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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쟁이(진)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 : 지금 이 경계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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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쟁이(진)
작품등록일 :
2018.12.13 14:36
최근연재일 :
2019.01.30 19:40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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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17
추천수 :
601
글자수 :
102,738

작성
18.12.1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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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 신입 (2)

DUMMY

모든 요원은 훈련소에서 24주의 정규 교육을 이수하는 게 원칙이었다. 허나 차츰 괴수 출현빈도가 증가함에 따라 요원 양성에 지나치게 오랜 시간을 할애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래서 예외 조항으로 둔 것이 ‘현지입대’이라는 제도였다.


위수지역 방위에 현저한 위험이 감지되었을 때에 한해 신규 요원들을 즉각 투입한다는 요지였다. 간단히 말해 약식으로 교육을 마치고선 바로 현장에 집어 처넣는 정신 나간 정책이었다.


과거에도 종종 시행된 전례가 있었지만 미친 듯이 제로로 처박는 생존률에 곧 폐지되었다고 한다. 내가 굳이 이 말을 꺼내드는 건 그게 남의 얘기 아니기 때문이었다.


시발. 나도 제대로 교육도 못 받았는데.


“저, 뭘 하면 되는 거에요?”

“말투부터 바꾸라고. 다나 까만 쓰라 했지.”

“네.”

“뒤에 ‘알겠습니다’도 붙여. 끝말은 무조건 다나 까로 끝내야 된다고 했잖아!”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 너는 TV에서 군대 나오는 거 안 봤냐고 윽박지르니 집에 TV가 없어서 몰랐댄다. 교복도 물려 입은 것처럼 보이던데. 참, 처지가 딱했다.


“아, 아 안될까요? 아 아니, 안되겠, 습니까?”


게다가 더듬대며 부모님께 전화 하면 안 되겠냐 물어오는데, 좀처럼 안 된다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엄한 교관 흉내가 아니라 원칙이 그런 걸 어쩌겠냐. 군을 모방했다 하나, SDO는 엄연히 별개의 조직인 것을.


그걸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훈련만 이수하면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


결국 나는 거짓말을 꺼내들었다. 공교롭게도 선임이 했던 말을 똑같이 되풀이 했다. 속였다며 원망 많이 했었는데, 같은 입장이 되니 안하곤 못 베기겠다.


“정말··· 이에요?”

“그래. 그러니까 집중해. 네가 잘 할수록 더 빨리 끝나.”


나라고 좋아서 할까, 하지만 어쩌겠어.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너도 요원이 되어야 하는 걸.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죽는 것보다야 사는 게 낫지 않겠냐.


그러니 이젠 다희, 너도 알아야 했다. 우리가 감춰왔던 비밀, 우리가 숨어야 하는 이유를.


현대 병기가 통용되지 않는 적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비책, 동화同化를.


나는 이해를 돕고자 좀비에 빗댔다. 영화 속에서 좀비가 인간을 감염시키는 것처럼 괴수도 마찬가지였다. 놈의 바이러스, 마기는 인체 DNA 구조를 변형시키고 인간을 숙주로 삼았다. 요원은 그것을 사역해 마력으로 치환하는 자들을 뜻했다.


따라서 감염자가 괴수가 되느냐 혹은 요원이 되느냐의 차이는, 마기의 제어 여부에 달려 있었다. 이에 다희가 짧은 감상을 늘어놓았다.


“꼭 뱀파이어 같네요, 아니 같습니다.”

“됐다. 다른 사람 앞에서나 잘해.”


어차피 말투가 입에 익으려면 시간이 꽤 걸릴 거다. 닦달한다고 바로 교정될 것도 아니고. 다희의 통통 튀는 목소리는 한결 생기를 찾은 모습이었다. 다시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란 이토록 맹목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걸 밝히기는 일렀다.


“그럼 시작해보자. 억제(抑制)구 풀어봐.”


일반인이 첫 감염에서 감내할 수 있는 한도는 고작 10%, 신입은 그 두 배를 상회했다. 그럼에도 괴수로 전락하지 않았던 건, 어쩌면 녀석의 ‘항마력’이 뛰어나서 일지도 몰랐다. 확증이 필요해 마석을 채워뒀지만 곧 판별이 나겠지.


“이거 말이에요?”


다희가 펜던트를 쥐고 확답을 구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펜던트 중앙에 박힌 무채색의 알맹이, 저것이 마석이었다.


