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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야지 님의 서재입니다.

네크로맨서, 선협에 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초야지
작품등록일 :
2024.03.16 13:15
최근연재일 :
2024.03.28 21:37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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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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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글자수 :
67,149

작성
24.03.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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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5.

DUMMY

싸움이 끝나고, 위지천은 다시 붉은 빛과 함께 감옥으로 돌아왔다. 진중권의 독이 위지천을 잠식해가고 있었다.


“너, 괜찮···.”


백리성이 황급히 다가왔지만, 위지천은 그를 무시하고 눈을 감고 호흡을 시작했다.


미약한 마력이지만, 적어도 독을 밀어내는 건 가능할 것이다.


“···후우.”


한 시진 정도 지났을까.


마나를 빠르게 흡수하는 위지천의 신체 덕분에, 어렵지 않게 독을 배출할 수 있었다.


조잡한 잡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백리성은 그런 위지천을 보면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너도 무언가를 익혔구나.”

“······.”


위지천은 대꾸하지 않았다. 자신이 전생에 어떻고 이렇고, 그런 사소한 이야기를 굳이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 더 이상 묻지 않으마.”


​백리성은 위지천이 무언가 수를 숨기고 있겠거니 짐작만 할 뿐이었다.


위지천이 화제를 돌렸다.


“혹시 진중권을 알고 있나? 무공을 사용하는 것 같던데.”


백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무림인이니, 백리성이 진중권을 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전형적인 시정잡배 흑도지. 한 남자의 아내를 눈앞에서 강간하다가, 무림 공적으로 공인됀 놈이다. 속임수에 능하고 속이 능구렁이 같은 놈이야.”


백리성은 혀를 차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언제고 내 손으로 죽이려고 했는데, 네가 대신 죽여주었구나. 고맙다.”


그러며 정중하게 포권을 하는 백리성의 모습에 위지천은 내심 놀랐다.


사실 생사를 오가는 싸움이었기에 누구라도 진중권을 죽였을 것이다.


헌데 그걸 고맙다고 말하는 백리성의 눈빛과 태도에서, 위지천은 이 자가 첫인상과 다르게 상당히 정의로운 인물이라는 것을 느꼈다.


본래 위지천의 기억을 빌리자면, 고집스럽게 협의를 추구하는 사내랄까.


위지천은 이런 자들을 백도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벅저벅.


또다시 인기척이 들려왔다. 백리성과 위지천은 이제 그 인기척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적화성이었다.


적화성은 매우 흥미로운 눈빛으로 위지천을 훑고 있었다. 투기장에서 위지천의 행보가 예상 외었기 때문.


“흠.”


그로서는 갑자기 나타난 마군과 마종, 그 쥐 두 마리가 위지천을 매우 충실하게 도운 것으로 보였다.


그건 대부분의 수도자 눈에도 그리 보였을 것이다. 다만 위지천이 그저 이상한 법술을 부리겠거니 하고 넘어갔을 테지만.


적화성은 달랐다.


다만 그는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어도 구태여 티 내지 않고, 오히려 밝은 미소를 지으며 위지천을 칭찬했다.


“대단하군. 대단해. 약속대로 법기 세 개는 모두 네가 가져가거라.”


적화성이 수결을 맺자, 허공에 단검, 부채, 방패가 펼쳐지며 영롱한 붉은 빛을 뽐냈다.


적화성이 미소를 지었다.


“뭐, 누구나 비장의 수 한두 개는 가지고 있는 법이지.”


위지천은 쓸데없이 대꾸하지 않기로 했다. 이들이 마력에 대해 알아봤자 좋을 게 없을 테니까.


그는 재빠르게 법기 세 개를 집어 들었다. 적화성이 친절히 법기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첫 번째 법기는 혈목수(血木手)다. 피와 생명을 흡수하는 혈목으로 만들어진 단검이지. 단검이지만 그 날카로움이 가히 천하의 기물과 같다. 법력을 불어넣으면 비검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게다.”


“두 번째 법기는 혈비순(血碑盾)이다. 언뜻 상서롭게 보이지만 법력을 불어넣는 순간 상대방을 현혹하는 피안개를 뿌릴 수 있지. 물론 방어력도 뛰어나다.”


“세 번째 법기는 풍백선(風白煽)이다. 부채짓 한 번으로 바람을 일으킨다고 전해지는 것이며, 막리소의 유품이라 할 수 있겠지.”


적화성이 손을 펼쳐 미소를 가득 머금었다.


“자. 모두 네 것이다.”


위지천은 말없이 그 법기들을 모두 손에 쥐었다. 한 손에는 단검과 부채를 동시에 꼬나쥐고, 한 손에는 자그마한 방패를 든 모습이 살짝 모양새가 빠져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적화성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이거라도 가져라.”


적화성이 건넨 것은 자그마한 주머니였다. 위지천은 적화성의 비웃음에 굴욕을 느꼈지만 구태여 티 내지 않았다. 어차피 이놈들을 모두 죽여버릴 생각이기 때문.


