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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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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10.31 18:52
최근연재일 :
2022.12.02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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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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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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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의 꽃 - 14장 번왕비 소선경의 고뇌

DUMMY

15장. 번왕비 소선경의 고뇌






번왕비 소선경이 황태자를 모시고 외성 주위의 몇 개의 현을 돌고 오느라 도착이 다소 지체되리라는 부군의 전갈을 받은 것은 연회에 쓰일 요리를 점검하기 위하여 숙설간을 둘러보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재료 손질을 시키면서 소씨가 숙수들과 숙설간 하인들에게 당부한 것은 하나였다. 잔치에 쓰일 음식은 최고급 재료로 정성을 기울여 조리하되 모양새가 지나치게 호사로우면 아니 된다는 점이었다.


황후 윤씨는 후덕한 성정이었으나 내외명부 부인들의 사치를 몹시 불편하게 여겼다. 단아하고 소박한 기품을 중히 여기는 황후의 가르침 아래 성장한 황태자도 과한 음식은 치미라 하여 꺼릴 공산이 컸다.


소선경의 당부에 따라 숙수들이 택한 요리는 총소해삼과 팔선과해였다. 전자는 신선한 해삼을 푹 찐 다음 구운 대파를 곁들여 대파의 알싸한 향이 해삼에 은은하게 배게 만든 요리였으며, 후자는 닭가슴살, 상어지느러미, 해삼, 전복, 방어, 새우, 상어부레풀, 멸대 등 장수를 기원하는 여덟 개의 귀한 재료를 제각각 찌거나 데쳐서 동전 모양으로 쌓아 올린 요리였다. 주요리에 해산물이 많은 까닭은 기주성이 바다와 접해 있기 때문이고, 재료가 다채로운 것은 성내 상업이 번성하였음을 드러내는 방증이었다. 그중에서도 해삼은 고대로부터 바다에서 나는 산삼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귀한 식재료였으니, 조리과정이 비교적 간단하다고 하나 귀인을 대접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아주 좋군.”


소선경은 해삼의 어두운 빛 위에서 반짝이는 대파의 하얀 뿌리 부분의 색감과 요리에서 풍기는 향까지 두루 살피고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길이 오리 튀김으로 향했다. 숙수 하나가 결대로 잘게 찢어 다진 육전을 깨에 묻혀 튀기고 있었다. 생소한 조리 방식에 소씨가 의아한 얼굴을 하자 숙수가 연유를 고하였다.


“오리는 냄새가 강한 재료인지라 혹여 황태자 전하께서 그를 저어하실까 싶어 냄새를 잡는 참깨로 둘러 튀기는 것입니다.”


“사려 깊은 조리법이로구나. 전하께서도 그대의 정성에 감복하실 것이다. 나 또한 이를 깊이 새겨 둘 테니 마저 수고하라.”


전채에서부터 주된 요리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점검한 뒤에 이어 후식으로 내올 다과를 살펴보고 있을 무렵이었다. 연회장에 무대를 설치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일이 생기면 알리라고 보내두었던 시녀가 황망한 얼굴을 한 채 다가와 작은 사고가 있었다고 고했다. 가설해둔 무대 위에서 무희들이 동선을 맞추던 와중에 축대의 일부가 무너져 몇 명이 다쳤다는 소식이었다.


“일을 어찌 처리하기에 이 사달이 난단 말이오.”


황급히 연회장으로 가보니 현장의 상황은 전해 들었던 바보다 심각했다. 소씨의 질책에 진연의 무대를 총괄하고 있던 예부도사(예부도사는 의전을 맡은 정7품 지방관이다.) 곽두영이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수그렸다.


“송구합니다. 모두가 소신의 불찰입니다.”