다른 말로는 코어라고도 했다. 딱딱한 고체 형태로 괴수의 심장이었다. 저 물질은 특이하게도 마기를 억제하는 형질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감염을 지연시키는 용도로 쓰이지만 정작 요원에겐 개목줄, 혹은 개목걸이 정도로 비하되곤 했다.


그렇지만 마석이 없다면 침식은 다시 시작된다. 그래서 지부장이 나를 붙여둔 거였다. 폭주하는 감염자를 감당할 수 있는 건 최하 사관급 부터니까.


그건 그렇고 너 너무 긴장 안 하는 거 아니냐. 대충 설명 들었으면 그게 뭔지 알 텐데. 확 벗어던지려던 걸 겨우 말렸다.


“야, 야. 천천히 풀어. 천천히.”

“어딜 만져요!”


펜던트 위치 상 가슴에 손을 댔는데 다희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방금 전까지 풀죽어 있던 얘 맞냐. 태세 전환이 우디르 급이네. 아무튼 사람 잘못 봤어. 만화에서나 보는 그런 물컹한 건 하나도 안 느껴졌거든. 물론 입 밖으로 냈다간 후환이 두려워서 꾹 눌러 담았다.


“맘 단단히 먹어, 까닥 잘못했다간 진짜 큰일 난다. 몸에 이상 있으면 즉시 보고하고.”


여기가 첫 단추를 꿰는 길목이었다. 제어를 두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요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런데, 기껏 일러뒀건만 손을 떼자마자 냅다 풀어버렸다. 미친년 패기보소.


“부모님 걱정하신단 말이에요. 여기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에요?”

“야, 야. 괜찮냐?”


나는 미심쩍은 눈으로 다희를 천천히 훑어 내렸다. 되려 뭘 잘못했냐는 양 눈을 치켜뜨는 게 한숨이 먼저 나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라더니, 그래도 뭔가 있긴 한가 보다. 침식당하는 통증은 참을 만한 게 아닐 텐데, 쟤는 너무 멀쩡하잖아. 너는 통각도 없냐?


“지금 성희롱 하시는 거에요?”


됐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못해도 여기서 며칠은 잡아먹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렸다. 예정엔 없었지만 다름 진도를 뺄까 싶어 나도 마석을 내려두었다. 현 페이스라면 금세 터득할 수 있을 거다.


“잘 봐, 이게 [시동]이다.”


마력을 사역하는 첫 단계, 시동. 그를 위해 나는 몸 안에 잠들어 있던 괴수를 깨웠다. 그 즉시 놈의 마기가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갔다. 육신을 잠식당하는 불쾌한 감각, 수반하는 아릿한 통증 이상의 고양감. 헐떡이는 심장의 거친 펌프질에 핏줄이 바짝 도드라졌다.


꼭 취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감았던 눈을 뜨고 신입을 마주 봤다.


“눈이··· 다르네요. 구해주셨던 분은 한쪽만 그러던데.”

“사관 급이라 그래. 감염치가 높아지면 양쪽 눈이 다 물들거든.”


호박색으로 바뀐 눈동자가 거울에 선명히 비춰졌다. 세로로 쪼개진 동공까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양새였다. 변이된 신체는 괴수의 힘을 끌어다 쓴 반작용이다. 견학은 이쯤하고 나는 다희를 재촉했다.


“자 너도 해봐.”


감염에 저항하는 게 힘들지. 그에 반해 시동의 난이도는 훨씬 쉬운 편이었다. 몸은 제 안에 침투하는 이질감을 쉽게 감지해내니까 길만 터주면 상태는 알아서 변환됐다.


헌데 어째 설명을 해줘도 못 알아먹는 눈치다. 눈을 감고 끙끙대는 꼬라지가 영 시원찮았다.


“야 뭐하냐. 자는 거 아니지?”

“아 쫌. 가만있어 봐요. 집중하잖아요!”


예민한 거 보소, 누가 십대 아니랄까봐. 어차피 위험한 구간도 넘겼겠다, 한결 긴장을 풀고 여유롭게 지켜봤다. 이렇게 보니 진짜 어리긴 하구나. 딱 봐도 앳된 이목구비는 그 나이대 소녀의 것이었다. 여리여리한 몸집에다 키는 겨우 가슴팍에나 올까.


