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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입니다.

천재 생도는 게으르고 싶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설연하
작품등록일 :
2022.10.27 23:35
최근연재일 :
2022.12.09 17:00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828,974
추천수 :
21,836
글자수 :
229,678

작성
22.11.01 13:57
조회
33,213
추천
838
글자
12쪽

2화 입학시험 (2)

DUMMY

“27조 인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주시기 바랍니다.”


대기실에 들어선 시험 감독관이 단조로운 어조로 안내했다.


“무슨 시험일까?”

“글쎄? 올해는 마수를 잡는다는 얘기도 있던데.”


서로 얼굴을 익힌 아이들이 소곤대며 떠들었다.


‘마수를 잡기는 무슨···.’


싸우는 건 마수가 아니라 사람이다. 원형의 대련장 위에 서른이 넘는 수험생들이 올라가 서로 전투를 벌여야 하는 거다.


‘단체 데스매치.’


해마다 전세계에서 수많은 이들이 펠릭스 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린다. 그중 체력 테스트와 필기를 통과하는 것도 수천 명에 육박한다. 여전히 너무도 많은 숫자.


각 시험마다 수험생들을 마수와 붙이기도 하고 단일 던전 클리어를 시험과목으로 출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방법들은 시간만 잡아먹을 뿐 비효율적인 방식이었고, 이에 펠릭스 아카데미에선 이번 기수부터 간단한 해법을 내놓았다.


‘단체로 싸움 붙여서 쓸만한 애들만 추리면 되잖아.’


간단하고 단순하며 명쾌하고 야만적이기까지 한 방식. 그러나 동시에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다.


물론 시험이 매번 같지는 않겠으나 적어도 내가 플레이했던 이번 회차의 시험은 단체 데스매치가 확실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들이 멈춰선 곳은. 지상에 마련된 둥그런 대련장으로 향하는 통로, 무대는 마치 콜로세움을 연상케 하는 구조였다.


우리들이 멈춰선 데에 이어 검정색 양복 복장에 머리를 깔끔히 정리한 중년의 남성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다들 조용!”


그가 소리치자 수험생들 사이 수군대던 소음이 잦아들었다.


“본 평가의 진행을 맡은 교관 박진섭이라고 한다! 오는 차례에! 27조 인원 간의 단체 데스매치를 실시한다!”


교관의 말에 아이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데스매치?”

“뭐야···우리끼리 싸우란 거야?”

“뭐? 분명 마수사냥이라고 했는데?”


다시 소란스러워진 상황이 거슬렸는지, 교관이 표정을 조금 찡그렸다.


“조용! 지금부터 서로 간의 대화는 일절 금지하겠다! 27조 인원 30인! 목표는 각자 다른 인원들의 보호막을 파괴하는 것! 이 중 살아남은 최후의 한 사람은 그 즉시 합격이다!”


3%의 합격률. 말도 안 되게 낮은 합격률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최후의 1인만이 유일한 합격루트인 것은 아니었다.


“다만 모니터링을 통해 각 조에서 두각을 드러낸 인원은 탈락했더라도 추가 합격의 기회가 있으니, 다들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그 후에도 자잘한 설명들이 뒤따랐다. 장비의 사용은 자유고, 치료는 즉각적으로 이뤄지며 급소는 확실히 보호되니 얼마든지 실력을 발휘해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달리 말하면, 인정사정 봐주지 말고 상대를 조지라는 얘기.


“27조 인원은 앞의 두 조가 경기를 마치면 즉시 시험을 시작한다. 혹시 추가적으로 필요한 장비가 있다면 미리 요청해라!”


박진섭이 결연한 어조로 수험생들을 돌아보며 말을 마쳤다.


27조 인원들은 이미 서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오랜 친구라도 된 듯이 떠들던 녀석들도 어느새 서로를 경계했다. 과정으로 보나 결과로 보나,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미션인 셈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속한 조에 익숙한 얼굴은 없었다. 즉, 게임의 주연 캐릭터들은 속해 있지 않은 것이었다.


펠릭스 아카데미의 주연격 캐릭터들은 당연하게도 대부분이 입학한 순간부터 특출난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들과 같은 조에 배정됐다면, 합격을 장담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합격해야 해···.’


합격에 훈련 면제가 달려있다. 여기까지 와서 합격을 못 한다면, 또 언제 꿀 같은 휴식의 기회가 주어질지 알 수가 없다.


‘나도 좀 쉬자!’


나의 시선은 이내 바깥 경기장에 닿았다. 거대한 원형의 경기장, 그 둘레로 계단형으로 점차 높아지는 관객석이 자리해 있었다.


