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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전인

낭인으로 플레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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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전인
작품등록일 :
2019.04.01 23:47
최근연재일 :
2019.04.11 02:26
연재수 :
8 회
조회수 :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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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글자수 :
38,950

작성
19.04.0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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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
추천
10
글자
13쪽

깨어나다

DUMMY

“후우우~”


류산산(柳珊珊)은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가 익힌 ‘취선팔공’의 경우 호흡의 평정이 중요했다.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이 받쳐준다면 그 위력은 얼마든지 오를 수 있다.

극도로 힘을 쏟아내어 체력이 바닥인 지금, 평정을 잃으면 혈류가 역류하여 엄청난 내상을 입을 수도 있다.

이미 입가에 피가 흐르고 있긴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체질로 미루어 본다면 더욱 그렇다.


쿵쿵······ 쿵쿵······


시야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허나 류산산이 필사적으로 호흡을 가다듬으며 운기를 계속하자 심장의 두근거림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겨우 안정상태에 달했다는 생각이 들자, 이번에는 아예 바닥에 앉아서 눈을 감고 운공에 몰입했다.

효과가 적은 소주천(小周天)이 아니라 그대로 대주천(大周天)에 들어갔다.

방금 들이친 적들의 후속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약간의 체력이라도 회복해야 했으니까.

약 삼다경의 시간이 지나고 류산산은 눈을 떴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사부님부터 챙겼다.


“사부! 사부!”


사부도 죽진 않은 모양이었다. 온 몸에 혈흔이 가득하고 입가에 피를 흘린 흔적이 있건만 마치 게으름이라도 피우는 듯이 한쪽 팔을 괴고 누워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바로 취선팔공의 운기자세였다.

류산산에게 전수할 때는 좌공으로 바꾸어서 가르쳤는데 ‘그래도 여자아이인데’하는 배려 때문이었다.

‘다행이야. 사부님도 괜찮으신 것 같아.’

워낙 나이가 있으셔서 회복에는 오래 걸리겠지만 그래도 명색이 내공이 삼갑자에 달하는 무인이다. 지금 죽지 않았다면 반드시 회복하고야 말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정말 많이 죽었다.

특히 이곳에 함께 있던 호법들은 전부 죽은 것이다.

산산의 마음 속에 울컥 하는 심정이 휘몰아쳤다.


‘대체 어떤 녀석들이지? 마교나 하오문 같았는데······.’


하나 같이 처음 보는 정체불명의 무인들이었는데 무시무시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내공이나 체력은 상상초월이었다.

어떤 자들은 거의 다 목숨줄을 끊어놨는데 순식간에 회복하는 기이한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하늘의 도움이라도 받는가 싶었다.

하나라면 몰라도 이런 자들 세넷이 달려드니 이길 도리가 없었다. 솔직히 이제 죽는구나 싶었다. 상대의 초식이 기이할 정도로 단순하고 융통성이 없어서 그때까지 버티긴 했지만.

헌데 죽음을 각오한 바로 그 순간, 그자들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죽은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그냥 ‘사라진’ 것이다.

마치 무슨 시간제한이라도 있다는 듯이.

하지만 류산산은 지금 이러한 기사(奇事)에 대해 깊게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사부 외에 챙겨야 할 사람이 하나 더 있었으니까.


“이봐요, 괜찮아요?”


바로 낭인의 옷을 입은 남루한 사내였다.

이것도 생각해보면 확실히 기묘한 이야기였다.

사부와 자신이 흑도의 무리들에 둘러싸여 죽음의 위기에 빠져 있을 때 일군의 낭인들이 달려든 것이다. 류산산은 평생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자들이었다.

사부 역시도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던 것으로 보아 사부 쪽의 지인들도 아닌 것 같다.

이들 역시도 놀라운 수준의 힘을 지닌 무인들이었다. 다만 흑도의 무리들에 비해 수가 적었다. 때문에 모두 피를 흩뿌리며 죽어갔다.

한편, 전투에 참가하지 않고 서성이고 있던 낭인 사내가 있었다.

기이한 가면을 쓴 낭인 사내였는데 한 눈에 보기에도 무공 수위는 그리 높지 않아 보였다. 개방으로 치면 일결과 이결 제자 사이 정도? 그래서 끼어들지 않고 있었겠지.

그런데 산산 자신이 이제 죽었구나 싶은 그 순간, 그 자가 칼을 휘두르며 마교의 고수를 향해 뛰어든 것이 아닌가?

마교의 고수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산산에게서 등을 돌리고 그 자에게 일도를 날렸다. 아마 한 칼에 죽이고 다시 산산을 상대하려는 생각이었겠지.


휘익~!


단순한 일도였지만 그 힘이 무시무시했다.

이미 기운을 다 소진한 산산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손을 뻗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산산은 손을 뻗었다.

그 사내의 손을, 자신을 구하기 위해, 힘이 닿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용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달려온 사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두 사람의 손이 닿았다.


