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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쟁이(진)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 : 지금 이 경계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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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쟁이(진)
작품등록일 :
2018.12.13 14:36
최근연재일 :
2019.01.30 19:40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16,598
추천수 :
601
글자수 :
102,738

작성
18.12.22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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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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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 신입 (5)

DUMMY

“막냉아 나도 가야 돼? 누나 피곤한데.”

“예, 가야됩니다. 오늘 막내 장사 치르실 겁니까.”

“오 좋네. 간만에 육개장도 먹고.”

“부조장님 가실 땐 제가 손수 향 꼽아드리겠습니다.”


벌써부터 곡소리 내는 부조장님을 달래고 다음은 조장님인데··· 아직도 으르렁대고 있길래 나는 슬며시 중간에 끼어들었다.


“조장님 오늘 신작게임 나온다 하지 않았습니까? 얼른 끝내고 한판 돌리지 말입니다.”

“어 맞다. 건아 준비 다 했냐?”

“예, 다 했습니다.”

 

요컨대 체면이란 거다. 서로 자존심 때문에 저러는 거지 적당한 구실만 쥐어주면 알아서 물러났다. 그나저나 둘 다 프로필 나이는 서른 줄을 넘기면서 참 유치하시군요. 부팀장도 꽤나 애먹겠단 생각이 듭니다.

 

“막냉아 이번엔 어떤 놈이래?”

“겁나 큰 전갈이랍니다.”

 

나는 전달받은 자료를 짤막하게 간추렸다. 귀찮아서가 아니라 헛고생이라 그랬다. 마물에겐 정형화 된 형태가 있다지만 마수는 그 반대였다. 그간 누적된 데이터가 만만찮음에도 놈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출현했다.

 

그런 녀석을 단언해 위험을 자초하고 싶진 않았다. 눈에 보이는 집게발과 꼬리 외에도 숨겨둔 수가 있을 지도 몰랐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고, 또 배제할 수 없었다. 한 순간의 오판으로 이쪽의 모가지가 날아갈 수도 있었으니까.

 

“다 뒤졌어. 오늘은 내가 캐리한다. 오늘따라 신작겜 욕구가 뿜뿜하는군.”

 

그러니 제발 긴장 좀 해주십쇼. 이 사람들이랑 있으면 나만 까탈스러운 것 같잖아. 나는 툴툴대며 선행하는 조장을 쫓았다.

 

“식별했습니다. 전방 3km거리입니다.”


워낙 덩치가 있다 보니 마물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이었다. 전갈의 껍질이 달빛을 반사해 흉험하게 빛났다. 무턱대고 창칼로 후벼봤자 기스도 못내겠군.


“총원 전투배치.”

“전투배치.”


작전대로 현 위치에는 부조장님과 호위로 붙은 수색팀원만 남았다. 나와 조장님은 은밀하게 적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작은 기척에도 반응하는 녀석들이라 더디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기다시피해서 놈 바로 위 건물까지 다다르니 조장님이 작게 속삭였다. 준비해.


절로 칼을 쥔 손아귀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조장은 팔을 높이 들었다 이내 떨어뜨렸다. 전투 개시를 뜻하는 수신호, 맘의 준비는 아직 다 못했는데.


[인게이지!]


거침없으시군요. 별 수 없이 나도 조장을 따라 건물 아래로 뛰어내렸다.


크라라라라-!


그 즉시 놈이 우리를 감지하고 포효했다. 동시에 마수를 중심으로 거대한 마력의 유동이 느껴졌다. 처음부터 너무한 거 아니냐. 점차 형체를 갖춰가는 마법에, 몸 안의 마기가 마구 들끓어 올랐다. 나는 고삐를 느슨하게 풀었다.


차츰 농밀한 마력이 혈관으로 흘러들어왔다. 마치 범람하는 물길처럼, 거센 급류에 핏줄이 죄다 찢겨나갈 것만 같았다. 마력은 감춰둔 독니를 꺼내 몸 곳곳에 상흔을 새겨갔다. 심장이 고통에 헐떡댈수록 숙주의 침식도 ‘가속’화되기 때문이다.


나는 아득해 지려는 의식을 겨우 붙잡았다. 이것이 [시동]을 넘어선 [가속]의 단계. 비로소 완전한 전투태세가 갖춰졌다.


“회피기동!”


조장의 외침에 나는 재빨리 건물 벽을 박찼다. 찰나의 순간 놈의 사선에 있던 건물이 터져나갔다. 직격당한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콘크리트가 잘게 부서져 내린다. 공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연달아 퍼부어졌다.


콰앙-! 쾅-! 쾅! 터지는 폭음에 귀가 먹먹해질 즈음, 겨우 지상에 발이 닿았다.


