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창작연

황실의 꽃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창작연
작품등록일 :
2022.10.31 18:52
최근연재일 :
2022.12.02 13:04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993
추천수 :
84
글자수 :
156,916

작성
22.11.18 09:00
조회
26
추천
2
글자
10쪽

황실의 꽃 - 18장 풍등에 띄운 소원

DUMMY

<맥, 황가의 계보>






1부 황실의 꽃






18장. 풍등에 띄운 소원




연회가 끝나고 나선 까닭에 승명과 연향이 야시장에 이르렀을 무렵에는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점등제는 이미 끝이 난 이후였다. 하지만 거리는 수백여 개의 등불로 인하여 대낮같이 환했으며, 시장 한편에 마련된 가설무대 주위는 온갖 기예를 뽐내는 백성들로 인하여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무대를 구경하는 이들과 공연을 준비하는 이들, 갖가지 색을 입힌 풍등을 손에 쥐고 소리 높여 호객 중인 부상들, 등을 들고 거리를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들이 한데 뒤섞여 야시장은 혼잡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연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워 보였다. 축제를 즐기러 나온 여느 처자나 하등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다.


“환영연에서보다 더 즐거워 보이는구나.”


몇 걸음 앞서 있던 연향이 웃으며 승명을 돌아보았다.


“사람이 많으니 절로 흥이 나지 않습니까. 마주치는 이들 모두 즐거운 기색이 만연하여 소녀도 자꾸만 웃음이 납니다.”


“나오지 아니하였다면 또 장히 울릴 뻔하였다. 내 풍등을 사줄 터이니 소원을 빌어보겠느냐?”


원한다면 풍등으로 성을 가득 채울 수도 있는 연향이건만 사줄까 하는 한 마디에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났다. 그녀의 얼굴 가득 아른거리는 기대의 빛에 어쩔 수 없이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작년 가을 영수전에서 나룻배에 태워줄까 하고 운을 떼었을 적에도 연향은 꼭 저런 표정이었다.


“풍등을 날리려면 강둑까지 가야 합니다.”


“그것이 무에 대수라고.”


“하지만 몇 걸음 못가서 힘들다 하시면 소녀가 난처해지지 않겠나이까.”


둘만 있는 자리에서도 저를 어려워하는 기색이 가득하여 서운케 하더니, 언제 또 까마득히 어려워하였는가 싶게 연향이 짓궂게 농을 걸어왔다. 과연 우는 그녀를 품에 안아 오래도록 둥개둥개 얼러준 보람이 있었노라고 승명은 생각하였다.


대례를 치르기 전까지만이라도, 아니, 하다못해 그녀와 둘이 지내는 사사로운 시간만이라도 연향이 예전처럼 저를 편히 대해주면 좋을 것 같았다. 책봉식을 거쳐 황태자비의 위에 오르게 되면 승명이 아무리 연향을 연향답게 지켜주고자 애를 쓴다 할지라도 그녀 주위의 모두가 연향에게 자리에 어울리는 모습을 강요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마음 한 톨 없는 정략혼이라면 또 모를까, 승명은 연향이 자신의 곁에 있기에 불행해지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아니하였다.


“어디 예전처럼 태연하게 궐공 운운도 해보지 그러느냐.”


“그토록 사소한 일을 아직도 마음에 품고 계시다니 의외로 대범치 못하시옵니다.”


“하면 나는 한층 더 밉상이 되었겠구나.”


승명이 웃는 낯으로 그리 되받아치니 연향이 밉지 않게 입을 삐죽거렸다.


“참으로 너무하십니다. 앞으로는 소녀를 짓궂게 놀리시지 않겠노라 약조하신 지 아직 채 하루도 아니 지났습니다.”


“대범한 그대가 이해해주려무나. 나도 난처하기 이를 데 없다. 소심한 내게는 그대의 사소한 말 한마디마저도 새록새록 하니 어이 한단 말이냐. 그간 내 달음박질이랑 노젓기까지 연습하지 않았느냐.”


“참말로 궐 안에서 달음박질까지 하셨나이까.”


“암, 이제는 그대를 업고도 잘 달릴 수 있다.”


“자꾸만 그리 호언장담을 하시면은 소녀가 도중에 발이 아프다고 어리광을 피울 수도 있습니다.”


“발이 아프면 내 기꺼이 업어주마.”


“그런 불경을 지었다가 무슨 지청구를 들으라고 그러십니까.”


“지아비가 지어미를 아껴서 하는 행동에 어찌 불경을 논하느냐. 혹여 누가 그대를 나무라면 나도 같이 서서 야단을 맞겠다.”


연향이 까르르 웃었다. 살결이 희고 선이 동그스름하니 다복하게 생긴 연향이 활짝 웃으니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거리에 내려와 있는 양 하였다.


“소녀의 속에 들어가셨다 나오셨습니까. 어찌 그리 듣고 싶은 말씀만 하시는지요?”


