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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울2 님의 서재입니다.

내 나이 90만 살, 갑자기 자식이 생겼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너울2
작품등록일 :
2023.05.10 13:13
최근연재일 :
2023.05.10 18:05
연재수 :
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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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추천수 :
0
글자수 :
9,605

작성
23.05.10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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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이무기

DUMMY

말을 모르고,

생각을 모르며,

화형조차 할 수 없는,

그저 꿈틀거리며 기어다니는 하얀 뱀.


아직 영지가 트이지 않은 그 작은 짐승을 이성일은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뱀은 여전히 이성일을 노려보며 쉭쉭거렸지만, 그가 다가오자 한번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몸을 움츠렸다. 두려워하는 감정을 느낀 이성일이 손을 뻗다가 멈칫했다.


“이무기.”


미궁에서 가장 강력한 종족인 용의 출생률이 낮은 이유.

그건 알을 여러 개 낳아도 제대로 부화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백현제께서 태교를 소홀히 하셨을 리도 없는데, 왜 이무기가 태어났을까? 아무리 그래도 본인의 배로 낳은 알에서 태어난 아이인데, 이렇게 독방에만 가둬두고 있고?”


머리 위에 뿔 한 쌍이 다소곳이 솟은 백발의 여인이 고개를 숙이며 침묵했다. 그녀는 일개 시녀일 뿐이고, 주인의 책을 잡는 말을 아무렇게나 뱉어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눈앞의 남자를 제재할 수 있냐면, 그것도 아니다. 용족의 객경 태상장로이자 계면상회의 회주이기도 한 저 이성일은 칠현제와도 그 배분이 같다.


“낳은 다음 한 번이라도 찾아오신 적이 있었나?”

“그러지는 않으셨습니다...”

“하긴, 백현제께서는 원래도 이무기를 좋아하지 않으셨으니, 충격이 더 크시겠지.”


자기 뱃속에서 이무기가 나왔는데 말이야. 그 말은 굳이 입에 담지 않았다.


“밥은 잘 주고 있고?”

“예. 식사는 끼니마다 챙겨주고 있습니다.”

‘챙겨주고 있단 말이지...’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섬기고 있는 여제의 딸이자 공주인데, 챙겨주고 있다니. 칠현제와 배분이 같은 이성일이야 그럴 수 있어도, 시녀가 내뱉기에는 조금 오만한 말이 아닌가.


하긴, 용은 원래 이무기를 자신들과 같은 종족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용족 내부의 집안일이기 때문에 이성일이 간섭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굳이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인간인 그가 무슨 볼일이 있다고 이무기 인권운동을 하고 다닌단 말인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지. 내 마침 영신단(靈神丹) 한 알이 있으니 너에게 주마. 수행계 선배로서 딱한 처지의 후배를 보았으니 그냥 넘어가는 것도 인색한 일이지.”


이무기와 용의 관계는 알아서 해결할 일들이고, 그가 관여할 바가 아니었다. 이성일이 용족의 태상장로라지만 객경일 뿐이고, 딱히 실권이 있는 자리는 아니다. 그건 용족이 이성일의 세력인 계면상회에 큰 영향력이 없는 것하고 비슷한 이치다.


다만, 백현제하고는 사업 파트너이기도 하고 이래저래 자주 만나는 사이이니 그 딸에게 선심을 쓰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뭐, 그 여자가 이무기를 자기 딸이라고 인정이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신단이요? 그 단약은...”


이성일이 꺼내든 은빛 단약을 본 시녀가 놀라 숨을 들이켰다. 여제의 시녀를 하고 있을 정도니 그녀도 용족 내에서 지위가 결코 낮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로서도 저 단약은 경전에서나 보았지, 실물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진귀한 단약이다.


재료도 하나같이 귀한 것들만 있는데다가, 제조법도 어렵다. 한 알을 만드는데 들여야 하는 재료와 노력만 따져도 상당한 수준인데 반해 효과는 미묘하기 짝이 없다.

지성이 없는 동물이나 식물에 영지(靈智)를 열어주고 지성체로서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도와주는 단약이라니, 이게 대체 수행자에게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어차피 어지간한 영수들은 알아서 영지가 트고, 알아서 설골(舌骨)을 녹이고, 알아서 사람의 말을 한다. 이미 영지가 트인 지성체가 이 단약을 먹으면 아무런 효험도 없이 그 귀한 단약만 낭비하는 셈이다. 결국 짐승이나 식물에 먹여야 제 역할을 하는 셈인데, 누가 그런 것들을 먹이려고 이 귀한 단약을 만든단 말인가.


저 어린 이무기도 이제 막 태어나서 뱀과 다를 바 없을 뿐, 조금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라는 걸 가지게 되고 말까지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용의 알에서 깨어난 뱀이니까.

다만, 영신단은 그 기간을 극단적으로 단축시킨다. 용의 아이나 인간의 아이가 그러는 것처럼, 어릴 때부터 지성의 싹을 가지고 자랄 수 있게 해준다.


어린 아이는 빠르게 자라고, 그 시기에는 하루하루가 다르다는 걸 생각해보면 분명 그만한 가치는 있었다. 과연. 시녀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들리는 말로 저분은 수중에 없는 것이 없고, 원하면 구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더니. 그게 과연 허튼 소리가 아니었구나.’


하긴, 미궁에서 제일 커다란 상단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그 부유함은 그녀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곧 냄새를 맡은 뱀이 슬며시 다가오더니 손바닥 위의 단약을 깨물었다. 먹어도 괜찮은 것이라는 확신이 든 건지, 이내 크게 입을 벌려 통째로 삼켰다.


그 작은 눈동자 속에서 지성의 빛이 반짝거렸다. 아직은 작은 싹에 불과하지만, 아기라면 누구나 그렇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싹은 큰 나무가 되어 자라날 것이고, 삶을 보다 풍족하게 해줄 것이다.


작은 뱀은 그렇게 오랫동안 이성일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 모습을 작은 머릿속에 새기려는 것처럼. 그 모습이 퍽 귀엽게 여겨진 이성일이 뱀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뱀은 더 이상 그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하나 더 달라고 그러는 거냐? 이건 두 개를 먹는다고 더 효험이 좋아지는 그런 게 아냐. 그래도 정 먹고 싶으면 이거라도 먹어라. 원기소(元気素)라는 단약인데, 수행자에게는 별 이득이 없지만 범인이 먹으면 체력을 증진하고 무병장수하게 해준다.”


이무기면 뭐 어떤가. 용족이 아닌 이성일은 이무기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 그냥 이 작은 뱀이 귀엽기만 했다. 시녀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성일은 그녀가 저지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그냥 두고 보는 수밖에는 없었다.


‘저래서는 저 뱀이 장로님을 부모로 인식할 텐데.’


하지만 어차피 부모가 버린 자식이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그래서 그녀는 아무것도 보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기로 했다. 이런 일에는 괜스레 관련되지 않는 것이 오래 사는 지름길이다. 괜히 이런 일로 보고를 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친애하는 여제 폐하께서는 지금 몹시도 화가 나셨다. 자신이 눈치 없이 저 ‘이무기’에 대한 일을 상기시키면, 이 자리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평생 출세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 정도 눈치도 없어서야 황실 시녀를 어떻게 하겠는가!


그리고 고작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그녀는 그 결정을 후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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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90만 살, 갑자기 자식이 생겼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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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는 뱀 23.05.10 13 0 14쪽
» 이무기 23.05.10 41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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