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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류 님의 서재입니다.

10월 1일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중·단편

레트류
작품등록일 :
2020.10.11 14:23
최근연재일 :
2020.10.15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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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71

작성
20.10.15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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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

DUMMY

날이 밝았다.

꿈을 꾸었다.

동료가 죽는 꿈을 꾸었다.

앙겔라가 죽는 꿈을 꾸었다.

헤르만이 죽는 꿈을 꾸었다.

에나즐리가 죽는 꿈을 꾸었다.

참으로 끔찍한 꿈이지만, 그래도 결국 꿈일 뿐이다.

차라리 꿈이어서 다행이다, 그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끔찍해 참을 수가 없다.

이미 세 명이나 우리를 떠나갔는데, 남은 그들마저 잃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렇지 않은가, 동료들아. 나의 동료들아.


그런데 왜, 아무도 없지.

일어나면 서로 마주 보게 잠들었을 동료들이, 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걸까.

왜 삐걱거리는 몸을 일으키고,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 걸까.

왜.

왜더라.

아, 죽었구나.

그제 죽었구나.

꿈인 줄만 알았는데.

꿈이 아니었구나.


나는 그제 일어난 일도, 오늘 일어난 일처럼 기억하고 있구나.

차라리 잊었으면 좋았을 텐데.

모래처럼, 먼지처럼 날아가 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끔찍해 참을 수가 없다.

고통도, 감정도.

참을 수가 없었다.


해가 중천이었다.

배가 고팠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아직 가방에는 미약하게나마 무게가 남아있었다.

이제 완전히 나만 남아버린 토벌군.

동료를 버리면서까지 이루려고 했던 토벌의 의지.

고작 허기조차 참지 못하는 자가, 그것을 어찌 이룬다는 말인가.


아니. 이루지 못한다.

나보다 재능 있는 자들이 수도 없이 져갔다.

그런데 나라고.

심지어 이런 상처뿐인, 붕대로 칭칭 동여맨 조각난 몸뚱이를 이끌고.

세상을 상대로 한 전투에서 홀로 승리한 마왕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인가.

불가능하다.

참지 못하겠다.

그러나 참아보자.

하루만, 딱 하루만.

거기서 안되면, 열어보자.

마지막 남은 식량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자.

어차피 나밖에 없으니까.

어차피 토벌할 수 없으니까.

목적이 이뤄질 리가 없으니까.

그저 도달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으니까.


날이 저물어간다.

왜 인간은 강한가.

고작 다리 두 쪽 썩어가는 걸로는 죽지 않는 건가.

머리가 찢기고, 심장이 터져야만 죽을 수 있는가.

형언할 수조차 없는 고통을 얼마나 겪어야만 죽을 수 있는가.

어쩌면 이미 죽은 것이 아닐까.

죽은 것은 나이고, 다른 동료들이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

차라리 그러면 좋으련만.

오로지 나만 억겁의 고통을 겪는다면.

그들이 나의 마지막 의지를 이룬다면.

아무리 꼴사나운 도피라도 가능했을 텐데.


불가능한 것을 알았다.

그래서 걸음을 걸었다.

망가진 몸뚱이지만, 성실하게 걸음을 옮긴 탓에 꽤 많은 거리를 지나올 수 있었다.

비록 날이 저물기 바로 직전이지만, 오늘 하루를 묵을 곳을 찾을 수 있었다.

하루를 연명할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늘은 흙바닥에서 자지 않겠구나.


끔찍한 파괴를 당해 그저 형태만이 남은 마계의 마을.

무더기로 쌓인 시체는 죽은 지 꽤 된 듯 파리마저 날리지 않는 백골뿐이었다.

악마의 뼈다귀도 인간과 같구나.

그러니 그렇게 똑같은 패배를 겪었겠지.

백골 사이를 지나다니며, 위태위태한 걸음을 이리저리 옮기며.

결국 하루만 묵어, 의미 없을 것임을 앎에도.

그나마 잠을 청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다녔다.

어제의 흙바닥보다는, 더 나은 장소를 찾아다녔다.


이 곳이 좋겠다.

비록 다 썩어가는 통나무로 만들어진 집이지만.

벽도 몸을 눕히면 어느 정도는 숨길 수 있었고.

무엇보다 바닥에 반쯤 타들어 간 카펫이 깔려 있었다.

찾았다.

오늘은 여기에서 묵자.


날이 저물었다.

가방을 베개 삼아 머리 쪽으로 옮기고 몸을 뉘었다.

오늘은 찬바람 간간이 새어오는 건물의 한구석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지팡이를 옆에 놓아두고, 썩어가는 다리를 카펫 위에 억지로 늘어놓는다.

밀려드는 고통을 참아내고, 하늘을 보았다.

지붕이 있을 곳은 뻥 뚫려 별빛이 오롯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마계의 밤도 인간계의 밤과 이리도 똑같았던가.

누워서 마주하는 풍경이 이리도 유사했던가.

참으로, 의미 없는 공통점이구나.


눈을 간지럽히는 달빛을 떨쳐내고 눈을 감았다.

이 모든 밤이 지나고, 내가 다시 눈을 뜨면.

부디 꿈이었기를 빌었다.

그저 돌아가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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