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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k 님의 서재입니다.

그라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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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k
작품등록일 :
2012.10.01 17:15
최근연재일 :
2013.04.22 16:42
연재수 :
7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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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35
추천수 :
294
글자수 :
585,035

작성
11.06.2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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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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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그라브 - 8.폴레마1(6)

DUMMY

G;암에서 내려오자 텐은 양 팔부터 파일럿 슈트를 벗어 아래로 끌러 내려 허리에 걸쳤다.

“으... 더워.”

상체가 땀범벅이었다. 지친다는 듯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 바닥을 짚으며 그는 목을 뒤로 꺽었다. 격납고의 높디 높은 천장에 달린 조명이 눈에 들어왔다.

“지쳤어?”

오에인이 그의 옆으로 걸어 왔다.

“왠 일로?”

헬멧을 벗어들자 그 역시 머리칼이 땀으로 달라 붙어 있었다.

“더운 건 진짜 못 참겠어.”

한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텐이 대꾸했다. 난에서 내린 피히드도 두 사람 쪽으로 걸어 왔다. 마찬가지로 땀에 푹 젖은 머리칼을 그가 손으로 좀 털어 냈다.

“좀 전에 고마워.”

오에인이 자신을 향해 가볍게 말하자 피히드는 좀 머쓱한 얼굴이 됐다.

“그러고보니 너 말이야..”

바닥에 널부러져 앉아 있던 텐은 그 말에 아까 상황을 생각하며 기가 찬 듯 말을 했다.

“그런 일에까지 일일이 목숨 거는 이유가 뭐야?”

“그래 보였어?”

“펄펄 끓는 용암 옆에서 그러고 있으면 당연히 그래 보이는 거 아냐?”

“뭐.. 그냥 좀 집중할 일이 필요해서.”

담담히 오에인이 대꾸했다.

“이러고 있으니까 점점 더 긴장감이 없어지는 것 같아서 말이야.”

“몸에 폭탄 있는데 그것보다 더 긴장할 게 필요해?”

별 미친 소리 다 듣겠다는 듯 심드렁히 중얼대며 텐은 다시 양 팔을 뒤로 집었다.

“별 소릴 다 하네 진짜.”

그 소리에 조금 미소 짓고는 오에인 역시 텐의 옆에 주저 앉으며 자세를 좀 편히 했다.

“반스플크는 괜찮을까요?”

엑시미얀의 발 근처에 기대 선 채 피히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해치에 금이 갔던데.”

“성깔 공주가 고쳐 주겠지.”

여유로운 얼굴로 오에인이 대꾸했다.

“게다가 문제가 생기기 전에 돌아 왔으니까. 아마 괜찮을 거야.”

반스플크가 조정하는 자신을 감응하는 것처럼 정말 신기하게도 오에인 역시 반스플크의 상태를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었다. 순전히 감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정할 때마다 그 자신도 조금씩 반스플크와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것은 어느새 확신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피히드는 반스플크의 옆에 대기하고 있는 입터 쪽을 쳐다봤다.

“두 사람은 별 일 없겠죠?”

좀 전에 밀트렛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비어슨이 그녀를 데리러 간다고 하면서 기지에서 출발했다.

“별 일 있을게 뭐야? 길 잃어서 찾으러 간 거라며?”

귀찮은 녀석들이라는 얼굴로 텐은 찡그렸다.

“그 나이 먹어서 별...”

“헤이. 여러분들.”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격납고 저쪽에서 목소리가 날아왔다. 세 사람이 고개를 돌리자 청년 한 명이 엑시미얀의 옆에서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수고들 했네.”

앉아 있는 텐의 바로 뒤에서 걸음을 멈추며 녹스는 세 사람을 내려다 봤다.

“어때? 여기 일 할 만하신가?”

그 등장이 못마땅했는지 기분 나쁜 얼굴이 된 텐의 눈동자가 녹스를 위아래로 한 번 훑었다.

“그런 눈으로 볼 거 없어. 나도 너희랑 같은 G;암 파일럿이고 이제 같이 움직일텐데 아직 통성명도 못해서 말이야. 인사나 할까 하고 왔는데 괜찮지?”

안 괜찮아도 상관없다는 얼굴이었다.

“녹스 테일런. 폴레마 소속 상병 아스트렛사 파일럿이야.”

