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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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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오탱이
작품등록일 :
2024.01.23 21:18
최근연재일 :
2024.08.06 21:00
연재수 :
150 회
조회수 :
12,530
추천수 :
99
글자수 :
852,780

작성
24.06.04 20:00
조회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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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109화

DUMMY

​“주최 측에 요구 하나 있습니다!”

“넹?”

“힌트 주세요!”



난 당당하다. 이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내가 외칠 수 있는 최후의 외침이자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한다고. 내 마력으로 만들어진 상황이니까 더더욱!


괴담 속의 공간이고 지금껏 철수 이외에는 오고 갔다는 기록도 없는 0층에 이렇게 쉽게 오게 된 것도, 그곳에서 갑자기 이상한 설정이랑 괴물들 생겨서 상황이 이렇게 꼬인 것도, 그리고 내가 폭주하자 부스터 터진 것처럼 무작정 지금의 상황에 도착한 것까지.


그 모든 것에 탑의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면, 나를 이렇게나 괴롭힌 대가로 이 정도의 부탁은 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슨 힌트요? 선택은 언제나 본인의 몫이고 그 선택에 대한 결과도 온전히 본인의 것이라는 거?”

“아니 그런 인생 조언 같은 거 말고. 둘 중에 누가 진짜인지!”

“진짜의 정의가 뭐죠?”

“철학적인 토끼인데? 마음에 들어. 시간이 많다면 느긋하게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은 심정이야.”

“쪼끄만 게 말꼬리나 잡고 말이야! 공허 세계에 가둬버린다!”

“그런 것도 할 수 있는 거야······요?”

“그냥 반말해!”

“말들이 많아 말들이! 나 말 좀 하자! 진짜의 정의란! 이곳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설이! 눈깔괴물과 5층 주민들의 힘이 합쳐져서 탄생한 것이 아닌 존재!”

“아하! 하지만 그걸 어떻게 구별하죠?”

“네가 어떻게든 해 봐!”

“어어, 저희들은 게스트 초대와 격리만 해도 힘을 다 소비하는데요?”



와아, 진짜 무능하네.


······아니지. 힘을 다 소비해서 이렇다 할 힌트를 줄 수 없는 거라면, 내가 힘을 주면 되는 거잖아? 애초에 내 마력으로 이 영역이 만들어진 거니까!


거참. 진짜 온종일 쓰고 쓰고 또 써도 동나지 않는 위대한 내 마력 주머니에 새삼 놀랍다. 그렇게 썼는데도 아직 한참이나 여유가 있단 말이지?


자자자 그렇다면 이 인심 좋은 아저씨가 거대 마력 주머니의 입구를 활짝 열어줘야지. 오늘이 너희들 크리스마스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울지 않은 상으로 마력 듬뿍 줄게.



“형. 그거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응?”

“······.”

“응? 철수야 뭐라고? 어? 철수야?”



없다. 철수가 없다. 영역의 문을 열고 마력을, 그러니까 피를 쏟아내자마자 무언가 바뀌었다. 어라? 나, 나 또 뭔가 실수했나? 왜 자꾸 내가 뭔가 할 때마다 일이 생기지? 내가 뭐라고!


주변이, 굉장히 어둡다. 아니, 어둡다? 잘 모르겠다. 어두운 것치고는 내 몸이 너무 뚜렷하게 잘 보인다. 굉장히 밝은 빛으로 비치고 있는 그 어떤 경계도 보이지 않는 검은 천으로 둘러싸인 방에 갇힌 것 같다.


찰칵!


내 그런 감상을 뭉개버리려는 듯, 어디서 내려오는 것인지 모를 빛이 한 줄기 떨어지고, 그 아래엔 어린 설이가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 리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을 때와도 다른, 정말 10살이라는 설이의 나이에 어울리는 그 앳된 아이가 빛의 아래에서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누, 누구 없어여?”

“설아!”

“이 빛은. 본질을 꿰뚫습니다.”

“?!”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 자체는 주최 측이라고 불렀던 그 사회자 토끼와 똑같은 것이었지만, 무언가, 감당하기 어려운 힘이 담겨 있었다.


본질. 본질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역시 저 설이가 진짜 설이인가?



“당신은 각각의 게스트에게 단 하나의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 한 번의 질문으로, 부디 당신이 바라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네요.”

“······다른, 다른 애들은 어디로 간 거야?”

“선택에 방해가 될 다른 요소들은 모두 배제했습니다.”

“미치겠네.”



······뭐 그렇게 됐으니 일단 따라 보겠는데, 하나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저 어린 설이는, 내가 아는, 내가 눈 뜨고 이곳에서 처음 본 그 설이가 맞는 걸까?


