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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k3698_angelli9 434 님의 서재입니다.

최약체 헌터, 귀농합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limkun
작품등록일 :
2024.03.17 13:04
최근연재일 :
2024.03.27 00:05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10,167
추천수 :
173
글자수 :
83,364

작성
24.03.22 06:15
조회
630
추천
10
글자
12쪽

9화

DUMMY

작은 텃밭을 가득 채우고 있는 초록의 물결.

탐스럽게 열린 과실들과, 그 사이를 누비고 있는 반투명 땅의 정령들.

먹음직스럽게 달려있는 과실 하나를 툭 따서 입에 넣으면 천상의 맛과 함께 힘이 솟아오르기 시작하고.....





뭐, 이런 것을 바라고 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아니, 그런일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

내가 예상했던 것은 어제와 별반 다름없는.

아니, 솔직히 모종을 심은 것이니까 어제보다는 아주 조금은 자라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는 하고 있었지 사실.

그런데... 이게 뭐냐고.

이건 다른 의미로 너무 현실적이지 않은데.

나는 내 텃밭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이게 뭐야...”



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정말 어떻게 된 거지.

나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텃밭으로 가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왜... 어째서.. 밤사이에 다 시들어 버린 거야...? 이게 말이 되는 일 인가..?”



텃밭에 심어놓은 모종이 모조리 시들어 버렸어.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다.

아니, 솔직히.

야생 짐승이 와서 죄 뜯어먹었다거나, 열심히 키웠는데 점점 시들시들하더니만 전멸했다거나 하면 이해할 수나 있지.

나는 농사에 관해서는 생 초보니까.

그런데 이렇게 하룻밤 사이에 심어놓은 작물이 전멸인 것은 솔직히.. 말이 안 되잖아?

밤 사이에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한파가 찾아왔다거나 폭우가 쏟아져 다 뒤집혀 버린 것이 아닌 이상 말이야.

전날 잠들면서 꿈꾸었던 상추 재배 완료 기념 고기파티가 저 멀리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 모든 작물이 시들어버린 텃밭을 바라보다, 스마트폰을 꺼내어 글을 작성하였다.



-어제 저녁에 심었던 모종이 밤사이 싹 다 시들어 버렸습니다. 살아남은 게 단 하나도 없어요. 이런 경우가 있나요?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세상의 모든 지식인들을 모아놓은 포털사이트답게, 답변은 즉각적으로 올라왔다.



-뭔가 문제가 있어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그리 된다는 건 말이 안 되는데요.-


-하루 만에 다 시들었다고? 얼마나 똥손이면 그게 가능한 거임?-


-이거 전에 고양이가 라면 세 개 먹었다고 글 쓴 놈이잖아. 이 관종 ㅅㄲ 아직도 이러고 있네.-


-어그로 사절-


-님은 농사짓지 마세요. 식물에 사과하세요-



“......”



나는 한숨을 내쉬며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뭐 제대로 된 대답은 안 해주면서 비난만 하고.

이래서 인터넷 세상이 무섭다니까.



‘종묘사에 다시 가서 사장님에게 물어봐야 하나. 아니야 거기 사장님도 밤사이에 모든 모종이 시들어버렸다는 건 믿지 않을 거야. 아, 답답한 노릇이네.’



문득,

주변에 의지할 수 있는 이웃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여기 와서 살기 시작한 것도 벌써 사흘차인데.

한 일 이라고는 동네 노인들 집 가서 집기를 하나씩 부숴먹고 했던 게 전부이잖아.

어차피 이웃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겠다 생각하기도 했지만, 아쉬워지니까 또 생각나는 게 이웃이네.

거 참.

사람이 간사하기 짝이 없단 말이지.



‘... 그래. 세상을 어찌 혼자 살겠어.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는 거고, 도와줄 수도 있는 거지. 나도 뭐 노인들이 또 도움을 요청해 오면 이번에는 부숴먹지 말고 잘해 줘야지.’



나는 냉장고를 열어 어제 읍내에서 구입해 온 페트 커피를 하나 꺼내었다.

달달한 다방커피 느낌의 맛이니 어르신들 입맛에 잘 맞을 거야.

나는 우리 집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말년 할머니의 집으로 갔다.

