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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C
작품등록일 :
2018.04.09 10:17
최근연재일 :
2018.09.18 22:44
연재수 :
6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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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39
추천수 :
368
글자수 :
270,153

작성
18.04.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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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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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시간 오류

DUMMY

시연은 눈을 뜬 채로 한참동안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평소처럼 머리맡의 메모지를 확인했지만 메모지에는 아무 내용도, 흔적도 없었다. 메모지를 다시 던져 놓은 후 곰곰 생각했다. 꿈이었나. 꿈이라고 보기엔 너무 생생했다. 현실의 경험에서 만들어지는 기억은 의식 저편에서 솟아나는 꿈의 기억과는 확연히 다르다. 깨어나자마자 급속도로 사라져버리는 현상도 없다.


시연은 설령 그 기억이 꿈이라고 하더라도 이번엔 급히 메모를 해 놓을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눈을 감고 머릿속에서 그려내던 그림이 아니라, 분명히 시연이 경험한 현실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연은 자신의 머리가 깨져 흘러나온 골수와 피의 냄새까지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 깨어난 직후엔 놀라움과 고통으로 숨까지 몰아 쉬고 있을 정도였다.


바로 몇 분 전의 일인데. 정신을 잃자마자 깨어나다니. 죽은 것 같았지만, 죽고 나서 자기 방에서 다시 깨어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시연의 낙천적인 성격조차 이번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도저히 더 이상은 누워 있을 수가 없어 시연은 몸을 일으켰다. 부딪히는 순간 느꼈던 트럭 앞범퍼의 차가운 감촉이 아직도 생생해서 몸서리가 쳐졌다.


날짜가 바뀌지 않았음을 깨달은 것은 집에서 나오면서 핸드폰을 켰을 때였다. 꿈 —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 에서는 23일 일요일이었는데, 오늘 확인한 날짜 역시 23일 일요일이었다. 다시 들어와서 TV를 켰다. 일요일 아침방송이 나오고 있었고, 우측 상단의 날짜 표기는 역시 23일 일요일이었다.


시연은 혼란스러웠다. 점자 메모를 발견하고, 인터넷을 검색해서 의미를 알아내고, 역, 오쿨리 투이 역의 이름을 알아냈었는데······. 그래! 역 관련한 문의를 하기 위해 시청 콜센터에 전화했었지. 시연은 그 자리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전에 시에서 운영되는 역 관련해서 문의했었는데요.」


「네 고객님, 더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신가요?」


「지난번에 제가 문의한 내용을 한번 더 확인할 수 있을까요?」


「어떤 건으로 문의주셨나요?」


「우리 도시에 있는데, 제가 아직 가보지 못한 역을 찾아 보려구··· 상담원 분이랑 하나씩 찾아봤었거든요.」


「아··· 네. 전화주신 번호로, 비슷한 문의로 접수된 건이 있네요.」


역시 꿈이 아니었다! 시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 물었다.


「아 네! 그거인 것 같아요. 제가 문의한 게 맞죠? 며칠 몇시였나요?」


「23일 오전 11시 34분 27초예요. 어라? 뭔가 오류가—.」


시연은 온몸에서 힘이 쫙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핸드폰을 귀에서 떼고 확인해 본 현재 시각은, 23일 오전 9시 45분이었다.



***



오쿨리 투이 역. 류미정은 그 역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승차권 두 장 예매를 포함 제반 수속을 마쳐 놓고 있었다. 오쿨리 투이 역은 개인 루프의 역이므로 돈만 낸다고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복지부 끗발인가? 철부지같은 첫인상과는 달리 나름 수완이 있어 보였다.


「오너는 누구랍니까?」 열차에 타자마자 콤팩트를 꺼내 들고 줄기차게 화장만 고치고 있는 류미정에게 한울이 물었다.


한울은 살짝 긴장하고 있었다. 범죄가 발생하는 것도, 용의자들이 잠적하는 것도 대부분 플랫폼루프 안이었다. 그래서 경찰 작전은 거의 대부분 플랫폼루프에서 진행되었고, 개인루프나 사적 공용루프에까지 미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개인 루프에 무단으로 접근하는 것은 살인에까지 이를 수 있는 중범죄이므로, 아무리 범죄자들이라도 어지간히 간이 큰 놈들이 아닌 이상은 함부로 시도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경찰 내에서 마인드루프 베테랑 소리를 듣던 한울도 개인 루프 진입 경험은 거의 없었다.


「아직 몰라. 가 봐야지.」 류미정이 거울에서 눈도 떼지 않고 말했다.


「사건은 어떻게 접수된 건데요? 사건이긴 한 건가?」


「오쿨리 투이 역을 찾는 문의전화가 들어왔대. 아다시피,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역의 존재는 노출되면 안되잖아.」


「그건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문제가 될 게 있나.」


「알 필요가 없는 존재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존재가 있다는 건,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 안해?」


「알 필요에 대해서 누가 판단하는데요? 알 수 있는 것을 아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권리죠.」


「아아 자기, AI뿐 아니라 인간 권익도 대변하는 사람이야? 너무 멋지다.」 류미정이 샐쭉했던 표정을 조금 풀고 입꼬리를 조금 올리며 말했다. 그러고는 두 손을 맞대 뺨에 대고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라고. 난 경찰이고 공무원이야. 그쪽도 공무원 아니신가?’


무례하고 냉소적인 말이 또 튀어나오려고 해서, 한울은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말했다. 「뭐, 피차 우린 공무원 아닙니까.」


「으응 그렇지. 어쨌든 당연한 권리를 무시하는 건 아니야. 오히려 존중하는 쪽이지.」 딱딱한 한울의 반응에 류미정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다시 콤팩트로 눈을 돌리며 대답했다.