펠릭스의 입학시험은 최고의 구경거리로 꼽혔다.

단순히 재미를 좇는 이들도 찾아왔고, 정부와 영웅협회, 여러 길드의 수많은 고위인사들도 이곳을 찾았다.


그들로서는 펠릭스에서 매년 찬란한 보석이 될 원석들의 전시회가 펼쳐지는 셈이었다.


빠르게 능력 있는 재목들을 찾고, 능력 있는 이들에겐 앞다퉈 후원 경쟁을 펼치기도 했다. 물론 그건 진짜 강자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25조! 본시험을 시작합니다!”


경기장 위로 감독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곧 우리보다 앞선 조의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저 애는···?’


그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한 사람.

허리까지 내려온 은색의 머리. 새하얀 피부, 은은히 빛나는 붉은 눈으로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는 소녀.


강하린.


펠릭스 영웅전기의 주요 캐릭터 중 하나였다. 그녀가 사용하는 능력은 바로 화염.


그녀가 발을 뗀 순간, 장내에 열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녀의 주변으로부터 거센 불길이 피어올랐다.


게임의 설정에 따라, 펠릭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대부분 특수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힘인 ‘마력’을 개화하고, 그 마력에 강렬한 의지가 각인되면 특정한 능력으로 발현된다.


이는 일종의 마법이자 이능이며, 소위 ‘기프트’라 불린다. 그리고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을 수족처럼 다루는 능력, 그것이 강하린의 기프트였다.


화염은 어느새 그녀의 몸을 휘감았고, 탐욕스러운 뱀처럼 일렁이며 주변을 공격했다.


붉게 타오르는 뱀의 날름거리는 혀를 보며, 다른 인원들은 금방 깨달았다. 경기장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


곧, 일방적인 학살극이 펼쳐졌다. 어느새 경기장의 내부는 타오르는 불길로 가득 차올랐다.


불은 기묘한 통제를 받는 것인지 원을 이루며 경기장을 감싸고 돌 뿐, 바깥으로 터져 나오지는 않았다.


경기장 바깥에서 지켜보는 입장으로서는 화려한 불쇼를 구경하는 기분. 경기장 곳곳에서 열띤 함성이 터졌다.


그러나 경기장 위에 선 이들로서는 지옥이나 다름없었고, 공격을 받기 전에 경기장 밖으로 몸을 던지는 인원도 있었다.

살다 보니 별 재밌는 구경을 다 한다.


그렇게 승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결정됐다.


“최후 생존자 강하린! 합격입니다!”


"와아아-!"


관객의 함성이 장내를 채웠다.


가만, 아카데미에 붙으면 저런 애들이랑 경쟁해야 하는 건가?


불현듯 합격을 해도 되는 것인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



불길이 가라앉은 경기장에 26조 학생들이 올라섰다. 한 명의 압도적 강자가 섞인 25조와 달리 26조는 나름 밸런스가 잡힌 매치업이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처절했다.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터지고 서로 탐색전을 이어가던 중, 한 소년의 공격을 시작으로 난장판이 벌어졌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날 선 검이 여기저기서 쇄도하고 바닥이 얼어붙는가 하면, 거칠게 스파크가 튀기도 했다. 그 광경은 어떤 퍼레이드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각 인물들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처절하기 그지없었다.


퍼엉-!


과격한 소리와 함께 한 시험생이 경기장 밖으로 튕겨 나갔다. 복부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채였다.


“끄악-!”


이쯤 되니 보호막의 존재가 무색했다.

보호막이 부서지는 순간 탈락은 확정되는 것이었으나 그들에겐 ‘보호막만 부순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낭자한 피 사이로 괴성과 비명이 난립했다.


이들은 서로 비등비등했다. 특출난 강자가 존재하지 않은 결과, 피가 낭자하는 광기에 찬 풍경이 연출된 것이었다.


“후욱-! 후욱-.”


마침내 마지막으로 선 인원이 보호막을 뚫고 다른 하나의 복부에 칼을 깊숙이 박아넣었을 때, 시험의 종료가 선언됐다.


“강철현! 최후 생존! 합격입니다!”


"으아아아-!!"


온몸이 너덜너덜한 채로 소년은 함성을 내뱉었다. 그의 앞에 쓰러진 소년은 이내 관리관의 응급치료로 금방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 경기장을 내려갔다.


‘잔혹하구만···.’


그런데 어째서인지 딱히 두렵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거친 싸움 구경을 하고 있자니 도리어 마음이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놀랄 만한 일이었지만 나쁠 건 없었다. 어차피 합격을 해야만 하는 상황, 두렵지 않다면 오히려 좋은 일일 테니까.