넉살 좋게 그는 말했다.

“내 소갠 했으니 그대들 신상도 좀 들어보자구.”

할 말 다하고 입을 다물자 여전히 꿈쩍도 안한 상태로 자신을 보고 있는 세 사람이 눈에 보였다. 그러다가 잠시 후 그 중 한 명이 입을 뗐다.

“우주 해적. 폭탄 테러범.”

오에인은 손가락으로 텐과 피히드, 그리고 자신을 한 번 씩 가리켰다.

“연쇄 살인마.”

녹스는 어리둥절해졌다.

“뭐?”

“이 정도면 소개가 됐어?”

예의 미소 띈 얼굴로 말을 하는 그의 뒤에서 텐이 일어났다.


노골적으로 못마땅한 얼굴로 녹스를 한 번 노려보고는 그가 몸을 돌렸다. 피히드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 머뭇거리며 피히드는 녹스를 향해 고개를 한 번 숙여 보였다. 그리고는 텐을 따라 갔다.

“서로 마주칠 일 없을 테니 우리한텐 크게 신경 안 써도 될 거야.”

덧붙이며 자리에서 일어난 오에인 역시 두 사람을 따라 몸을 돌렸다.


“뭐야, 저 녀석들...”

혼자 남겨진 녹스는 격납고를 빠져 나가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어리둥절한 듯 중얼댔다.










안개가 눈앞을 차단하자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 조금이라도 자세히 보려고 눈을 가늘게 뜨고 뚫어져라 앞을 응시했으나 정말 아무 것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지독한 안개는 처음 본다.

지도를 볼 순 있었지만 어딘지 비교할 수가 없으니 이래서는 당장 아까 차를 버리고 온 곳까지 다시 갈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물론 이미 그곳에서는 꽤 멀리 떨어져 나왔으니 굳이 거기까지 돌아갈 필요는 없다고 보지만.


얼마 가지도 못하고 다시 자리에 서서 밀트렛은 주위를 둘러 봤다. 난감해져서 그녀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살짝 문질렀다.

“그러니까 그냥 있자고 했잖아.”

옆에서 카헬이 말했다.

“... 정말 그럴걸 그랬어.”

나직히 중얼대며 밀트렛은 다시 방향을 찾았다. 후회는 되지만 그렇다고 여기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일단 어떻게 해서든 길을 찾아야 한다.

“설마 우리 여기서 조난당하거나.. 여기서 어떻게 된다거나.”

걸음을 옮기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말도 안되는 소리. 콩트냐?”

심드렁히 카헬이 응수했다.

“그 난리를 치고, 오자마자 조난당하고 끝나게?”

“그러니까..”

밀트렛이 다시 중얼댔다.

“그렇게 되진 말아야 할텐데.”


카헬은 한 발 앞으로 나가 울창한 수풀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샛길 한 쪽을 쳐다봤다. 이곳에 익숙한 용병들이라도 이런 안개에 갇히면 감으로 길을 찾는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카헬도 마찬가지였다.


어둠은, 훈련 받은 자라면 밤이 되도 길을 찾는 건 낮과 별로 차이가 없지만 안개는 오감을 차단해 방향성을 잃게 하므로 문제가 됐다. 더구나 이곳의 안개는 무겁고 차가우며 뭔가 모르게 으스스해 그런 기운에 빨려 들면 더욱 안개에 갇힌 채 헤매게 된다. 주변에서 가장 굵은 나무를 확인하고는 그가 그쪽으로 걸어갔다.

“여기 있어.”

무심히 말하며 손을 뻗어 카헬은 나뭇가지를 잡았다. 머리 위 높은 가지로 올라서는 그를 밑에서 밀트렛이 올려다 보았다.


나무의 꼭대기까지 올라선 카헬은 사방을 확인했다. 위는 그나마 안개가 옅어 아래에서 보는 것보다는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높은 산이나 계곡. 그 외에 특별히 표시가 될 만한 건 없었지만 눈에 익은 곳이라 그것만 보고도 동서남북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기에 기지로 향하는 방향을 알 수 있었다.


지도를 따라 내려 왔고 안개가 끼인 시점에서 많이 움직이지 않아서 지금 위치에서 보건데 길을 완전히 잃거나 하진 않았다. 기지가 있는 남쪽으로 가기 위해 가야할 길을 파악하고는, 그는 다시 나무 아래로 내려갔다.