살심을 조용히 숨기고, 적화성이 건넨 주머니를 말없이 받아들였다.


“저물대라는 것이다. 진귀한 영초, 영석, 온갖 법기들을 그곳에 담을 수 있지. 피가 흐르는 생물은 담을 수 없다.”


세 가지 법기를 모두 저물대에 입구에 갖다 대자, 순식간에 법기가 입구로 빨려 들어갔다.


다시 위지천이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부채를 생각하고 손을 빼내자, 그의 손에 부채가 들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공간 같은 것인가.’


전생에 마법이 부여됀 아티팩트를 경험해본 적이 있는 위지천이었기에, 그는 빠르게 이 신기한 물품에 적응할 수 있었다.


위지천은 적화성이 자신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것이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


적화성이 돌아가자, 백리성이 황급히 다가와 저물대와 법기들을 노려보았다.


“조심해라. 수도자 놈들은 속이 시커먼 놈들뿐이야.”


위지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리성의 말대로 멍청하게 호의를 믿을 생각은 없었다.


끼릭. 끼릭.


감옥 저편에서 배식을 실은 수레바퀴 소리가 들려왔다. 꾀죄죄하고 무심한 눈동자를 한 사내가 감옥 안으로 몇 가지 음식을 툭 던져주었다.


“먹어라.”


말을 끝마친 사내가 다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런 감옥 안에서 밥은 늘 반가운 존재였다. 위지천과 백리성은 군말 없이 음식을 입에 집어넣었다.


음식이 입에 들어가자,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위지천이 물었다.


“무림에서 제법 이름을 날린 절대고수 아닌가?”


이어받은 ‘본래’ 위지천의 기억 속에서도, 검성 백리성 하면 무림의 절대고수 중 한 명이었다. 평범한 객잔에서 일하던 점소이가 알고 있던 정도면, 제법 이름을 날렸을 터이다.


“절대고수는 무슨.”


백리성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입에 음식을 욱여넣었다.


“난 그저 애송이에 불과했어.”


보아하니 백리성은 수도자들의 강함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지, 자조적인 태도를 늘 고수하고 있었다. 아마 이곳에 끌려오면서 많은 모욕을 당한 듯싶었다.


위지천은 그에게 한 마디를 툭 던졌다.


“그래봤자 다 같은 사람이다.”


그 말에 백리성이 눈을 끔뻑이며 위지천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은 수도자들이 두렵지 않단 말인가? 그저 다 같은 사람이라니?


의문을 아는지 모르는지, 위지천이 확고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죽음은 평등하다.”


검 한 번 잡아볼 것 같지도 않게 생긴 사내가 그런 말을 내뱉으니, 우습게 보일 법도 하지만 어쩐지 그 말이 진중하게 다가왔다.


죽음은 모두 평등하다라.


마치 수많은 죽음을 겪어본 자가 내뱉은 말처럼 들려왔다.


“그래. 그렇지.”


백리성은 말없이 공감하며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고 또 퍽 우스웠기 때문.


무공이 어떻고, 수선이 어떻고. 


검성이라는 별호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없이 식사를 마친 백리성이 조용히 말했다.


“다음번에 내 차례가 온다면···.”

“······.”

“그 말을 똑똑히 기억하마.”


각오를 다진 무인의 눈빛이었다.


***


다시 밤이 찾아왔다.


어슴푸레 감옥의 쇠창살 사이로 달빛이 내려앉는 이 시간이, 위지천에게는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다.


진중권에게 심어놓은 마력에 의식을 집중한다. 곧 [사령]됀 영혼이 꿈틀거리며 반응하고, 진중권의 시야가 위지천에게 전해진다.


진중권은 어디 쓰레기 소각장 같은 곳에 처참히 내팽개쳐져 있는 듯했다. 주변에는 진중권뿐만 아니라, 시체 여러 구가 마치 산처럼 쌓여 있었다.


‘일어나라.’


[사령].


죽은 자를 다루는 마법.


시쳇더미 속에서, 진중권이었던 것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직 살점은 덜 부패했고, 뼈도 그대로다.


‘너의 이름은, 이제부터 마선(魔善)이다.’


생전의 이름을 잊어버린 마선이 낮게 울음을 내뱉었다.


위지천은 마선의 시야를 통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투기장에서 패배한 시체 더미가 잔뜩 있었다.


팔이 잘린 시체, 다리가 잘린 시체, 머리만 남은 시체도 있었고, 남녀노소 말할 것 없이 각종 인간 군상의 시체가 모여 있었다. 위지천에게는 보물 창고나 다름없었다.



‘이곳이군.’


막리소의 말에 따르면, 투기장에서 패배한 자들은 모두 단약으로 만든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 시체를 보관하는 곳이 바로 진중권이 누워있는 곳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선을 움직여 살짝 문밖으로 나서자, 문 위에 ‘단약방(丹藥房)’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곳이면 관리자가 있을 터.’


그는 우선 마선을 움직여 그 시쳇더미를 빠져나와, 구덩이를 파라고 명령했다. 행여나 누군가를 마주칠세라 매우 은밀하게 마선을 움직여야만 했다.


