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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k 님의 서재입니다.

그라브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명인k
작품등록일 :
2012.10.01 17:15
최근연재일 :
2013.04.22 16:42
연재수 :
75 회
조회수 :
37,433
추천수 :
294
글자수 :
585,035

작성
11.08.16 23:57
조회
612
추천
2
글자
22쪽

그라브 - 9.폴레마2(8)

DUMMY

“그건 문제네요.”

나갔다 들어온 두 사람이 보고한 내용에 비어슨은 좀 진지한 얼굴이 됐다.

“근처에서 화산을 발견했단 얘긴 못 들었는데...”

그녀가 다시 물었다.

“수치는요?”

“서쪽으로 향할수록 높아집니다.”

일렌이 대답했다.

“서쪽이라고요..?”

그녀는 잠시 생각했다.

“쉘터 안에서 새는 게 아니면 주변에 정말 뭐가 있을 지도 모르니까 일단 확인을 해보죠.”

시선을 아래로 해 남쪽 쉘터가 위치한 쪽을 응시하며 비어슨은 말했다.

“기지에 연락해서 간단한 장비와 기술팀 스텝을 몇 명 보내달라고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끄덕이며 걸어가 일렌이 콘솔 앞에 앉았다.


“그런데 만에 하나 근처에 아무 것도 없는데도 쉘터 주변 수치가 높아진 거라면... 더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소가 말했다.

“네. 그렇긴 하죠.”

그 말에 수긍하며 비어슨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혹시 모르니까 세 사람이 가고 있는 방향에서도 확인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세 사람이 있는 곳은 여기서 차로 대략 두 시간 안쪽 거리니 아직 그렇게 멀어진 건 아니다.

“장비를 전해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생각에 잠기는 그녀를 보다가 아소는 이쪽으로 따라와 한쪽 구석에 서 있는 다드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아까 바이크 타고 왔지?”

다드가 끄덕였다.

“네.”

“그럼 장비 몇 개만 그쪽에 전해 줘.”

그 말에 비어슨의 시선이 다드를 향했다. 당사자인 다드는 좀 움찔했다.

“제가요?”

“지금 여긴 손이 부족한데다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려면 차보다 바이크가 빠르잖아.”

담담히 아소는 말했다.

“부탁 좀 해.”

“하지만..”

별로 내키지 않는 부탁에 다드가 말을 흐렸다. 그러나 그 말에 중위와 중사까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니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알겠어요.”

떨떠름하게 다드는 대답했다.

“제가 갔다 올 게요.”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은 기색에 비어슨이 부드럽게 되물었다.

“정말 괜찮겠어요?”

“아, 네. 뭐...”

어색하게 웃으며 다드가 얼버무렸다. 싫다고 하기도 그렇고, 사실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그럼 세 사람한테 연락하죠.”

왠만하면 연락은 저쪽에서 먼저 해오길 기다리기로 했지만 이번만은 예외다. 걸어가 그녀는 아소가 앉아 있는 의자 뒤로 다가섰다. 키패드 위를 서둘러 움직이던 소위가 곧 통신 회선에 접속한 것을 확인했다.

“연결됐습니다.”

그 말에 비어슨은 입을 열었다.

“크라에 군.”

스피커 폰을 통해 통신 장애로 여겨지는 가벼운 소음이 들렸다.

“들립니까?”

출발할 때 통신 장비는 피히드가 챙겼다.

“쉘터입니다.”

잠시 사이를 두고 기다리자 이내 응답이 날아왔다.

〚네. 중위님.〛

피히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려요.〛

“그 쪽에 별 일 없습니까?”

스피커 폰 앞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서며 비어슨은 물었다.

“잘 진행되고 있나요?”

〚아직 까지는요.〛

〚안부 확인하려고요?〛

가볍게 말을 건내는 오에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락은 이쪽에서 하기로 했잖아요?〛

“네. 그런데 좀 사정이 생겨서.”

〚무슨 일인데요?〛


“남쪽 쉘터 근처에서 헬륨 가스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걸 알았습니다. 그게 서쪽 방향으로 향할수록 심해져서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확인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헬륨 가스라면.. 화산 활동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겁니까?〛

“네.”

비어슨이 대답했다. 오에인이 있으면 설명할 일이 많이 줄어든다.

〚그건 진짜 문젠데요. 여기서 화산 폭발이라도 있으면 우린 그냥 묻히겠네요.〛

그가 말했다.