나무 아래 서서 밀트렛은 카헬이 올라간 나무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가 위로 올라가고 혼자 남자 어쩐지 좀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안개가 차가워 오한이 느껴졌다.

갑자기 근처에서 뭔가가 돌아다닌다는 그의 말이 생각났다. 밀트렛은 귀를 기울였다. 안개에 신경쓰느라 지금까지는 별다른 기척을 느끼지 못했는데 귀를 기울이자 미세하게 여러 가지 소리들이 들려 왔다.


풀벌레 같은 것들이 우는 소리. 그리고 뭔가가 움직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밀트렛은 소리가 난 쪽을 응시했다. 그녀와 대 여섯 걸음 떨어진 곳에 있는 허리 높이의 수풀 더미가 살짝 흔들렸다. 의외로 밀트렛은, 뭔가를 두려워하려면 먼저 실체를 확인하자는 주의였기에 그쪽으로 걸어가서는 풀숲 속을 들여다 보기 위해 몸을 숙였다. 그 순간 수풀 사이에서 뭔가가 빠르게 튀어나오며 그녀를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기세에 그녀가 그만 뒤로 넘어졌다. 등에 매고 있던 통신 장비가 덜컥 소리를 내며 옆으로 쏟아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뭔지 모를 것은 이미 사라졌다.

“아....”

잘 보지는 못했지만 토끼나, 그냥 작은 산짐승인 듯 했다. 토끼보다는 훨씬 재빨랐지만. 자리에 넘어진 채 그녀는 쏟아진 장비들을 쳐다봤다. 고장이라도 났다간 큰일이다. 그 생각을 하며 통신기를 챙기려는데 갑자기 가방이 위로 들어 올려졌다. 고개를 드니 나무에서 내려온 카헬이 장비가 든 가방을 손에 들고 있었다.

“가만 있으랬더니..”

탐탁치 않은 얼굴로 말하며 그가 가방을 어깨에 들쳐 맸다.

혼자라면 몰라도 혹까지 딸린 마당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간 골치 아파질 테니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통신 장비는 잘 가지고 있어야 했다.


카헬은 아까 나무 위에서 확인한 기지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더 지체 하다간 위험해질 것 같으니까 내가 앞장 서지.”

무심히 말하며 성큼 걸음을 옮기는 그를 잠시 멍하니 보고 있다가 발에 힘을 주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또 얼마쯤 걸었을까. 앞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바로 옆을 지나갈 때마다 놓여 있는 거대한 나무들과 뭔지 모를 거대한 수풀을 보고 있자니 그 속에서 아까처럼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밀트렛은 앞을 보았다. 카헬은 그녀와 한 발 정도 앞에서 걷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보이지 않는 건 그도 마찬가지 일텐데 걸어가는 기색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녀는 다시 귀를 기울였다. 강이 근처에 있는지 멀리서 강물이 흐르는 소리 같은 것이 희미하게 들렸다.

“이제 한 시간 쯤 지났는데...”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그녀는 말했다.

“어디쯤 왔을까?”

“제대로 가고 있다면 이 지점 근처.”

그가 지도 한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중위님도 지금쯤이면 아마 중간까지는 왔을 거야.”

무슨 일이 생길까봐 걱정하는 그녀였으니 아마 지금쯤 꽤 속도를 올리며 오고 있을 것이다.

“무리하지 않고 와야 할 텐데.”

이 와중에 군복을 걱정하는 소리에 카헬은 옆눈으로 힐끔 그녀를 쳐다봤다.

“가만 보면 군복 꽤 신뢰하는 것 같은데..”

카헬이 말을 했다.

“그렇게 믿을 만한가?”

그 말에 밀트렛은 무슨 뜻이냐는 얼굴로 그를 보았다.

“엄밀히 말하면 그 녀석 콧수염이 보낸 스파이잖아.”

콧수염은 크라우저 준장을 뜻하는 듯 했다.

“무슨 소리야? 그게.”

“콧수염한테 우리가 무슨 짓을 하는지 보고하려고 보내진 거니, 그게 스파이 아냐?”

오른쪽 왼쪽, 양쪽으로 난 길을 한 번씩 보다가 더 좁은 왼쪽 길로 접어 들며 카헬은 말을 이었다.