무너진 축대야 다시 세우면 그만이었으나 주연의 꽃이 될 무희가 네 명이나 다친 것이 문제였다. 네 명이나 빠지면 군무를 추어도 볼품이 없을 것이나, 그렇다 하여 수를 맞추고자 황태자를 초대한 자리에 격이 떨어지게 교방무희를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사고로 발을 심하게 접질린 무희는 마무리를 장식할 헌천화무에서 독무를 맡은 이였다. 곽두영이 사색이 될 만도 하였다.


황태자의 순수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기주성에서는 환영 연회를 위한 진연도감을 꾸리고 예부도사 곽두영을 그 수장에 보하였다. 곽두영은 예악에 능하다는 이들을 선별하여 올리라는 명을 성 내의 모든 부와 현에 내렸고, 현 단위에서 명단이 올라오자 엄중한 시험을 거쳐 신분과 외모, 실력 모두 흡족한 이들만 재차 추렸다. 곽두영의 지휘 아래 선발된 이들이 연습에 들어간 지 벌써 두 달여, 이제 와 대역을 찾아 수소문하기에는 시간도 촉박했지만, 설령 지금보다 조금 더 여유가 있었다손 치더라도 형편상 정재(정재는 황실 연회에서 베풀어진 궁중 무용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다.)의 주요역할을 갑자기 대체하기는 여의치 않았을 터였다.


“저 아이 말고 선모(선녀가 하늘의 꽃을 제왕에게 바친다는 내용의 궁중무용인 헌천화무에서 선녀 역할을 맡은 독무가)를 맡을 수 있을 만한 인재가 있겠소?”


“송구합니다. 헌천화무의 선모는 창도 능해야 하는지라 지금으로서는 달리 마땅한 자가 없사옵니다.”


“가자(정재에서 주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를 따로 두고 무희를 대역으로 세운다 하여도 춤과 노래를 미리 맞춰본 것이 아니니 공연이 쉽지 않겠군.”


소씨는 난감함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황태자가 의도하지 않아도 이번 진연이 다른 성의 연회와 비교가 되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였다. 이는 기주의 명예가 걸린 문제였다. 안타깝지만 곽두영의 의견대로 헌천화무를 생략하고 진연의 구성을 바꿀 수밖에 없을 듯하였다. 다친 무희를 무리해서 무대에 세울 수 없으니 그리 하라 이르려 하였을 찰나였다. 그녀의 뒤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낭랑(번왕의 비를 높여 부르는 호칭이다.), 헌천화무라면 소녀가 출 수 있습니다.”


소선경이 모친인 해주성의 대부인 협영옥의 부탁으로 후견중인 도채란이었다. 채란은 기실 협씨의 재당숙모의 이복자매의 증손녀로 소선경과는 차마 인척이라 이를 수도 없을 만큼 먼 사이였다.


그러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가세가 기울어 어린 동생과 거리에 나앉게 될 판이 된 채란의 처지를 가엾이 여긴 협씨가 그들 남매를 거두었다. 협씨는 늘그막에 큰 위안이 되어준 채란을 상당히 귀애하였다. 친딸인 소선경에게 보낸 서찰에도 채란에 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고, 그녀가 열다섯이 되자 서한의 대부분이 채란의 혼사를 염려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그러더니 급기야 올봄 협씨는 채란에 대한 애정 어린 당부의 글과 함께 그녀를 기주성으로 보내온 것이다. 아무래도 황도와 가깝고 번화한 기주에 머무는 편이 서북에 치우친 해주에 있는 것보다 좋은 혼처를 찾기 쉬우리라 여긴 까닭이었다.


채란의 도착이 국혼에 관한 황태자의 성명과 맞물렸기에 그녀까지 챙길만한 경황이 없었지만, 모친의 부탁이었던지라 소씨는 어쩔 수 없이 채란을 내당으로 불렀다.