〚그런데 장비가 없는데, 무슨 수로 확인하죠?〛

“이쪽에서 지금 가져다 줄 생각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장비를 받게 중간 지점까지 와 줄 수 있나요?”

〚그래야 한다면요.〛

“네. 그럼 지금 출발할테니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선선히 대꾸하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통신이 끊겼다.


“저쪽에서 중간 지점까지 나온다네요.”

비어슨은 다드를 향해 다시 말했다.

“프로엠 군.”

“네.”

어정쩡하게 서 있던 다드가 다시 대꾸했다.

“1기지에서도 기술팀 인원 중 일부가 준비되는 대로 바로 출발할 거라고 합니다.”

방금 전 1기지와 통신을 마친 보일드 중사가 그녀를 향해 말했다.

“네.”

비어슨은 끄덕였다. 기지에서 남쪽 쉘터로 오는데까지는 한 시간 정도. 여기서 남쪽 쉘터로 가는 것도 그 정도 시간이 걸린다.

“나도 그쪽으로 가봐야겠어요.”

이건 그녀가 직접 확인해야 할만한 사안이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아소가 나섰다.

“상황을 대략 아는 사람이 필요할 겁니다.”

그 말에 비어슨은 조금 끄덕였다. 그리고는 일렌을 향해 말했다.

“여기 부탁합니다, 중사.”

“네.”

일렌이 대답했다.




“귀찮게 구네.”

통신이 끊기자 나무를 짚은 채 통신을 듣고 있던 카헬이 목을 좌우로 꺾으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진짜 화산이라도 있으면 우리도 위험하잖아.”

오에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가서 장비를 받아 올게.”

“직선으로 계속 이동할 테니까 알아서 찾아와.”

카헬이 말하자 오에인은 바로 옆에 서 있는 나무를 올려다 봤다.

“그럼 늬들 놓치면 안되니까 서둘러야 겠다.”

그는 등에 매고 있던 백팩에서 중간 두께의 짧은 케이블 한 개를 꺼냈다. 그리고는 나뭇가지를 한 손으로 잡았다.

“너무 빨리 가지는 마.”

당부하듯 말하며 나무 위로 올라선 그가 이내 나뭇잎 사이로 사라졌다.


“기다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가 사라진 나무 위를 올려다 보며 피히드가 말했다.

“오에인 정도면 알아서 우리가 있는 곳으로 찾아 올거야.”

카헬은 주변을 다시 확인했다.

“게다가 한 곳에 계속 머무르면서 냄새를 피우면 위험한 건 우리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지 이쪽을 주시하는 눈들이 이미 숲 도처에 있을 것이다.

“가자.”

카헬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피히드는 오에인이 사라진 위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가 좀 망설이며 카헬이 걸어간 쪽으로 따라 가기 시작했다.



케이블은 속이 꽉 찬 합성 고무로 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주름이 잡혀 있다. 처음 손에 잡았을 때 생각했지만 이런 재질은 밧줄로 쓰이기도 하지만 채찍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나무 위로 올라선 오에인은 등에 매고 있던 백팩에서 케이블 끝에 묶을 적당한 것을 찾았다. 손에 잡히는 거라고는 권총 한 자루 뿐이다. 탄창을 제거하고는 권총을 그 끝에 묶으며 여기까지 왔던 방향을 한 번 확인했다.


체력을 아끼면서 최대한 빨리 아까 내려왔던 절벽 앞까지 가야하니 좀 유치하긴 해도 이 방법이 최선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케이블을 반대편 나무에 대고 던졌다. 길게 날아간 케이블이 나무 한쪽에 휘리릭 소리를 내며 착 감기자 그대로 그가 케이블을 타고 반대편 나무 위로 몸을 던졌다.

“이크...”

큰 폭으로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건너 반대편에 착지한 그는 미끌리면서 균형을 잃자 얼른 나뭇가지를 잡았다.

“몇 번 해봐야 익숙해지겠는데..”

신발 바닥이 미끄러운 지 확인하려고 밟고 서 있는 나뭇가지를 몇 번 문지르며 그는 다시 한 손으로 케이블을 던졌다. 그대로 나무와 나무 사이를 이동하며 그는 곧장 다드가 오고 있는 지점으로 향했다.




두 시간의 데이터 테스팅을 겨우 끝내고 밀트렛은 객실로 돌아와 있었다. 잠시 후 연회가 있을 예정이라는 말을 들어오기 전 엣실에게 전해 들었다.