“아따, 새끼 존나 지랄 맞네.”


조장이 나지막이 욕을 내뱉었다. 그러게 좀 번듯한 계획을 세우셨어야죠. 하마터면 공중에서 폭사할 뻔 했잖습니까. 나는 한숨을 쉬며 칼을 고쳐 잡았다.


방금 녀석이 구사한 공격은 ‘마법’이란 현상이었다. 마력을 체외에서 변환시킨 결과다. 위력은 보다시피.


“저 정도면 2계위정돈 되겠는데요?”


나는 콜록대며 콘크리트 잔해를 발로 찼다. 1계위만 해도 내장이 진탕되는데, 2계위에 맞았다간 시체도 못 찾을 거다.


“옵니다!”


나는 득달같이 달려드는 적들을 향해 우지를 갈겨댔다. 수색팀이 사용하는 총기에 비해 저저지력은 딸렸지만 그래도 이만한 게 없었다. 많이 쏘면 쟤들도 맥을 못 추거든. 그런데, 어째 탄이 안 나간다.


“엇, 기능고장입니다.”

“씨뻘.”


여태 멀쩡하던 게 하필 여기서. 한가롭게 총기 정비할 때가 아니었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마물이 흉악한 아가리를 벌려대고 있었다. 나는 급한 대로 우지를 그 안으로 던져버렸다. 돌멩이 대신인데··· 까드득, 강인한 턱에 의해 IMI UZI가 분쇄되는 게 느리게 재생된다.


나쁜 놈. 홧김에 아가리를 횡으로 찢어버렸다. 바야흐로 난전의 시작이었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덤벼든 마물의 목을 잘라냈다. 잇달아 덤벼드는 놈은 상체와 하체를 분리시키고, 다음은 그냥 멀찍이 걷어찼다. 조장님은 창을 크게 휘둘러 아예 뭉탱이로 적을 으깨버리고 있었다.


아무리 예기치 못한 상황이라지만 [가속]상태인 우리에게 마물은 적수가 되지 못했다. 마수라면 몰라도.


“이크!”


나는 전갈의 집게발을 피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미처 반응하지 못한 마물들은 줄줄이 벽에 대가리를 처박았다. 마법도 그러더니 팀킬까지 화끈하군.


놈이 본격적으로 나서려는 듯 집게발을 높게 쳐들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선택은 옳았다. 쿠웅! 땅을 후려친 여파가 건물의 유리창을 깨뜨렸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지면까지 흔들어댔다.


영악한 새끼. 잠시 비틀거리니 마수가 틈을 놓치지 않고 거리를 좁혀왔다. 왜 하필 나야, 조장님도 있는데!


키기기긱-!


나는 재빨리 칼을 비스듬히 들어 집게발을 흘려냈다. 빗겨나간 녀석의 팔은 그대로 아스팔트를 뚫어버렸다. 나는 한 10m쯤 밀려났는데 손아귀가 얼얼했다. 게다가 깁스를 푼 팔이 시큰한 게 아직 뼈가 덜 붙었나 보다.


아차, 한가롭게 감상을 늘어놓을 때가 아니지. 전갈은 꼬리까지 짓쳐 들고 마구 휘둘러댔다. 거기에 집게발도 한몫 보탰다. 발을 딛고 있던 아스팔트가 금세 벌집이 되어버렸다.


왠지, 나만 고생하는 거 같은데.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나?


눈짓하니 조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검에 마력을 담아서 녀석의 주둥이를 후려쳤다. 아까부터 말은 안했지만 너 입 냄새 나. 그러니까 좀 여물어라. 에잇, 한 방 더 갈겼다.


놀란 마수는 주춤하는 사이 나는 멀찍이 물러나 부조장님을 호출했다. 괴수의 어그로는 충분히 끌었으니 이제 제대로 된 딜이 들어갈 차례였다.


[한방 큰 걸로 부탁드립니다.]

[OK, 막냉아.]


콰아아아앙-!


별안간 커다란 폭발이 녀석의 등짝에 꽂혔다. 단단했던 외피가 부서지며 놈의 체액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3계위의 마법이 직격한 여파였다. 괴수가 마법을 사용한다면 우리라고 못할 것도 없었다.


우리 부조장님이 일을 안 해서 그렇지, 맘만 먹으면 이런 거 몇 방은 더 쏘아낼 수 있는 위인이었다. 그나저나 파괴력은 진짜 미쳤다. 나는 뺨에 묻은 체액을 닦았다.


[직격 확인. 후속타는 없어도 될 것 같습니다.]

[알았어. 얼른 정리해.]


끼이이에-


불의의 일격을 얻어맞은 전갈이 울부짖었다. 조직이 떨어져 나가 집게발을 축 늘어트린 처량한 모습이었다. 아직 숨이 붙어있지만 그도 시간문제였다. 나는 전갈을 편히 보내주고자 조장님을 찾았다.