“기본적으로 너보다 콧수염을 택할 입장일 테고, 그럼 만약의 사태에 뒷통수 맞는 일 생길지도 모른단 생각은 안 해봤어?”

밀트렛은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너무 믿지 않는 게 좋아.”

가볍게 그는 말을 하고 있었다.

“군복이든 콧수염이든, 이해관계가 끝나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게 사람이니까 말이야.”

“그건 경험이야?”

조용히 밀트렛은 입을 뗐다.

“기지까지 찾아가 동료들 복수해준 이유를 말하고 싶은 거야?”

카헬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밀트렛의 시선 역시 자신을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 그 시선을 마주 하고 있다가 그는 곧 아무렇지 않은 투로 입을 열었다.

“동료는 무슨. 내 몫이나 챙길까 했던 거 뿐인데.”

“.... 그 때, 아무 상관없는 사람도 많았어.”

사실 그녀는 비어슨이 보고한 것보다 지금은 네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알 게 된 것은 폴레마로 오기 바로 전. 돈이면 정보의 원천은 어디서든 얻을 수 있다. 게다가 라이슬러라는 이름을 이용하는 바람에 아마 굳이 알 필요 없는 것까지 알게 된 그녀였다.

“죄책감 같은 거, 안 들어?”

“이유 없이 희생되는 사람이 한 둘인가? 게다가 나한테 총질해대는데 적인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알아?”

코웃음치며 하는 대꾸에 밀트렛은 그를 다시 응시했다.

“그것도 살아 남기 위해서 라고 말하는 거구나..”

그에게 묻는 건지 혼자말인지 모를 소리로 나직히 중얼대는 소리를 하던 그녀는 갑자기 바닥이 푸욱 꺼지는 느낌에 움찔하며 뒤로 물러 서려고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몸이 아래로 미끄러졌다.


좁은 길의 바로 옆에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 멀리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사실 두 사람은 강의 바로 옆에서 걷고 있었다. 군데군데 강물이 산의 안쪽으로 굽이쳐 들어오는 특이한 지형이었다.

강물은 산의 안쪽으로 크게 굽이쳐 들어와 그곳에서 소용돌이를 이뤘다. 꽤 오래 걸어서 힘이 들었기 때문에 잠시 여유를 가지려고 밀트렛은 나무들을 버팀목처럼 짚어 가면서 걷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그 사이에 형성되어 있던 강쪽으로 발을 헛딛으면서 비탈에 미끌려 아래로 빠지게 된 것이다.


그녀가 떨어진 곳은 소용돌이 바로 위였다. 몸이 물의 깊숙한 곳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위로 올라가려고 애를 썼으나 소용없었다. 물살이 너무 세 순식간에 호흡이 끊기며 코와 입으로 물이 들어왔다. 괴로워하던 그녀는 일순 정신을 잃었다.


물속으로 뛰어든 카헬이 헤엄쳐 내려가 그녀를 잡았다. 물살이 너무 세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았지만 정지되 있는 소용돌이의 중심까지 가 그대로 물살을 치고 위로 올라갔다. 곧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강물쪽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나뭇가지를 발견한 그가 다시 그쪽으로 가 한 팔로 나뭇가지를 움켜 잡고 천천히 물위로 올라갔다.


양 팔로 그녀를 안은 채 카헬은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의식을 잃은 채 축 늘어진 그녀를 그는 바위 위에 내려 놓고 몸을 숙여 그는 서너 번 연속으로 밀트렛의 입 안에 숨을 불어 넣었다. 호흡이 돌아오지 않자 좀 기다렸다 다시 몇 초 간격으로 숨을 불어 넣었다.

그러기를 반복하는데 어느 순간 밀트렛이 기침과 함께 물을 뱉어 냈다. 그걸 보고 카헬은 그제야 동작을 멈추었다. 물을 뱉어낸 그녀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지만 호흡은 돌아와 있었다. 고개를 돌려 마른 기침을 한 번 하며 그는 다시 밀트렛을 내려다 보았다.









“다들 모니터 실로 모이라고 해.”

방금 전 대령의 호출로 사령관 실에 갔다 온 헤일런 주임은 격납고로 돌아와 제일 먼저 본 반 스토메이어 부주임에게 말했다.