소선경과 마주한 자리에서 채란은 혼인은 마음에도 둔 바 없노라고 단언하였다. 본인의 바람은 해주의 장원에서 대부인을 섬기며 은혜를 갚는 것이었으나 차마 자신을 근심하는 어르신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이리 왔으니 허드렛일이라도 하면서 어르신께 못 다한 보은을 마저 하겠노라 덧붙였다.


기주에 갓 닿은 채란이 연향의 국혼 준비로 다망한 성내 상황을 알 리가 만무했으나 시의적절한 채란의 말은 기특하였으며, 다소곳이 답을 기다리는 아이 역시 참으로 어여뻤지만, 어쩐 일인지 소씨는 그녀에게 정이 가지 않았다. 뜻은 가상하나 지체가 다르거늘 어찌 시비 대하듯 잡역을 시키겠냐며 소씨는 웃는 낯으로 채란의 성의를 거절한 뒤에 이따금 다과나 함께 하자며 내당 한편에 그녀의 처소를 마련해 주었다.


겉으로 별반 내색한 바 없는 데도 저를 저어하는 마음을 읽은 듯 채란은 소씨가 정해준 거처에서 그야말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냈다. 그저 그뿐이었다면 소씨도 채란에 대해 깊이 담아두지 않고 연향의 국혼 준비가 마무리되는 대로 모친의 바람대로 그녀에게 적당한 혼처를 물색해 주었을 것이다.


사달은 바다 건너 대맥국에 다녀오느라 한동안 성안에 없었던 아들 대성운이 도착하면서 생겨났다. 성운이 문안을 겸하여 내당에 들렀다가 마침 화원을 가꾸고 있던 채란에게 반해버린 것이다.


채란은 열일곱 꽃다운 나이였고 아들 역시 한창 여인에게 흥미가 왕성할 때였다. 채란을 보는 아들의 눈에 욕망이 깃든 것을 알면서도 소선경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성운은 작년에 관례를 올리면서 이미 건북성 군주의 딸을 정실로 맞이한 상태였다. 젊은 남녀가 정분이 나서 일이 심각해져 봐야 차후에 순덕한 며느리를 잘 구슬려 채란을 성운의 측실로 맞이하면 그만이겠거니 여긴 까닭이었다.


성운이 문안을 핑계로 하루에도 수십 번 내당을 드나들 정도로 열을 올리는 데도 도무지 곁을 내주지 않는 채란이 내심 괘씸하면서도 집안은 기우나 행신이 바르니 차후에 대씨 문중에 들여도 수치는 아니리라 여겨 내버려 둔 것이 화근이었다.


채란은 성운이 보내온 선물을 모두 정중히 거절하고 두문불출하면서까지 끝끝내 거리를 두었으나, 아들이 말썽이었다. 어느 날 며느리인 하씨가 성운이 이혼을 요구했다며 눈물 바람으로 소씨를 찾아왔다. 심성이 여린 하씨는 내당에 채란을 머물게 한 시어미를 원망도 못 하고 하염없이 눈물만 쏟았다. 귀족의 혼사는 가문의 대업인데 이토록 사소한 일로 깨어질 리 있겠냐며 며느리를 달래어 보낸 뒤 소씨는 아들과 채란을 한 자리에 불렀다.


성운에게는 며느리에게 이혼을 요구한 진의를 묻고, 채란에게는 성운이 그런 행동을 할 만한 여지를 주었는지를 하문하였다. 채란이 전연 마음을 열어주지 않아 혼자가 되어 정식으로 혼인을 청하면 받아줄까 하여 그리하였다는 아들의 한심한 대답에 소씨는 내심 개탄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부군인 번왕이 아들인 성운이 아닌 딸인 연향을 편애하는 이유가 자명하게 보이는 답이었다.


