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치킨의 행방
“으윽.....”
아픈 통증이 달콤한 잠을 깨웠다.
[일어났느냐?]
‘어떻게 된 거야?’
고개를 움직여보니 익숙한 천장, 익숙한 벽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
[나한테 고백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크흠! 고백이라니.’
“도하야아아~”
쉼터로 찬이가 달려왔다.
“왜! 이제! 일어나! 걱정했잖아!”
“악!! 아퍼!”
흥분한 찬은 내 몸 구석구석을 내려쳤다.
“엄살은. 어제 하루종일 안 일어나서 치킨은 내가 먹었다?”
‘하루씩이나 쓰러져있었던 거야?’
[심심해서 죽는 줄 알았다.]
분명 브란은 힘을 아주 조금만 빌려준 거 같았는데 이 정도로 쓰러져 있는다고?
빨리 몸을 만들어야겠어.
“근데 치킨을 네가 왜 먹어?”
“너 덕분에 내기에서 이겼잖아.”
“나한테 안 걸었다며?”
그는 굉장히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옆에 앉았다.
“막판에 바꿨어. 역시 내 눈썰미는 크..... 죽여준다니까?”
“뭔 소리야?”
“나한테 내기 뭐 걸었냐고 물어보고 웃었잖아. 그래서 바꿨지.”
“내가 웃어서 바꿨다고...?”
“응. ‘아, 이 새끼 뭐 있다.‘ 삘이 딱 왔지.”
아, 이 새끼는 돌았다.
녀석의 촉이라는 건.... 참....
재미를 느끼기 위해 일부러 자극을 찾는 건 기본이고
게임, 내기 등 이길 거라는 확신이 풍기면 찬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움직인다.
그래서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이 원하는 얻고자 생기는 광기는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다.
내가 나리와 싸우기 전에도 그걸 느꼈나 보다.
‘찬이는 기프트가 스팅크도 아니면서 이런 냄새는 기가 막히게 찾나 봐.’
[헤벌레 기프트는 뭔데?]
‘페스트(fast).’
그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빨간색 과자봉지를 꺼냈다.
“그건 또 어디서 났어?”
“응? 아, 너네 집에서.”
“......”
거긴 또 언제 갔다 온 건지.
내가 나중에 먹으려고 아껴둔 건데!
“쩝쩝... 왜. 먹으면 안 돼?”
“설이가 나 먹으라고 준 건데.”
“맞다. 설이는 어디 있는 거야? 소문으로는 많이 다쳤다는데 쉼터에는 안보이잖아. 넌 알 거 아냐?”
“.... 안 가냐?”
“어딜 가. 앞으로 너랑 안 떨어질 건데?”
“뭐?”
[이놈이 너 좋아한다!]
‘시끄러.’
흥분한 브란을 진정시켰다.
이 녀석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그는 봉지를 들어 올려 부스러기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엄청 궁금한 게 생겼거든. 약해 빠진 시든 꽃이 하루아침에 강해져 나타나서는 여왕벌 같은 나리를 이겼다라.... 어떻게 설명할 건데?”
“너, 너... 안 바빠? 데이트는? 너! 데이트 가야지.”
“흠.... 말 더듬는 거 보면 뭔가 있긴 있나 보네.”
[그냥 다 말하지 그래?]
‘당, 당황해서 그래.’
근육통이 남아있어 움직이지는 못하고, 흥분할 때마다 조금씩 움찔거렸다.
“상관없어. 그냥 너 옆에서 더 놀래.”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신호를 보냈다.
“네가 나리를 이겼지만, 그 장면을 못 본 재화들은 널 인정할까? 옛날보다 더 시비를 걸어오겠지. 또 걔 남친은 가만히 있을까...?”
“...주영.”
솔직히 나리와 싸울 때는 몇 수 앞을 내다봤어야 했다.
그녀와 걸친 연결고리가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받은 건 받은 만큼 갚아준다. 내 인생 모토를 배신할 수는 없지.
“그리고 요새 우리 리예님은 바쁘셔. 곧 그날이잖아?”
[그날?]
‘재화의 날이잖아. 몰랐어?’
[날짜 센지 오래다.]
꼬르륵-
배에서 소리가 났다.
찬은 입을 벌려 깨끗한 입안을 자랑했다.
“다 먹었는데.”
“하아....”
“식당으로 갈래?”
“네가 안아줄래?”