본질을 보여준다고 했다. 본질만 보여주고 지금 당장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으니, 알 수가 없다.


내가 봤던 미래 설이가 진짜여도 저런 모습으로 보일 거 아니야? 알 수가 없네.


게다가 질문, 이라고 했지만. 가짜들도 진짜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것 같던데? 도대체 무슨 원리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옛날의 일을 묻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고, 뭔가, 결정적인 무언가를 물어봐야 하는데······. 그게 뭔데? 난 몰라 그런 거!!


애초에 내가 뭐, 설이를 아껴주고는 있다만, 지금 우리가 만나고 1년이나 지난 줄 알아? 두 달? 석 달? 시간의 밀도가 높아서 친밀도도 높고 소중하고 그런 거지 많이 알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란 말이야!


지금까지, 지금까지 내가 봐온 가짜들의 특징을 생각하자면, 으, 으으, 일단 기본적으로 하나 같이 진짜를 닮으려는 노력을 하다가 만 어중간한 것들이었지만!


그래도! 가장 비슷했던 가짜 철수! 도시에서 만났던 그 철수를 예를 들자면, 뭔가, 아주 사소한 부분이 달랐지.


설이가 갑자기 납치 당했는데도 그저 마냥 귀찮다는 반응, 덕분에 녀석이 가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로 진짜와 똑같았지.



“······좋아. 질문할게. 설아!”

“헉! 오, 오빠! 오빠아아아!”

“설아! 진정하고! 질문에 대답하면 돼! 철수! 어떻게 생각해!”

“어, 어? 네? 철수 아저씨? 어어······말, 안 할래······.”



입을 삐죽 내밀고 대답을 거부한다. 당장 떠오르는 답이 있었지만, 그 답을 차마 입에 담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인가.


철수랑 매번 투닥거리고 툴툴거린다고 해도 설이도 나름 철수를 믿고 의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곧이곧대로 말하려니 부끄러울 수밖에.


쓰읍, 판단하기 좋은 반응이긴 했지만, 저걸 내가 완전한 선택의 기준으로 쓸 수 있을까? 그건, 아마 다음 설이를 만나면 알게 되겠지?



“······어?”

“이건, 또, 뭐야?”



다음은 솔직히 말해서 눈깔괴물이 나올 줄 알았다. 그래서, 앞의 설이와 똑같은 질문을 하고 다른 대답이 돌아오면, 다시 돌아온 선택의 순간에 어떤 대답을 했는가 되물어 선택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힘들게 되었다. 지금 내 눈앞에는 설이가 있다. 그래. 설이다. 어린 설이가 아니라 내가 기억하는 가장 최근의 설이의 모습이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던 설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린다.


난 지금 심장이 떨어질 것 같은데 너는 왜 안도하는 거니. 나도 그 안도감 조금만 빌려줘.


······아,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대답을 듣는 것이 두렵다. 만약 똑같은 대답을 하면 어떡하지?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이쪽의 설이를 더 ‘진짜’ 라고 느끼면?


아니. 아니잖아. 이건 아니지 않나? 한쪽은 근본이 눈깔괴물이잖아. 그런데 왜 근본이 저 모습인 건데? 이거 시가 아니야? 그냥 내 머리 더 복잡하게 하려고 일부러 이러는 거지?


뭐, 눈깔괴물은 텅 비어 있는 존재라 설이를 따라 하면서 새롭게 태어났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거야? 뭔데 대체?


어떤, 대체 무슨 질문을 해야 하지? 질문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인가 이거?



“······설아.”

“응. 아니, 네? 나, 오빠한테 어떻게 말했더라?”

“······.”

“으음······이젠, 나이도 비슷해졌으니까, 그냥, 그냥 편하게 말해도, 되지? 히히.”

“아니, 그, 후우······.”

“오빠. 괜찮아! 나 여기에 두고 가도 돼······나, 오빠가 그렇게 머리 아파하는 거 보기 싫어! 가뜩이나 철수 아저씨 때문에 머리 아플 텐데! 나까지 오빠의 근심걱정이 되고 싶지 않아!”



설이가 잘 컸구나······아, 아니! 아니 기다려! 크아악!


퉁!


설이를 비추던 빛이 사라지고, 이윽고 세상은 다시 꽃밭으로. 시발.



“어? 인수 씨? 무슨 식은땀을 그렇게 흘려요?”

“와아, 인수야 너, 몰랐는데 시간 관련 능력도 있었구나? 으으음~이런 잡것들한테까지 영향을 끼치는 건 별로 안 좋은데!”

