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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연체는 처음이지?

다른 세상을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초 지침서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샛가람
작품등록일 :
2017.11.16 19:28
최근연재일 :
2018.12.14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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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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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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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01. 용오름

DUMMY

우리 형제가 살고 있는 강원도 설악산 기슭에 자리한 감흙말의 겨울은 다른 곳과는 사뭇 달랐다. 우선 해발 2,110m 정도에 위치한 곳이므로 다른 곳보다 겨울이 빨리 찾아왔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사는 이들이 한창 가을의 정취를 느끼고 있을 10월이면 겨울 준비를 시작했다. 도시와 달리 아직도 과거의 온돌식 난방을 사용하는 집들이 대부분이라 겨울을 보내려면 많은 나무가 필요한데, 이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서 나무는 근처에 널려있으니 찾을 필요도 없었다. 다만 그것을 얻는 것이 문제였다. 그것은 아직도 이 세상은 인간에게 친절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이들이 산과 숲이 무서워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처럼 산 속으로 들어가 귀한 약초를 캐서 살아가는 사람도 존재하는 법이다.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하게 바구니와 호미를 챙겨 산으로 나섰고, 점심 때 쯤이 되어서야 마을로 들어오고 있던 참이었다.

바구니가 제법 묵직한 것이 기분이 좋아졌다. 향긋한 약초 내음과 마을 전체에 깔린 성큼 다가온 겨울 냄새를 맡으며 걷고 있었는데, 마을 한복판에 위치한 잔치나무 아래에 두껍게 옷을 껴입은 제법 많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젯밤에 범이 호식이네 아범을 물었다네.”

지금처럼 약초를 뜯어 가방에 가득 담아 집에 올라가다 보면 가끔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 중 하나였다. 마을 어르신들은 간밤에 있었던 소식들을 풀어내며 서로가 조심하자고 다짐하고는 각자 집으로 흩어지는 것이 오전 일과 중 하나였다.

아직도 산 속에는 예로부터 산군님이라 부른 호랑이가 심심치 않게 보였고, 그 외에도 사람들에게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는 늑대, 여우, 멧돼지, 그리고 곰의 흔적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들보다도 사람들에게 더욱 큰 위험이 되는 존재는 따로 있었는데,

“소식 들었는감? 전에 왔던 장사치들에게서 들은 건데, 경상도에서 제법 큰 ‘마물(魔物)’들의 움직임이 있었다고 하던데.”

그것은 바로 마물의 존재였다. 일단은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기에 한 달에 한 번, 이곳의 안전을 위해 정기적으로 들르는 군인들과 함께 보부상들이 방문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생필품 따위를 우리 마을에 내놓았는데, 마을 사람들은 밖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희귀한 약제와 여러 동물의 모피로 그것을 교환해 얻었다. 또한 그들은 이 마을이 아직 세상과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았음을 일깨워 주는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마을 사람들 중 한 명이 또 그들에게 세상 소식을 주워들은 것이었다.

“마물이라니! 아이고 끔찍해라······.”

그럼 어김없이 마음 약한 아주머니 한 분의 탄성이 흘러나왔고, 이야기를 풀어낸 이는 그 반응에 기꺼워하며 꺼낸 말을 이어 붙였다.

“그 괴상한 것들이 남쪽의 부산진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 하였단 말이지.”

어르신들은 그것들을 그냥 괴상한 것으로 뭉뚱그려 표현했다. 마물들은 제법 많은 종이 존재했고, 그 생긴 것과 능력도 천차만별이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공통점이 그들에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본능에 깊게 박힌 인간에 대한 증오와 폭력성이었다.

“정말 그것들만 없었어도 인류가 100년은 더 발전했을 것이라던데 말이야. 도대체 하늘님은 왜 저런 것들을 이 세상에 던져두셨나.”

“그러게 말이야. 어이쿠, 거기 윤 선생!”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던 것을 잠깐 듣던 중에 누군가가 내가 멀뚱히 서있는 것을 보고는 잽싸게 불렀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마을 사람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좋은 아침입니다.”

나는 다가가면서 어깨와 무릎에 묻은 흙먼지들을 우선 털었다.

