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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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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오탱이
작품등록일 :
2024.01.23 21:18
최근연재일 :
2024.08.06 21:00
연재수 :
150 회
조회수 :
12,504
추천수 :
99
글자수 :
852,780

작성
24.06.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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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13화

DUMMY

​ 마치 깊고 깊은 심연에서 기어 나온 것만 같은 어둠을 보았다.


마주한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본능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저 조금 더 편안한 죽음이 다가오길 기다리기만 했다.


그런, 아주 조금의 빛도 보이지 않는 그 어둠은 인간의 위로 뒤덮여 자신의 어둠으로 집어삼켰다. 아주 짧은 찰나에 어둠은 세상을 뒤집었다.


수많은 생명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도 모른 채, 휘둘러진 어둠이 빛에 사라지자 세상은 본인들이 알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이 되어 있었다.


명백한 약자. 하지만 어째선지 계속해서 본인들을 방해하고 살아남는 기인. 그저 그 정도였던 것 같은데.



“이제부터 여긴! 내 땅이야!!”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약하고 약한 그저 초보 탑험가에 불과한 인간인데, 현시대의 어둠을 앞에 두고 당당히 외치고 있었다.



“······.”



그 외침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알았다고 말할 수도, 싫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너무나도, 기이했으니까.


강한 힘으로 세계를 발아래에 두려고 했던 본인들의 앞에 나타난 압도적인 힘을 휘두르는 상대적 약자. 뭔가 말이 이상하다.


인수는 탑에 들어오고 시간이 오래되지 않았다. 시간의 장단이 힘의 대소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정도가 있기 마련이다.


크게 잡아도 레벨은 10 중반에서 후반. 겨우 그 정도. 30레벨이 평균이고 가장 위로는 40레벨에 닿은 괴물도 있는 새시대의 입장에선 무서울 것이 없는 존재.


그런데 어라? 뭔가 잘 안된다.


처음 새시대 준동의 순간에 죽이려 했을 때도 실패해 끝까지 추적한 인원은 그 시체조차 건지지 못했다.


실제로 그때 그들은 인수가 본인들에게 제대로 힘도 쓰지 못하고 도망만 다니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 결과는 전혀 달랐다.


게다가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 힘으로 압도당했다.


기이한 강함. 약한데 강하다. 강할 수가 없는데 강하다. 명백한 부조리.


그 누구보다 세상의 부조리에 앞장섰던 새시대는 본인들 앞에 나타난 더 거대한 부조리함에 정신을 못 차린다.



“그럴 리가 없다.”



언제나 돌연변이는 있기 마련.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하고 괴상망측한 상황의 틈을 비집고 튀어나오듯이 새시대의 한 명이 앞으로 걸어 나온다.



“저놈이 저렇게 강할 리가 없어. 이건 무언가 속임수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 대부분이 베테랑이었다. 뭔가 속임수, 환각, 그따위의 것이었다면 이미 누군가 한 명 정도는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런 인물이 없다는 건, 지금 일어나는 현상이 명백한 현실이라는 증거. 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다. 이런 게 현실이라니.



“난 새시대의 나 무개다! 우노의 박인수! 너에게 대결을 요청한다!”



그러니 직접 맞부딪치겠다! 내 힘으로! 증명하리라! 저 간사한 존재의 거짓을! 어둠에 잡아 먹혀 굳어버린 모두에게 빛이 되어주리!


그렇게 생각하며, 한 발짝 나아간 순간, 아니 분명히 그렇게 했노라 생각한 그 순간이 머리에 그려지는데, 분명히 의지로는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을 텐데.


두 다리가 덜덜 떨리고 꼼짝도 하지 않는다. 본능이 외치고 있는 걸까? 움직이지 말라고, 애써서 죽음에게 다가가지 말라고 외치는 건가?



“젠장!”



퍽퍽! 움직이지 않는 두 다리를 주먹을 퍽퍽 내려치며 있는 대로 고함을 질러대는 그는 마치 소년 만화의 주인공 같았다.


