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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글렛 님의 서재입니다.

여행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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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글렛
작품등록일 :
2019.06.18 21:07
최근연재일 :
2019.09.19 02:57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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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추천수 :
41
글자수 :
246,402

작성
19.07.18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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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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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16화. 가장 완벽한 재회란

하와이에서 생긴 인연이 발전하기까지..




DUMMY

도훈은 카페에서 용선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옷장에 고이 모셔두었던 말끔한 정장을 입고서 긴장된 채 다리를 떨고 있었다. 최근 큰 규모로 부상 중인 벤처기업 ‘굿모닝 투어’ 관계자와의 면접 때문이었다. 면접은 용선이 주선했다. 용선이 일을 하던 중 알게 된 지인이라고 했다. ‘굿모닝 투어’는 지금 그의 처지에서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회사 중 가장 규모가 큰 회사였다. 그는 청심환이라도 먹을 걸 후회했다.


그가 열심히 다리를 떨고 있을 때, 용선이 카페로 들어왔다. 그는 자리에서 손을 흔드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런데 카페로 들어온 건 용선 혼자뿐이었다. 용선이 자리로 와 앉았다.


“조금 늦으신데?”


용선은 말없이 계산대 쪽 메뉴판을 주시했다.


“커피가 아니라 술을 마셔야 되는데. 여기 소주는 없어요?”


용선이 점원을 향해 소리 내어 말했다. 그런 용선의 태도에, 그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왜? 무슨 일 생겼어?


“넌 뉴스도 안 보고 사냐?”


“왜? 뭔데? 무슨 일 생긴 거지?”


용선이 휴대폰 화면을 두드리더니 그에게 뉴스기사를 보여줬다. <연예인 J양. 벤처기업 대표이사와 불륜 임신>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였다. 그는 용선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들었다. 그의 눈이 천천히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5년 전 같은 업계 연예인 K와 결혼을 하여 잉꼬부부라는 호칭이 붙었던 연예인 J양이 굿모닝 투어의 떠오르는 젊은 대표 A씨와 바람이 났다는 내용이었다. 1년 전부터 디스패치를 통해 정황이 보였었고, 그것이 사실로 밝혀졌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연예인 J양이 A대표의 아이까지 임신하게 되어 상황이 파국으로 치다랐다는 것. 그는 이 믿을 수 없는 막장드라마의 대본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회사가 비상이란다. 여행사가 여행이나 사고 때문도 아니고, 스캔들 하나로 이미지가 바닥이 났대.”


그는 정신을 잃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서 힘이 풀리며 용선의 휴대폰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게 말이 돼?”


“내말이. 요즘 불륜이 유행인가 봐. 저번에 연예인 H 사건도 그렇고.”


그는 자연히 고개를 떨궜다. 주차장의 저주와 마찬가지로, 불륜의 저주가 그를 찾아온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항상 안 좋은 예감은 단순 예감으로 끝난 적이 없던 그였다.


“참, 너 사고 쳤다며? 업계에 소문이 파다해. 백화점 알바생이 외제차 두 대 해먹었다고.”


“그냥 나가 죽으려고.”


“내가 예전에 어떤 TV프로그램 보는데, 참치 잡이 어선인가? 리포터가 일하는 사람한테 왜 이렇게 힘든 일을 하시는 거예요? 하고 물으니까, 그 사람 대답이 죽지 못해 삽니다······. 그러더라. 그 말이 너무 공감이 돼서 울컥했잖아.”


“하나도 위로 안 되거든?”


용선이 테이블에 있던 그의 커피 잔을 가져가 빨대로 소리 나게 흡입했다.


“깽값이 얼만데?”


“천만 원.”


용선의 눈이 커졌다. 동시에 쪽쪽 하고 빨아들이는 소리도 빨라졌다.


“지금 일 잡힌 거 없어? 너 운전병이었잖아. 급한 대로 대리라도 뛰든지.”