“아이고, 윤 선생! 오랜만이야? 요즘 통 집에서 나오질 않던데 말이야.”

‘윤 선생’이라는 것은 나를 부르는 칭호였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 마을에서 조금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별난 인물로 통했다. 처음 감흙말로 들어왔을 때, 몸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병원까지 가기가 힘든 이들을 보고 치료해 주었더니 마을 사람들은 결국 나를 윤 선생이라 부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진짜 의사는 따로 있었는데도 말이다.

“한동안 일이 바빠서 집에 갇혀서 일만 했습니다.”

나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와 마주 본 중년 남성은 흰머리가 수줍게 피어올라 점점 머리색을 물들여 가고 있었는데, 바로 이곳 근처에서 혼자 살고 있는 광 씨 아저씨였다. 그는 원래 서울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교사였는데, 개인 사정으로 인하여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인물이었다. 지금은 마을의 몇 안 되는 어린 아이들을 맡아 기초 학문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살고 있었다.

“저번에 준 약은 잘 먹고 있네.”

아저씨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의 옆에는 나이가 지긋이 든 할아버지 한 분이 서 계셨는데, 촌장인 백 할아버지였다. 예전에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아 그냥 ‘촌장 할아버지’라고 불렀던 것이 입에 붙어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촌장 할아버지께서도 건강해 보이시네요.”

인사차 묻자 할아버지께서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셨다.

“아무렴! 그렇게 효과가 좋은 약은 처음이야.”

근처에 나는 약초들 중 좋은 것들만 골라서 만든 비약이었으니, 그 효과는 엄청났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말에 모인 사람들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약효가 좋다는 내용의 맞장구를 쳐줬다.

서로 안부를 묻고, 새로운 약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으며 오랜만에 기쁘게 떠들었다. 최근에는 집에서 약을 만들고 연구에만 집중하여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가 적었는데, 사람은 이렇게 교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오늘도 집에 틀어박힐 건가?”

이제 이야기가 다 정리되어가는 찰나, 지금까지 웃으면서 이야기를 듣고만 계시던 촌장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말문을 여셨다.

“그럴 예정이에요. 아직 만들던 약이 하나 남았어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무언가를 망설이는 것 같은 자세에 얼굴에는 보통 때와는 다른 미안한 미소가 피어 올라있는 것이 무언가 부탁이 있는 모양이었다.

“무언가 부탁할 것이라도 있으신가요?”

“아이고, 이거 속일 수가 없네.”

결국 할아버지께서 미안한 표정을 얼굴 위로 더욱 크게 드러내며 말을 이어갔다.

“사실 마을 남쪽 입구 쪽 개천에 요새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더구나. 가끔 사냥을 떠나는 사람들이 곳곳에 동물들의 사체가 즐비하다고 전해줬단다.”

남쪽 하천은 작은 골짜기 속에 자리 잡은 우리 마을의 경계가 되는 지점이었고, 그곳에 있는 돌다리 하나를 넘어가면 곧장 설악산 산기슭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마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적어도 저곳만은 넘어가지 말라며 매일 반복적으로 주지시키고는 했다.

“그래요? 2일 전에 저희 두 형님들이 왔을 때 이야기를 좀 꺼내보시지 그러셨어요. 형님들이면 저보다 빨리 해결 했을 걸요.”

아무래도 이 근방에서 흐르는 개천들 중 가장 크기 때문에 산 속 동물들과 일부 마물들도 이곳을 방문해 물을 마시고는 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그렇게 물을 마시러 온 놈들을 노린 사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물이나 호랑이가 사냥하고 남은 사체들 아니에요?”

내 말에 누군가 대답했다.

“아니야! 우리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동물들 피만 쏙 빼갔다니까?”

“피를 빼가요?”

내가 되묻자 광 씨 아저씨가 이번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받았다.

“그렇다네. 피만 쏙 빼갔더라고. 처음에는 흡혈귀가 나타난 것이 아니냐며 자네한테 부탁하려고 했는데 마침 자네 형제들이 나서서 조사해 주겠다고 해서 아무 말 하지 않았던 거야.”