“들여다보지 않으려 하여도 그대의 낯에 다 드러나니 난들 어이하겠느냐.”


승명 역시 웃으며 연향의 손을 잡아 저자로 이끌었다. 연향에게 아주 크고 어여쁜 풍등을 사줄 참이었다. 네 명은 잡아야 겨우 날릴 수 있을 법한 커다란 풍등을 산 뒤에, 연향의 추천으로 난생처음으로 쌀가루를 치대어 만든 길거리 전병도 맛보고, 노점에서 파는 노리개며 서책들도 구경하면서 강둑에 이르렀다. 자시가 지난 지도 한참인데 둔치에는 아직도 많은 이들이 등을 날리고 있었다. 노랗고 붉은빛으로 곱게 색을 입힌 한지로 만들어진 수많은 등불이 밤하늘을 빼곡하게 수놓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아주 어여쁘지요?”


홀린 듯이 하늘을 바라보던 승명은 연향의 목소리에 웃는 낯으로 동조했다.


“그래. 아주 멋지구나. 그나저나 풍등제를 위한 공연은 저자에서 이루어지던데, 어찌하여 등은 강가에서 날리는 것이냐.”


“풍등을 띄우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하여 백성들이 좋아하지만, 등이 민가에 떨어지면 불이 날 수도 있답니다. 이전에도 몇 번이고 그러한 일이 있었기에 부왕께서 올해는 등불 축제를 금하려 하셨으나 소녀가 청하였답니다. 강가나 해안가에서 등을 날리면 혹여 떨어지더라도 불이 날 리 없으니 부디 등불 축제를 폐하지 말아 주십사 하고요. 지금도 보시어요. 다들 기뻐하잖아요. 만약 풍등제가 없어졌다면 많은 이들이 슬퍼했을 거예요.”


연향의 말에 승명은 이곳까지 오면서 보았던 수많은 이들을 떠올렸다. 저자에서 등을 사고 파는 이들도, 여기서 소원을 비는 이들도 하나같이 얼굴이 밝았다. 이는 성내 백성의 마음을 먼저 헤아릴 줄 아는 연향과 어린 딸의 청에도 귀를 열 줄 아는 번왕의 넓은 그릇 덕택이었다.


“그대는 참으로 마음씨가 곱고 사려가 깊구나.”


작년 가을 부황과 모후의 의중이 연향에게 가 있음을 깨달았을 때 승명은 혼인 생활에 대한 일체의 기대를 버렸다. 그것은 우연한 자리에서 신분을 숨긴 채 만나 보았을 때만 하여도 마찬가지였다. 반나절도 되지 않는 짧은 만남 한 번으로 됨됨이를 다 알 수는 없는 노릇, 아이는 당차면서도 묘하게 천진하여 그 점이 인상적이었으나 그 때만 하여도 그저 그뿐이었다. 연향의 자색이 곱다 하나 황성에는 워낙 미인이 많았기에 외모 또한 크게 작용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맨 처음에는 이 혼사로 얻을 수 있는 이득만을 셈하였었다. 기주성의 무력과 태예국 중북부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대씨 문중을 온전히 저의 편으로 얻는 대가로 하는 혼사이니 상대가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품고 살아야지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그 또한 승명에게는 하등 어려울 것 없는 일이었다. 입때껏 처세가 어려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제 사람으로 얻어야겠다고 여긴 이를 제 편으로 만드는 데에 실패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금지옥엽으로 자라난 소녀의 마음을 얻는 일 정도야 별것 아니라며 문문하게 보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연향은 귀한 가문에서 나서 평생을 받들리며 자라난 여느 규수들과 달랐다. 강한 듯 여렸고, 천진한 듯 사려 깊었으며, 오만한 듯 사랑옵고, 무심한 듯 다감하였다. 연향의 독특한 면면이 자꾸만 승명의 눈길을 잡아매고 누구에게도 허한 바 없었던 마음의 빗장을 열고 말았다.


승명은 보면 볼수록 이 작은 소녀에게 젖어 드는 마음을 숨기고자 고개를 돌려 거리를 두고 저를 따르던 수하들을 불렀다. 고귀한 황태자가 황태자비 감인 현주와 더불어 교자며 절병이며 온갖 저자의 음식을 맛보며 거리를 활보하는 동안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뒤따르던 이들은 주인의 부름에 냉큼 달려와 석랍에 불을 붙여 풍등을 부풀리는 일을 기꺼이 도왔다. 네다섯은 붙들고 있어야 할 만큼 커다란 풍등을 사놓고서 그마저도 둘이서 어찌 해보겠다며 고집을 피울까 내심 불안하던 차였다. 접혀있던 붉은 한지가 한껏 부풀어 오를 때까지 붙들고 있던 승명은 맞은편에서 눈을 감고 소원을 빈 연향이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뜨자 그녀와 함께 등에서 손을 떼었다. 구속을 벗어난 등이 바람을 타고 하늘 위로 두둥실 떠올랐다. 승명은 손짓으로 주위를 조금 물린 뒤 운을 떼었다.