“떠나기 전에 대충 봉인만 해두지 뭐. 그래서 형. 격리된 시간 속에서 뭐 나쁜 거라도 봤어?”



질문은 중요하지 않았다. 질문의 내용과 질문의 답변은 전혀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가 마주 본 두 사람의 근본이 어떠했는가. 난 그것을 보고도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가.


좋아하고 싶어도 좋아하기 어려운 철수에게 애증의 감정을 품은 어린 설이와, 낮은 자존감에 본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설이.


둘 중 하나는 분명 나와 함께 이곳으로 넘어온 설이가 맞을 텐데, 그게 누구일까?


철수 저 새끼는 분명 알고 있을 텐데! 입 꾹 다물고 있는 것 좀 봐! 네가 밉다! 네가! 미워!!



“세상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너무 달라진 것 같아서 무서워.”

“세상은 언제나 이 모양이었어. 친구가 세상에 관심이 없었을 뿐이지.”

“그른가. 난 방송이나 하면서 살고 싶다~”



내 눈을 피하며 카나와 잡담을 나누는 철수. 저저저, 저놈 저거.


후우······아무리 생각해도 미래 설이가 가짜가 맞다. 그런데, 그 미래 설이가 자긴 괜찮다는 말을 던지는 것이, 내게 계속해서 가능성을 떠올리게 만든다.


눈앞에 보이는 설이는 둘 다 그냥 조용히 내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뭐라고 대체 이런 선택의 자리 앞에 서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진짜 설이를 이 아득히도 세상과 떨어져 있는 기이한 세상 속에 평생을 버려두게 될 수도 있다.


눈깔괴물들의 모습도 그렇고, 정말 아무것도 없이 뻥 하니, 무서울 정도로 넓게 펼쳐진 평야도 그렇다.


철수는 또 어떻게 그 길고 긴 시간을 버텨낸 것 같다만, 그 과정에서 영희라는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내고, 본인의 정신은 불안정하고,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었다.


나의 단 한 번의 선택이 실패로 끝나는 순간. 설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사라지고 다른 무언가로 대체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살던 저 현실에서도, 이곳 0층에서도.



“저기 그런데~철수 네가 가짜 진짜 완벽하게 알아볼 수 있는 거면 너랑 같이 있었던 우리는 계속 진짜인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네 옆에 있는 설이나 나나 영희가 가짜면, 네가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잖아!”

“아닌데?”

“아니야?!”

“그냥 내버려 두는 편이야. 딱히 내게 공격적이지도 않았으니까.”

“방금 전에는 다짜고짜 죽이려고 했잖아!”

“위험해 보여서. 나도 한 번은 당해서 정신 못 차리기도 했잖아.”

“당하고 깨달은 거야?”

“응.”

“너무 솔직하니까 할 말이 없네.”

“이런 나조차도 처음 오르는 계단은 언제나 실수 투성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 이 계단은 어떻게 올라야 하는 것인가. 자세와 시간과 태도, 그 모든 것이 미지의 영역이지. 그것을 탐구하는 것도 분명 하나의 재미지만, 나만 재미있고 다른 사람들은 재미없는 것 같아.”

“이제야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우는 것 같네. 진짜 애도 아니고.”

“이걸 배움이라고 해야 할까, 잊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해야 할까.”

“뭐든 정의 내리기 마련이라지만, 무언가 하나를 ‘이것이다!’ 라고 정의 내리긴 어려운 것이지.”

“······친구. 나 조금 감동한 것 같아.”

“괜찮아 울어도 돼.”

“둘 다 좀 조용히 해······! 인수 집중하는 중인데! 뭐하니 둘이?”

“들을 거 다 듣고 조용히 하라니.”

“영희도 사람이 착해서 그래. 가끔 무서운 것만 빼면.”



카나 씨는 정상인 줄 알았는데, 저 사람도 잔잔하게 미쳐있구나. 두렵다.


······어! 아이 미친! 저것들 때문에 내 고뇌가 끊겼어! 크아아악! 김철수우우!! 카나아아아!!



“선택을!”

“?!”

“선! 택! 을!”

“윽! 재촉하지 마! 나는! 나는!!!”



······복잡해졌던 머리가 카나와 철수의 만담 때문에 깨끗하게 지워졌다. 오히려 머리는 깔끔해져서 두통도 사라졌다만, 마음은 한없이 초조해진다.


으음, 으으으으음! 모르겠다! 모르겠어!



“선택을!”

“닥쳐! 오냐! 그렇다면! 내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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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110화 24.06.06 1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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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106화 24.05.29 2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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