「알 수 있는 것을 숨긴다면서 무슨 존중?」


「알 필요에 대한 판단은—.」 그녀가 거울에서 눈을 들더니 한울을 쳐다보며 말했다.


「루프 오너와 아키텍트가 내리지. 마인드테크는 그 운영 규칙에 따라 루프를 운영하는 거고.」


아키텍트는 개인 루프 최초 개설 시 의뢰인의 요구사항에 맞추어 루프 내의 세계를 설계하는 역할을 한다. 계약 조건에 따라 마인드테크에서 일괄적으로 작업하기도 하고, 별도 계약에 따른 전문 아키텍트가 개입하기도 한다.


「게다가, 시간 오류까지 발견됐다고 해.」


「시간 오류?」


「응. 그 루프 입주민 스피릿 지원 로직에서 시간 오류가 감지되었나봐.」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요.」


「정확히 말하면, 루프 내 시청 콜센터로 어떤 스피릿이 동일한 문의를 두 번 했는데, 두 번째 문의 시각이 첫번째 문의 시각보다 이전이었대.」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죠?」


「지금은 나도 잘 모르겠어. 이 루프 시간흐름 비율 재설정 중 오류가 난 게 아닐까 싶긴 한데.」


「시간흐름 비율요?」


「루프 내 시간 흐름을 현실 세계랑 똑같이 가져가지 않는 경우가 많아. 영원히 루프에 진입한 상태로 산다면 모를까, 깨어날 때를 생각해서 루프 안에서는 압축 시간대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다수고. 그래서 개인 루프를 개설이나 관리시에, 루프 오너의 브레인 특성과 상태에 맞춰서 최적의 시간 흐름 비율을 결정해서 셋팅해. 보통은 루프 안 시계가 빨리 돌아가지. 깨어난 후에는 루프 안에 있는 동안 시간이 천천히 흐른 것으로 느끼는 거고.」


한울은 여전히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얼마 안 되는 개인 루프 상 수사 경험 중에도 시간 흐름이 문제된 경우는 없었다.


「플랫폼루프는 스피릿들이 현실과 왕래가 많으니까 항상 1:1 비율을 유지해. 드물지만 개인 루프 오너들 중에서도 굳이 1:1 시간대를 희망하는 경우도 있고. 어쨌든 아키텍트의 스타일과 루프 오너의 요구사항이 같이 맞아떨어졌을 때 결정되니까. 자기들 마음이지 뭐.」 미정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콤팩트를 탁 소리가 나게 닫았다.


대화가 끊어지고, 둘 사이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류미정은 말없이 한울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한울은 이런 상황이 못 견디게 어색했다.


「저, 아까는···.」


「응, 아까 뭐?」 한울이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류미정이 조금 화색을 띠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아깐 미안했어요. 어쩌다보니 초면에 실례를 했습니다.」


「아아, 큰소리 낸 것 말이야?」


「그것도 그렇고··· 사실, 컨테이너 바꾸며 장난 치는 거라고만 생각해서.」


「어머나, 그럼 거짓말이었어?」


「뭐가요?」


「나 마음에 든다고 한 거.」


「아니 그건 글쎄··· 장난치는 것 같아서 받아 치려고 그냥.」


「역시, 마음에 든다는 얘긴 거짓말이었나봐.」 류미정이 갑자기 풀이 죽어 이렇게 말했다.


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 여자는, 잠깐만이라도 진지할 수 없는 것일까. 예의상 일그러진 입술을 추스리려다 비웃음이 얼굴 한가득 묻어나 버렸다. 류미정이 눈을 치켜 뜨며 그런 한울의 표정을 보았다.


「나한테 실망했어? 너무 그러지 마. 다른 사람하고 얘기해 본 게 너무 오랜만이라 그래. 게다가 앞으로 쭉 같이 일할 사람이라고 하니, 너무 설렜어.」


‘설렜어’라는 말을 이리 쉽게 하는 여자가 있다니.


「아뇨 아뇨. 그런 뜻은 전혀 없으니 오해하지 마십쇼. 저도 정식으로 제 소개 드릴게요. 사이버안전국 특수범죄 강력수사팀 경위 구한울입니다.」


「경위면··· 6급! 6급 맞지?」


또 그 얘기인가. 한울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장사인이 복지부 5급 신분 얘기를 했을 때 아주 잠깐 솔깃한 건 사실이었다. 어머니를 찾기 위한 여유도 생기고, 게다가 명목뿐이긴 하지만 진급까지······ 혹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게 다 허풍이었다니.


「어머나 상처 받았나봐? 하여튼 원장님 허풍 참 문제야 문제.」


「아닙니다. 조건에 별 불만은 없어요. 단기로 끝나는 임시직이라면 좋은 경험도 될 거고 —.」


어머니 사건을 조사하는 데 조금 여유가 생기는 것 외에 장점은 없었다. 그 조건마저 허풍이라면, 정말 미련없이 떠나리라. 좋은 경험은 개뿔, 개나 주라지.


「긍정적인 마인드에, 살짝 야망까지—. 자기 꽤 섹시하다.」


결국 또 B급 대화가 되어 버렸다. 언젠가 미련없이 떠날 때, 한층 더 미련없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의말

시연이가 콜센터에 문의한 시각 11시 34분 27초는 <나인스카이즈> 의 작품번호입니다.


http://novel.munpia.com/11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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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왜 국민정신건강진흥원인가 +5 18.04.10 647 12 7쪽
3 임무 +4 18.04.09 697 12 8쪽
2 인터뷰 +5 18.04.09 861 13 10쪽
1 메모 +8 18.04.09 1,191 1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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