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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가위 님의 서재입니다.

여동생에게서 오빠같은 아싸로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희망의가위
작품등록일 :
2023.02.06 18:49
최근연재일 :
2023.02.16 18:16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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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0
글자수 :
45,081

작성
23.02.15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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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9회

DUMMY

"들어간다?"


"어? 어. 그래. 들어와."


주애는 사과를 깎아 담아놓은 접시를 들고 안으로 들어온다.


이 녀석은 사과도 잘 자르네. 못 하는 게 없구만. 나는 나 혼자서 먹을 수 있는 과일이라고는 귤밖에 없는데.


근데 무슨 엄마도 아니고 이런 걸 내오냐. 그것도 내 친구가 놀러 온 것도 아니고 자기가 자기 친구를 데려온 상황이잖아.


으음. 아마도 이건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첫째. 다짜고짜 이런 상황을 내게 밀어붙인 것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자그마한 사과의 표시로서 사과를 준비했다.


둘째. 코뮤증 두 명이서 제대로 대화나 하고 있을까 불안해서 염탐해봤다.


어느 쪽이든 간에···고맙네. 나는 주애 친구가 놀러 오면 과일을 가져오긴커녕 방에 틀어박혀 있을 뿐이니까.


주애는 우리 둘 사이에 막 어색하고 도망치고 싶은 분위기가 흐르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는지 마음이 놓인 것 같았다.


"천천히 놀다가."


"어, 응. 네. 알았어."


예상대로 이 녀석도 여자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는 모양이군. 심하게 어색해하는 걸 지켜보면서 의도치않게 내 경험이 오버랩된다.


주애가 나가고서 우리는 잠시 말없이 사과를 우적우적 먹기 시작했다. 음. 오랜만에 먹으니까 맛있군.


갑작스러운 주애의 등장으로 대화가 한 번 끊기고, 사과를 먹으면서 공백이 지속되자···자연스럽게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애매해져서 대화가 한 번 리셋되고 말았다.


대화 스킬이 워낙 부족한 우리로서는 이렇게 대화가 리셋되어버리면 다음 대화를 이어가기가 무지하게 어렵다.


게다가 둘 다 대화를 리드한다는 경험도 발상도 없는 터라, 한 번 대화가 끊기면 다른 사람이 먼저 말하겠지 하고 서로 눈치만 보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다!







"어, 근데. 너 원래 주애랑 알던 사이었냐? 아. 같은 반이라고 했던가?"


그래도 연상이고, 집주인이라는 부담 같은 것도 더해져 압박감이 더 심했을 내가 억지로 대화거리를 쥐어짜 낼 수밖에 없었다.


"네. 물론 평소에 대화를 자주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죠. 아. 그렇다고 완전히 교류가 없는 건 아니에요. 만날 때마다 가끔 인사도 해주는 사이니까."


내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마치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하는 것 같았다.


"즉, 완전 남남이었다는 거잖아?"


"아니, 무슨 소리! 나한테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니까요? 그건 어느 정도의 마음이···."


"그냥 누구한테나 친절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녀석이라서 그런 거뿐이야. 너, 갸루가 오타쿠에게 친절하다는 설정의 갸루 망상 판타지 만화 같은 거 좋아하지?"


"아니, 뭐 좋아하긴 하지만 그런 거랑은 좀 다르죠? 그녀는 갸루도 아니고."


"어쨌든 널 혐오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제대로 된 대화는 주고받은 적이 없었던 사이잖아? 그런데 갑자기 자기 집에 오라고 초청을 했는데,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냐?"


"이상하다고요? 그게 뭐가 이상한 일이죠?"


"아니, 솔직히 엄청나게 부담되는 일이잖아?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애가 집에 같이 가자고 권유하다니···우리 같은 아싸에게는 너무나도 힘든 이벤트라고? 도망치고 싶은 게 정상이지?"


"어허. 그게 아니죠. 그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요."


뭔 소리야? 이 녀석. 혹시 본인은 자신을 인싸라고 생각하는 건가?


"미안한데.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으니까 알아듣게 좀 말해봐."


"알았어요. 하나하나 설명해 드리죠."


