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BlueFox 님의 서재입니다.

체인지 업 ( Change up )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스포츠

완결

BlueFox
작품등록일 :
2019.10.25 14:40
최근연재일 :
2020.01.29 08:50
연재수 :
2 회
조회수 :
187,787
추천수 :
2,338
글자수 :
9,001

작성
20.01.29 08:50
조회
1,037
추천
13
글자
10쪽

에이스의 숙명(2)

DUMMY

마운드 위에 버티고 서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참으로 명언이다. 마운드 위에서 호흡이 들뜨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숨을 고르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행이다. 들뜬 마음이 이제 좀 가라앉는다. 이제 되었다.


7회 초 1사 만루다. 스코어는 2 : 0 으로 두 점 앞서고 있지만 여기서 안타를 맞으면 이 시합은 어려워진다. 내가 내보낸 주자들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이번 회까지가 내 책임이다. 남은 8회와 9회는 불펜투수들이 어찌어찌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정확히 100개를 던졌다. 이제 남은 힘을 모두 쏟아 부어야 한다.


상대 감독이 대타를 쓴다. 오른손 투수인 나에게 맞서서 왼쪽 타자를 내보낸다. 나에게 강점을 보이던 선수다. 1루가 비어있으면 고의사구 작전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만루이고 이 타자와의 승부를 피할 수가 없다.


초구는 바깥 쪽 꽉 차는 빠른 공!

스트라이크다.

타자의 배트가 주저 없이 돌아간다. 3루 선상을 살짝 벗어난다. 파울이다. 만약 공 한 개만 안쪽으로 밀려들어갔으면 라인을 타고 빠지는 3타점 2루타가 되었을 거다. 역시 빠른 공을 노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돌핀스의 3루수가 허둥지둥 파울라인 가까이에 붙는다. 타격은 괜찮지만 수비가 불안한 선수다. 투수 입장에서 믿음이 가는 선수는 아니다. 우리 돌핀스는 공격에 중점을 두는 남자의 팀이다. 수비보다는 방망이가 좋은 선수가 내야와 외야를 채우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야구팬들의 생각은 많이 다르시다. 돌핀스의 수비수들은 팬들에게 가죽 글러브가 아닌 돌 글러브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고 있다. 이런 긴박한 위기 상황에서 내야 땅볼을 유도해서 병살플레이로 이닝을 끝내겠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쉽게 말해서 삼진이 필요하단 말이다.




2구는 바깥쪽 떨어지는 변화구!

볼이다. 타자의 배트가 끌려 나오기를 바랐지만 나오지 않는다.


3구는 몸 쪽 꽉 차는 빠른 공이다!

타자의 배트가 힘차게 돌아 나오지만 헛스윙이다.

원 볼 투 스트라이크다.

이제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은 타자 쪽이다. 이 상황에서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다가 아래로 떨어지는 변화구를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라이더를 던지라는 사인이 나온다. 포수의 현란한 손가락 놀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새침하게 고개를 저었다. 변화구를 던지며 에너지를 허비하는 것 보다는 힘이 남아있을 때 구위로 승부를 하는 편이 나을 테니까!


내 선택은 직구다. 포심 패스트 볼(Four seam Fastball)!


스트라이크존의 안쪽 모서리를 겨냥하고 힘차게 공을 뿌렸다. 타자의 눈에 가장 가까운 쪽으로 공이 날아간다. 공격적인 타자에게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몸 쪽 공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배트가 빨리 돌아나와야 한다. 공의 실밥이 내 손가락 끝에 착 달라붙는다. 야구공이 팽이처럼 돌면서 포수 미트를 향한다. 타자가 생각한 것보다 공하나 정도 높게 포수 미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라이징 패스트볼(Rising Fastball)!

높은 코스로 들어간 포심 패스트볼을 라이징 패스트볼이라고 부르곤 한다. 설마 내가 던진 야구공이 설마 물리학에서 말하는 중력 법칙을 벗어날리 없겠지만 팽이처럼 엄청난 회전이 걸린 패스트볼은 포수 미트에 다다를 때까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타자의 배트가 허공을 가른다.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내 공의 궤적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살짝 높은 볼이라는 것을 인지하고는 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와악!’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진다. 삼진을 잡아 큰 고비를 넘긴 나는 위풍당당하게 뒤로 반 바퀴 돌았다. 내 눈에 들어온 전광판에 158km/hr 이라는 숫자가 찍혀있다. 오늘 내가 던진 공 중에서 가장 빠른 공이다. 큰 위기를 한 고개 넘겼다는 기쁨과 158이라는 엄청난 구속에 대한 놀라움으로 관중석이 들썩거린다.


내가 던지는 라이징 패스트 볼은 악마의 유혹이다. 타자들은 눈앞에 보이는 빠른 볼에 자신도 모르게 방망이가 끌려 나오게 되어있단 말이다. 영상으로 보는 야구팬들은 이해하지 못하실 거다. 터무니 없어 보이는 공에 프로 타자가 헛스윙을 하니까... 그러니까 악마의 유혹이란 말이다. 혹시 공을 제대로 잡아채지 못해서 공이 밋밋하게 들어가거나 스트라이크 존으로 밀려들어가면 어떡하냐고? 흠! 그건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럴 때는 소주가 필요하다. 그리고 마운드 위에서 공 던질 때 그런거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직업 권하고 싶지 않다. 나는 위기 상황에서도, 아니 위기 상황일수록 아무 생각이 없어지니까 괜찮다.


이제 투 아웃 만루다.

아직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투수는 냉정해야 한다. 마지막 공 하나를 실수하면 앞선 백 개의 공이 의미없어질 수도 있다. 그것이 야구다. 스물 일곱 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지 못하면 야구는 결코 끝나지 않는단 말이다.