채란은 자신의 처신이 모자라 성운에게 어떠한 여지를 느끼게 하였다면 당장이라도 이 자리에서 칼을 거꾸로 베어 물고 죽으리라 답하였다. 그리고 성운이 혼자이든 아니든 혼례 생각은 추호도 없노라 재차 못을 박았다. 침착하여 외려 더 서릿발 같은 냉갈령이었다. 소선경의 마음이 돌심보가 된 것은 자결 운운하는 채란의 눈동자에서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심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채란은 겉으로 보이는 대로 그저 예쁘장하기만 한 처자가 아니었다. 우연한 마주침만으로도 꺾고 싶어질 만큼 요요하나 온몸 가득 독을 품고 있는 석산 같은 계집이었다. 며느리 하씨도, 아들인 성운도, 어쩌면 자신조차도 그녀의 상대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소씨의 전신을 장악해왔다.


처음부터 채란이 탐탁하지 아니하였던 데에는 다 연유가 있었다. 채란을 먼저 돌려보낸 소씨는 계집 하나 때문에 이혼 소동을 벌인 일이 네 부친의 귀에 들어가면 너는 그 날로 파문이라며 아들을 단단히 혼낸 뒤에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권했다. 다음 날 성운을 이국으로 떠나보내면서 소씨는 소개장을 써주는 한이 있더라도 채란 역시 멀리 보내리라 다짐하였다. 아들도 아들이지만 이제 곧 도착할 황태자가 마음에 걸린 까닭이었다. 여지를 주지 않아도 기어이 사내를 홀리고 마는 채란을 연향과 같은 성안에 두다니, 어불성설이었다. 소씨에게는 번국의 왕비로서 성안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재차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야 할 책무가 있었다.


“네가 어찌 정재를 출 수 있다는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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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황실의 꽃 - 26장 갑작스런 이별 22.11.27 19 0 12쪽
25 황실의 꽃 - 25장 약혼 +1 22.11.26 15 1 9쪽
24 황실의 꽃 - 24장 모종의 거래 22.11.25 16 0 11쪽
23 황실의 꽃 - 23장 번왕의 심사 +1 22.11.24 21 1 9쪽
22 황실의 꽃 - 22장 어미의 마음 22.11.23 16 0 14쪽
21 황실의 꽃 - 21장 하직 인사 +1 22.11.22 20 1 9쪽
20 황실의 꽃 - 20장 채란의 욕망 +1 22.11.21 33 1 14쪽
19 황실의 꽃 - 19장 청혼 +2 22.11.19 25 2 12쪽
18 황실의 꽃 - 18장 풍등에 띄운 소원 +1 22.11.18 27 2 10쪽
17 황실의 꽃 - 17장 헌천화무의 무희 +1 22.11.17 18 0 12쪽
16 황실의 꽃 - 16장 해후 +1 22.11.16 29 4 12쪽
15 황실의 꽃 - 15장 해후 +1 22.11.15 27 1 9쪽
» 황실의 꽃 - 14장 번왕비 소선경의 고뇌 +1 22.11.14 32 1 12쪽
13 황실의 꽃 - 13장 번왕 대수협 22.11.13 20 1 9쪽
12 황실의 꽃 - 12장 번왕 대수협 22.11.12 22 1 10쪽
11 황실의 꽃 - 11장 흐르는 물처럼 22.11.11 26 1 12쪽
10 황실의 꽃 - 10장 국혼선포 22.11.10 22 1 9쪽
9 황실의 꽃 - 9장 회자정리 거자필반 +1 22.11.09 25 2 14쪽
8 황실의 꽃 - 8장 그림에 깃든 마음 +3 22.11.08 30 3 12쪽
7 황실의 꽃 - 7장 고백 아닌 고백 22.11.07 28 2 11쪽
6 황실의 꽃 - 6장 뱃놀이 22.11.06 36 1 10쪽
5 황실의 꽃 - 5장 영수전의 석교 위에서 22.11.05 42 1 15쪽
4 황실의 꽃 - 4장 황태자 승명 22.11.04 47 2 10쪽
3 황실의 꽃 - 3장 팔각정에서의 만남 22.11.03 61 1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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