바로 그 순간, 사내를 향해 칼을 휘두르던 마교 고수의 모습이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건 없었다는 듯이.

흑도의 무리 뿐 아니었다.

목숨을 걸고 자신들을 도와주러 나선 낭인의 시신도 전부 사라졌다.

남은 것은 죽어버린 개방의 문도와 호법들의 시신 뿐.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고 죽은 듯이 쓰러져 있는 정체불명의 낭인 한 사람.

바로 지금 류산산이 내려다보고 있는 사내였다.

보아하니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상대의 일도에 담긴 경(勁)의 여파로 그만 기절한 모양이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이걸 어떻게 하나·····.”


류산산이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사부가 깨어났다. 사부는 과연 노인네답게 이런 상황에서도 머리가 빨리 굴러갔다.


“고민하긴 뭘 고민하느냐? 일단 안으로 모셔놓고 생각하자.”

“그럴까요?”

“당연하지. 우리 눈앞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긴 했어도 사물의 도리는 감출 수 없이 명확한 법. 비록 정체불명의 낭인이긴 하나, 저자의 동료가 우리들에게 도움을 주려다가 죽어갔고, 저 자 역시 너를 도우려다 죽음의 위기를 겪었다. 그럼 우리가 뭘 해야 하겠느냐?”

“옳은 말씀이에요.”


류산산이 고개를 끄떡였다. 산산이 거지들 사이에서 큰 탓에 천방지축에 장난기가 심한 경향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도리를 모르는 건 아니다. 산산은 사부와 함께 ‘은인’을 고이 모셔 손님이 올 때 쓰는 가까운 방으로 옮겨 놓았다.

‘가면은 벗겨야겠지?’

이런 걸 쓰고 있으면 호흡에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

‘꽤 젊네?’

이십 세도 안 되었을 것 같은 얼굴.

낭인답지 않게 수염도 깔끔하게 소제해놓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별 특징이 없어 보이는 얼굴이다.

이리저리 살펴본다.


헌데 그때였다.

사내가 살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 더욱 눈을 크게 뜨더니 이렇게 중얼거렸다.


“류산산······? 왜 이렇게 화질이 좋아졌지?”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런데 사내는 그 뿐 아니라 손을 뻗어 자신의 얼굴을 만지려고 한다.

움찔했지만 그래도 은인이니 일단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 손이 자신의 뺨에 닿았다가 이리저리 만져댄다.

기분이 묘했지만 딱히 의도가 느껴지는 손길은 아니었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더니 손가락을 바르르 떨더니 떨어진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이랬다.


“이, 이건, 말이 안 되는데······?”


대체 무엇이 말이 안 된다는 건가.

사람의 얼굴을 만지더니 하는 소리가 말이 안 된단다.

류산산은 기분이 확 나빠졌다.

혹시 미친 사람인가? 그래 보이진 않았는데.

사부 역시 그녀의 옆에서 그 모습을 전부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헛기침을 하고 앞으로 나섰다.


“은인께서는 기절했다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혼란이 크신 모양이구려.”

“은인······이요?”

“그렇소이다.”


사부는 젊은 낭인에게 전부 설명해주었다.

정체 모를 흑도의 무리에게 습격을 받아 극도의 위기였던 찰나, 한 무리의 낭인들이 끼어들었다는 것.

그리고 흑도와 낭인들은 혈무가 낭자한 결전을 벌였으며 어떤 시점에서 흔적도 없이 전부 사라져버렸다는 것.

지금 남은 것은 지금 눈앞의 은인 뿐이라는 것.

그 말을 듣고 낭인은 한동안 주저앉아 있다가 갑자기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그리고 다다다 달려서 문 밖으로 나간다.

뭔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듯.

자신의 눈으로 보아야 하겠다는 듯.


“이보시오 은공!”


사부는 소리를 질렀다.

이곳은 산 위라서 밖은 절벽이다. 혹시나 투신하지나 않으런지 걱정된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는 문 밖으로 나가서 멍하니 산 아래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주 낯선 광경을 바라보듯이 뚫어지게.

그러더니 이번에는 지부의 본당으로 달려갔다. 아까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사내는 그곳의 모든 것을 눈이 빠지게 바라보았다. 특히 돌이나 나무 같은 지형지물은 더욱 신경 써서 보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텍스쳐’니 ‘폴리곤’이니 ‘라이팅’이니 중얼거리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저 먼 몽골이나 서역의 말이라도 되는 걸까?

아마도 시신도 찾을 수 없는 자신의 동료들을 추모하고 있겠거니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기다렸다. 그들의 은인이 진정할 때까지.

그래도 궁금증이 가시는 것은 아니다.


[사부님. 은인께서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류산산이 전음으로 속삭였다. 그러자 사부가 표정 하나 움직이지 않고 대꾸했다.


