서로 말할 수 있어. 던전 안에서도.”


44호는 가격을 생각하며 잠시 눈을 깜빡였다.


“이것도 서울 고급 아파트 한 채 가격은 가볍게 뛰어넘겠구만.”


아릿하게 중얼거린 44호는 눈인사를 건넸다.


“...그럼.”


셋은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직감했다. 섣부르고 위태로운 모험을 통해, 이미 배드 엔딩 루트를 타기 시작한 자신들의 미래를 바꿔놓아야 했다.


“이런 건 적성에 안 맞는데.”


67호가 불만스럽게 중얼거리며 악수를 건넸다. 탁, 선명한 감촉과 함께 생동감이 느껴졌다. 한때 고작 604 마력을 가지고 있던 가련한 클론이라고는 믿기 힘든 녀석이었다.


“함께해서 즐거웠다. 잠시 떨어지는 게 아쉽네. 꼭 다시 보자.”


거친 샤기 컷 은발 장발, 사나운 눈매 아래 음기가 맴도는 눈동자, 준수하고 중성적인 매력 있는 얼굴과 멋들어진 코, 꼭 닮았으면서도 다른 서로.


44호가 약간 떨리는 손으로 약수를 건넸다. 43호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양팔을 살포시 벌렸다. 44호는 만족스러운 고양이처럼 웃으며 43호의 가슴팍에 안겨들었다.


“꼭 돌아올게.”


43호는 44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해당화 꽃 핀 섬에서 살고 싶다 이야기하던 네 목소리를.


“그래. 우리 살아서 만나자.”


죽지만 마.


서로 그 말이 하고 싶었다는 걸 알수 있었다. 찬란한 순정과 낙엽빛 안쓰러움과 전우애에 가까운 짙은 애정이 연분홍빛 설램을 완전히 물들였다.


죽지만 마. 다시 얼굴 볼 그날까지 어떻게든 살아만 있는 거야. 같은 피, 같은 얼굴, 하지만 알아볼 수 있어. 앞으로도 살아가는 거야. 위대한 헌터의 복제품으로.


“그럼.”


43호는 짐을 주섬주섬 풀어 쓸만 한 도구들을 44호와 67호에게 건네주었다. 강시우 헌터가 밥은 주리라고 믿었다.


거의 빈 가방을 매고, 공동 바깥쪽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44호와 67호는 끝까지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선명하고 단순하지만 어려웠던 미래에 불투명함마저 덧씌워졌다. 43호는 자신들을 믿고 떠났으니, 자신들고 그를 믿어야 했다.


43호는 역시 끝까지 돌아보지 않았다. 레일 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오늘 알게 된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싶었지만,


눈을 감아 봐야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다.


왔어, 하며 강시우가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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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48화 +1 21.02.26 65 3 11쪽
47 47화 +1 21.02.25 69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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