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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야지 님의 서재입니다.

네크로맨서, 선협에 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초야지
작품등록일 :
2024.03.16 13:15
최근연재일 :
2024.03.28 21:37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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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7,149

작성
24.03.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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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0.

DUMMY

관중들이 모두 위지천을 바라본다.


그들은 위지천에게 나름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어찌됐든, 진중권을 맨 몸으로 이긴 사내가 흥미로운 것이다.


물론 백리성이나, 기천상, 엽풍지 같은 인물에 비하면 위지천은 관중들 입장에서,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이 관중들의 숫자는 적었다.


‘그래. 계속 그렇게 생각해라.’


자신을 마치 동물원의 짐승처럼 바라보는 그 모습에, 위지천은 속으로 비웃음을 삼켰다.


혈굴을 모두 점령하고 나면, 적씨세가를 향한 첫 번째 공격은 바로 이 투기장에서 시작됄테니까.


“적씨세가 여러분.”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저 여인을 이겨야 할 것이다. 오색빛의 후광을 쓴 여인. 마치 선녀처럼 보이지만 그 붉은 눈동자는 이미 광기에 물들어 있다.


이름조차 모르는 여인이지만, 위지천은 적화성 따위보다 저 여인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 시작할까요.”


여인은 여느때처럼 웃으며 관중들에게 속삭이고, 관중들은 환호한다.


반대편에서는 한 여인이 비척거리면서 걸어나오고 있었다.


쾡한 눈동자, 말라비틀어진 볼살. 위지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여인이 어찌 투기장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방심하지 않는다. 옥간이 보여준 글자는 분명 ‘적성귀’라는 글자였다.


적화성은 말했다. 그녀가 특이 체질이라고.


‘그러니 이런 투기장에 있는 것이겠지.’


적화성은 말없이 풍백선을 꺼내들었다.


“응?”

“오오.”


풍백선을 알아본 몇몇 관중들이 흥미로운 눈길로 위지천을 바라보았다.


진중권을 죽이고 제법 시간이 흘렀다. 위지천의 변화에 관중들은 그런 사연이 있겠거니 짐작하면서도 호기심을 접지 못한 체, 위지천을 훑었다.


“다···당신.”


적성귀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도, 도망치세요.”


그 갸냘픈 음성에 순간 위지천이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지?”


적성귀가 몸을 파르르 떨며 양 팔로 자신을 감싸안았다.


“저···저는, 괴물이에요. 당신, 곱게 살고 싶으면 도망치는 게 좋다구요.”

“······.”

“저, 저 수도자라는 놈들이.”


적성귀는 공포에 질린 얼굴이었다.


“무언가를 몸에 심어 놨어요. 무···무슨 뜻인지 아시죠?”

“······.”

“도···도망치라구요.”


여인은 어딘가 애처로워보였다. 그녀가 힘겹게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어차피, 당신은 죽을테니까.”

“······.”


그러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홀로 누군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자세히 들어보니 자식의 이름인 듯했다.


“아가···. 내가 널 보러 가야하는데.”


진중권처럼 위지천을 방심하기 위한 수단일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여인은 진심이었다. 그녀는 몸을 한껏 움츠린 체 뒷걸음질 치며 위지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괴물로 내가 널 보러 갈 수 있을까.”


두 사람이 말없이 대치하자, 관중석 이곳저곳에서 불만 어린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뭣들 하는거야? 빨리 싸우지 않고.”

“쯧! 시간만 낭비했군.”


이래나 저래나, 위지천은 지금 이 관중들을 만족 시켜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어쩌다 자신의 처지가 이리 됐단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어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위지천은 관중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곱씹으면서 기억하고, 다시 시선을 적성귀에게 돌렸다.


“뭐가 됐든.”

“······.”

“난 살아남을 것이다.”


위지천이 풍백선을 꺼내들었다.


사아아-.


법력을 불어넣자, 죽음의 기운이 그대로 풍백선 끝에 맴돌았다. 얼어붙는 한기. 마치 무덤가에서 느껴지는 한기가 투기장을 천천히 잠식하기 시작했다.


풍신장악공이 사기(死氣)를 듬뿍 머금으면서 생긴 변화였다.  위지천이 불러들이는 바람은 평범한 바람이 아니었다.


마치 심연에서 기어올라오는 듯한 차가움을 머금고 있는 바람이 천천히 풍백선 끝에 맴돌더니···.


쐐애애앵!