순간, 지성이 제안한 운전기사 자리가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괜한 자존심을 부렸나? 생각을 너무 많이 했던 게 아닐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미 끝난 일에 미련을 갖고 싶지 않았다.


“모르겠다, 이제······.”


실의에 빠진 그에게 용선이 어깨를 토닥이는 것으로 위로했다.


“내가 로또 안 좋아하는 거 알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오늘은 사봐.”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용선의 말을 들으며 그는 절망과 수치가 뒤섞인 감정을 느꼈다.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치욕스럽더라도 지성을 다시 찾아가 제안을 받아들일까 싶은 충동이 일었다. 무릎이라도 꿇으면······. 그는 무릎을 탁 치며 이성을 되찾으려 안간힘을 썼다. 돈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하지는 말자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용선이 바쁜 일이 있다며 자리를 먼저 떠났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배경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욕망과 이성사이의 치열한 전투의 시간을 보냈다.


*


지성은 그가 떠난 자리를 한참이고 쳐다봤다. 그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그녀는 그와의 인연이 운명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일어날 가능성이 아주 작은 만남이 실재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 만남은 처음부터 꼬이고 말았다. 그녀는 실연의 감정을 뒤로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하와이에서의 만남 이후 그와 헤어졌을 때처럼, 같은 종류의 우울감이 밀려들려고 했다. 그녀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는데, 한비서가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얼그레이 차를 준비해 왔습니다.”


한비서는 그녀의 멍한 눈빛과 화장이 번진 눈 부근을 확인하고서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그녀의 앞에 차를 내려놓고 재빠르게 몸을 돌렸다.


“한비서. 어떻게 생각해?”


그녀가 사무실을 나가려던 한비서의 등에 대고 물었다. 한비서가 동작이 꼬여 어색한 몸짓을 하며 뒤로 돌아섰다.


“뭘······ 말씀이십니까?”


“지금 이 상황. 난 도저히 이해가 안 돼.”


그녀는 한비서에게 그와 있었던 상황을 모두 이야기했다. 하와이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던 일, 그와 밤낮으로 함께하며 일생에 없었던 행복함을 느낀 순간들, 그가 최태호인줄 알았지만 사실 아니었던 것, 그렇지만 그 진실 따윈 상관없었던 그녀의 마음, 그와 헤어진 후 감당하기 어려운 상실감을 느껴야 했던 지난 몇 주들, 우연히 그를 발견하고 눈물이 날 만큼 설레었던 지난밤의 감정까지. 그녀는 조곤조곤하게 전부 실토했다. 한비서는 표정변화 없이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나는 이 사람을 어떻게든 잡고 싶어. 그런데 지금 날 밀어내려고 해.”


그녀가 말했다. 한비서가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부담됐던 게 아닐까요?”


“부담?”


그녀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돈으로 해결하려는 태도가 불쾌하게 다가올 수 있으니까요.”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합당한 제안을 했을 뿐인데?”


“사랑은 사업과는 다르지 않을까요? 제 생각엔······ 방법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방법?”


“대표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사랑에 빠졌고, 이별의 순간엔 눈물까지 흘리며 떠난 사람이잖아요. 자신이 최태호만큼 재력을 갖춘 인물이 아니란 사실을 대표님께 노출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숨기고 싶었던 것이 적나라하게 밝혀진 순간, 견디기 힘든 수치심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대표님의 제안이 모욕적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르고요.”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구겨진 그의 이력서를 내려다봤다. 한비서의 말처럼 그는 다른 걸 원했던 걸까. 그녀는 정말로 자신이 그에게 실수를 범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이력서를 보고, 그의 처지를 확인한 순간, 너무나도 쉽게 그를 꾀어낼 방법을 구상하게 됐다. 그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해결하기 쉬운 경제적인 부분을 건드리려 했던 것이 착오 였을지도 몰랐다.