그대로 방으로 돌아와 그녀는 침대 머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중이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지친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는 테라스쪽으로 나갔다. 테라스로 나가니 하얀 백사장과 함께 푸른 산호초들이 멀리까지 펼쳐져 있는게 보였다. 시원한 바람이 몸으로 몰려 들었다.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텐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연회에 참석할 거라곤 생각도 안했으니 굳이 찾을 이유는 없다.


문득 넷톤 측의 파일럿을 아직 보지 못했다는 게 떠올랐다. 무인 병기라는 말을 비어슨에게 듣긴 했지만 좀 전에 발표한 내용으로 봐선 유인 병기로 고쳐진 것 같았는데. 파일럿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한 발 앞으로 더 걸어가 그녀는 테라스에 몸을 기댔다. 숲에서 밤을 보내는 건 위험하다. 피히드나.. 다들 별 일 없어야 할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다시 불어오는 바람을 깊이 들이 마셨다.





오에인이 원숭이 사촌 같은 방법으로 다드가 오고 있는 쪽으로 향하는 동안 다드 역시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헤치며 바이크를 달리고 있었다. 비가 와서 자길길도 미끄러웠지만 솜씨가 좋은 그는 제법 잘 길을 헤쳐가고 있었다.


바이크 뒤에는 그들에게 전해줄 장비가 실려 있다. 무게가 별로 나가지 않는 장비라 미니 바이크는 날개라도 단 듯 절벽 사이 좁은 길을 미끄러지며 달려 나갔다. 대략 삼십 분을 길을 달려 기암절벽 사이를 통과해 그 끝에 도달한 다드는 발 아래 형성되 있는 절벽으로 떨어지기 전에 바이크를 멈춰 세웠다.


시동을 끄자 사방이 갑자기 조용하게 느껴졌다. 바이크에서 장비가 담긴 백팩을 손에 들며 그는 절벽 앞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케이블이 나무 한 쪽에 묶여 있는 게 보였다. 이걸 타고 내려갔나 보다. 다드는 발 아래를 내려다봤다. 나무가 빼곡이 들어 차 있는 숲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까지 펼쳐져 있었다.

누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밀트렛이 세 사람을 생각하고 있을 때 즈음, 대륙 상류 수문 근처 통제소에는 레이사와 라엔이 수문을 점검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일정 수준이상으로 수위가 오르면 수문 아래 설치된 센서가 변화를 감지해 자동으로 기지에 신호를 보내지만 기존 센서를 교체하지 않은 상태로 겨울을 지내고 있기 때문에 혹시나 싶어 점검 차 나왔다.

비가 그친 참에 정비해 두자고 생각한 것이고 와서 보니 요 며칠 계속된 폭우로 꽤나 높아진 수위에 센서가 반응하지 않은 걸 보고 오길 잘했단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통제소 안에서 레이사는 아홉 개의 나란히 놓인 녹색 레버와 그 주위에 놓인 동그란 계기판들을 차례대로 확인 하고 있었다. 방류를 시작하기 전에 고장난 게 센서뿐인지 먼저 확인하는 중이다.

“큰일인데.”

통제소 아래층에 있는 정류기 조절실을 확인하고 돌아온 라엔은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아 좀 심각해져서는 레이사를 향해 말했다.

“메인 벨브가 작동이 안 돼.”

지난 번에 점검해 두고 불과 두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여기 저기 녹슬고 금이 간 정류소 장비가 마치 몇 년은 지난 것 같은 풍화 작용을 겪은 것처럼 보였다. 안개에 섞여 있는 수분 때문에 금속의 부식이 빨리 진행된 것 같았다.

“고치려면 시간 좀 걸릴 것 같은데 어쩌지?”

물의 양을 봤을 때 조금만 더 수위가 오르면 당장에라도 어떻게 될 것처럼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고칠만한 시간이 있을 지도 알 수 없었다.


“남쪽 쉘터로 간 사람들, 돌아오라고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비어슨 중위의 연락으로 남쪽 쉘터로 파견나간 사람들과 기지에서 같이 출발해 중간에서 헤어졌다. 좀 걱정스러운 얼굴로 라엔은 조금 전 갈림길에서 헤어진 사람들을 생각했다. 지반이 낮은 쪽에 위치한데다 그쪽은 지금 통신이 안된다. 만에 하나 여기서 사고가 나면 제일 먼저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긴 한데...”