나는 팔을 쭈욱 뻗었다.
*
결국 힘이 다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 다음 찬과 함께 식당으로 갔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아직 밥을 먹는 아이들이 있었다.
“한 번만 더 그 지랄 떨면 죽여버린다? 몇 번이나 얘기하지만 나는 임자가 있다고.”
귀속말로 속삭이는 살인예고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배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따가운 시선이 뒤통수를 간지럽혔다.
평소보다 더 주목받는 느낌이었다.
[어제는 맛보기로 힘을 빌려줬지만, 앞으로는 체력을 기를 때까지 빌려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당하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빌려줄 거면서.’
빠악!
왼쪽 무릎 뒤쪽에 힘이 풀렸다.
그 바람에 식판 위에 있던 음식이 흐르고 말았다.
“아씨.”
“미, 미안...!!”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냈는데
식판에 배식하던 여자 아이가 사과를 했다.
“어? 아냐. 아냐 내가 미안.”
‘너 때문이잖아! 이게 뭐야.’
[난 모르는 일이다.]
“풉.”
“그만 좀 웃어라.”
상황이 웃겼는지 찬은 좀처럼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밥 대신 웃음이 그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너 미안하다는 말은 처음 들어보지?”
그러고 보니 그랬다.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강해진다는 건 여러 의미로 좋은 거 같다.
따뜻한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 목으로 넘겼다.
밥도 이렇게 편하게 먹어본 것도 오랜만이었다.
처음이라는 감정을 더 느끼고 싶은데 자꾸 굉장히 중요한 걸 잊고 있는 것 같았다.
뭐지?
되게 찝찝한 무언..... 가....를....
으아아아아!
망했다.
“찬아. 어제 치킨 먹다 남은 거 없어? 작은 조각이라도.”
그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갔다.
잠시뒤 두 손에 큰 바구니를 들고 나왔다.
‘됐다.’
나는 인사도 없이 바구니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찬의 머리 위에는 물음표가 여러 개 떴지만 신경 쓸 새도 없었다.
나는 다음을 준비해야 했으니까.
*
“헉... 헉....”
손에 바구니를 꼭 쥔 채 좁은 골목을 이리저리 지나갔다.
누군가 볼 새라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다.
“내가 예전에 그냥 가만히 놀기만 한 거 같지? 나도 나름 열심히 훈련했어. 근데 체력은 그대로였지. 밑 빠진 둑에 물 받기랄까?”
[그게 걱정인 거냐?]
“너가 있다고 해도 조금 걱정이지. 한 번에 체력 빡! 할 수 있는 방법은 없겠지?”
[고생은 하겠다만, 어쩔 수가 없다.]
거친 숨을 계속 몰아쉬었다.
[나는 솔직히 힘을 가진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을 때 다짜고짜 동생을 구하러 가자고 할 줄 알았다.]
‘그 문제는 결코 단순하지 않으니까.’
[그럼. 포기냐?]
“포기라니? 지금 음식배달하러 왔잖아?”
브란은 내 눈을 통해 주위를 살폈다.
어둑하고 사람의 인기척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살기도 하는구나..]
“여긴 아니고, 저기 위.”
고개를 들자 20층이 훌쩍 넘는 빌딩 하나가 나왔다.
“자, 가자.”
평소 같았으면, 몇 층 올라가고 쉬었다가 다시 몇 층 올라가 쉬었을 거다.
“우웩.”
입에서 피 맛이 났다.
‘어떻게 한 번도 못 쉬게 해?’
[쉴 틈이 어딨느냐? 나도 안에서 열심히 근육 만들어주고 있는데.]
한 번에 20층까지 올라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누가 이 어르신을 막으리...
고개를 저었다.
몸을 일으켜 옥상의 손잡이를 잡았다.
[잠깐. 밖에 있는 자가 적이냐 아님 아군이냐.]
‘그건 왜?’
[뭔가 이상하다. 문 열지 말거라.]
‘뭐래....’
나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휘익!
얼굴 바로 옆으로 빠르게 칼이 스쳐 지나갔다.
빠른 칼 뒤로 수북한 수염을 가진 현우가 서 있었다.
“뭐 하는 거예요!?”
“뭐야, 너였어?”
“저죠! 여기까지 누가 온다고. 놀랐잖아요.”
현우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하하... 오늘은 안 자고 일어나 있네요? 잠 좋아하시잖아요.”
