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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룡 님의 서재입니다.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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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룡
작품등록일 :
2020.12.29 11:21
최근연재일 :
2021.06.03 19:00
연재수 :
1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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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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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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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9화

DUMMY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29화


야산은 헌터지원관리실에서 나온 요원들이 둘러쌓고 있었다. 아직 날이 어슴푸래한 새벽, 파리때 같은 기자들도 모여들지 않았다.


밴에서 내린 클론들은 처음으로 게이트를 직접 볼 수 있었다. 검은색과 보라색이 뒤섞여 혼탁하게 소용돌이치는 그 광경은 빈말로라도 아름답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훨씬 크다.”


44호가 압도된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43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 우리가 저 안으로.’


그러기 위해 태어난 거야.


아직 미숙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운이 좋으면 S급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는데, C급 정도로 우쭐한 마음이 드는 건 우스웠다.


잔여마력: 1023/1388

공격스킬

마법계 <열선> <교란전격> <경질화>

도검계 <역장도검> <오러 블레이드> <흡성검기> <반탄검기>

방어스킬

<육각미늘방패> <역장방패>

보조스킬

<신체부분변조> <신체강화>


눈동자를 우상단으로 돌리며 스킬들과 잔여 마력을 확인했다. 빨리 나를 휘둘러 달라는 듯이 힘이 들어간 스킬의 열들과 왕왕 울었다.


심장이 북처럼 뛰었다. 치기와 고양감이 기분 좋게 퍼졌다.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자꾸 기대가 됐다.


“교관들이 너희를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우리가 따라가는 이유는 감시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다. 탐사도 공략도 전투도 부산물 챙기는 것도 전부 너희 몫이다.”


67호의 눈동자가 상하좌우로 미친 듯이 굴러갔다. 그녀의 스킬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확인하고 있었다.


그 옆도, 그 옆도 다르지 않았다.


“가자.”


누구 한 명이 중얼거렸다. 곧이어 세 명에게, 다섯 명에게, 열 명에게, 그리고 모두에게로 번졌다.


순서가 왔을 때 43호는 게이트 안으로 천천히 손을 뻗어보았다. 진득한 감각과 함께 미묘한 온기와 저항이 느껴졌다.


후욱. 망설이지 않고 과감하게 한 걸음을 내딛었다.


“왔어?”


가장 먼저 들어와 있던 67호가 안쪽으로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던전의 입구는 넓직한 공동이었다. 옅은 주황색으로 빛나는 광석들이 벽과 바닥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광석의 빛 자체는 보잘 것 없었지만, 벽 전체에 깨알보다 작은 광석들이 빼곡해 그닥 어둡지는 않았다.


20명 클론들이 전부 들어오자 선임교관 엑스는 공동 안쪽의 길을 가리켰다.


“각자, 알아서, 원하는 동료와, 원하는 길로 출발하도록. 돌아오지 못하는 멍청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겠다.”


엑스를 뒤로 하고 클론들은 나아갔다. 43호는 황홀한 고양감과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두려움을 끌어안았다. 44호와 67호가 양 옆으로 붙어왔다.


“67호, 44호, 보스 탐나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솔직히 욕심이 안 난다면 거짓말이지. 근데 우리 셋이서는 잡기 힘들지 않을까?”


“잡을 때는 애들 불러야겠지? 근데 찾는 건 일단 우리끼리 찾자.”


스윽. 잠시 셋의 눈빛이 마주쳤다. 다른 클론들도 비슷한 눈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쪽으로 갈게.”


“그래라. 우리는 이쪽으로 갈게.”


몇 번의 갈림길을 스치며 클론들은 뿔뿔히 흩어졌다. 종유석과 막장, 날카로운 바위가 가득할 것 같았지만, 예상 외로 통로는 평탄하고 동글동글했다. 수천년 동안 사막의 모래바람에 깎인 바위 같았다.


“여기는 자연동굴형 던전인가 봐. 확실히 몬스터가 강하지는 않을 거 같아. 종류도 적을 거 같고.”


작은 동공을 지나치며 44호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발길에 채이는 무언가의 다리뼈를 아무렇게나 걷어찼다.


“그치? 몬스터 군단이 있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길 잃고 들어온 몬스터가 한두 마리 살 거 같은 느낌?”


“쯧, 간만에 좀 싸워 보다 했더니만.”


67호가 궁시렁거리며 손가락 하나를 경화시켜 벽에 대고 슥 그었다. 곡선을 그리는 사암 벽이 부드럽게 패였다.


“생각했던 거랑은 다르네. 더럽고 축축하고 무시무시한 몬스터가 득실거릴 거 같았는데, 그냥 이런 던전도 있는 걸까?”