“다들 모여봐.”

반 스토메이어가 격납고 여기 저기에 서너 명씩 몰려 있는 정비사들을 향해 소리치며 손짓 했다.

“앞으로 새로 온 G;암 쪽도 정비할 건데.”

제일 앞에 서 있는 반을 향해 주임은 말했다.

“그 쪽이 앞으로 1기지로 이동한다고 하니까 우리도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정비팀 나누시게요?”

“응.”

헤일런 주임의 말에 반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

“여기서 그냥 같이 하면 되지 굳이 왜 그런데요?”

“그야, 그건 내가 알 순 없고.”

중얼대며 주임은 그를 힐끔 쳐다봤다.

“일단 그렇게 됐으니 우리쪽 몇 명이랑 다음 주에 충원되는 인력 중에 몇 명 보낼 건데...”

반의 뒤쪽으로 몰려와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정비사들을 향해 그는 말을 이었다.

“지원자 있어?”

그 말에 다들 조금 찔끔하며 시선을 외면했다. 1기지는 여기보다 훨씬 대륙 깊숙이 있는데다가 게다가 새로 온 파일럿들이 어떤지 아직 잘 알지도 못하는데 그런데 같이 끌려가고 싶은 사람은 아무래도 없었다.

“그냥 새로 오는 녀석들 보내요.”

눈치를 보고 있던 레이사가 주임을 향해 말했다.

“여기 상황도 잘 모르는데 무작정 그럴 순 없잖아. 적당히 섞어야지.”

다들 조용하니 대답이 없자 주임은 난감해졌다.

“내가 갈 순 없잖아. 아무나, 없어?”

다들 시선을 피하며 미적거리는 것을 보고 주임은 못마땅한 얼굴이 됐다.

“이 녀석들이...”

“제비 뽑아요, 그럼.”

정비사들 사이에 섞여 안으로 들어왔던 녹스가 입을 뗐다.

“그럼 되겠네.”

눈치 없이 끼어들자 다들 곱지 않은 눈으로 그를 흘겨 봤다.

“왜? 공평하고 좋잖아.”

그 시선에 의아한 듯 말을 하는 그를 보고 주임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아싸. 난 통과.”

제일 먼저 뽑은 반과 레이사가 아무 것도 표시되 있지 않은 종이를 보고 주먹을 불끈 쥐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 다음으로 제비를 뽑아 들고 자신이 서 있던 자리로 돌아온 크레디는 마침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는 다드를 보았다.

“야. 다드.”

격납고 밖 활주로 상황을 점검하느라 좀 늦게 돌아온 다드는 그의 부음에 크레디의 옆으로 걸어갔다.

“왜?”

“이거 가져.”

그가 손을 내밀어 건낸 것을 어리둥절한 얼굴로 다드가 받았다.

“뭔데?”

엑스표시가 되 있는 제비를 한 번 쳐다보고 다드는 다시 크레디를 쳐다봤다. 감흥 없는 얼굴로 그는 앞으로 나가 다시 제비를 뽑고 있었다. 아무 것도 표시되 있지 않은 제비를 하나 들고 와 그대로 밖으로 나가는 크레디를 다드는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헤헤..”

옆으로 걸어온 녹스가 다드가 들고 있는 당첨 제비를 보고 가볍게 말했다.

“가겠네.”

“어딜?”

아직 상황 파악을 못한 다드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녹스를 향해 되물었다.









희미하게 의식이 돌아오고 눈썹을 찡그리던 밀트렛은 이내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잠깐 깨닫지 못하다가 퍼득 생각이 떠오르자 자리에서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죽을 고비 혼자 너무 여러 번 겪는 거 아냐?”

자신은 커다란 나무 밑에 누워 있었다. 날은 이미 어둑해지기 시작하고 있다. 밀트렛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양 팔로 몸을 감쌌다. 물에 빠져 축축히 젖은 옷 때문에 몸에 한기가 서렸다.

“내가 얼마나 기절해 있었어?”

정신을 차리며 그녀가 물었다.

“얼마 안 돼.”

대꾸하는 소리를 들으며 밀트렛은 주변을 살폈다.

“여기는...”

안개가 끼인 지역에서 벗어나 있다. 자동차로 올 수 있는 길쪽으로 빠진 것 같았다.

