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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의 서재

일해라,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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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
작품등록일 :
2018.04.09 23:01
최근연재일 :
2019.09.10 13:00
연재수 :
160 회
조회수 :
69,683
추천수 :
1,397
글자수 :
635,868

작성
18.04.11 17:32
조회
1,054
추천
21
글자
7쪽

8. 실험의 시작(2)

DUMMY

대장은 바닥에 그린 마법진의 가운데에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여전히 무서울 정도로 날카로운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호세는 손에 든 방패를 뻗어 데이지 쪽으로 가져갔다가, 곧 그만두었다. 그리고 고개를 저으며 양손을 들고 일행이 있는 쪽으로 걸었다.


“저는 못 하겠어요. 너무 위험하잖아요! 데이지가 허수아비도 아니고···, 이런 식의 실험을 날마다 하는 건가요?”


호세는 대장이라는 사람이 부조리하고 자기 멋대로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호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장의 푸른 눈동자를 보고 벌벌 떨던 사람과 동일인이라고 하기 어려울 만큼 콧김을 씩씩대며 성큼성큼 걸었다. 호세는 자신이 생각한 모습과 전혀 다른 실상에 화가 났고, 때때로 강한 분노는 두려움을 넘어서는 법이었다. 때문에, 호세는 대장의 입꼬리가 더 올라가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아주, 좋다, 애송이.”


대장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마법진에서 불꽃이 솟아올랐다. 그것은 전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데이지를 향해 날아갔다. 데이지는 불꽃의 속도에 당황해 작은 몸을 움츠렸다. 불꽃은 펑 하고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폭죽처럼 산산이 흩어졌다. 데이지는 질끈 감은 눈을 조심스럽게 떴다.


“그만 해요!”


호세가 소리 질렀다. 데이지는 입을 살짝 벌리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느새 호세가 눈앞에 검게 그을린 방패를 들고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오는 눈썹을 작게 찡그렸다. 에밀리아는 흥미로운 듯 호세를 바라보며 허리춤에 찬 검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대장은 폭소를 터뜨리며 계속해서 불꽃을 발사했다. 불꽃 세 개가 데이지를 동시에 날아왔다,


“이이익!”


호세는 이를 악물고 괴상한 소리를 내며 방패를 휘둘렀다. 불꽃이 방패 위에서 연기를 내며 사그라들었다. 마법진에서는 계속해서 불꽃이 만들어졌다. 붉은 가루가 사방에 날리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데이지는 불꽃을 막느라 정신없는 호세를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땀을 뻘뻘 흘리며 방패를 휘두르는 모습에 미안함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호세는 불꽃의 움직임에 집중하느라 데이지의 말을 듣지 못하고 있었다.


“데이지, 내 발에 맞춰서 앞으로 걸어.”


호세가 방패를 들지 않은 한 손으로 데이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데이지는 아무 말도 꺼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호세는 데이지를 이끌고 불꽃이 날아오지 않는 순간에 맞춰 발을 옮겼다. 대장이 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나아가며 날아오는 불꽃을 쳐냈다. 대장의 웃음소리는 이제 연무장 어느 곳에나 들릴 만큼 커졌다. 차오의 눈빛이 한층 더 진중해졌고 에밀리아가 검을 만지작거리는 횟수가 늘었다.

십 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호세는 대장의 근거리에 도착했다. 다섯 걸음 정도면 마법진을 지울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온 호세는 이를 악물고 마법진의 다음 불꽃을 기다렸다. 그러자 대장이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법진을 지워버렸다.


“마법진이 지워졌군.”


호세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방패를 떨어뜨리고는 대장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숨이 거칠어진 호세의 말이 뚝뚝 끊겼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호세가 당장이라도 대장에게 달려들 기세로 다가오자, 대장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주섬거리며 품 속에서 스크롤 하나를 더 꺼냈다.


“아직 끝났다는 말은 안 했는데?”