그는 잠깐 숨을 고르더니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자네 첫째 형이 어떤 마법을 부렸더니 한동안 잠잠하다가 며칠 전부터 또 말썽이네 그려.”

“결계가 효과가 없지는 않았네요.”

형들이 몸이 상대적으로 개별 전투 능력이 떨어지는 나를 걱정하여 알리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결계는 일시적이지만 강한 것으로 설치해 다음 방문 때까지 버티는 것이 목적인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바구니를 들지 않은 손으로 보드라운 턱을 쓰다듬다가 어르신들에게 대답했다.

“그럼 이번에는 제가 나서볼게요. 큰형이 설치한 결계가 이렇게 빨리 사라질 리가 없어요. 고작 2일이잖아요? 어떤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해요.”

“우리야 그렇게만 해주면 고맙지! 내가 답례로 집에 묵혀둔 장아찌랑 소고기를 좀 가지고 가마.”

광 씨 아저씨가 화색하며 대답했다. 마침 고기가 먹고 싶었는데 이렇게 공짜 고기를 얻게 되다니,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집은 마을 제일 끝자락, 그러니까 산골짜기 가장 깊숙한 곳에 있었다. 이곳에는 빈 사당이 있었는데 주인이 누군지 밝힐 수 없어 큰형이 간단하게 제사를 지내고 사당을 허물었었다. 그러고 나서 마법을 이용해 고작 1시간 만에 지어낸 집이었다. 처음 마을 사람들이 우리 집이 지어지는 것을 보고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났다.

그렇게 만들어진 집은 파란색 지붕을 가진 평범한 2층 주택이었다. 건축에 대한 지식이 일천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집을 만들어 낼 수 있음에 우리 4형제 중 세 명은 가진 뛰어난 마법 실력에 대해 감사해 했다. 그렇게 우리 형제는 이곳에서 약 6년을 살아왔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 직업과 학교를 이유로 떠나가고 이제 이곳에는 나 혼자 남게 되었다.

형들과 동생이 쓰던 방은 그대로 남겨두었고 방이 부족하면 지하에 마법을 이용해 공간을 더 만들어 방을 확장하는 식으로 사용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지하는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창고가 되어 직접 만들어낸 나를 제외하면 누구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제일 많이 가는 곳은 약초를 넣어두는 방인데, 선반이 성벽처럼 벽을 따라 늘어선 곳이었다. 선반 위에는 약초나 약초를 이용한 혼합물, 혹은 완성된 약품이 담겨진 병이 예쁘게 쌓여있었다. 그 방에는 약을 만드는 시설도 되어 있는데, 한동안 방 중앙에 피워진 화덕에서는 불이 끊이지 않았고 그 위에 올려놓은 커다란 검은 가마솥은 신비로운 보라색 연기를 허공으로 뿜어내고 있었으며 가마솥 안에 담긴 검은 국자는 아무도 없는데 스스로 허공에서 몸을 움직이며 안에 담긴 것을 젖고 있는 중이었다.

“조금만 하면 완성인데 말이지.”

혼잣말을 하며 가마솥으로 다가갔다. 안에는 보라색 연기를 피워 올리는 파란색 액체가 가득 담겨져 있었다. 근 1달 동안 매달려 만든 약은 국자의 움직임에 맞춰 천천히 반시계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둘째 형의 요청으로 만들기 시작한 약이었는데, 병원에 이번에 새로 들어온 환자가 일반적인 약으로 치료하기는 무척이나 어렵다며 나에게 특별히 부탁한 것이었다. 제작자의 마력을 상당히 많이 요구하기에 꽤 까다로운 약으로 분류되는 약물이었다.

천천히 끓고 있는 약 위로 한 손을 올리고 거기에 마력을 쏟아 부었다. 초록빛이 일렁거리며 가마솥 안으로 퍼져나갔다. 그 모습이 마치 새벽녘 땅을 타고 퍼져나가는 안개처럼 보였다.

이렇게 약을 만드는 작업이 끝나고 보관한 약초들의 상태를 한 번 확인하면 오전 일과는 끝난다. 평소라면 지금부터 책을 읽던지 아님 주문이 들어온 물건을 만드는데 오늘은 마을 사람들의 요청이 들어왔으니 그걸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했다.