그는 자신으로서는 당연한 걸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귀찮은듯하면서도 누군가한테 자랑하고 싶었는지 적극적으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평소와 다름 없이 쉬는 시간에 라이트 노벨을 열심히 정독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주애찡이 제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지 뭡니까? 그땐 그냥 지나쳐가려나보다 하고 별생각 없이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웬일인지 그녀가 제 앞에 멈춰 서더군요. 그리고 제가 보고 있는 책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더니. '윤석아. 그거 라이트 노벨이지?'라고 말했을 땐 정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죠."


"하긴, 리얼충 여자애가 라이트 노벨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적인 일이겠지."


아마 내가 며칠 전에 14세와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책을 주애에게 건넸기 때문일 것이다.


라이트 노벨이란 게 보통 책이랑은 확연히 다르게 생겼으니까.


만화 같은 표지. 작은 사이즈. 다소 얇은 두께. 그런 특징들이 있기 때문에 알아본 게 아닌가 싶군.


그리고···주애는 이 녀석을 <나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니 더 그랬을 테고.


"그러더니 나한테만 들리게 은밀하게 속삭이는 겁니다. '오늘 수업 끝나고 우리 집에 오지 않을래?' 그때 퍼뜩 생각이 들었죠. 왔다!!!"


"뭐가 와!?"


"그 왜 있잖습니까. 인기 없는 오타쿠 남자에게 '초인기 리얼충 여자애지만, 사실은 오타쿠 문화에 관심이 왕성한 여자애'가 갑자기 급호감을 보이는 이야기.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죠. 나한테도 드디어 라이트 노벨 주인공 플래그가 섰구나!"


"얼씨구."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으로 오는 길에 우리 집에 들러서 옷도 갈아입고 왔습니다. 속옷까지."


"어우···씨. 기분 나빠 죽겠네."


TMI도 정도가 있다.


"그런데 말이죠. 여기 도착하기 직전에 갑자기 그녀가 '집에 오빠가 있을 거다.'라고 말하면서 단둘 플래그가 깨졌고. '윤석이는 오빠랑 마음이 잘 맞을 것 같아.'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는 겁니다."


뭐, 거기까지 와서 되돌아가는 것은 코뮤증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때 제 심정이 어땠는지 짐작이나 할 수 있으신지? 현실은 라이트 노벨보다 잔인하다는 거로군요."


"애초에 라이트 노벨이란 건 100% 현실 도피잖아? 그런데 현실보다 잔인한 라이트 노벨 따위 누가 보겠냐?"


뭔가 측은하게 생각되려는 찰나, 그 녀석은 돌연 태도를 바꿔 잘난듯한 태도로 말한다.


"뭐.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인생에 3차원 여자 따윈 필요 없죠."


"이제 와서 갑자기 웬 센 척이야? 옷까지 갈아입고 온 주제에."


"어찌 보면 이건 3차원에 한눈을 판 제게 내려진 일종의 시련 같은 거라고 할 수 있겠죠. 이렇게 점점 더 3차원에서 멀어지고 2차원의 훌륭함을 깨닫게 되는 거죠. 형님이라면 이해하시겠죠? 제 마음을."


갑자기 왜 나를 끼워넣으려는 거야?


"나는 딱히 3차원 부정파가 아닌데?"


"네? 뭐라고요!?"


"나도 뭐 결혼이나 연애에는 관심이 없지만. 2차원이라도 나쁜 여자는 싫고, 3차원이라도 좋은 여자라면 오케이···라는 느낌?"


"그, 그럴 수가···!"


녀석은 진심으로 충격을 받은 듯했다.


"형님! 3차원에 속지 마세요! 그들은 결국 언젠가 형님을 크게 배신할 거라고요!"


"그렇게 3차원이 싫은데 3차원 여자애의 부름을 받아서 여기까지 온 건 뭐냐?"


"그건! 라노베 플래그라고 생각해서···어쩌면 현실이 라노베속 세상일 수도 있으니까···하지만, 결국 제 착각일 뿐이었습니다!"


