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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Fox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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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BlueFox
작품등록일 :
2019.10.25 14:40
최근연재일 :
2020.01.29 08:50
연재수 :
2 회
조회수 :
187,782
추천수 :
2,338
글자수 :
9,001

작성
20.01.29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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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3
추천
15
글자
10쪽

에이스의 숙명(1)

DUMMY

“가즈아!”


“나이스 볼!”


"굿 뱃!"


“화이팅!”


늦은 봄의 그라운드가 거구의 젊은 남자들이 내뿜는 함성으로 서서히 달아오른다. 프로 스포츠의 세계는 살벌하다. 특히 내가 몸담고 있는 야구 판은 더더욱 그러하다. 잠시 방심하다가는 언제 도태될지 모른다.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프로라면 성적을 내어야 한다. 그래야 내 자리를 지킬 수 있다.


부상은 프로 선수의 가장 큰 적이다. 치열하게 연습하며 몸을 혹사시키되 부상을 당해서는 안 된다.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도 실력이다. 부상 당한 프로야구 선수의 값어치는 마감시각이 임박한 마트의 생선초밥과 다르지 않다. 연습은 실전같이 실전은 연습처럼! 러닝이 끝나자마자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단계다. 스트레칭 시간을 대충 때우다가는 언젠가는 대가를 치르게 되어있다.


프로야구 선발투수로 살아남기 위한 이 중요하고도 치열한 시간을 누군가가 방해하려 한다. 그것도 딴 사람도 아닌 구단 관계자다. 구단의 수장인 단장이란 인간이다. 왈칵 짜증이 몰려온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그는 갑이고 나는 을이다. 괜히 성질을 내어 봤지 십중팔구 다치는 쪽은 을이다. 그렇게 고분고분한 성격이 되지 못하는 나는 몇 번이고 구단 실력자들과 부딪혔고 그때마다 깨지고 다치는 쪽은 선수인 나였다.


이제 그들과 부딪히고 싸우는 것은 신물이 난다. 그리고 나도 이제 풋내기 신인 선수가 아니다. 맞춰줄 것은 맞춰 줘야 한다. 제 아무리 야구에 대해서 문외한인 계열사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인간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어마무시한 성적을 올리고 나서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릴 때까지는 참고 또 참아야 한다. 야구판에서 뒹구는 프로 선수라면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런 사소한 것을 참을 수 있어야 철이 들었다는 말을 듣는다. 나 장채혁도 이제 철이 들어야 하지 않겠나?




“어이! 장채혁! 오늘 시구를 해 주실 미녀 배우 백수아 씨다. 잘 지도해 드려!”


“저 오늘 선발인데요?”


“그러니까 시구 지도를 해 드리란 말이야! 그림 좋잖아? 올해 새롭게 서울 돌핀스의 에이스로 떠오른 개망나니, 아니 터프가이 장채혁과 미녀 배우 백수아! 언론에 홍보하기도 얼마나 좋아?”


“네네! 그러지요!”


이 양반은 야구단 단장인지 연예기획사 대표인지 알 수가 없다. 하긴 낙하산이 야구를 알까? 괜히 핏대 올려봤자 등판을 앞둔 내 기분만 망칠 뿐이다.


“아 참! 소속사에서 백수아 씨 시구 연습 하시는 거 찍어서 인터넷에 올린다고 하니까 이미지 관리 잘 하고! 괜히 엉뚱한 짓해서 구단 이미지 망치지 말고! 알았지?”


할말이 끝났으면 빨리 사라져주면 좋겠는데 자꾸 여자 연예인 주변을 알짱거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 한다. 나에게 잔소리를 할수록 자신의 권위가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네! 네! 걱정 마십쇼!”


프로 야구단 서울 돌핀스의 단장님께서 직접 운동장으로 나오셔서 나에게 부탁을 하는 일이다. 언제나 거만하며 선수들 보기를 머슴 보듯 하는 그에게는 이례적인 일이다. 자신에게 뭔가 이익이 된다는 판단이 내려진 모양이다. 하긴 야구단 단장이라면 미디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여러모로 좋다.


“어머! 장채혁 선수! 반가와요! 저 채혁 선수의 팬이에요. 오늘 잘 부탁합니다! 예쁜 수아가 시구하다 망신당하면 않되죠? 채혁 선수가 잘 좀 가르쳐주세요! 네?”


야구장을 찾은 미녀 배우님께서 비음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나에게 애교를 부린다. 어쩌면 이 애교는 나를 향해서가 아니라 이미 돌아가고 있는 카메라를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백수아는 자신을 가리키며 ‘예쁜 수아’라고 부른다. 닭살이 돋을 것 같다. 내가 나더러 ‘잘생긴 채혁’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짱돌이 날아오지 않을까? 아무튼 남자들은 예쁜 연예인이라면 사족을 못쓰고 백수아는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돈을 벌며 살아가고 있다.


연예인을 시구자로 내세워 흥행(?)을 노리는 것은 한국 야구판의 오랜 전통이다. 그 전통을 지키기 위해 오늘의 선발 투수이자 서울 돌핀스의 에이스인 나 장채혁이 평생 야구공이라고는 손에 쥐어 본 적도 없을 계집애에게 공 던지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동료 선수놈들이 내 속도 모르고 부러워한다. 하여간 여자라면 사족을 못쓰는 게 사내 놈들의 본성이다. 더구나 예쁜 연예인이 야구장에 왔으니 놈들의 반응은 당연하다.


“어이! 눈 높기로 소문난 장채혁이! 오늘은 웬일이야? 여자한테 이렇게 상냥하다니! 역시 백수아 씨 예쁘지? 설마 백수아 씨도 눈에 않찬다고 하진 않겠지? 아아! 장채혁이는 좋겠다. 배우 백수아에게 야구도 다 가르치고······.”