“지도를 보건데 대략 1/3정도는 내려 왔어.”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카헬이 말했다. 그의 손에는 지도와 통신 장비가 들려 있다. 아까 물에 빠진 뒤로 그가 어느 정도까지 자신을 데리고 이동한 듯 했다.

“데리러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자고.”

무심히 그가 말했다.

“후...”

숨을 한 번 들이 마시며 밀트렛은 몸을 조금 움츠러 뜨렸다. 더 이상 움직일 기운도 없고.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기다리는 수 밖에.. 아직 제대로 머리속을 정리할 수 없어 그렇게만 생각하며 양 팔로 어깨를 감싼 채 그녀는 몸을 움츠렸다.









작업을 나갔던 G;암이 기지로 다시 돌아온 뒤 경과 보고를 위한 보고서 작성과 경보 센서 의 시테스트가 끝나 상황실 역시 상황이 종료되자 시셀 오이어는 소리없이 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일이 많아서 벌써 밤이 훌쩍 깊어져 있었다.

“수고 했어.”

아소 창 소위가 말을 하자 옆 자리에 앉아 있던 그녀는 움찔하며 입을 뗐다.

“수고하셨습니다, 소위님.”

아소 창 소위와 테리 빈슨 하사가 상황실을 나가자 그제야 그녀는 의자 뒤에 몸을 기대며 크게 한 번 호흡했다. 이곳으로 전속된 지는 오늘로 한 달째. 입대한지는 불과 1년이 조금 넘었고 기지에 근무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녀로서는 아직 긴장의 연속인 매일인 것이다.

이래가지고 제대로 해 낼 수 있을지 그녀는 걱정이 말이 아니었다. 시셀 오이어 하사는 군인치고는 정말 지나치게 긴장을 많이 하는 타입이었다. 냉정하게 상황을 전달해야 하는 CIC요원으로서 그런 점은 유치하고 한심한 모습이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도저히 개선이 안 되 시셀은 지금 나름 심각하게 고민 중이었다.


상황실을 나온 그녀는 혼자 격납고로 내려왔다. 파일럿은 아니지만 그래도 G;암과 좀더 친밀해 지기 위해 이렇게 사람이 별로 없을 때 가끔 격납고에 내려와 있었다. 눈앞에서 자주 보고 만져 보고 한다. 익숙해지면 좀 더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뚝 서 있는 필번의 앞에서 그녀는 하부 프레임에 손을 댔다. 매번 이렇게 긴장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가 있었다. 그나마 이곳이 전투지가 아닌 건 다행이지만 지난 번 메리프에서처럼 언제 또 그런 일이 생길지는 몰랐다. 필번을 올려다 보다가 그녀는 몇 번 기침을 해댔다.

“필번. 아스트렛사. 코드 블루. 전원 전투 태세바랍니다.”

그녀가 안내 방송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녹스는 아스트렛사의 옆에 있는 캐리어를 콕크핏트 위치에 올려 놓고 그 위에서 자고 있다가 잠에서 깨 슬슬 숙소로 돌아가려고 몸을 일으키며 하품을 했다.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아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응?”

고개를 숙여 그가 아래를 내려다 봤다. 필번을 붙잡고 연습하는 시셀을 보고 녹스는 좀 의아해졌다. 뭐 하는 거지?


“ccl 코드 블루. 전원 전투 태세입니다.”

몇 번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최대한 감정을 섞지 않고 냉정하게 말했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좀 안심이 됐다.

“됐어.”

그러다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자신이 좀 한심했는지 그녀는 양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이래갖고 잘 할 수 있을까? 나 정말 어쩌면 좋아...”

“그렇게 긴장하면 오래 못버텨요.”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 위에서 날아온 소리에 움찔하며 시셀은 위를 올려다 봤다. 낮게 위잉 거리는 소리와 함께 캐리어가 내려오더니 그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고 그녀는 다시 움찔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녹스는 두르고 있던 담요 한 장을 손에 둘둘 말았다.

“그런 것보다 적당히 신경 쓰고 적당히 신경 끊는 걸 연습하는 게 나을 걸요.”

느긋한 투로 그는 말을 이었다.

“그래야 덜 피곤하니까.”

그가 하는 말을 멍하니 듣고 있던 시셀의 표정이 점점 화가 나는 얼굴이 됐다.