“기도가 길던데 소원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느냐.”


“황제 폐하의 쾌유를 발원했습니다. 하옵고······.”


기원을 담은 풍등이 하늘 높이 날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승명은 연향이 말을 멈추자 그녀에게 눈길을 주었다. 연향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로 말을 이었다.


“전하께 곁붙이가 생기면 좋겠노라고 기도했어요. 매사에 능란하시고 주위에 사람이 많지만 진정으로 마음을 두시는 데가 없으신 듯 하와 안타까운 마음에,”


“내가 외로워 보였더냐?”


승명은 미소 지으며 물었다. 일견 쾌활해 보이고 처세에 능란한 그에게 외로워 보인다는 소리만큼 가당치 않은 말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연향이 그에게 남에게 보이지 아니한 모습을 보였듯, 그 역시 그러하였기에 그는 더 이상의 말 없이 조용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전하를 뵙기 위해 영빈각으로 가기 전에 소녀 역시 전하께서 좋아하시는 바에 대하여 조금 알아본 일이 있었나이다. 홀로 금을 타시거나 서책을 읽으시거나 난을 치시는 것을 즐기신다고요. 하나 금도, 책도, 서예도, 그림도 모다 홀로 하시는 일이 아닙니까. 인사에 지치시면 주위를 물리시는 거지요? 지난 가을 정자에서도 그러하였고요.”


연향이 느릿하게 돌아서 승명을 올려다보았다. 두려움 없는 맑은 눈이 똑바로 그를 향했다. 그 눈이 누구도 들여다본 적 없는 승명의 속내를 짚어 보고 있었다. 연치에 비하여 상당히 영리하다 여기긴 하였으나 연향이 이토록 깊은 혜안을 지녔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황실의 꽃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황실의 꽃 연재 시간이 변동됩니다. 22.11.16 23 0 -
31 황실의 꽃 - 31장 회임 22.12.02 25 0 7쪽
30 황실의 꽃 - 30장 황귀비와 시녀 22.12.01 19 0 12쪽
29 황실의 꽃 - 29장 황족과의 만남 22.11.30 24 0 12쪽
28 황실의 꽃 - 28장 감로전의 단 이슬 22.11.29 18 0 9쪽
27 황실의 꽃 - 27장 등극과 봉작 22.11.28 17 0 11쪽
26 황실의 꽃 - 26장 갑작스런 이별 22.11.27 19 0 12쪽
25 황실의 꽃 - 25장 약혼 +1 22.11.26 15 1 9쪽
24 황실의 꽃 - 24장 모종의 거래 22.11.25 16 0 11쪽
23 황실의 꽃 - 23장 번왕의 심사 +1 22.11.24 21 1 9쪽
22 황실의 꽃 - 22장 어미의 마음 22.11.23 16 0 14쪽
21 황실의 꽃 - 21장 하직 인사 +1 22.11.22 19 1 9쪽
20 황실의 꽃 - 20장 채란의 욕망 +1 22.11.21 32 1 14쪽
19 황실의 꽃 - 19장 청혼 +2 22.11.19 25 2 12쪽
» 황실의 꽃 - 18장 풍등에 띄운 소원 +1 22.11.18 27 2 10쪽
17 황실의 꽃 - 17장 헌천화무의 무희 +1 22.11.17 18 0 12쪽
16 황실의 꽃 - 16장 해후 +1 22.11.16 29 4 12쪽
15 황실의 꽃 - 15장 해후 +1 22.11.15 27 1 9쪽
14 황실의 꽃 - 14장 번왕비 소선경의 고뇌 +1 22.11.14 31 1 12쪽
13 황실의 꽃 - 13장 번왕 대수협 22.11.13 20 1 9쪽
12 황실의 꽃 - 12장 번왕 대수협 22.11.12 22 1 10쪽
11 황실의 꽃 - 11장 흐르는 물처럼 22.11.11 26 1 12쪽
10 황실의 꽃 - 10장 국혼선포 22.11.10 22 1 9쪽
9 황실의 꽃 - 9장 회자정리 거자필반 +1 22.11.09 25 2 14쪽
8 황실의 꽃 - 8장 그림에 깃든 마음 +3 22.11.08 30 3 12쪽
7 황실의 꽃 - 7장 고백 아닌 고백 22.11.07 28 2 11쪽
6 황실의 꽃 - 6장 뱃놀이 22.11.06 36 1 10쪽
5 황실의 꽃 - 5장 영수전의 석교 위에서 22.11.05 42 1 15쪽
4 황실의 꽃 - 4장 황태자 승명 22.11.04 47 2 10쪽
3 황실의 꽃 - 3장 팔각정에서의 만남 22.11.03 61 12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