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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인27 님의 서재입니다.

저니맨의 레전드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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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인27
작품등록일 :
2023.01.03 23:20
최근연재일 :
2023.06.14 09:00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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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8,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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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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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화

DUMMY

4화






분명 어렵게 흘러가는 경기를 뒤집을 수 있다는 조그마한 희망이 보였을 뿐이지만, 한국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오로지 승리하는 목표를 위해 모든 집중력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분명 아웃이 되는 게 확실한 타구인데도 1루를 향해 슬라이딩하기도 했고 베네수엘라 투수에게서 한 개의 공을 더 던지게 하지 못했다는 것에 아쉬워하는 모습은 얼마나 승리에 진심인지를 알려주는 증거들이었다.


정확히 언젠가부터 인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동화된 모양인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베네수엘라 선수단을 흔들기 위해 노력했다.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것을 이용해 이전 생에선 절대 해 본 적 없는 트래시토크를 이어가며 베네수엘라 선수들의 멘탈을 건드리려 노력해보기도 했고 베네수엘라 투수를 공략하기 위한 방법을 같이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것을 한다고 해서 곧바로 경기의 분위기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온 힘을 기울이는 것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규호야! 천천히 승부가져가라. 무리해서 큰 스윙을 가져갈 필요는 없어.”


이전 생과 마찬가지로 국가대표팀의 타격코치를 맡은 정석원 코치는 나에게 다가와 무작정 큰 타구를 노리기보다는 흐름을 이어갈 수 있는 출루를 만들어내기를 원하는 듯 했다. 하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이미 베네수엘라 투수와의 승부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확실하게 정한 것이 있었다.


“이번에도 몸쪽으로 한 번 더 부탁해.”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당연하게 포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며 베네수엘라 배터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도록 만들었다. 베네수엘라의 투수 유스메이로 벨리사리오는 첫 번째 타석에서 허용한 장외홈런이 여전히 신경이 쓰였는지 잔뜩 찡그린 얼굴로 마운드에서 내가 준비를 마치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나는 잔뜩 찡그리고 있는 그를 향해 짙은 미소를 보여주고는 이전 타석과 마찬가지로 천천히 루틴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이전 타석과 마찬가지로 느리게 진행되는 나의 루틴에 벨리사리오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마운드를 스파이크로 여러 번 내려찍으며 나의 루틴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피쳐!”


나의 루틴이 끝나고 내가 타격할 준비를 마치자마자 구심은 벨리사리오에게 빠르게 투구를 이어가라는 신호와 함께 나에게도 더는 넘어가 줄 수 없다는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 구심의 날카로운 눈빛을 확인했음에도 나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으며 효과가 있다면 계속해서 지금과 같은 루틴을 진행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슈우웅~ 파악!


벨리사리오는 첫 번째 승부에서 허용했던 장외홈런이 어쩌다가 운이 좋아서 만들어진 결과라고 여긴 모양인지 다시 한번 초구를 나의 몸쪽 깊숙한 코스로 찔러넣었다. 나의 몸에 닿을 것처럼 깊숙하게 파고드는 공이었음에도 나는 전혀 반응하지 않고 맞추려면 맞추라는 식으로 배짱을 부렸다.


“너희 팀 투수 제구가 안 되는 모양인데 한번 마운드에 올라가 보는 게 어때?”


분명 몸에 맞았다면 큰 데미지를 입혔을만한 공이 눈앞으로 날아왔음에도 내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너스레를 떨며 이야기하자 베네수엘라 포수는 더는 나와 대화를 하려 하지 않고 그저 벨리사리오에게 바쁘게 싸인을 전달할 뿐이었다.


“왜 그래~ 내가 스페인어 할 줄 알아서 재밌어했잖아. 같이 이야기하면서 하자고.”


침묵을 유지하는 그에게 말을 계속해서 거는 것과는 별개로 나의 시선은 여전히 벨리사리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가 언젠가 한 번쯤 던질법한 원하는 코스의 공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승부를 이어나갔다.


승부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불리해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베네수엘라 배터리가 빠르게 승부를 걸어올 것이라는 사실은 경기를 지켜보는 누구든 예상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한국 국가대표팀이 끈질기게 벨리사리오와의 승부를 이어가며 많은 투구 수를 던지게 한 것도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쫄았나보네. 이렇게까지 오래 끄는 거 보니까.”


내가 다시 한번 트래시 토킹을 이어가며 베네수엘라 포수의 신경을 긁으려는 찰나에 차분한 경고의 말이 나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쯤 하지. 이제 더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야.”


트래시 토킹이 만연한 메이저리그에서 구심을 보는 그에게도 나의 계속된 트래시 토킹은 참아내기가 힘든 수준이었는지 그만하라는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어조는 분명 차분했지만 말 속에 담긴 날카로움을 느낀 나는 더는 트래시 토킹을 이어가지 못하고 루틴만을 이용해 벨리사리오의 신경을 긁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거칠게 와인드업을 시작한 벨리사리오의 타이밍에 맞춰 나 역시 온몸의 힘을 한 곳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첫 번째 타석에서 장외홈런을 만들었던 몸쪽 높은 코스가 아닌 완전히 반대되는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 낮은 코스를 향해 거침없이 돌아간 배트는 마치 중간에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따악~!


자연스럽게 돌아간 배트와 다르게 벨리사리오가 온 힘을 다해 던진 공은 그가 의도한 결과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전 타석에 날아갔던 홈런타구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가는 타구는 다시 한번 담장을 넘어가고 나서야 움직임을 멈췄다.


“나이스 배팅!” “규호야! 나이스!”


