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수색
"여기가 [아리르만]..."
그렇게 우리는 쉬지않고 이동해, 약 2주만의 시간 안에 [아리르만]에 도착했다.
세계 최대의 무역도시답게 도시의 정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형식상으로 경비병 2명만이 나른하다는듯 하품을 하며 서 있었다.
일사량이 많은 도시의 특성상,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 각각의 건물들은 형형색색의 천막들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었고, 하얀색 도료를 바른 벽돌로 만든 건물들이 주를 이루었다.
건물들의 높이는 대부분 2~4층 정도의 크기였으나, 중앙에는 거대한 크기의 왕궁이 그 자태를 뽐내며 서 있었다.
"확실히, 사람들이 많아..."
"응, 사람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족들도."
확실히. 레인의 말대로 여기에는 인간뿐만이 아니라 수인, 엘프, 심지어는 드워프까지 심심치 않게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마도 [류다 연방 제국]과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도시라서 그런 모양이다.
"일단은 저쪽으로 가자."
"아, 응."
레인은 인파에 당황한 내 손을 붙잡곤 왕궁을 향해 힘차게 걸어나갔다.
***
"아니, 왜!"
"글쎄, 안 된다니까."
레인의 계속되는 부탁에도 불구하고, 왕궁의 문을 지키는 경계병은 사납게 그녀의 진입을 막았다.
"너 같은 수인들이 들어올 곳이 아니라니까!"
"아야!"
경계병은 붙잡고 늘어지는 레인을 있는 힘껏 밀어내치곤 옷 매무새를 정리했다.
"아이 씨... 더러운 짐승이."
"... 뭐?"
경계병이 마치 더러운 것이 뭍은 것 마냥 옷을 세차게 털곤 경멸어린 눈빛으로 레인을 보며 욕을 지껄이자, 순간 화가 치밀어올랐다.
"어이, 너 심한거 아니야? 어떻..."
"됐어."
경계병의 멱살을 잡고 따질려던 찰나, 레인은 내 옷깃을 잡았다.
"아니, 하지만..."
"됐으니까."
레인은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조소를 띠었다. 이럴 줄 알았음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싸늘하게...
그녀의 표정을 본 나는 경계병의 멱살을 잡던 손을 힘 없이 툭 내려놓고야 말았다.
***
"개자식들."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한탄했다. 도대체 그녀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리 막 대하는 것인가. 알 수 없는 경계병의 방금 전 태도에 화가 난 나는, 분을 삭히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역시나... 안 되는구나."
레인은 예상했다는 듯 우울해진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왜 이런 대접을 받는거야?"
" '우리'가 아니야."
"응?"
레인은 내 발언을 정정했다.
"지금 르 제국 내에서는, 특히 이 [아리르만]에서는 수인을 천대하는 경향이 있어."
"뭐??"
그녀로부터 듣는 충격적인 이야기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되물었다.
"아니 아니, 왜? 도대체 무슨 이유로?"
"보다싶이 우리 수인들은 얼굴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꼬리나 귀처럼 동물의 특징도 갖고 있잖아?"
"그건 당연히, 종족 특성상 그런거잖아."
레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근데 그 이유로 우리를 '물건' 취급하는거야. 애완동물들과 외관적 특징이 비슷한 우리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주질 않고 있어."
"... 뭐?! 무슨 그딴..."
이딴 괴변이 어딨어. 외관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존중받아야 될 타 종족을 물건 취급 하다니. 쓰레기같은 제국의 논리에 부아가 치밀어오른다.
그녀는 화가 잔뜩 난 나를 보더니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모든 인간들이 너처럼 상냥하진 않은가봐."
"... 미안해."
왠지 모르게 사과를 해야 할 것만 같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냐,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잖아."
"그래도, 나 같은 인간을 보고 화를 내는 건 당연해. 같은 인간이라곤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추악한 짓이 벌어지고 있다니... 정말 미안해."
"으응, 아니야. 너는 다른 인간들과 달라."
"응?"
다른 인간들과 다르다니. 무슨 소리지?
"너는 착..."
"응...?"
목소리가 작아 잘 들리지 않아 되묻자,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옆으로 훽 돌리며 답했다.
"너한테서는 착... 한... 인간의 냄새가 ... 나니까."
"...냄새?"
"됐어!"
레인은 꼬리를 잔뜩 흔들며 말을 얼버무렸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머리를 연신 긁적일 뿐이었다.
***
제국군의 도움을 받는데 실패해버린 우리는, 일단 수소문을 통해 '암시장'을 찾아보기로 했다.
"시작하기전에..."
"...?"
"일단은 이걸 뒤집어쓰고있어. 이제부터 우린 인신매매범이 되는거니까."
"응? 아... 쉽게 말해서, 위장한다는거지?"
레인은 내가 준 회색 천 망토를 머리끝까지 덮어 귀와 꼬리를 가렸다.
"응, 맞아. 그러는 편이 접근하기 더 편할테니까."
"확실히..."
그렇게 우린, 매매범들이 쓰는 은어를 사용해 상인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은어는 레인이 알고 있었는데, 납치 됐을 때 자신을 사고팔던 인간한테 엿들은 모양이다.
"멜론은 남자, 오렌지는 여자, 그리고 1호르당 1살을 의미해. 종족마다 불리는 은어도 다른데, 용족의 경우는 다이아몬드라고 불러."
"그렇다면..."
"[멜론, 10호르 전에 다이아몬드], 이걸로 찾아보자."
"그래."
무작정 상인들에게 이 은어를 말했을 때, 각각 반응하는 경우는 천차만별이었다.
무슨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어깨를 으쓱이는 과일장사 아주머니가 있는가 하면, 말 없이 고개를 양 옆으로 휘젓는 음식점 사장도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몇 시간을 돌아봤지만, 손쉽게 우리가 찾는 곳은 등장하지 않았다.
"역시 쉽지않네."
"응, 용족이니까. 웬만큼 찾기 힘들거야."
하아-
내리쬐는 햇빛에 장시간 걸어다보니 이마에는 땀구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헥헥거리며 더 이상 무작정 찾기만 반복하다보면... 지쳐 쓰러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레인, 아무래도..."
"저기..."
그때였다. 후드를 뒤집어 쓴 한 남자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후드때문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왼쪽 눈은 세로로 길게 상처가 나 있었고, 코와 귀에는 커다란 피어싱을 하고 있었다.
"[멜론, 10호르 전에 다이아몬드], 이거 당신들이 찾고 있는거야?"
"... 네, 맞는데요."
수상쩍은 그는 내 대답을 듣곤 이빨이 보이게 환히 웃었다.
"자, 그럼 따라오라고 친구."
아무래도 이 자가, 우리가 찾고있는 녀석인가보다.
우리는 말 없이 서로를 보고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수상한 사내를 뒤쫓아갔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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