동네의 모든 노인들의 집이 그러했듯, 풍성하게 과실들이 자라 있는 말년할머니의 텃밭이 가장 먼저 보였다.



‘그냥 작물이 잘 자랐구나 정도만 생각했었는데. 다시 보니까 정말 풍성한걸?’



텃밭 농사를 짓기 전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광경인데, 내가 직접 농사를 짓기 시작하니 이제야 제대로 다른 사람의 텃밭이 눈에 들어온다.



‘수박에 멜론... 멜론? 멜론도 기를 수 있는 거야? 신기하네. 저, 저건... 파인애플이잖아? 아니, 파인애플이 저렇게 텃밭에서 기를 수 있는 작물이었던가??’



멜론이나 파인애플 같은 것은 열대과일이라 하우스 같은 곳에서 기르는 것...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원래 저렇게 텃밭에서도 기를 수 있었던 건가.

뭔가 내가 알고 있었던 상식이 깨지는 느낌이 꽤나 어색하게 다가왔다.

내가 텃밭에 정신이 팔려 열심히 구경하고 있으려니,



“누가 왔는감?”



집에서 말년할머니의 목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 안녕하세요. 할머니. 저 지민입니다.”


“누구라꼬? 으응, 그랴, 강지민이. 지민 총각이 왔구먼. 그래 워쩐일로 왔당가?”



안쪽 집 문이 열리며 작은 체구의 말년할머니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다시 한번 말년할머니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말했다.



“잘 지내셨어요? 아, 뭣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물어보고 싶은 거? 이 늙은이가 뭐 아는 게 있다고..”


“아, 일단 이거..”



나는 할머니에게 준비해 온 커피를 건네드렸다.



“으잉, 이게 뭐당가. 커피 아녀?”


“네, 달달한 커피니까 시원하게 한잔 하셔요.”


“으미 고마운 거. 내 잘마시겠당께. 그런디, 뭘 물어보고 싶은겨?”


“그게...”



나는 어제 집에 텃밭을 만들고 모종을 심어놓았는데 오늘 아침 몽땅 시들어 버렸던 일에 대해 말년 할머니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내 설명을 들은 할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에게 말했다.



“설마 작물들이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려고..”


“지, 진짜라니까요. 정 못 믿으시겠으면 저희 집에 와 보세요. 모종들 싹 시들어 있는 거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음.. 지민 총각 손에 뭔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감? 아니 전에도 그랬잖혀. 우리 집 형광등 다 뿌서먹고, 엘렌언니네 집은 마루를 뚫어먹고...”


“그, 그건.. 무, 물론 제가 똥손인 건 맞긴 하지만..”


“거봐. 똥손이라 그런 것이여. 지민 총각은 그냥 농사를 짓지 않는 게 낫겠네 그려.”


“.....”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년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아니, 솔직히 내 손이 똥손인 건 인정하지만 하룻밤 사이 작물을 다 날려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그리고 지난번 마을 노인들이 시킨 일은... 의도적으로 망쳐버린 것이 대부분이었기도 하고.

하지만 그걸 사실대로 말해줄 수는 없으니 조금 답답한 노릇이긴 하네.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년 할머니에게 말했다.



“그.. 텃밭을 만드는 건 제가 하려 하던 귀농생활의 로망이었어서요. 꼭 해보고 싶은데... 아니, 뭐. 대단한 것을 알려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할머니는 어떻게 농사를 짓는지 정도만 알려주시면..”


“나? 나야 뭐.. 씨앗 심고, 물 주고. 그게 다지 뭐.”


“.. 그게 전부라고요?”


“그렇당께. 농사가 그거 말고 뭐 더있간?”


“.....”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년 할머니의 텃밭을 다시 돌아보았다.

아니,

씨앗 심고 물만 주는데 저렇게 풍성하게 자란다고?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내가 어제 한 일만 하더라도 밭에 비료까지 섞어줘, 잡초도 억제하고 토양의 수분도 유지해 주며 오염까지 방지해 준다는 비닐 멀칭까지 다 해 주었다.

그럼에도 싹 다 시들어 버렸는데, 고작 씨앗 심고 물만 준다고 저렇게 자란다니.

내가 미간을 찌푸린 채 묵묵히 텃밭을 바라보고 있자, 말년 할머니가 재차 나에게 말했다.