지하실 계단을 타고 올라오면 곧장 1층 복도로 향할 수 있었는데 복도 한쪽 끝은 현관으로 연결됐고, 반대쪽 끝은 2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이 놓여 있었다. 지하실로 통하는 계단은 1층 복도 한 가운데 있었다. 복도 벽에는 첫째 형과 막내가 직접 액자를 어디선가 구해와 사진을 잔뜩 걸어두었다. 덕분에 삭막해 보이던 것이 많이 좋아졌다.

현관에 걸린 모자가 달린 새하얀 코트를 챙겨 들고 검은색 신발을 신었다. 요즘 유행이라며 며칠 전에 둘째 형이 마을에 들어오며 사준 신발이었다.

곧장 문을 열고 하얀색 나무 울타리를 지나 작게 난 길을 따라 마을을 향해 가볍게 걸어 내려갔다. 집 뒤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머리칼을 휘감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 집이 있는 큰 언덕 아래로 크고 작은 집들이 모여 있는 것이 오늘처럼 장난감같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사실 우리 형제는 부모님이 사고를 당하신 후, 곧장 충청도에 있던 집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가 살고 있었다. 둘째 형이 서울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던 시절이기도 했고, 큰형은 그곳에서 군 생활을 했었으며, 나는 그곳에서 의뢰를 맡아 해결하던 때였다. 벌이가 나쁘지 않았으나 몸이 무척이나 고되었고, 때때로 나와 큰형은 다치기도 했었다. 당시 막내는 어리기에 우리가 어떤 일을 했는지 잘 몰랐으나(물론 지금은 잘 알고 있다.), 다칠 때마다 밖에 나가지 말라며 크게 울었었다.

그러다가 내가 임무 중 크게 다치는 일이 생기고 난 후, 큰형은 더 이상 안 되겠다며 지금의 마을로 거처를 옮기기로 결정했었다. 그렇게 집을 옮기며 다시는 의뢰를 받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집에서 약이나 마법 물품들을 만들며 지내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요청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을 수도 없지 않은가. 결국 이렇게 형들이 없는 때에는 내가 직접 나서서 마을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주기도 했다. 물론 지금까진 모두가 간단하고 위험하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에 형들은 이런 것까지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

게다가 신기한 것은 산세가 험하기로 소문났고 꽤 강력한 마물과 맹수들이 가득한 설악산이지만 이곳 감흙말에는 쉬이 들어오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큰형은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았는지, 무척이나 신기한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마을 중심부를 지나 원인이 있다던 마을 남쪽 경계까지 내려왔다.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 뒀다던 둑과 그 아래로 흐르는 계곡물 그리고 그 위를 지나는 작은 다리 하나. 차가운 소리를 내며 빠르게 흘러내려가는 계곡물은 겨울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바위에 부딪힐 때마다 들리는 경쾌한 소리에 괜히 몸이 들뜬다.

동물과 마물 사체들이 가득하다고 했는데 그것들은 어느새 치워버리신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런 것들이 있게 된다면 다른 놈들을 끌어들이기 십상이니 말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제법 돈이 되기도 했다.

다리 위를 걷다가 중간에 멈춰 서서 잠깐 계곡 물을 바라보았다. 별다른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아, 그런데 물고기가 이렇게 없던가? 자세히 바라보니 그 흔한 피라미도 보이지 않았다.

“생명체 식별 마법의 주문식이 어떻게 되더라.”

마력을 원형으로 배열하고 했었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손을 살짝 흔들자 눈앞에 녹색으로 된 원이 빛을 뿜었다.

마법은 마력과 그것으로 이루어지는 특정 법칙에 따른 주문식, 그리고 본인의 의지나 때때로 필요하다면 주문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라도 빠지면 마법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억이 안 나네.”

주문식은 어떤 마법을 시행하기 위한 마력을 배열하는 규칙을 정해놓은 것이다. 시대가 흘러가며 대부분 수학적 공식으로 처리되었고, 수학적 공식으로 치환하기 힘든 고대의 마법들은 예전의 체계인 언어나 기호를 사용하는 것을 유지했다.