깊은 침묵에 빠진 베네수엘라 더그아웃과는 달리 한국 국가대표팀이 위치한 더그아웃은 완연한 활기를 띠며 경기의 흐름이 완전히 자신들의 것이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첫 번째 홈런 때와 마찬가지로 차분하게 베이스를 돈 나를 맞이한 것은 엄청난 인디언 밥 세례였다.


나의 등에서 따갑지 않은 곳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길게 이어진 인디언 밥 세례가 끝나자 나의 시야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힘겹게 미소를 감추고 있는 김형원 감독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라는 느낌으로 맡았던 청소년 국가대표팀 감독이라는 자리에 어느새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다.


“차분하게 승부하라니까는··· 하여간··· 요즘 애들은 말을 잘 안 들어. 그래도 나이스 배팅이었다.”


다른 선수들을 위해 내가 조금 더 많은 공을 봐줬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던 모양이지만 내가 만들어낸 결과에 만족하는 듯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하지 않은 채 나의 손을 꼭 쥐어주는 것으로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을 건넸다.


내가 더그아웃에서 한참 동안 따가운 등을 붙잡고 씨름을 하는 동안 베네수엘라 더그아웃에서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고 있었다. 단 두번의 장타로 경기의 분위기가 완전히 한국 쪽으로 넘어가 버린 상황을 어떻게든 바꾸려 했기 때문이다.


결국 다른 타자에게는 단 하나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고 오로지 나에게만 두 개의 홈런을 내준 유스메이로 벨리사리오는 자신의 국가대표 첫 번째 선발경기를 허무하게 마무리를 짓고 말았다. 마운드에서 더그아웃으로 내려가는 동안에도 그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나만 아니었다면 자신이 이렇게 초라하게 강판당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는 듯 보였다.


베네수엘라 코치진으로서는 그들이 강하게 믿고 있었던 벨리사리오가 4이닝도 채 막아내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마운드에서 내려온 상황에 제대로 대비가 되어있지 않은 듯 보였다. 불펜에서 올라온 새로운 투수 역시 제대로 어깨가 풀리지 않은 모양인지 제구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타자들과의 승부를 스스로 어렵게 끌고 가고 있었다.


“천천히 승부해! 투수가 스스로 무너지고 있잖아! 무리해서 달려들지마!”


정석원 타격코치는 계속해서 선수들에게 승부를 신중하게 가져가 달라고 요구하며 무너져가는 베네수엘라 투수의 흐름을 완전히 망가뜨리려는 모습이었다. 선수들 역시 정석원 코치의 의도대로 최대한 끈질기게 승부를 이어나가면서 마운드 위에 서 있는 투수를 흔들리게 만들었다.


그와는 반대로 경기 초반 베네수엘라 타자들에게 포심 패스트볼을 공략당하면서 안타를 많이 허용했던 한국의 선발투수는 어떻게든 실점만큼은 허용하지 않으며 분위기를 매끄럽게 이어나갔다.


결국, 베네수엘라 더그아웃은 7회가 넘어간 시점부터는 더는 이 경기를 뒤집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꼈는지 빠르게 주전선수들을 대거 교체하면서 수건을 던지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경기가 마무리된 뒤 국가대표팀 숙소인 호텔로 돌아가는 시점에도 나는 여전히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여러 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살던 인생에서 절대로 무너지지 않았을 것 같았던 사과를 한입 베어 물은 기업이 미국 주식시장에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여파 때문인지 창문을 표방한 기업은 이미 IT 시장에서 완전한 독점체제를 구축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중이었다. 그 외에도 자잘 자잘한 변화들이 내가 새롭게 눈을 뜬 세상이 이전과는 완벽히 다른 세상임을 알게 해줬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내가 어릴 때부터 자리를 잡고 생활해왔던 보육원은 이전과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나의 전화를 밝은 목소리로 받아주는 수녀님이 여전히 존재했다는 점이다. 내가 두 개의 홈런을 때려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셨으면서도 나의 자랑이 끝나기만을 기다리시는 수녀님의 모습이 여전히 나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으어~ 힘들다···”


버스에서 내린 뒤에 저녁식사를 마치고 룸메이트인 나와 함께 호텔 룸으로 돌아온 김문중은 다른 곳에는 관심도 두지 않은 채 침대를 향해 몸을 던져버리고 있었다. 내가 무엇인가를 물어보기도 전에 이미 잠이 들어버린 김문중을 보며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혼자서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며 야구에 관해서 이전 세상과 달라진 요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역시나 메이저리그의 흐름을 바꿔놨던 스테로이드 시대를 지나면서 발생했던 투고타저의 시대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클레이튼 커쇼, 저스틴 벌랜더, 맥스 슈어저로 이어지는 2010년대 최고의 투수들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분명 스테로이드 시대보다 선수 개인이 때려내는 홈런의 갯수는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만들어지는 홈런갯수는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하는 추세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홈런의 시대라고만 이야기할 수 없는 면도 있었는데 무작정 홈런만 많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리그의 전체적인 타율 자체가 높게 형성된 타고투저의 흐름이 이어졌다고 보는게 맞았다.


‘이런 추세라면 분명 사무국에서 또 수작질을 부릴법한데··· 인기가 날로 늘어나고 있으니 건들지 않은 건가?’


스테로이드 시대를 겪으며 주춤했던 야구의 인기가 타고투저의 흐름으로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자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굳이 나서서 타고투저의 흐름을 막아 세우지 않는 모습도 보여줬다.


‘이게 진짜 본명이 맞는건가···’


게다가 규호가 프로로 입단하게 될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예상순위에는 규호의 눈길을 끄는 특이한 이름의 선수가 최상단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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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5화 +1 23.03.05 537 1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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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3화 +1 23.02.23 578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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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1화 +1 23.02.12 637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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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8화 +1 23.01.31 700 1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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