***



“펠릭스 95기 27조! 본시험을 시작합니다!”


시험 감독관이 큰소리로 시작을 알렸다.


타악-!


감독관의 선언과 동시에 갈색 머리 덩치가 땅을 박차며 내게 달려들었다. 대기실에서 시비가 붙었던 놈이었다.


녀석은 알고 있었다. 내가 벼르고 있다는 사실을. 제 딴엔 나름대로 선수를 친 것이었다.

육중한 주먹이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날아들었다.


“죽어. 이 새끼야!”


후웅-!


그러나 주먹은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고갯짓 한 번으로 충분했다.

그 직후, 닿지 않은 주먹에 녀석의 미간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너 이 새끼···.”

“착하네. 먼저 보러와 주고.”

“닥쳐!”


덩치의 손이 차츰 형태와 질감을 바꾸어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것은 예리한 강철검의 형태.

신체 변형, 그것이 녀석의 기프트였다.


위협적인 모습에 녀석의 기세가 한껏 올라갔다. 넌 이제 끝났다는 듯한 표정.


스윽-.


녀석의 손목 아래로 날카롭게 벼려진 강철검이 내게 쇄도했다. 그렇게 녀석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떠오르던 그 순간.


공격은 또 다시 허공을 갈랐다. 한 번 더. 또 한 번 더. 다시···.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어째서···?”


멍하니 중얼대는 녀석. 어째서 닿지 않는 걸까? 이유는 간단했다.

흥분한 상대가 달려든다. 템포와 리듬 따윈 없다. 그렇게 뻔한 공격이 오니 뻔하게 피할 뿐이었다.


“이런 씨발!”


그렇게 나와 이 녀석 사이의 서열은 이미 정해졌다. 그러니 더 이상의 투쟁은 무의미했다.


그러나 녀석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녀석이 또 한 번, 절박하게 달려들었다.


나 역시 이 녀석에겐 갚아줄 게 남아 있었다. 훈련을 방해하고 대기시간 내내 앉아서 쉬게 만든 죄.


참 이상한 죄목이 아닐 수 없지만, 진지하게 반 정도는 죽이고 싶을 심정이다.

달려드는 녀석을 보며 나는 차분히 검집을 당겼다.


특별한 능력, 기프트.

펠릭스 영웅전기에선 그 기프트가 강함을 좌우하곤 한다.


그러나 내겐 활용할 수 있는 기프트가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기프트를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마력조차 없었으니까.

마력도 기프트도 없다. 다만 그 대신.


【발도 : 월식】


스킬이 있다.

몸에 익을 대로 익은 동작을 취하며 검을 빼든다. 검집으로부터 발한 검이 거대한 호를 그려 나갔다.


검은 아무런 소리도 없이 일순간 사방에 날 선 검기를 퍼뜨렸고.


스걱-!


검기는 녀석의 보호막을 깔끔하게 양단하며 그대로 살을 파고들었다.


“끄···으아악!”


점점이 핏방울이 흩날리는 풍경 너머···.


퍼직-.


“응···?”

“이게 무슨···.”


의아한 신음이 주변을 채웠다.

원형 경기장 위에 서 있던 모두의 보호막이 모조리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하나도 남김없이.


“···최종승자! 위선우! 합격··· 합격입니다!”


한참 후 상황을 파악한 감독관이 머뭇대며 외쳤고.


“허···.”


묵묵히 경기를 지켜보던 박진섭 교관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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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3화 던전 실습 (2) +26 22.11.11 24,927 663 12쪽
13 12화 던전 실습 (1) +17 22.11.10 26,286 677 14쪽
12 11화 훈련장의 엑스트라 +23 22.11.09 26,740 694 12쪽
11 10화 특별훈련 (4) +19 22.11.08 27,133 660 15쪽
10 9화 특별훈련 (3) +10 22.11.07 26,680 681 12쪽
9 8화 특별훈련 (2) +15 22.11.07 26,675 672 11쪽
8 7화 특별훈련 (1) +18 22.11.06 27,326 660 11쪽
7 6화 교관 무진 +18 22.11.05 28,030 676 12쪽
6 5화 입학식 +25 22.11.04 29,314 688 15쪽
5 4화 호출 +35 22.11.03 30,625 742 16쪽
4 3화 돌발행동 +22 22.11.02 31,551 741 13쪽
» 2화 입학시험 (2) +28 22.11.01 33,214 838 12쪽
2 1화 입학시험 (1) +47 22.11.01 37,929 873 11쪽
1 프롤로그 +108 22.11.01 42,824 1,131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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