레이사는 잠시 생각했다. 센서가 고장나긴 했지만 아직 수문이나 정류기 쪽에 문제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

“기지에 보고했으니까 위에서 지시가 있겠지.”

기지에는 방금 전 상황을 대충 보고해 두었다. 레이사는 잠깐 생각했다.

“돌아가서 필요한 장비를 챙겨와 라엔.”

그 말에 라엔이 쳐다봤다.

“난 정류기를 좀 확인해 볼게.”

기지에 간다고 해도 추가로 인력을 데려오는 것 뿐이니 누군가는 남아서 먼저 작업을 시작하는 게 나았다.

“그럼 나도 같이 해.”

“아니.”

그녀가 나서자 레이사가 다시 말했다.

“한 사람이라도 갔다 오는 게 나아.”

대충 상황 보고는 했지만 통신 상태가 원활하지 않아 내용을 다 전하진 못했다.정확히 하려면 누군가 기지에 갔다 올 필요가 있다.

“정류소 세부 장비는 너 말고 아는 사람도 없잖아.”

그가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갔다 와."

“.... 알았어.”

잠시 망설이다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조금 끄덕여 보이며 라엔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빨리 갔다올게.”

몇 걸음 옮기다가 그녀는 다시 그를 돌아보며 다시 말했다.

“너무 위험한 일은 하지 말고 기다려 레이사.”

“그래.”

대답하고는 레이사는 다시 머리 위에 들어 차 있는 복잡한 기계 장치들을 올려다 보았다.




'왜 안와?'

길이 끊긴 자리에 앉아 누군가 오길 기다리고 있던 다드는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오는 사람이 없자 슬슬 지루해졌다. 게다가 조금전부터 조금이지만 다시 또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다드는 옆에 놓인 케이블을 힐끔 쳐다봤다. 아래로 내려간 건 확실한데 언제올지도 모르는데 계속 기다려야 하는 건가?

손에 들고 있던 작은 가방을 다시 쳐다보며 그는 생각했다. 여기 앉아서 처량맞게 비맞으며 계속 기다리는 것도 그렇고...

다시 아래를 보다가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었는지 그가 한 팔에 가방을 들어 올렸다. 내려가 보자. 숲이라면 이제 웬만큼 익숙하니까 내려가서 좀 더 가다보면 금방 만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가 케이블을 붙잡고 그대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강 옆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차를 달리던 라엔은 중류 근처에 도착하기 전 강폭이 좁아지는 곳 근처를 막 지나고 있었다. 여기서 강을 가로지르면 남쪽 쉘터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1기지 책임자인 라이슬러 양은 메리프에 가 있고 부책임자 격인 비어슨 중위는 남쪽 쉘터에 파견 나가 있다. 지금 1기지 상황실에 누가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결국 남쪽 쉘터에 연락을 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지와 남쪽 쉘터 간 통신이 원활하지 않은 게 문제다. 지금 남쪽 쉘터는 거의 단절된 공간이라고 봐도 좋았다. 이 상황에 소식을 전하려고 우왕좌왕하다 시간만 끌게 되면 더 안 좋을 수 있다.

기지에 가서 보고한다고 해도 누군가 그쪽에 상황을 알리러 가야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럴 거면 여기서 직접 그쪽에 가서 알리는 게 빠르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녀는 이내 차를 멈추었다. 쉘터로 가서 보고하자. 어차피 아까 연락을 해두어서 기지에서는 이쪽으로 출발했을 테니 운이 좋으면 여기 근처에서 만날 수도 있다. 만나서 다같이 레이사를 도와주러 가는 게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다.


차 밖으로 나온 라엔은 강의 얕은 부분을 가로질러 놓여 있는 바위들을 보았다. 일부러 놓은 건 아니지만 띄엄띄엄 놓인 바위들이 다리 역할을 해 줄 것 같았다. 좀 위험해 보이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첫 번째 바위 위로 올라서며 그녀는 몸의 균형을 잡았다. 바위 표면에 이끼가 끼어 굉장히 미끄러웠지만 조심하면서 그녀가 두 번째 세 번째 바위를 건넜다. 대 여섯 개의 바위를 간신히 건너 거의 마지막 즘에 이를 때 머리 위에서 뭔가 낮게 구릉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위쪽에서 커다란 물살이 그녀를 향해 달려 드는 게 보였다. 순간 굳어진 그녀가 반사적으로 앞으로 움직이려는 순간 발을 잘못 딛고 균형을 잃은 그녀의 몸이 순식간에 물살에 휘말리며 그대로 급류에 휩쓸려 사라졌다.