[기다려야 하느니라.]

[무엇을요?]

[현실감을 찾을 때까지.]

[현실감을 왜요?]

[동료들이 죽었잖느냐. 아마 피를 나눈 형제와도 같은 이들이었겠지.]

[아········.]


그제서야 류산산은 고개를 끄떡였다. 사부가 계속 말을 이었다.


[아마 가족 같은 이들을 잃었으니 지금 마음속에선 세상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은 기분이 소용돌이칠 것이다. 지금 이건 진실이 아니야- 이렇게 말이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뭔가 단단하고 변하지 않는 사물을 오감으로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로부터 딛고 일어나 극복할 수 있도록.]


과연. 류산산이 보니 분명 사내는 땅이나 나무, 건물의 재질 등을 눈을 가까이 하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냄새를 맡더니 심지어 혀로 핥기도 했다.

처음에는 참 기이한 괴짜라고 생각했는데 사부의 말을 듣고 보니 그것은 정말로 세상이 세상대로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려는 행위 같았다.

자연스레 찬탄하는 류산산이었다.


[과연 사부님은 아는 게 많으셔!]


사부가 훗 하고 웃었다. 뭘 이 정도야 하는 표정이다.


류산산은 사실 조급하기도 했다.

이번 습격 사건으로 자신의 동문도 많이 죽었다.

일반 제자들은 물론이고 자신을 어릴 때부터 아껴주셨던 호법 어르신들 중 상당수가 유명을 달리했다. 그러니 그들의 시신도 수습해야 했다.

그래도 은공이 제 정신을 차릴 때까지는 잠시 기다려야 할 일이었다.

적어도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은 주어야 하리라. 죽은 사람은 좀 더 기다려줄 수 있을 테니.

다행히 사내는 점점 제 정신을 차리는 것 같았다.

천천히 이쪽에서 다가와서 이렇게 물은 것이다.


“······이곳은 어디이며 지금은 대체 몇 년이지요?”


***


“이곳은 대명, 하남성의 대별산(大別山) 산자락입니다. 개방의 개봉 지부이기도 하고요. 몇 년인가 하면······.”

“그러니까 황제가 누굽니까? 아니, 연호가 어떻게 되지요?”

“현재 황제께서는 명의 다섯 번째 황제이시며 현재는 선덕(宣德) 1년입니다.”

“그러니까 전 황제가 홍희제이고요?”

“그렇습니다.”


개방 방주. 아마 맞을 것이다.

이름이 호영명(胡映命)인가 그랬지 아마?

내가 하는 질문이 기묘하게 느껴질 텐데도 끈기 있게 잘 답해준다.

그렇구나. 선덕제 시절이구나. 그런 설정이었구나.

여기가 개봉 지부라는 걸 보니 내가 하남성에 있긴 한 모양이었다.

개방 본부가 하남에 있다는 건 몰랐다. 게임 속에서는 개봉 안에 있는 포탈을 거쳐 진입하게 되어 있었으니까.

뭐 이런 건 적당히 현실감 있게 맞춰지는 모양이었다.


“근처에 소림이 있구요?”

“물론 그렇습니다.”


그렇구나.

하남이니까 숭산이 있고 그럼 소림사가 있겠지.

한참을 멍하니 있다보니 이제 슬슬 정신이 차려진다.

아니 사실 아직 믿겨지지 않지만 분명히 이것은 지금 현실이었다.

아니 최소한 현실 같이 느껴지는 그 무엇이었다.

물론 나무나 바위 이런 지형지물들은 많이 다르다. 그런 것까지 똑같이 반영되진 않은 것이다.

건물의 모양이나 이런 것도 내가 알고 있는 게임 속 오브젝트(object)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대략적으론 같지만 디테일을 보자면 훨씬 현실적으로 풍성하다.

예를 들어 개방 본당은 게임 속에서는 달랑 한 칸 짜리 건물이지만 여기에서는 몇 칸짜리의 건물이다.


처음에는 뭔가 고도의 몰래 카메라 같은 것인가 했다.

하지만 이런 게 가능한 기술이 존재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있다면 그건 그냥 현실과 다를 게 없겠지.

결국 모든 정보를 조합해볼 때 나는 도저히 지금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 닿고야 말았다.


그렇다.


나는 <운룡구패>의 게임 속 세상에 들어온 것이다.


작가의말

휴우. 

류산산 만세. 

-- 2019.04.04일에 문장의 흐름을 약간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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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낭인회 19.04.11 118 5 10쪽
7 보상 19.04.09 147 6 10쪽
6 퀘스트 19.04.08 169 4 10쪽
5 레벨 업 19.04.06 193 6 12쪽
4 초식 편집 19.04.05 235 6 9쪽
» 깨어나다 19.04.03 273 10 13쪽
2 서비스 종료 직전 19.04.02 296 6 13쪽
1 서비스 종료 한시간 전 19.04.01 385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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