 

위지천이 풍백선을 휘두르자 바람이 칼날 형태로 그대로 적성귀를 향해 날라갔다. 바람 특유의 절삭력과, 기이한 한기가 혼합돼 맞는 것만으로 얼어붙고 절단할 터이다.

 

흡족한 결과였다. 예상대로, 법기를 다루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전생에 수많은 아티팩트를 다루어낸 경험이 있었으니까.

 

“히···히익!”

 

그 자체만으로 끔찍한 사기를 머금은 칼날이 적성귀에게 닿자, 적성귀가 깜짝 놀라 웅크렸다.

 

콰아아아앙!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여인의 비명 소리가 들린다. 위지천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보낸 풍인(風刃)을 맞았다면 적어도 살갗이 베이는 소리나, 피가 뿜어져 나와야 했다.

 

하지만 예상 외의 모습이 드러났다.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마치 살점을 꼬아 만든 듯한 붉은 팔뚝이었다.

 

‘뭐냐. 저건.’

 

위지천은 잠시 심호흡을 한 후, 다시 풍백선을 휘둘렀다.

 

쐐애액! 쐐애애액!

 

풍신장악공에 호응하여 풍백선이 풍인을 몇 차례 쏘아냈다.

 

‘이런 느낌인가.’

 

법기를 다루는 데 제법 감을 익힌 위지천이 다시 법력을 끌어올릴 때···.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적성귀의 팔뚝에서 입이 튀어나오더니 기괴한 비명을 질렀다. 

 

“······!”

 

그와 동시에 팔뚝이 그대로 땅에 뿌리처럼 깊게 박히더니 이내 온갖 번쩍임과 함께 요사스러운 해골들을 법력 형태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해골들이 딸그락 딸그락 거리는 웃음 소리를 내며 위지천을 향해 쇄도했다.

 

갑작스러운 마도법술에 위지천의 안색이 구겨졌다. 황급히 혈비순을 꺼내들고 법력을 불어넣자, 혈비순에서 요사스러운 안개가 새어나왔다.

 

콰과아아앙!

 

해골과 혈비순이 부딫히며 한 차례 투기장이 흔들렸다. 

 

“제발, 도망쳐요. 도망치라고!”

 

적성귀의 애타는 목소리가 들린다. 요사스러운 안개가 더욱 자욱하게 퍼져나간다.

 

위지천은 풍백선 대신 혈목수를 꺼내들고 정신을 집중했다.

 

쉬이이이익!

 

혈목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적성귀의 심장부를 노렸다. 

 

쿵!

 

결과는 참담했다. 가까스로 닿았던 혈목수가, 무언가 기이한 힘에 튕겨져 나간 것이다.

 

‘혈목수를 튕겨낼 정도라고?’

 

날카로움이 범상치 않은 법기이건만, 그걸 튕겨냈다는 건 상대방의 방어력이 만만치 않다는 소리.

 

위지천은 안개 사이로 번뜩이는 적성귀의 모습을 관찰했다.

 

적성귀의 팔 한쪽이 붉은 살점으로 뒤덮여 나무처럼 뿌리 깊게 박혀 있다.

 

그녀의 머리에는 팔괘, 태극, 알 수 없는 언어들이 박혀 기이한 붉은 빛을 내고 있었으며, 자세히 보니 등 뒤에 부적 여러 개가 팔락이는 것이 보였다.

 

“도대체 뭐냐. 넌.”

 

요수도 아니고, 수도자도 아닌 그 모습에 위지천이 어처구니가 없어 물었다.

 

적성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몰라요. 혈령비령술의 실험체로 알맞다면서 절 이런 몸으로 만들었어요.”

 

이제껏 잠잠했던 막리소가 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혈령비령술. 적씨세가의 유명한 마도공법입니다. 저 여인, 얼마 못 살겠네요.]

 

마도공법이란 저런 것인가?

자신도 죽음을 다루는 네크로맨서였지만, 저렇게 살아있는 생물을 가혹한 실험체로 만들지는 않는다.

 

[술법의 대상자는, 피와 살점을 마구 흡수하다가 이내 그대로 괴물이 되어 적씨세가의 훌륭한 사역마가 돼는 비술입니다.]

 

“······.”

 

[지독한···.]

 

위지천은 한숨을 내쉬었다. 수도자가 모두 이런 것은 아니리라. 오만한 기천상도 있었고, 약같은 푼수 같은 막리소도 있었고, 순수하지만 멍청한 엽풍지도 있었다.