“조장님 저 안전벨트 채웠습니다. 버스 태워주세요. 캐리한다면서요.”

“알았어. 앉아서 구경이나 해.”


밥상 다 차려놨더니 생색 부리는 거봐. 지금 킬딸 하시는 겁니다! 어쨌건 이대로 끝날 거 같으니 됐다. 우리의 임무는 마수급 개체의 사살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다.


던전 발생의 메커니즘은 미제라지만, 위상공간을 지탱하는 데인 마수가 필요하단 것만은 확실했다. 전투조는 그 기둥을 제거함으로써 던전의 붕괴를 촉발시키는 역할이었다. 여러번 말할 것 없이, 빨리 처리할수록 일찍 끝난다는 말이었다.


조기퇴근의 의욕을 불태우던 조장님은 마침내 전갈을 잘게 다져놓으셨다. 나는 총총걸음으로 가서 녀석의 사체에서 마석을 집어 들었다. 찐득한 체액이 길게 늘어졌다.


[수색팀, 여기는 전투조. 상황 종료됐습니다. 게이트 확보하는 대로 무전주세요. 이상.]

[전투조, 여기는 수색팀. 발견 즉시 연락하겠습니다. 이상.]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지만 나갈 때는 그 반대였다. 바깥으로 통하는 게이트는 특정 조건이 충족 되어야 생성되곤 했다. 가령 괴수의 전이준비가 갖춰졌다든지, 혹은 공간이 무너진다는 지. 현재 후자의 조건을 달성했으니 곧 수색팀에서 연락이 올 거다.


그 사이에 우리는 떨어져있던 부조장님과 합류했다. 부조장님은 처음 왔을 때처럼 뽀송뽀송한 상태였다.


“붙지 마요, 냄새나니까.”


더러운 게 묻을까, 부조장님이 손을 훠이훠이 저었다. 부럽다, 저 깔끔함. 이래서 다들 후위, 후위 하는 거다. 먼지에다 괴수 피까지 뒤집어 쓴 우리랑 너무 비교되잖아.


“오늘도 꿀 빠셨습니다. 부조장님.”

“꼬우면 너도 후위해.”


괜히 딴죽 걸었다가 되로 받았다.


같은 전투조이지만 전위와 후위의 업무강도는 극단적으로 갈렸다. 직무의 특성 탓이었다. 우리가 육박전을 감행하면서 괴수의 이목을 잡아두는 건, 후위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마력 역탐지를 방치하는 차원에서다.


대신에 후위는 강대한 마법을 사역해 임무 수행의 한 축을 담당했다. 일단 협업 관계긴 하지만 부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하고 싶다고 맘대로 포지션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애당초 나는 후위에 재능이 없어서 심사에 올라가지도 못했었다. 타고난 마력량이 적어, 내 한계는 3계위 마법 한두 번이 전부다.


푸념은 이쯤하고 상황도 종료 됐겠다, 긴장이 탁 풀렸다. 늘어지게 쉬고 싶다. 때마침 신호탄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생성된 게이트 앞에서 수색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종의 감사하다는 예우였다. 수색팀으론 마수를 감당할 수 없기에 우리의 실패는 곧 전멸을 의미했다. 즉, 전투조의 임무는 투입된 요원들의 목숨을 보장하는 것까지 아울렀다.


“고생하셨습니다.”

“오늘도 무탈하게 지나갔네요. 다음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사교성 부족한 선임을 대신해 살갑게 화답했다. 진짜 끝이다, 게이트로 걸어가려는데 누군가 내 옷깃을 잡아챘다. 뭐지? 나는 그 손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틀었다.


“저, 저흰 어떻게 되는 거에요?”


민간인이었다. 눈치를 보다가 만만한데 계급 높아 보이는 사람이라 붙잡은 건가. 꼭 이런 경우엔 나한테만 그러더라. 수색팀원이 떼어놓으려던 걸 손을 들어 말렸다. 남자란 모름지기 예쁜 여자한테 약한 법이지.


“다 잊고 일상으로 돌아갈 겁니다. 걱정 마세요.”


게이트를 지나며 민간인들은 자연히 오늘을 잊을 수 있다. 설령 어떤 일이 있던 간에 기억을 온존하는 건 감염자들의 몫이었다. 우리가 짊어져야 하는 무게란 그런 것이다.


“현 시각부로 미션 종료를 선언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우린 현실로 돌아왔다.


작가의말

이번 편은 의외로 잘 안써졌어요... 전투씬이 설정이랑 맞물려서 까다로웠네욤... 그래도 여러분들이 추천 많이 눌러주셔서 힘이 났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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