다음 타자는 상대인 타이거스에서 가장 정교한 타격을 자랑하는 이용준이다. 마지막 타자로 만들어야 한다.


1구는 몸 쪽 꽉 차는 빠른 공이다.

볼 배합에 변화를 주지 않고 그대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공 하나쯤 스트라이크 존에서 벗어난 것일까?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만한 공인데 심판의 손이 올라가지 않는다.


2구는 바깥쪽 꽉 차는 빠른 공이다.

이번에는 확실히 빠지고 말았다. 힘이 떨어진 모양이다. 빌어먹을!

투 아웃을 잡아놓고 곤혹스럽게 되었다.


3구는 한 가운데 슬로 커브를 던졌다. 위험한 수이긴 했지만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는 의외로 잘 먹혀든다. 잔뜩 긴장한 타자의 배트는 결코 이렇게 느린 볼에 반응하지 못한다. 이용준이 자책을 하고 있다. 그의 잘못이 아니다. 내 간덩이가 이용준의 것보다 좀 더 컸을 뿐이다.


4번째 공으로 몸 쪽 꽉 차는 공을 다시 한 번 갔다. 한 번 실패했던 공이다. 힘을 빼고 던지는 대신 로케이션에 좀 더 신경을 썼다. 이용준의 배트가 예리하게 돌아 나온다. 제대로 맞았다. 하지만 파울이다. 내 제구력의 승리다. 그 코스의 공은 제대로 맞으면 파울이 날 수 밖에 없으니까!


패스트 볼 구위가 죽었으면 변화구를 던지면 된다. 바깥쪽 살짝 흘러나가는 슬라이더!

내 5번째 공을 이용준이 기어이 참아낸다. 내 슬라이더는 좋았다. 단지 이용준의 공을 보는 눈이 더 정교했을 뿐이다. 이용준의 선구안이 이겼다. 투 아웃 만루에 풀카운트가 되고 말았다.


쓰리 볼 투 스트라이크.

풀카운트 상황은 과연 누구에게 유리할까? 볼을 하나만 더 골라내면 되는 타자 쪽일까? 아니면 스트라이크 하나만 더 던지면 되는 투수 쪽일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풀카운트 상황이 미치도록 싫었다. 스트라이크 존 가장자리를 찌르려 하면 볼 판정을 받았고, 한 가운데 우겨넣으면 장타를 맞았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원래 맞으면서 배운 것이 오래 가는 법이다. 풀카운트 상황을 즐기는 쪽이 야구의 승자가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6번째 공을 던져야 한다.

이용준도 내 패스트볼의 구위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챈 눈치다. 빠른 공은 걷어내면서 변화구를 기다릴 것이다. 좋은 선구안과 정확한 컨텍 능력을 가진 이용준은 풀카운트에서 누구보다도 강한 타자임이 분명하다. 이용준은 힘이 떨어진 내 직구를 커트해내며 가운데로 몰린 공을 던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억지로 구속을 끌어올리려다가는 볼넷을 허용할 확률이 굉장히 높다. 하지만 자신 있다. 나에게는 아껴둔 무기가 있으니까!


공이 내 손을 떠나자 이용준의 방망이가 즉시 반응을 보인다. 그가 노린 존(zone) 안에 내 공이 들어왔다고 판단을 한 것이다. 타자의 외각을 찌르며 날아오던 빠른 공이 나비처럼 흐느적거리며 새침하게 흘러나간다. 이용준의 눈에 들어온 공은 직구였으나 그의 방망이가 돌아 나왔을 때는 직구가 아닌 변화구가 되고 말았다.


체인지 업(Change up)!

패스트 볼을 던질 때와 같은 폼, 같은 궤적으로 날아오지만 타자 앞에서 급격하게 휘어나가며 떨어지는 볼이다. 불리한 카운트에서도 이 체인지 업을 자신 있게 던질 수 있게 되면서 나 장채혁은 소위 일류 투수가 되었다.


이용준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고 땅에 처박힌 공을 포수가 잡아들고는 의기양양해 한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며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돌핀스 팬들이 내 흉내를 내며 환호성을 지른다.


이것으로 7회가 끝이 난다. 선발투수로서 내 임무는 끝이다.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나에게 관중들이 기립해서 박수를 보낸다. 그들 중에 백수아의 모습도 보인다. 양팔을 번쩍 들고 깡충깡충 뛰며 나를 맞이한다. 나 장채혁의 팬이라는 그녀의 말이 새빨간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다. 늦게까지 남아서 목청껏 나를 응원해준 톱 여배우 백수아 양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오늘 승리 투수가 되면 나와 데이트를 해 주겠다는 백수아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시합결과는 우리 돌핀스가 2 : 1 로 진땀 승을 거두었다. 막판 타이거스의 맹렬한 추격이 있었지만 우리 불펜의 화염 방사조, 아니 필승조가 간신히 틀어막는데 성공했다.


시합이 끝나고 사인을 받으려 몰려든 팬들의 눈을 피해 007 작전을 펼친 끝에야 우리는 나의 SUV 차량 안에서 데이트를 할 수 있다.


서로에 대한 칭찬과 고마움에 대한 인사치례가 끝이 난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더 이상 야구 이야기 따위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백수아의 눈이 나에게 말을 한다. 자신의 몸은 이미 뜨겁게 달아올랐다고! 그러니 쓸데없는 언어유희 따위는 집어치우고 자신을 범해 달라고 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체인지 업 ( Change up )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에이스의 숙명(2) 20.01.29 1,038 13 10쪽
1 에이스의 숙명(1) 20.01.29 1,517 15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