그래서 자꾸 눈에 밟히는 거 같다.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아서. 저런 아이가 흉포한 괴수와 맞서 싸울 수 있을까.


“어때요? 눈 변했어요?”


녀석이 호들갑 떨며 순진한 검은 눈동자를 깜빡였다. 나는 속내를 들킬까, 손가락으로 녀셕의 이마를 밀어냈다.


“택도 없다. 다시 해.”

“아, 이번엔 될 거 같았는데!”


녀석이 헤매는 건, 낯선 감각 탓이었다. 도와줄 수야 있지만 나는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이만해도 충분히 빠른 적응력이었다. 등 떠밀어봤자 제 목숨만 깎아먹을 게 뻔했다.


“지금은요?”


안 되는 거 붙잡지 말라고 하니 다희가 빼애액 거렸다. 거 참. 훈련생 열의가 참 대다나시군요. 피곤하게 시리. 그렇다고 가만 나두자니 벌써 두 시간이 넘도록 저러고 있었다. 교관 한다고 추가수당이 붙는 것도 아니니까 좀 봐주라. 결제는 일시불로 끝났다구.


“그만하고 따라와.”


슬슬 해가 지려고 했다. 작전 나가기 전에 알려줄 것도 있고 해서 팔을 잡고 강제로 끌어내렸다. 야 임마. 나도 바쁘다고. 좀 들어 처먹어라.


“우와, 진짜 혼자 써도 돼요?”


얘는 변덕이 왜 이렇게 심해. 싫다고 뻐팅길 땐 언제고 금세 풀어져서 헤헤 거리고 말야. 다희는 현관에서 기웃거리다가 냅다 침대 위로 뛰어들었다. 그리곤 꺄아아아앟, 새된 소리를 내며 베개에 얼굴을 비비댔다.


“요원이 마냥 나쁜 것도 아니네요. 내 방 갖는 게 소원이었는데, 집까지 주고.”


여기가 녀석이 지낼 숙소였다. 주방부터 욕실까지 고루 갖춘 풀옵션 오피스텔. 창밖으론 도심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와 조망도 괜찮은 편이긴 한데. 저렇게 좋아하는 게 며칠이나 갈런가 싶다.


제 맘대로 산책도 못 가게 하질 않나, 사사건건 걸고넘어지질 않나. 창살만 없다 뿐이지 감옥이랑 다를 게 뭐냐. 차라리 남의 집 애완견이 우리보다 형편이 낫지 않나 싶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나는 입막음 삼아 피복류를 녀석에게 건넸다.


지부에선 요원에게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했다. 집도 줘, 옷도 줘, 밥도 줘, 살려줘. 끝에 이상한 말이 들어간 건 전적으로 기분 탓이다. 아무튼 신입이 왔단 소식에 병참부에서 보급품을 내줬다. 이 옷은 그 중 하나였다.


“집 구경은 이따 하고 옷부터 갈아입어. 교복은 나한테 주고.”


딱지 생긴 옷을 입혀두긴 그래서 손수 가져다 준 건데. 근데 왜 또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냐.


“교복, 이요? 설마 했는데 완전···”

“피 묻어서 입지도 못하잖아. 가는 길에 갖다 버리게 얼른 내놔.”


기껏 호의를 베풀면 곡해하지 좀 말아라. C컵 이하는 여자로 안본다고, 했다간 맞겠지? 적당히 둘러대자 잠시 고민하던 다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냥 갖고 있으면 안 돼요?”


어, 안 돼. 단칼에 잘라낼까 하다가 말았다. 다 헤진 옷이라지만 나름 의미가 있겠지. 그 정도 이해해줄 융통성은 있었다. 어차피 혈액이 전염성을 갖는 건 응고되기 전이니 큰 문제는 없을 거다.


“맘대로 해. 나는 가볼 테니까 시간 되면 저녁 먹고.”

“같이 먹는 거 아니었어요? 저 식당 어디 있는 지도 모르는데.”


어, 그도 그렇겠네. 시간이 빡빡하니 데려다만 줘야겠다. 나는 얼른 갈아입으라 해두고 복도로 나왔다.


“어라, 서 중위님 아니십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제일 마주치기 싫은 사람과 맞닥뜨려 버렸다. 누가 소설 아니랄까봐, 타이밍 지리네.


작가의말

날이 많이 춥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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