공포를 앞두고서도 육체가, 본능이 거부하는데도 책임감과 용기로 억지로라도 앞을 향해 나아가는 그 모습은 그의 등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큰 감명을 줄 것이 분명했다.


그가 새시대, 세상을 힘으로 지배하려 하는 뭔가 거창한 신념보다는 그냥 ‘내가 세니까 내가 대장 할 거임!’ 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의 지금 행동이 꽤 멋있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의 손에 억울하게 죽어 나간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이미 예전에 스왐프와 연결되어 본인이 속한 길드도 속이고, 본인을 믿어주는 이들도 속이며, 얼마나 많은 거짓과 기만을 일삼았을까.


지금 위대한 용기를 터트려 누군가의 앞길을 밝혀주는 이 사람은 그냥 괴물이었다. 세상에 그의 서사를 전한다면 들은 모두가 제발 그가 빨리 죽기를 기도할 정도로.



“나와라! 우노의 박인수!! 네가 진정으로 우리에게 명령할 정도의 강자라면! 나의 도전을 거부하지 마라!”

“어우 씨, 이거 어떡하지.”

“좀 전에 그거 다시 못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야야 철수야 네가 어떻게든 좀 해봐!!”

“굳이 그럴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는데.”

“이런 것도 친구라고 같이 다닌다, 진짜 속상하다 속상해!!”

“아니. 내 말은.”



불타오르는 저열하고 추악한 용기로 이미 피로 물들어 있던 그의 길을 계속해서 나아가는 나 무개 씨. 이 얼마나 영웅적인가.


힘내라 나 무개! 당신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앞으로 세상에 펼쳐진 길고 어두울 공포의 시대를 앞당겨 올 것이다! 시대의 주인공이! 멸망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위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가라! 나 무개!


펑!


멸망의 도화선. 악의 영웅. 어둠이 나아갈 이정표. 빛 속에서 눈 뜨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그늘을 만들어내는 큰 먹구름. 이, 될 수도 있었을, 하지만 결국 역사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아무개의 머리에 큰 구멍이 만들어졌다.


강렬한 마력 탓에 뻥 뚫린 구멍은 푸른 불꽃으로 타오르며 드리우던 그림자에 한 줄기 빛을 뻗어내니, 그늘 아래로 모이던 이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불꽃으로 타오르는 통로의 너머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후우, 한참 걸렸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바로 조금 전까지 어디 추운 지방에 있다가 온 것 같은 두껍고 포근해 보이는 차림새는 지금 이곳에선 조금 덥게 느껴져야 할 텐데, 몸에서 흘러나오는 한기에 오히려 추위가 느껴졌다.


급히 달려온 것처럼 산발이 된 머리카락의 끝은 얼어붙어 있고, 피부 위로는 땀이 아니라 작은 물방울 모양의 얼음이 매달려 그녀가 머리를 정리하는 틈에 후두두두 떨어진다.


동그란 안경에 서리가 끼었지만 내뱉는 숨조차 차가워 녹여낼 수도 없어 그냥 벗어버리는 그녀는, 안경을 벗으니 어쩐지 조금 인상이 날카로워진 듯 보였다.


턱을 치켜들고 저 멀리 보이는 쓰레기들을 혐오스럽게 내려보며 그녀는 누구와는 다르게 거리낄 것이 전혀 없는 듯 당당하게 나아간다.



“허, 허은······.”

“허은이다······.”

“10인의 우노?”

“처형집행인 허은······!”



등장만으로도 좌중을 압도하며 모든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그녀. 끝없는 어둠으로 만들어졌던 미지의 공포는 온데간데없고, 경험과 지식으로 알고 있는 현존하는 공포의 대상이 강림했다.


빨리 끝낼 생각이었을 것이다. 5층의 도시가 사라지고, 그 사라진 지역에서 0층과의 연결을 알아차린 스왐프에서는 냉큼 달려가 눈깔괴물의 힘을 얻어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새시대에게 까발려져 다툼이 생겼고, 하나하나 이놈이고 저놈이고 한 입씩 하려는 놈들이 모이다 보니 시간이 지체된 채 이곳에 도착한 것이 일차적인 문제.