“테일런 상병.”

그녀는 그를 노려보았다.

“상병은 내가 만만합니까? 나이는 어려도 상병보다 상급자입니다.”

그 말에 녹스는 그제야 그녀의 어깨에 붙은 계급장을 확인했다.

시셀의 경우 파일럿에 대한 신상이야 몇 번이나 보고 완전히 외우고 있었으니 그가 전혀 낯설지 않았지만 녹스는 그녀를 처음 보았고 더구나 어깨에 달린 하사관 계급장은 이제 확인하고 있는 중이었으니 그제야 그는 움찔했다.

“죄, 죄송합니다. 하사관님.”

부동자세를 취하며 그가 말했다. 그런 녹스를 한 번 그를 노려보고는 시셀이 이내 몸을 훽 돌려 밖으로 나갔다.

“휴...”

그녀가 사라지자 그제야 다행이라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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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브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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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그라브 - 11.움직임(10) +2 13.04.22 513 6 20쪽
74 그라브 - 11.움직임(9) 13.03.25 397 2 16쪽
73 그라브 - 11.움직임(8) 13.03.17 306 2 16쪽
72 그라브 - 11.움직임(7) 13.03.07 317 4 18쪽
71 그라브 - 11.움직임(6) 13.03.04 501 2 18쪽
70 그라브 - 11.움직임(5) 13.02.28 358 4 21쪽
69 그라브 - 11.움직임(4) 13.02.21 404 2 9쪽
68 그라브 - 11.움직임(3) 13.02.19 317 4 15쪽
67 그라브 - 11.움직임(2) 13.02.15 314 3 22쪽
66 그라브 - 11.움직임(1) 13.02.11 344 2 14쪽
65 그라브 - 10.foe(3) 13.02.07 416 3 22쪽
64 그라브 - 10.foe(2) 13.02.07 434 6 14쪽
63 그라브 - 10.foe(1) 13.02.04 318 2 13쪽
62 그라브 - 9.폴레마2(15) 12.10.01 353 2 14쪽
61 그라브 - 9.폴레마2(14) 12.09.29 514 2 26쪽
60 그라브 - 9.폴레마2(13) 12.09.27 394 2 12쪽
59 그라브 - 9.폴레마2(12) 12.09.27 496 2 30쪽
58 그라브 - 9.폴레마2(11) 11.09.14 415 2 29쪽
57 그라브 - 9.폴레마2(10) 11.09.01 545 2 22쪽
56 그라브 - 9.폴레마2(9) 11.08.23 321 3 20쪽
55 그라브 - 9.폴레마2(8) 11.08.16 613 2 22쪽
54 그라브 - 9.폴레마2(7) 11.08.12 455 4 18쪽
53 그라브 - 9.폴레마2(6) 11.08.09 421 2 22쪽
52 그라브 - 9.폴레마2(5) 11.08.04 385 8 14쪽
51 그라브 - 9.폴레마2(4) 11.08.01 346 2 14쪽
50 그라브 - 9.폴레마2(3) 11.07.25 385 2 18쪽
49 그라브 - 9.폴레마2(2) 11.07.21 509 30 11쪽
48 그라브 - 9.폴레마2(1) 11.07.18 370 2 18쪽
47 그라브 - 8.폴레마1(10) 11.07.11 390 2 14쪽
46 그라브 - 8.폴레마1(9) 11.07.07 388 2 16쪽
45 그라브 - 8.폴레마1(8) 11.07.03 380 3 18쪽
44 그라브 - 8.폴레마1(7) 11.06.28 508 3 11쪽
» 그라브 - 8.폴레마1(6) 11.06.24 450 2 23쪽
42 그라브 - 8.폴레마1(5) 11.06.20 390 3 20쪽
41 그라브 - 8.폴레마1(4) 11.06.13 295 3 16쪽
40 그라브 - 8.폴레마1(3) 11.06.11 407 4 17쪽
39 그라브 - 8.폴레마1(2) 11.06.06 494 4 11쪽
38 그라브 - 8.폴레마1(1) 11.06.03 767 3 17쪽
37 그라브 - 7.months earlier(2) 11.05.27 628 3 10쪽
36 그라브 - 7.months earlier(1) 11.05.23 536 3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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