출발한 지 세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마주친 몬스터라고는 사람만 한 지네 한두 마리 정도였다. 몬스터라고 부르기도 민망했다. 곤충 마니아들이 6자 아크릴 사육장에 넣고 키울 것 같았다.


67호가 혀를 찼다. “썅! 그러게. 좀 몬스터 인구율이 높은 던전을 찾아주면 어디가 좀 덧나나. 어 시바 저기 뭐 하나 또 온다.”


몸 길이가 3미터쯤 되 보이는 지네였다. 넓이는 두 뼘 쯤 되 보였고, 갑각도 단단해 보였다.


“장난하냐?”


43호는 웃기지 말라는 듯이 열선을 갈겼다. 기대하던 게이트가 이런 곳이었다니. 산타가 양말 안에 양말을 넣어 놓고 간 것마냥 허탈했다. 퍽, 지네의 허리가 두 토막 나고, 다리가 한동안 바르작거리더니 축 늘어졌다.


“아무리 별 던전이 다 있다고는 해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차라리 한 두 달 정도 기다린 다음에 게이트 브레이크 터졌을 때 입구 앞에서 기관총 한두 자루만 가져다 놔도 다 쓸어버릴 수 있겠다.”


67호가 망연자실하며 44호의 지도를 들어다보았다.


“우리 그냥 칼로리 바나 까먹다 적당한 공동에서 대련하다 돌아갈래? 이딴 던전의 보스라고 해 봐야 아무것도 아닐 거..기 뭐야?”


모퉁이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뭔가 보행 생물의 전조였다. 소리가 아주 빠르게 교차되는 게, 달리고 있는 듯했다.


“나도 열선 한번 쏴 볼래.”


세 시간째 지도만 그러던 44호가 팬을 내려놓았다. 허공에 열선 구 두 개를 띄웠다.


“다리 긴 지네 아니야?”


“제발 그런 건 아니면 좋겠다.”


지네라는 말만 들어도 짜증이 났다.


잠시 후 그것이 모퉁이를 돌아왔다. 44호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시발. 저게 뭐야.”


통로를 막아버릴 듯한 덩치의 개미였다. 거대한 개미가 찌르륵, 하고 울었다.


라운드 실드만큼 거대한 머리, 곤충형 몬스터 특유의 절단기 같은 톱니, 육중한 몸에 비하면 얇지만, 그대로 사람 팔뚝보다 굵은 갑각 다리, 단번에 자동차 유리창을 찢어버릴 수 있을 만큼 뾰족한 발톱까지.


“시이익!”


개미가 울부짖으며 턱을 옆으로 벌렸다. 배 뒤에서는 연녹색 연기와 아릿한 냄새가 났다.


“저거...”


“응. 산성액 같은 걸 마구 뿜을 거 같지? 역장 준비해둘게.”


43호는 눈치 빠르게 스킬을 준비했다. 당장이라도 통로를 틀어막을 수 있는 역장 방패가 시야에서 점멸했다.


44호는 이미 만들어놓은 열선을 해방했다. 개미의 양쪽 눈을 푸른 빛이 강타했고, 깔끔하게 뚫고 지나갔다.


부르르, 거대 개미가 몸을 떨더니 여섯 개의 무릎을 털썩 꿇었다.


“저기서는 뭐 좀 나오려나?”


67호가 후다닥 달려 나갔다. 몇 시간 만에 만난 몬스터다운 몬스터에 기대감이 넘쳤다.


“야, 야, 이거 되게 딱딱해. 앞으로도 열선으로는 눈 같은 데만 맞추는 게 좋을 거 같아.”


67호가 경화된 손가락으로 시체를 갈갈이 찢었다. 총알도 막아낼 갑각이 우드득 뜯겨 나가고 하얀 근육과 힘줄을 드러냈다.


“이거 게 살 하고 비슷해 보이는데, 구워 먹으면 맛있을까?”


앞 다리를 뜯어든 67호가 가슴 딱지를 악력으로 부쉈다. 으직 하며 하얀 액체가 튀고 그다지 묘사하기 싫은 것들이 줄줄 흘러나왔다.


“마석이다.”


43호는 가까이 다가가 마석을 들여다보았다. 섬에서 마수와 싸웠을 때도 마석을 뽑아야 했지만, 그때는 구멍 뚫린 옆구리 탓에 정신이 없어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67호가 아니었다면 걸어 나오지도 못했겠지.


“예쁘다. 뼈에 보석이 잔뜩 박혀있는 거 같아. 의외다. 기괴할 줄 알았는데.”


“67호. 무거우니까 이건 내가 들게.”