상당한 정신력을 쏟은 후에야, 위지천은 마선을 파묻을만한 구덩이를 만들 수 있었다.


마선은 그 구덩이 속으로 몸을 뉘고, 제 손으로 다시 흙을 덮었다. 이제 한동안 마선을 들킬 일은 없을 것이다.


‘···어디 보자.’


며칠간 마종과 마군을 통해 파악한 지하의 구조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광활했다.


투기장의 참가자들을 가둔 감옥들이 여러 개 있었고, 배식 등 물자가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지상으로 몇 개 연결된 것 같았다.


마선이 있는 단약방은 감옥보다 더 깊숙한 지하에 있는 듯했다.


문제는 투기장이었다.


아무리 뒤져도 투기장은 보이지 않았다.


위지천은 결국 저 팔괘로가 어딘가 멀리 있는 투기장과 연결된 유일한 통로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이런 지하 감옥이 몇 개는 더 있을 수 있다는 건데.’


막리소는 이 지하 감옥을 일컫어 혈굴이라고 했다. 혈굴은 여러 개 있을 것이다.


낱낱이 탐색했지만, 엽풍지의 모습은 한 번도 목격해본 적이 없기 때문.


그렇다면 녀석은 다른 혈굴에서 투기장으로 소환됐을 확률이 높다.


‘음.’


생각보다 적씨세가의 규모가 컸다. 


‘천천히.’


서두르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위지천은 적씨세가의 규모가 얼마나 크든 간에, 천천히 깡그리, 녀석들의 숨통을 조일 생각이었다.


복수와 살인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차곡차곡 힘을 쌓고, 기회가 왔을 때 단숨에 등에 칼을 꽂는 것이다.


위지천은 한계까지 마력을 넓혔다. 사역마의 숫자는 많을수록 좋으니, [사령]을 할 수 있는 다른 개체를 찾을 생각이었다.


‘아.’


곧 얼마 안 가 쓸모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그건 지네였다. 독을 품은 지네.


벌레는 생물보다 사역하기가 쉽고, 현재 미약한 마력으로도 사역이 가능할 것이다.


사체의 지네에 마력을 불어넣자, 녀석이 곧 빠릿빠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이 지네를 가지고, 혈굴에 있는 모든 벌레를 죽이면서 [사령]해갈 생각이었다.


적화성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혈굴에서 은밀하게 위지천의 세력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사령]을 끝마친 위지천은 눈을 떴다.


이제 법기들을 확인할 차례였다.


위지천은 저물대에 손을 집어넣고 가장 먼저 혈목수를 꺼내 들었다.


기이한 단검이었다. 붉은빛으로 영롱하게 빛나는데, 멀리서 보면 마치 핏물을 손에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혈목수를 들고 감옥의 벽에 꽂아 넣으니 마치 두부에 꽂아 넣은 것처럼 스르륵 벽에 꽂혔다. 과연 설명대로 날카로움이 천하의 기물이었다. 법력이 없어도 충분히 훌륭한 단검이다. 


혹시나 해 위지천은 혈목수로 벽을 이리저리 파내보려고 했지만, 곧이어 강렬한 번갯불과 함께 벽이 다시 재생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쉽게는 안됀다는거지.’


위지천이 혈목수에 흑마력을 불어넣자, 혈목수가 꿈틀거리더니 순식간에 허공에 떠올랐다.


‘역시나.’


위지천의 예상대로 수도자들의 법력과 위지천의 마력은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방식의 차이일뿐.


결국은 같은 마력이다.


법기(法器)를 다루는 데 위지천 또한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비슷한 속성의 법기면 내가 더 잘 다룰 수 있겠지.’


이렇게 넓은 세계라면, 위지천과 비슷한 죽음의 기운을 띈 법기 또한 있으리라.


위지천은 새로운 사실을 되새기면서, 다음으로 혈비순을 꺼내 들었다.


마력을 불어넣자 혈비순에서 붉은 안개가 퍼져나갔다. 행여나 백리성에게 영향이 가면 귀찮아질 수도 있기 때문에 황급히 마력을 회수했다.


마지막으로 꺼내 든 것은 풍백선이었다.


기다란 백색의 깃털로 촘촘히 이루어진 풍백선은, 엽풍지에게 삼켜진 막리소의 유품이었다.


딱히 그녀와 접점도 없었고, 짧은 시간이었기에 위지천은 구태여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다만 막리소 또한 제법 상당한 수도자라고 본인 입으로 말한 것을 고려할 때, 엽풍지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엽풍지를 어떻게 상대할지 촘촘히 전략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위지천은 풍백선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이 신기한 물품을 관찰했다.


곧 마력을 아주 미세하게 불어넣자, 풍백선의 주변에 바람이 맴도는 것이 느껴졌다.


몇 번 훑어보며 사용법을 익힌 위지천은 다시 풍백선을 저물대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그때.


[얘. 뭐야. 너. 범인이 아니었어?]


풍백선에서 막리소의 음성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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