뭔가 횡설수설하는데 그냥 그거 아니야? 그 이솝 우화의 여우와 포도 이야기.


여우 한 마리가, 자기가 먹지 못할 만큼 까마득히 위에 있는 포도를 먹으려고 발악을 해봤으나, 무슨 짓을 해도 결국 먹을 수 없자 '크크크. 저 포도는 아마 엄청나게 맛없을 거야! 저따위 포도는 줘도 필요 없어!'라고 정신 승리하고 가버린다는 이야기.


"3차원이 그렇게 싫으면 2.5차원은 어때? 요즘 많잖아. 러브 라이브나 아이돌 마스터 같은 거. 콘서트도 하고 그러더만. 네가 좋아하는 우마 무스메도 그렇고."


"흥! 형님. 2.5차원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3차원이면 3차원. 2차원이면 2차원이죠. 러브 라이브 공연이요? 당연히 3차원입니다. 그 성우들도 진심으로 해당 컨텐츠와 자기가 맡은 캐릭터를 좋아할 거 같아요? 그야 활동하면서 정말로 좋아졌다거나, 원래부터 팬이었던 사람들도 조금은 있겠지만, 대부분 그냥 생계와 미래를 위해 오디션을 보거나 캐스팅에 OK한 거겠죠? 즉, 거짓이라는 거죠!"


그게 무슨 소리야? 3차원이 싫은 게 아니라 진짜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서 싫다는 건가?


"그럼 코스프레이어는? 그건 자기가 원해서 직접 꾸미고 다니는 거니까 문제없겠네?"


"코스프레도 결국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리고 그냥 집에서 하거나 해당 아니메나 만화 이벤트 무대에 출연하거나 그런 거라면 몰라도, 코미케같은데서 오타쿠들 앞에서 포즈 취하고 사진 찍히고 그러는 것 자체가 승인 욕구를 채우기 위한 과정으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이 녀석은 3차원은 싫고 2차원이 좋은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서브 컬쳐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여자라면 좋은 게 아닐까?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서브 컬쳐를 부정하니까 그런 마음이 일반화된 거겠지.


그에 비해 2차원 캐릭터들은 <제작자의 설정으로 창조된 캐릭터>다.


당연히 2차원 미소녀들은 서브 컬쳐도 엄청나게 좋아하고, 오타쿠에 대해서도 굉장히 긍정적이지.


그러니 2차원 속의 엄청나게 예쁜 여자라도 서브 컬쳐를 혐오하는 캐릭터라면 싫어하지 않을까? 보통 그런 애들은 예쁘게 그리지도 않지만.


하여튼 이 녀석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봤자 아마 부정할 테지. 왠지 오기가 생긴다.


"그럼 메이드 카페 같은 건 어때? 2차원 메이드도 영리 목적으로 일하는 건 마찬가지잖아?"


"훗. 메이드 카페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겁니다. 메이드면 메이드지, 카페에서 일시적으로 손님을 접객하는 게 무슨 메이드 카페라는 거죠? 그냥 코스프레 카페일 뿐이에요."


"흠. 엄청 시크한 듯 하는데···그래 봤자 메이드 카페에 들어가서 거기 메이드가 "주인님! 모에모에 뀽♡"이라고 손으로 하트 만들어주면 좋아 죽는 거 아니냐?"


"모, 모에 모에 뀽♡!?"


녀석은 갑자기 충격을 받은 듯 그대로 굳어버린다.


"크윽. 모, 모에 모에 뀽이라니···그런 파렴치한! 모에 모에 뀽···말도 안 돼. 이렇게 불건전할 수가···. 비겁한 용어다!"


"아주 좋아 죽는구만. 좋아 죽어."


"우윽! 정말 추잡한 단어야. 대체 누가 생각한 거냐! 모에모에 뀽이라고···. 맙소사. 너무나도 퇴폐적인 뉘앙스야! 부끄럽지도 않은 건가!?"


마치 고장 난 장난감처럼 녀석은 뭐에 홀린 듯이 모에모에 뀽을 웅얼거린다.


음. 아무래도 당분간 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을 것 같군.


나도 남들에게는 저렇게 보이는 걸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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