반짝이던 원이 내가 손을 가볍게 휘두르니 연기처럼 사라졌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을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지.

“거기! 윤 선생!”

다른 마법을 고민하던 찰나에 누군가 뒤에서 부르는 것이 들렸다. 광 씨 아저씨였다. 가까이에서 보니 벗겨진 윗머리에서 땀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 뛰어온 것인지 숨을 몰아쉬며 얼굴을 찌푸리고 있어서 평소보다 더욱 늙어 보이셨다는 것은 덤이다.

“무슨 일이세요?”

손가락을 튕겨 바람을 불러냈다.

“아이고, 좀 살 것 같구나.”

아저씨는 웃으면서 숨을 고르고는 다시 입을 열어 말을 하셨다.

“그러고 보니 호식이네 아범이 범한테 물렸다는 것을 이야기 안 했더라고.”

광 씨 아저씨는 코를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근 두 달 동안만 해도 벌써 다섯 번째야. 그 중 두 명은 뒷산에 묻혔고. 멧돼지들이 난리를 치는 것도 있고 말이야. 요즘 따라 난리도 아니란 말이지.”

그러고 보니 최근 짐승들이 난리를 치기는 했다. 그것 때문에 마을 사람들 걱정이 치솟아서 한동안 마을 주위에 결계를 설치한다고 첫째 형과 바쁘게 돌아다녔었다.

“윤 선생 식구들이 뭔가 해줘도 잠깐이지 곧바로 일이 일어난단 말이야?”

설치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문제는 이상하게 결계를 이루는 힘이 비틀려서 결계 마법이 얼마 안 가서 사라진 다는 것에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결계 마법학이 전공인 큰형이 집에서 큰 소리로 외쳤더랬다.

“고작 이런 것에 굴한다면 마도사라는 이름이 울지. 내가 다시 해보마.”

그리고는 뭔가를 조사하며 노트에 받아 적더니 다음에 돌아 올 때는 다를 것이라며 직장이 있는 서울로 훌쩍 떠나버렸다.

“그, 왕립 연구소 연구원이라던 윤 선생 첫째 형도 힘들어 하는 것을 보니 뭔가 심상치는 않은가봐.”

아저씨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럴 리가요. 큰형님이 무언가를 해보시겠다고 했으니 다음번에는 다를 겁니다. 걱정 마시고 기다리세요. 제가 최대한 결계를 다시 수리해볼게요.”

“그래, 그래. 그래주면 고맙지.”

큰형은 뭔가를 하겠다고 하면 어떤 결과물을 항상 만들어 내던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마을 사람들의 걱정과 불안, 그리고 잠재된 재난에 대한 위험성은 마을에 남은 우리들의 몫이었다.

“그래, 뭔가 알아냈어?”

내가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만 있자 아저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지금 한 번 알아보려던 참이었죠. 잠깐 뒤로 물러나 주시겠어요?”

“오, 그럼!”

충분히 뒤로 물러나신 것을 확인하자마자 마력을 잠깐 풀어냈다. 물이 가득 담긴 호수의 댐에서 조금씩 뽑아내는 기분으로······. 곧이어 내 주위에 초록색 바람이 넘실거렸다. 바람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나에게서 뿜어져 나온 마력은 매우 가느다란 실로 엮여서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이제 이 마력을 넓게 퍼뜨리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퍼뜨린 마력이 나대신 자신이 스쳐지나가는 모든 것에 대한 정보를 전해줄 것이다.

본래 마법식을 이용하면 간단하게 마법을 실행할 수 있지만, 그것을 잘 모르는 경우 이렇게 무식한 방법으로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러한 방법들은 모두가 어마어마한 난이도를 요구했고, 일반적인 마법사들은 실행하기 힘들었다.


작가의말

1) Remake를 합니다. 부디 즐겁게 감상해 주세요 :)

2) 설정집은 서재로 들어오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3) 아마 주 1~2회 연재를 할 것 같아요.

4) 글 초반부에 있는 2,110m는 오류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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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1. 용오름 18.12.12 68 1 19쪽
» 01. 용오름 18.11.21 140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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