어쨌든 이젠 눈깔괴물의 힘만 얻고 돌아가면 되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최근 떠오르는 뜨거운 감자. 박인수의 등장.


시간이 지체되면 다른 거대 길드에서 달려들 가능성이 높으니, 일단은 박인수를 그냥 보내고 본인들이 할 일을 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그런데 세상에, 이 미쳐버린 변수의 박인수. 마치 변수의 의인화. 살아서 걸어 다니고 심지어는 다가오기까지 하는 적극적인 변수인 박인수의 만행이 펼쳐지고야 만다.


말도 안 되는 힘으로 그 자리에 모여 있던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충격의 기억을 심어준 박인수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한참을 휘둘리다, 그만. 늦고 말았다.


오고야 말았다. 그들이 가장 경계했던 존재의 등장. 거대 길드를 거대 길드로 있게 하는 위대한 탑험가들이 등장하고야 말았다.


온 세상이 자신들을 방해하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까지 억울하게 당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세상살이가, 마치 신이! 편을 들어주는 것처럼! 힘을 가진 뒤 온전히 자기본위의 세상을 살아온 이들에게 최근의 짧은 이 순간들이 정말 갑갑할 것이다.


뜻대로 되어야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 앞에 무릎 꿇어야 하는데! 자꾸 내가 무릎을 꿇게 된다. 무엇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드디어 그들은 세상 모든 일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그 당연한 세계에 발을 들인다.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이 드디어 어른의 첫 계단을 오르게 되었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야.”

“미쳤냐?”

“어른이 되지 못했던 어른들이 어른의 계단을 오르는 순간이잖아요. 철수는 그걸 보며 감격한 거죠. 아! 드디어 저들도 계단을 오르는구나!”

“카나 씨?”

“와아, 미친 계단론자가 하나 늘었네. 아하하, 싫어라.”

“계단론 좋은데 왜? 영희 언니도 계단론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 인격 형성에 도움이 된다니까? 세상이 맑아져!!”

“오오, 이건, 철수가 계단론 처음 창안했을 때랑 비슷한데?”

“아픈 허리가 낫고! 닳아 없어진 무릎 연골이 재생되고! 빠진 머리카락이 다시 난다고!! 설이 한 번 믿어 봐!!”

“······저렇게 되긴 싫어여······.”



계단이란 대체 무엇일까. 조금 혼란스러워지는 인수였다.


그렇지만, 일단. 그런 건 뒤로 하고. 나아가는 걸음 하나하나에 세상을 얼리며 나아가는 허은조차도 뒤로 하고, 인수는 몸을 뒤로 돌렸다.


그곳엔 멍한 표정의 냐루냥이 있었다. 멍한 표정의 그녀는, 마치 인형처럼 보이기도 했다.


느껴지는 묘한 이질감. 그것은 처음 철수와 영희를, 특히 영희를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


본능적으로, 감각적으로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지만, 굳이굳이 말로 꺼내지 않고, 생각으로 구체화하지 않은 것은 역시 영희라는 위험한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체를 알아차리면 생명의 위협이 될 수도. 정체를 까발리면 정말 크게 혼이 날 수도, 아니 어쩌면 혼나는 것으로 안 끝날지도. 그래서 완전히 사고에서 지워버렸던 그 직감은, 허은이 나타난 순간 사라졌다.


아! 혼나지는 않겠네! 라는, 안도감 덕분이었다.



“형? 계단론 전파 중인데 안 들을 거야?”

“꺼져 미친놈아. 허은 누님, 어어, 아니지. 메카닉? 뭐 하여튼. 우리 도와주러 온 건데 그냥 구경만 할 거야?”

“······그치만 계단······쯧, 맞는 말이야. 돕는 게 맞아. 흠, 그럼 형은 냐루냥을······냐루, 냥?”



움직이지 않는 냐루냥을 보는 철수에게, 인수는 딱 한 마디를 던졌다.



“냐루냥이 허은 누님이었나 봐.”



인수는 단 한 번도 그런 표정의 철수를 본 적도 없었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허은에게 달려가는 철수에게는 이젠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철수도 점점 사람다워지고 있네. 갈수록 꼴불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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