숲의 감옥을 걸어가면서 피히드는 지금까지 이동한 거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방사기 설치 범위가 14km였고 보통 성인의 걸음 속도가 시속 5km정도였으니 최대 두 시간까지는 레이더로 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 가져온 방사기는 6개. 카헬과 오에인이 세 개씩 가지고 있고 자신은 통신기 쪽을 담당했다. 경량 통신기라 부피도 작고 무게도 가볍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자신을 배려해 준 것 같다고 생각하며 피히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딘 가나 안개네요.”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며 그가 말했다. 직선 방향으로 이동하다 보니 지금은 지대가 조금 높은 쪽으로 향하고 있다.

“좀 이상할 정도로요.”

어딜 가든 안개가 항상 깔려 있다. 지금은 그다지 시야가 방해받지 않을 정도 수준이지만 안개 때문에 기본적으로 퀴퀴하고 음산한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여기 깔린 게 나무잖아.”

앞서 걸고 있던 카헬이 그 말에 대꾸했다. 숲지대의 안개는 보통 나무 뿌리가 흡수한 수분이 호흡 활동시 수증기로 함께 배출되며 생기게 된다. 대륙 전체에 자생하는 나무와 식물들이 방대하니 그 뿌리가 흡수하는 물의 양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러니 1년 내내 안개가 생겨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렇긴 하지만 안개가 단순히 지속되는 것 말고.”

안개의 생성 원리 정도는 피히드도 알고 있다.

“무게랑 조성도 다른 것 같아서요.”

일반적인 안개와 달리 꽤 무겁다.

“왠지 전자 기기에 영향을 끼칠 것 같아서.”

다른 것 보다 그렇게 되면 문제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카헬이 돌아섰다.

“왜요?”

의아한 듯 묻는 소리에 대꾸하지 않으며 카헬은 자신들이 걸어온 온쪽을 향해 힐끔 시선을 주었다. 낮고 희미한 소리가 그쪽에서 조금씩 들려오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온 다드는 나뭇잎으로 감싸여 형성되어 있는 숲 안쪽 공간을 보고 잠시 감탄했다.

“와...”

어둡긴 했지만 신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나무 사이를 걸어가며 다드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 많이 봤지만 이런덴 처음이다.

호기심에 이끌려 그렇게 조금식 앞으로 걸어가던 그는 정면에 있는 수풀 사이에 그림자 하나가 서 있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검은색 짐승 한 마리가 거기 서서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생긴 건 노루 비슷한 것 같아 보이는데 몸집이 훨씬 작고 몸 전체가 까만색으로 번들거렸다.

'처음 보는 종이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것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생긴 건 초식 동물 같아 보였는데 이빨은 사자처럼 날카로웠다.

'어?'

조금 당황하는 순간 작은 짐승이 갑자기 공중으로 뛰어 오르며 자신을 향해 덤벼 들었다.

“으앗...!”

번개같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통에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려다 엉덩방아를 찧는 찰나 총소리가 났다.


그 소리와 거의 동시에 이쪽으로 덤벼들던 검은 짐승이 다드의 발 바로 아래에 떨어졌다. 다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러 발의 총을 맞고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짐승이 가늘게 그르렁대는 것을 보고 그는 창백해졌다. 여러 발을 맞고도 아직도 숨이 붙어 그를 노려보며 그르렁댄다. 좀 넋이 나가 있는데 나무위에서 누군가 불쑥 아래로 뛰어 내렸다. 다드가 움찔했다.

“안 다쳤어?”

오에인을 알아 보고 다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에...”

걸어가 오에인은 숨이 붙은 채 늘어져 있는 검은 짐승을 내려다 보았다. 초식동물인 가젤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몸집은 더 작고 앞니 두 개는 사자나 하이에나처럼 날카롭게 튀어나와 있었다. 이렇게 생긴 짐승은 본 적이 없다. 카헬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모든 것들이라고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이쪽으로 내려오다니 배짱 좋네.”

여전히 죽은 짐승을 내려다 본 채 오에인이 말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며 다드는 자신을 공격한 짐승을 다시 한 번 쳐다봤다. 배짱이고 뭐고 이럴 줄 알았으면 당연히 안 내려왔다.