그는 몇 분 동안 아무 말 없이 계속 노려보더니, 이내 바구니를 뺏아 들고는 단상 위로 올라갔다.
“오, 치킨이다. 녀석, 오늘은 좀 신경 썼네?”
그는 밝은 미소로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나는 난간으로 가까이 갔다.
하늘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비록 거리가 멀고, 올라오는 게 힘이 들어도
저녁이 되면 매일같이 이곳으로 왔다.
현우의 밥도 챙겨줘야 했고.... 이 멋진 풍경도 봐야 했으니까.
‘예쁘지?’
어둡고 칙칙할 것만 같았던 가든을 노을이 예쁘게 밝혀주고 있었다.
무너진 건물들, 버려진 차들.
그 위로 이끼가 잔뜩 올라와서 푸른 가든이 되어줬다.
전쟁 이후의 세계는 이랬다.
[여기서는 가든을 한눈에 다 볼 수 있군.]
‘무슨 소리. 우리가 지금 보는 건. 저기. 철문을 낀 광장에서 훈련장, 숙소, 마을까지라고. 여기 건물 뒤로도 가든은 쭉 이어져 있고, 숲 뒤에도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이 있을 거야. 여긴 그저 가든의 일부분이라고.’
두꺼운 철문과 양 옆으로 길게 둘러 쌓인 벽이 꽉 막혀있었다.
‘옛날에 내가 어떤 짓까지 했는지 알아? 탈출할 방법 찾겠다고 이 벽들 있지, 이 벽을 옆에 두고 한 바퀴 삥 돌았다? 와.... 내가 하니까 한 달 걸리더라.’
이 건물 옥상이라면 벽 너머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어림도 없었다.
‘아마 호프리스를 보려면 여긴 말고 저쪽 산 정상 정도에 오르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건물 왼쪽에는 커다란 산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격리시설을 지을 때 저 산 높이만큼 벽을 쌓지 못했다.
다행히 저 꼭대기가 나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줬다.
‘내가 가기에는 아직 불가능하겠지?’
[불가능하다.]
브란은 말을 이었다.
[근데 왜 하필 호프리스냐?]
‘무슨 뜻이야?’
[재화들은 호프리스하면 되게 질색을 하는데 왜 너만. 호프리스에 가고 싶어 하는데?]
호프리스.(hopeless)
재화들이 어른들 세상을 그렇게 불렀다.
이름까지 부정적으로 지었어야만 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엄마가 보고 싶어.’
[엄마?]
‘너무 뜬금없나? 나에게 제일 따뜻했던 순간이 그때뿐이라,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엄마의 온기가 떠올라. 재화들은 거의 잊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엄마가 아직 내 기억 속에는 남아있거든. 어떻게 잊어. 나는 그때가 제일 예뻤는데.’
시든 꽃으로 지내면서 많이 외로웠다.
남들은 외로움을 어떻게 달래는지 모르지만, 나는 되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를 달랬다.
‘그리고 내가 책에서 읽었는데, 호프리스에는 영웅이 많더라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으로 만드는 사람. 여기는 맨날 자기가 세다고 잘난 척하는 사람들만 있잖아. 그래서 엄청 기대가 돼. 나도 무언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곳에서는 환영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군.]
‘....여기보다 못할까.’
이제까지 내가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차고 넘쳤지만, 이제는 단 하나로 줄었다.
설이.
설이를 살리기 위해서다.
빛의 속도로 다 먹은 현우는 턱에 걸쳐 앉아 빤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 왜 안 왔어? 굶어 죽는 줄 알았잖아. 설이가 바쁘면 너라도 왔어야지.”
그는 이빨에 낀 음식물을 빼기 위에 쩝쩝거렸다.
“굶어 죽긴 왜 죽어요? 배가 고프면 내려와서 먹으면 되는데.”
“걷는 게 귀찮아서 안돼.”
말인지 방군지.
현우는 단상에서 내려와 내 앞에 섰다.
왠지 모르게 그의 눈빛이 싸늘했다.
긴장감에 괜히 침만 입안에 맴돌았다.
왜 자꾸만 노려 보는 건지....
“이상해......”
“네?”
“분명 넌데 네가 아니야.”
스릉-
그는 칼을 뽑아 내 목에 갖다 댔다.
“정체를 밝혀라. 죽고 싶지 않으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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