보이는 인간들마다 이따위 말을 지껄이고 간다. 그런데 이게 부러워할 일인가? 약간 귀찮은 것 같은데? 야구 선수에게는 저마다의 루틴(routine)이라는 것이 있다. 내 루틴이 깨지는 것이 탐탁지가 않단 말이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내 예상과 달리 백수아는 열심히 배우려 든다.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있는 훌륭한 학생이다.


“나 진짜 장채혁 선수 팬이에요! 내가 장채혁 선수를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요?”


이 여자, 지금 나한테 꼬리치는 걸까? 그래도 내 팬이라고 하니 괜히 예뻐 보인다. 프로는 팬들의 인기를 먹고 산다. 내가 이래봬도 프로란 말이다. 그래서 열심히 가르쳤다. 이 여자! 야구 유니폼에 가려진 늘씬한 몸매가 매력적이다. 하긴, 달리 연예인이겠는가? 예쁘긴 예쁘다. 사내놈들이 침을 질질 흘릴만 하다.





***




관중들의 함성소리와 함께 마운드에 오른 백수아가 깡총거리며 손을 흔든다. 그녀가 걸치고 있는 옷은 야구 유니폼이긴 한데 뭔가 눈에 거슬린다. 백수아의 길고 매끈한 다리가 훤히 드러나고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의 굴곡이 지나치게 눈에 띈다. 이런 것이 서울 돌핀스 구단과 연예 기획사의 마케팅 기법일까? 아주 수영복을 입고 시구를 시키지 그러냐? 아예 말을 말아야 한다. 낙하산 단장이 내 말을 들었으면 좋은 생각이라며 진짜 수영복을 입힐지도 모른다.




빨리 공을 던지고 내려가면 좋으련만, 이 연예인 여자는 마운드 주변을 한참동안 배회하며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즐기며 시간을 끈다. 즐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짜증을 내기 직전에야 백수아가 요염하게 와인드 업(Wind-up)을 하더니 야구공을 포수에게 던진다.


백수아가 던진 공이 비틀거리며 포수에게 날아간다. 다행히도 포수에게까지 무사히 날아간다. 이 정도면 준수한 시구다. 백수아도 자신이 행한 퍼포먼스가 만족스러운지 활짝 웃으며 환호성을 지른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한다. 악수를 나누면서 내 귀에 소근거린다.


“오늘 장채혁 선수 시합 끝까지 지켜볼 거예요. 만약 장채혁 선수가 오늘 승리하면 상을 줄건데... 뭐가 받고 싶어요?”


“......”


“호홋! 채혁 선수가 뭘 원하는지는 얼굴에 씌여져 있네요? 그래요, 그럼! 수아랑 데이트를 하게 해 줄게요. 수아를 위해서 이 시합, 꼭 이겨줄거죠?”


웃기는 여자다. 자기를 위해서 시합을 이겨달란다.


물론 나는 오늘 시합을 이겨야 한다. 나 장채혁이 선발투수로 나서는 게임이니까! 하지만 시합을 이기는 것은 나를 위해서다. 뜬금없이 나타나서 야구팬들에게 얼굴도장이나 찍고 그에 편성해서 대중의 관심이나 얻어내려는 풋내기 여배우를 위해서가 아니란 말이다.





***




‘스트라이크! 아웃!’


관중들의 환호성이 터진다.


오늘 내 컨디션은 최고다. 공을 던지는 족족 포수의 미트 속으로 정확하게 파고든다. 상대 타자들의 배트는 허공을 가를 뿐 공 중심에 맞추지 못한다.


위기는 7회에 찾아왔다. 투구 수가 100개에 육박하자 손의 악력이 떨어진다. 마음먹고 던진 변화구가 아쉽게도 볼 판정을 받았고 원 아웃 만루의 위기를 맞이했다. 스코어는 2 : 0 으로 우리 돌핀스가 리드하고 있지만 안타 하나만 맞으면 동점이다. 감독이 마운드로 올라온다. 이 순간만큼은 가장 보기 싫은 인간이다.


“7회까지 아주 잘 던졌어. 무리할 필요 있나? 이제 구원투수들에게 맡기고 내려가지?”


“이번 이닝은 제가 마무리 짓겠습니다. 결과는 제가 책임집니다.”


다행히 감독이 그냥 내려간다. 에이스의 체면을 세워주려는 것일까? 아니면 내 뒤에 나올 불펜진이 미덥지 않은 것일까? 전자였으면 좋겠지만 아마도 후자일 확률이 높다. 그래도 상관없다. 아무튼 좋다.


언제부터인가 위기에 빠질수록 머리가 잘 돌아간다. 체력이 바닥나도, 지쳐서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두뇌 하나만은 더욱 냉철해진다.


그렇게 바뀐 후로부터 나는 소위 말하는 일류 선수가 되었다. 이 바닥에서 제법 인정받는 투수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 약간의 차이로 인해 나에 대한 구단의 대우는 무척 많이 달라졌다. 음식점에서 무엇을 먹게 되더라도 식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많은 연봉을 받게 된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는 인간들이 생겨났단 말이다.



내가 성취해 낸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라운드에서 더더욱 냉철해져야 한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연예인 나부랭이 때문에 루틴이 깨졌지만 그럴수록 더욱 냉철해야만 한다. 그래야 이 살벌한 그라운드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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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에이스의 숙명(2) 20.01.29 1,036 13 10쪽
» 에이스의 숙명(1) 20.01.29 1,514 1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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