호세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뛰었지만, 이미 대장이 스크롤을 찢은 뒤였다. 대장의 손에 불꽃이 밝게 빛나며 만들어졌고, 대장은 악마와 같은 얼굴로 호세에게 불꽃을 던졌다. 방패는 이미 호세의 한참 뒤편에서 뒹구는 중이었다. 호세는 얼른 자신의 뒤에 있는 데이지의 위치를 살폈다. 그리고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펑-!


“윽!”


호세는 반사적으로 뒤로 넘어졌지만 곧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안 뜨겁잖아?’


대장은 작게 웃더니 차오와 에밀리아에게 말했다.


“뒷정리를 준비하도록. 그런데, 날 때릴 기세더군?”


호세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대답하지 못했다. 조용히 걸어온 데이지가 호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아까 말했잖아. 종이가 견딜 수 있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고. 내가 만든 마법진은 다른 걸 강화한 대신 파괴력을 낮춘 거야. 연습용으로 쓰려고. 말 안 해서 미안!”


데이지가 호세의 몸에 묻은 재를 털어주며 말했다.


“다행이다···.”


호세가 벌러덩 누우며 작게 말했다. 생각만큼 비상식적인 명령을 내리지는 않는 모양이다, 호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자 대장은 푸른 눈빛은 번쩍이며 입을 열었다.


“다행? 왕족을 해하려 하다니···. 벌이 필요하겠군.”


순간 호세는 후다닥 일어나 차렷 자세를 취했다. 유난히 날카로운 이빨이 다시 보였다. 옷을 여민 뒤 대장은 번쩍이는 지팡이를 호세의 코앞에 가져다 댔다.


“집으로 돌아가라.”


호세는 ‘자기가 왕족이 아니라고 했으면서’ 따위의 말을 꿀꺽 삼키고 시퍼렇게 불타오르는 대장의 눈을 피했다. 그제야 자신이 벌인 일이 떠올랐다. 자초지종을 묻지 않은 것은 대장뿐이 아니라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대장은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었다.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까마득한. 호세는 도시로 상경하기 전에 아버지가 누누이 말하던 게 떠올랐다.


“분수를 알아야 한다, 호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어.”


차오는 연무장에 흩어진 종이와 방패를 들고 돌아갈 채비를 했다. 대장이 마지막에 사용한 스크롤을 줍기 위해 호세에게 다가온 차오는 호세의 어깨를 툭 쳤다. 번쩍이는 갑주에 호세의 재가 잔뜩 묻은 얼굴이 비쳤다.


“잘 하셨습니다. 호세 군.”

“무···뭘요?”


차오는 대답하지 않고 따듯한 미소를 짓더니 어깨를 한 번 더 다독이고는 대장에게 되돌아갔다. 에밀리아가 뒤를 따랐고, 데이지가 호세를 향해 몇 번 뒤돌아보더니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곧 연무장은 텅 빈 채 호세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아직도 불에 그을린 냄새가 가시지 않고 있었다. 호세는 멍하니 위를 바라보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나···, 잘린 건가?”


호세의 머리카락에서 재가 부스스, 하고 떨어졌다.

본관으로 돌아가자, 이미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호세는 차오가 걸어둔 짙은 회색빛 겉옷을 주섬주섬 입고 출입문을 열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코를 훌쩍인 호세는, 문을 닫기 전에 조용히 인사했다.


“안녕히 계세요.”


거대한 문이 거짓말처럼 부드럽게 닫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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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88 초록유리
    작성일
    18.04.11 18:39
    No. 1

    대장을 때렸어야 해요. 호세군. .
    이단옆차기.날아차기.주먹이라도 휘둘러보고 나오지. . .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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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 마법공학실험부(6) +1 18.04.10 1,174 23 7쪽
5 5. 마법공학실험부(5) +2 18.04.09 1,287 19 8쪽
4 4. 마법공학실험부(4) +1 18.04.09 1,431 27 8쪽
3 3. 마법공학실험부(3) +2 18.04.09 1,571 27 7쪽
2 2. 마법공학실험부(2) +3 18.04.09 1,834 27 9쪽
1 1. 마법공학실험부(1) +7 18.04.09 2,537 3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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