“어쨌든 빨리 여길 벗어나는 게 좋을 거야.”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피냄새가 퍼져서 좋을 건 없다.

“장비 주고 이제 돌아가.”

“나 혼자요?”

기겁하며 다드가 외치듯 말했다. 오에인이 그를 쳐다봤다.

“여기서 케이블까지 얼마 안되잖아.”

오에인은 말했다.

“별 일 없을 거야.”

“그래도..”

방금 전 이런 공격을 당하고 나니 갑자기 혼자 돌아갈 엄두가 안났다. 얼마 안된다고 했지만 사실 꽤 멀리까지 와 있는데. 어쩌지.. 망설이는 걸 보고 오에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데려다 줄게. 가자.”

그 말에 좀 안심을 하고 다드가 그를 따라 가려는데 갑자기 오에인이 자리에 섰다. 걸어가려는 방향에서 낮게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낮고 희미하지만 짐승 울음 소리는 아니다. 오히려 천둥소리와 비슷하게 들렸다. 멀리서 들리는 듯 했지만 조금씩 커지는 게 뭔진 몰라도 이쪽으로 가까워지는 듯 했다. 다시 또 비가 오려나 싶어 다드가 잎으로 가려진 하늘을 올려다 보려는데 갑자기 오에인이 말했다.

“뛰어야 겠다.”

“네?”

“어서.”

어리둥절하는 다드의 어깨를 잡아 채며 오에인이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하자 얼결에 끌려가던 다드 역시 그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왜 그래요?!”

뛰면서 다드가 그를 향해 소리치듯 물었다.

“저거 물소리야.”

오에인은 나무 사이 사이를 통과해 최대한 직선으로 달렸다. 멀리 벗어나려면 그래야 했다.

“확실친 않지만 일단 뛰어.”

“네에?!”

대체 이게 무슨 소리... 잠깐 넋을 놓는 사이 어느새 남자와의 거리가 조금씩 벌어지자 기겁하며 다드는 그를 따라잡기 위해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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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그라브 - 10.foe(2) 13.02.07 434 6 14쪽
63 그라브 - 10.foe(1) 13.02.04 318 2 13쪽
62 그라브 - 9.폴레마2(15) 12.10.01 353 2 14쪽
61 그라브 - 9.폴레마2(14) 12.09.29 514 2 26쪽
60 그라브 - 9.폴레마2(13) 12.09.27 394 2 12쪽
59 그라브 - 9.폴레마2(12) 12.09.27 496 2 30쪽
58 그라브 - 9.폴레마2(11) 11.09.14 415 2 29쪽
57 그라브 - 9.폴레마2(10) 11.09.01 545 2 22쪽
56 그라브 - 9.폴레마2(9) 11.08.23 321 3 20쪽
» 그라브 - 9.폴레마2(8) 11.08.16 613 2 22쪽
54 그라브 - 9.폴레마2(7) 11.08.12 455 4 18쪽
53 그라브 - 9.폴레마2(6) 11.08.09 421 2 22쪽
52 그라브 - 9.폴레마2(5) 11.08.04 385 8 14쪽
51 그라브 - 9.폴레마2(4) 11.08.01 346 2 14쪽
50 그라브 - 9.폴레마2(3) 11.07.25 385 2 18쪽
49 그라브 - 9.폴레마2(2) 11.07.21 509 30 11쪽
48 그라브 - 9.폴레마2(1) 11.07.18 370 2 18쪽
47 그라브 - 8.폴레마1(10) 11.07.11 390 2 14쪽
46 그라브 - 8.폴레마1(9) 11.07.07 388 2 16쪽
45 그라브 - 8.폴레마1(8) 11.07.03 380 3 18쪽
44 그라브 - 8.폴레마1(7) 11.06.28 508 3 11쪽
43 그라브 - 8.폴레마1(6) 11.06.24 449 2 23쪽
42 그라브 - 8.폴레마1(5) 11.06.20 390 3 20쪽
41 그라브 - 8.폴레마1(4) 11.06.13 295 3 16쪽
40 그라브 - 8.폴레마1(3) 11.06.11 407 4 17쪽
39 그라브 - 8.폴레마1(2) 11.06.06 494 4 11쪽
38 그라브 - 8.폴레마1(1) 11.06.03 767 3 17쪽
37 그라브 - 7.months earlier(2) 11.05.27 628 3 10쪽
36 그라브 - 7.months earlier(1) 11.05.23 536 3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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