44호가 생글생글 웃으며 마석을 집어 들었다. 손을 터느라 바쁜 67호가 대답하기 전에 빨리 가방에 집어넣었다. 반짝반짝하고 은은한 게 딱 마음에 들었다.


“이 녀석은 몇급 정도 됐으려나?”


43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물음을 44호가 답했다.


“한 E급 중상급? 제대로 된 녀석은 아직 나오지도 않은 거 같아. 이 던전 공략하는 데 3일도 넘게 걸린다는데, 이제 우리 한 세 시간 왔잖아.”


“공략이라는 건 생각보다 지루하구만.”


67호는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목숨이 오가는 짜릿한 전장을 기대했는데.”


“그런 소리 하지 마.”


늘 67호의 잔혹한 눈매 아래서 입 다물던 44호였지만, 저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네가 우리 중에, 제일 세잖아. 네가 재미있을 정도면, 우린 다 죽을 수도 있어. 그런 말은 하지 말아줘.”


잠시 눈이 마주쳤다. 43호는 두 여자의 기싸움을 지켜보았다. 한 쪽은 담담했고, 한 쪽은 강렬했다.


그리고 언제나 더 절실한 쪽이 뭔가를 얻어냈다. 별 생각 없이 지껄였던 67호가 먼저 눈을 돌렸다.


“알았어. 미안. 쉴 만큼 쉬었지? 다시 출발하자.”


67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걸었다. 옅은 마음, 얕은 마음,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으로 그녀는 원한을 빠르게 잊어 나갔다.


43호는 44호의 미미하게 떨리는 손끝을 잡았다. 44호가 배시시 웃으며 43호를 올려다보았다. 고혹적인 눈매와 뽀얀 뺨에 눈길이 갔다.


쿵, 전투망치로 심장을 얻어맞은 것처럼 아찔했다. 던전에 들어올 때와는 또 다른 설램과 두려움이 진득하게 몸을 감쌌다.


“그, 아, 저기, 부, 불편했,”


이게 뭐 하는 소리냐?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같은 이불을 덮고 노닥거리던 사이가 아니었냐? 43호는 눈치 없는 입을 앙 다물었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세상 씨발!!! 이게 뭐야!”


다행히도 아직 둘이 어색해져야 할 순간은 아니었다. 통로를 뒤흔드는 67호의 고함 소리에 44호와 43호는 얼굴을 한 번 마주보고 후다닥 달려 나갔다.


‘다행이다.’


곧 아무 생각도 안 날 테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까지도 잊어버릴 수 있을 테니.


“뭔데?”


“무슨 일이야?으아아아아아악!!”


67호가 모퉁이 너머 뿌리를 내린 것처럼 서서 앞에 펄쳐진 광경을 손가락질했다. 43호와 44호는 그곳을 바라보며 입을 쩍 벌리고 손끝을 부들부들 떨었다.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무심코 물러섰다.


“야, 이거.”


거대한 통로 하나가 개미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적어도 서른 마리는 되 보였다. 라운드 실드만큼 거대한 대가리는 클론들의 눈높이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 개미 한 마리 한 마리가 중형차보다 거대한 체구를 자랑했다.


“시이이이이이이익!!”


이미 적당히 도망치는 걸로 무마될 상황은 지났는지, 개미들이 분노에 차 울부짖었다. 67호의 소맷자락에는 앞서 온 개미의 체액이 묻어 있었다.


43호는 손바닥 안에 열선을 모으며 상태창을 확인했다. 좀 더 꼼꼼한 성격이었다면 개미들에게 <분노> <광폭화> 상태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성> <마력제어>가 하락하는 대신 <체력> <근력>이 증가합니다. 뭐 이런 메시지가 뜨지 않았을까? 그런 시답잖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개미가 거대한 턱을 들이밀었다. 44호의 머리통 따위야 수박처럼 깨부수고도 남을 힘이었다. 절단기 같은 이들이 맞물리며 끔찍한 소리가 났다.


44호는 67호의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참 운이 좋아. C급 신체강화계 헌터였으면 여기서 위험했을걸?”


저 사이에 들어가서 칼질하고 싶지 않아. 원거리 공격이라는 게 얼마나 좋은지.


파앗. 일곱 개의 푸른 구가 허공에 떠올랐다. 은은한 주황빛으로 촛불처럼 빛나던 던전을 차가운 푸른빛이 덮었다.


“시이이익!” 개미 하나가 뒷걸음질쳤다. 똑똑한 놈이었다. 지휘관 개미의 입장에서는 비겁한 놈이었다. 멀령 페로몬을 뒤집어쓴 개미의 더듬이가 빳빳하게 곧두서고, 중전차처럼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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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화 +1 21.02.15 7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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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7화 +1 21.02.11 7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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