“나뿐만이 아니여. 동네 사람들 집에 있는 텃밭들 있제? 그 텃밭들도 죄다 그냥 씨앗만 심고 물만 줘서 기른 거라고. 이 짝 동네가 토양의 질이 좋아서 그런지 그냥 심기만 하면 아주 그냥 쑥쑥 자라나는 것이, 아주 좋당께. 그런데 그런 땅에서 하루아침새 농작물 날려버릴 정도면, 지민총각은 똥손 중의 똥손, 개똥손이라는 말이나 다름없제. 그런 사람은 농사지어도 소용없을 것이여. 그냥 포기하고 먹고 싶은 야채 있으면 바깥에서 사다 먹으소.”



으음.

너무 말씀이 신랄하신데.

하지만 하루 만에 작물을 날려버린 것 또한 사실이다 보니 딱히 대꾸할만한 말은 없다.

나는 낙심한 표정으로 할머니에게 말했다.



“하아, 정말 그래야 하는 걸까요. 텃밭 농사에 로망이 컸었는데...”


“로망이고 자시고, 식물들이 불쌍치 않은 감? 사다 먹어 사다가. 그게 오히려 더 싸게 먹혀.”


“음...”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래야겠네요. 아무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대단한 거라고.”


“네, 저는 가 보겠... 아, 할머니. 어르신들 텃밭에서 나는 작물들 있잖아요. 그건 팔지 않으시는 건가요?”



이건 순전히 효율적인 생각 때문에 물어본 말이다.

솔직히 마을 주민들의 텃밭에 나는 작물들은 매우 풍성하여 그 양이 상당하다.

혼자, 많아 봐야 둘이 사는 노인들이 모두 처리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

그렇다면 내가 조금 구입해서 먹을 수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 물어본 말이었다.

야채나 과일 조금 사자고 마을 밖으로 나가서 차 타고 읍내 가서 장보고... 그럴 필요까지는 없잖아.

그냥 이웃의 텃밭에서 나는 것들 조금씩 얻어먹던가... 뭐, 파시는 거면 돈을 지불하고 사다 먹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런데,

내 질문이 그리 못할 질문이었던가?

꽤나 인자하게 보였더 말년 할머니의 얼굴이 한순간 굳어버렸다.

왜 저러시는 거지.

할머니는 그간 듣지 못했던 매우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지민총각. 미안하지만 이곳 텃밭에서 나는 작물들은 모두 각자 집에서 소비해. 그러니 남는 작물이 있을 수도 없고, 팔 수 있는 것도 없어.”



얼마나 정색을 하신 것인지,

그렇게 잘 사용하시던 짝퉁 짬뽕 사투리가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다.

나는 너무나 갑작스레 변해버린 할머니의 모습에 낯섦을 느꼈다.



“어.... 네.. 에? 아, 알겠습니다. 파실 게 없으시다면 저도 뭐 나가서 사다가 먹어야 하는 것 이겠지요..”


“.....”



지긋이 나를 바라보는 말년 할머니.

도대체 정말 왜 저러시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네.

내가 어쩔 줄 몰라하며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자, 그제야 할머니의 인상이 점점 펴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내, 원래의 푸근한 느낌으로 돌아온 할머니의 표정.



“잉,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들 말고. 이게 어쩔 수 없당께. 여쩍 늙은이들 먹성이 워낙 좋아맹키로 텃밭의 작물들로는 영 부족할 지경이라 그러는 것이여. 알았제?”



다시 원래의 말년할머니의 짬뽕 사투리가 나오자, 조금 안심되는 느낌이 든다.

방금 그 할머니는 누구였을까.

완전 다른 사람 같잖아.

나는 알 수 없는 할머니의 행동에 혼란을 느끼며,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모두 시든 채 나를 반겨주는 작은 텃밭.

말년할머니의 말을 듣긴 했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다.

아니, 한 번에 포기하는 건 말이 안 되지.

몇 번 더 심어봤는데도 오늘과 똑같으면... 그때는 뭐, 정말 포기할 수밖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시든 작물들을 뽑기 시작하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33 k4******..
    작성일
    24.03.22 06:45
    No. 1

    비료 거름을 너무 많이주면 얘들이 그럴수도 있긴한데...
    갠적으로 동네 사람들이 수상하긴한데 사다 먹으라 한거 보면 그것도 아닌거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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