 

다만 위지천이 생각하기에, 이 적씨세가라는 놈들은 근본적으로 어딘가 비틀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지천은 맨 처음 혈굴에서 영상을 봤을 때를 떠올렸다.

 

 - 우리 적씨세가는 시조인 적무진을 본받들어 생명을 연구하고, 탐하고, 본질을 궁구하는 유사깊은 가문.


오색빛의 여인이 내뱉던 말이다.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적무진이라는 놈이 단단히 미친 놈인건 알 수 있었다.

 

‘슬슬 때가 됐는데.’

 

위지천은 혈비순의 안개가 그윽히 퍼져나가길 기다렸다. 적성귀는 그저 홀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바닥을 보고 있었다.

 

대게 그 내용이란,

 

“우리 아가. 어떻게. 보고 싶어.”

“여보, 보고 싶어요. 제가 왜 이런 곳에. 저는 그저 당신의 말대로 했을 뿐인데.”

 

후회로 뒤범벅되어버린 내용이었다.

 

혈비순의 안개가 더욱 짙어지자, 여인의 눈빛이 몽롱해졌다.

 

‘지금인가.’

 

위지천은 다시 혈목수에 의식을 연결하여, 법력을 불어넣었다. 혈목수가 섬광처럼 그대로 적성귀의 이마에 꽂히려던 찰나.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다시 한 번 귀곡성이 터져나오며 혈목수가 튕겨져 나갔다. 위지천의 안색이 굳어졌다. 무엇인가 심상치 않기 때문.

 

“왜, 왜 그랬어. 왜 나한테 왜 그랬어어어어어!”

 

적성귀가 이성을 잃고 날뛰기 시작했다.

 

‘안개가 소용 없어?’

 

혈비순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다만 애초에 혈비순은 마도가문의 법기답게, 적성귀처럼 마도공법에 영향을 받은 자에게는 별 다른 효과가 없던 것이다.

 

위지천이 있는 힘껏 풍백선을 아래로 내리치며, 풍신장악공을 운용했다.

 

곧 풍신장악공의 법력에 따라 위지천의 몸이 바람처럼 가벼워지며 위로 튕겨져 나갔다.

 

의지를 잃고 폭주한 적성귀는 말 그대로 사방팔방으로 기이한 법술을 쏟아내고 있는 상태.

 

살점과 뼈로 엮인 가시들이 투기장을 휘젓고, 적성귀의 등에서 촉수가 솟아나 뱀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후우.”

 

허공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며 위지천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혈비순도 먹히지 않고, 혈목수도 먹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찌해야할까.

 

위지천은 잠시 관중석을 둘러보았다. 모두 적성귀를 보며 깔깔 비웃고 있는 상태.

 

“······.”

 

다행히 오색 후광의 여인은 지금 이 자리에 없다. 그녀는 늘 싸움이 시작할 때와 끝날 때를 제외하고는 모습을 감추었으니까.

 

그렇다면, 위지천이 무슨 짓을 해도 눈치챌만한 녀석은 없다는 뜻.

 

위지천이 허공에서 있는 힘껏 풍백선을 휘둘렀다. 풍신장악공은 바람을 다루는 공법이다.

 

거대한 돌풍이 그대로 투기장 바닥에 몰아치며 흙먼지를 자아냈다. 싸늘한 한기가 퍼져나가고, 어디선가 시체 썩은 내가 불길하게 코끝을 간질였다.

 

‘아직 끝이 아니다.’

 

허공에 낙하하면서, 위지천은 혈비순에 법력을 불어넣었다.

 

퍼엉!

 

상서롭게 보이는 방패에서 짙은 피안개가 뿜어져 나오며 투기장을 감싸안았다.

 

촉수와 살점, 흙먼지, 피안개로 적성귀의 모습은 물론이요, 투기장의 바닥조차 제대로 안보이는 상황.

 

‘이 정도면 됐군.’

 

판이 만들어졌다 생각한 위지천이 조용히 충실한 자신의 종에게 명령했다.

 

“내게 오라.”

 

그림자를 매개로 수많은 사역마들이 소환됐다.

 

단약방에 있던 시체들, 관리인, 마선, 벌레, 지네, 쥐떼, 온갖 들짐승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들은 소리도 없이, 기척도 없이 투기자에 순식간에 나타났다.

 

그 모두가 위지천의 충실한 사역마들이었다. 아직 생전의 모습을 벗지 못한 썩은 시체들이 눈을 검게 빛내며 주인의 명을 기다렸다.

 

망자의 주인이 명하노니.

 

‘죽여라.’

 

어둠이 적성귀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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