“내가 건방졌다는 얘기지?”


그녀가 낮은 어조로 물었다.


“죄송합니다. 그런 뜻에서 한 얘기가······.”


“무작정 사회적 지위를 앞세워서 그 사람을 구속하려 했던 게······ 실수였단 거잖아.”


그녀는 그제야 그와의 재회를 자신의 오만으로 망쳐버렸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실이 부끄러워 책상 밑으로 숨고 싶었다.


“중요한 건, 그 사랑이 여전한지를 확인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됩니다.”


그녀는 한비서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비서는 그녀만큼이나 이성적이고 냉철한 편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한비서의 충고엔 제법 뼈가 있었다.


“어렵네. 사랑이라는 거······.”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거니까요.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거고요.”


그녀는 항상 봐오던 한비서가 사랑에 관한 통찰적 존재라도 되는 것 마냥 대단해보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각해? 내가 느끼는 이 감정에 대해서.”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한테,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을 상상할 수 있으십니까?”


한비서의 물음에 그녀는 고민했다.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을 그 만큼이나 사랑할 수 있을까. 그를 만나기 전엔 사랑이라는 감정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를 만나고 나서는 그 감정을 다른 사람에 대입시켜볼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저녁 스케줄 비워줘. 가봐야겠어.”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한비서의 혜안에 가까운 대답이 큰 도움이 됐다. 그녀는 곧장 그를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


“참, 근데······ 한비서한테 애인이 있었나?”


그녀가 갑자기 든 궁금증을 밖으로 내비쳤다.


“아니요. 지난 10년간 없었습니다.”


한비서가 사무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한비서는 올 해 서른이었다. 그녀는 아리송한 한비서의 대답에 잠시 회로가 정지된 듯 멈춰 섰다.


“아, 그래. 어쨌든 고마워.”


그녀는 아이러니한 분위기를 풍기는 한비서를 뒤로한 채 직접 차 키를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


얼큰하고 향긋한 냄새가 도훈의 집안을 풍겼다. 찬혁이 라면을 먹고 싶다기에 그가 직접 끓인 것이었다. 냄비 채로 탁자 위에 올려두자, 배고픔을 참지 못한 찬혁이 한 젓가락을 들어 호호 불어 먹었다.


“삼촌 라면 장사하면 안 돼? 우리 돈 많이 벌 수 있어!”


찬혁이 뜨거운 면발을 식히지도 않고 빨아들이며 말했다. 그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국물을 한 숟갈 퍼 마셨다. 돈을 버는 일이 찬혁의 말처럼 봉지라면을 하나 끓이는 정도로 쉬운 일이라면 참 좋겠다 싶었다.


“많이 먹어.”


그는 목구멍으로 면발이 잘 넘어가지 않아 젓가락질을 깨작댔다. 그에 반해 찬혁은 걸신이 들린 것 마냥 라면을 흡입했다. 도어락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고개를 쭈뼛 내밀자 문을 열고 성식이 들어왔다. 라면 냄새 하나는 기막히게 잘 맡는 친구였다.


“와, 라면 냄새 죽이네.”


성식이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서 식사에 끼어들었다. 그는 못마땅한 눈으로 성식을 노려봤지만 성식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성식은 어디에 갔다 온 듯 머리를 세우고 말끔한 정장차림을 하고 있었다.


“소개팅 갔다 왔냐?”


성식이 면발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안됐지?”


“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성식이 라면을 먹다말고 갑자기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성식의 입에서 튀어나온 면 부스러기와 국물이 그의 옷으로 튀었다.


“지금 밖에 엄청 예쁜 여자 서있어. 완전 비싼 외제차 끌고 왔는데, 그 여자가 우리 집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더라니까?”


순간, 혹시나 싶은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떻게 생겼는데?”


“키도 크고, 얼굴은······ 엄청 예쁘긴 한데, 조금 차가워 보인다고 해야 되나? 쉽게 말 걸기 힘든 느낌?”


“엘사? 삼촌, 엘사 아니야?”


성식의 말에 찬혁이 덧붙였다. 그는 뇌리를 스쳤던 그 생각이 들어맞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 그의 휴대폰에서 알림 음이 울렸다. 그는 모르는 번호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집 앞이야. 잠깐 나와.’


틀림없이 지성이 보낸 메시지였다. 그녀가 직접 찾아온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이미 그의 본 모습을 확인하고 실망을 했을 게 분명한데. 그런데 왜? 그가 빤히 메시지를 쳐다보고 있는데, 이어서 한 통의 메시지가 또 도착했다.


‘미안해.’


그는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조건반사적으로 튕겨져 나온 행동이었다. 그는 외투를 집어 들었다.


“야, 너 어디가? 가서 말 걸게?”


“라면이나 먹어, 인마.”


그는 식사를 뒤로하고 집 밖을 나섰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에게서 큰 굴욕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자석처럼 이끌리게 되었다. 그는 아직 그녀와 하와이에서 함께 한 날들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비록 그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의 그녀였지만, 여전히 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진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



지성은 마세라티 운전석 옆에 등을 기대고 서서, 주머니에 양손을 꽂아 넣은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나타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잠시 동안 멍해지기도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의 재회란 어떤 것일까. 그녀는 한비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가장 중요한 건, 사랑에 관한 재확인이었다. 그녀가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던 중, 그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집에······ 있었네.”


후줄근한 차림의 그가 슬리퍼를 신고서 그녀의 앞으로 걸어왔다. 그녀는 그를 마주한 순간 말문이 막혀 하려던 말을 하지 못했다. 이미 그녀의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은 대사들로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그는 그를 빤히 쳐다보는 그녀를 향해 제자리에서 두 팔을 벌렸다.


“보다시피······ 꼴이 이래서 미안해.”


그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녀가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당신 처음부터 돈이 있어보이진 않았어.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지만.”


“사과하러 온 거 아니었나? ‘미안해’ 라고 적혀있던데.”


그가 특유의 능글맞은 표정과 말투로 말했다. 그녀가 웃음기를 거두고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당신을 쉽게 생각했나봐. 어리석은 짓이었어. 내 방식이 서툴렀다는 거 인정해.”


그가 충분한 듯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도 뭐······ 잘 한 건 없는데.”


“아직 나 좋아해?”


그녀가 거두절미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가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전에도 말했듯이. 언제나, 항상. 변한 적 없고, 잊은 적도 없고.”


그가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서 대답하자 그녀는 순간 울컥했다. 한숨에 달려가 안고 싶었지만 아직 더 해야 할 이야기가 남아있었다.


“왜 얘기 안했어? 당신이 최태호가 아니란 거.”


그가 씁쓰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없었으니까······ 나한테 과분한 사람인 것 같아서.”


“다행이네. 날 하룻밤 상대로 생각한 줄 알았는데.”


“절대······ 그건 절대 아니야. 오해하지 말아줘.”


그가 두 손을 모으며 초조한 어투로 말했다. 다소곳이 모은 손 아래로 이안이 주었던 팔찌가 드러났다.


“팔찌 아직도 하고 있네?”


“소중한 거라······. 절대반지라고, 이안이 말했잖아.”


그녀의 진지한 표정이 풀어지며 이내 입가에 웃음기가 피어올랐다. 그녀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머리카락을 만지는 그녀의 손목에도 같은 모양의 팔찌가 끼워져 있었다. 그는 그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넌 왜 날 좋아했던 거야?”


이번엔 그가 물었다.


“당신이 신기해보였어. 내가 만났던 사람들과는 너무 다르게 느껴졌거든.”


“내 실체를 확인한 지금은?”


“솔직히 실망했어.”


그가 입을 꼭 다물며 코로 한숨을 내뱉었다.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건 변함없어. 당신이 날 하룻밤 여자로 여긴 게 아니듯, 나도 마찬가지니까.”


그녀가 그에게로 한발자국 다가갔다. 그는 그녀의 움직임에 주의를 집중했다.


“그런데 조금 밉네. 항상 옆에 있어주겠다면서, 한 달 동안 찾을 생각도 안한 거 보면.”


그는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떠한 문제가 있어도 옆에 있어주겠다고 그녀를 바라보며 했던 맹세를 어겼으니, 그는 죄인이 맞았다. 그는 오늘 아침 그가 느낀 치욕은 그가 응당 치르고도 남았어야 할 죗값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했던 제안······ 아직 유효해?”


그녀가 싱긋 웃었다.


“당신 자존심 상할까봐 조금 수정했어. 헤어질 때 메시지로 보낼게.”


그녀는 말을 하며 한 손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그녀의 손길이 닿은 부분에서 찌릿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녀가 지레 당황한 듯 커진 동공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는 그녀의 도톰한 입술을 자신의 입으로 덮었다. 그녀의 입술이 그의 리드를 따라 움직였다. 그녀는 두 눈을 감고 촉감에 집중했다. 가장 좋은 방법의 재회란, 따지고 복수하고 화내는 방법이 아니란 것을 키스를 한 순간 깨달았다.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가장 낭만적인 말과 행동이 오고갈 때. 그때야 말로 가장 완벽한 재회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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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4화. 잘 살아. 행복하고 +1 19.09.19 26 1 22쪽
33 33화. 이별을 말하다 19.09.15 24 0 16쪽
32 32화. 시간이 필요해 19.09.10 36 2 14쪽
31 31화. 사랑의 조건 19.09.09 27 1 20쪽
30 30화. 결전의 파티 (2부) 19.09.07 32 1 21쪽
29 29화. 결전의 파티 (1부) +1 19.09.06 30 2 14쪽
28 28화. 너의 마음, 나의 마음. +1 19.09.03 43 2 15쪽
27 27화. 행복이란 19.09.02 45 2 20쪽
26 26화. 호캉스 19.09.01 55 2 20쪽
25 25화. 불길한 예감의 전말 19.08.31 50 2 20쪽
24 24화. 불길한 예감 19.08.31 42 2 19쪽
23 23화. 화끈한 첫 휴일 (2부) 19.08.31 116 2 12쪽
22 22화. 화끈한 첫 휴일 (1부) 19.08.31 43 2 17쪽
21 21화. 오 나의 애인님 19.08.26 113 1 12쪽
20 20화.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19.08.24 40 1 14쪽
19 19화. 밝혀진 비밀 19.08.19 44 1 20쪽
18 18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19.08.18 86 1 17쪽
17 17화. 뜻밖의 만남 +1 19.08.15 56 2 13쪽
» 16화. 가장 완벽한 재회란 19.07.18 54 2 17쪽
15 15화. 재회 再會 19.07.11 68 2 14쪽
14 14화. 크리스마스엔 네가 올까요 <2부> 19.07.10 52 0 18쪽
13 13화. 크리스마스엔 네가 올까요 <1부> 19.07.08 50 2 14쪽
12 12화. 여행의 후유증 19.07.04 46 2 14쪽
11 11화. 모든 것이 제자리로 19.07.03 79 2 16쪽
10 10화. 화양연화 花樣年華 19.07.02 62 2 17쪽
9 9화. 우리 서로 말할 수 없는 것 19.07.02 57 0 19쪽
8 8화. 술에 취한 그녀는 과연 19.07.02 55 0 16쪽
7 7화. 사랑한다면 해야 할 최선의 행동 19.06.28 72 0 19쪽
6 6화. 사랑한다면 하와이로 떠나라 19.06.27 68 1 12쪽
5 5화. 귀엽다. 미칠 듯이. 19.06.26 5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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