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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숨비 님의 서재입니다.

파괴의 신이 내 몸에서 숨어 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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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비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4
최근연재일 :
2023.05.15 18:50
연재수 :
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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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추천수 :
6
글자수 :
44,088

작성
23.05.1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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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4. 고백

DUMMY

“이게 뭐라고 벌써 숨 찰 일이야?”

[다 네 체력이 꽝이어서 그렇지. 원래는 이렇게 까지도 하지 못했을 거면서. 투덜거리긴.]


브란이 몸에 들어와서 체감상 에너지를 두 배는 써야 하는 것 같았다.

찬이 사라진 이후, 나는 묵묵히 걸어 나와 광장 가운데에 대자로 뻗어 누웠다.


[그런데 소문이 효과가 있긴 있는 거냐?]

‘그럼. 걔는 워낙 자존심이 세서 자기 평판 깎이는 걸 절대 용납하지 못해. 그래서 작은 소문 하나라도 허투루 두는 법이 없어.’

[그래서 아까 헤벌레한테 부탁한 거였고만.]


찬에게 헤벌레라고 붙인 별명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빠르면 오늘, 늦으면 내일. 걔가 날 찾아올 거야. 나한테 죽음을 던졌으니, 딱 죽고 싶을 만큼만 갚아줘야지.’

[나리가 걔지? 어제 널 버리고 도망친.]

‘어. 생각하니까 다시 열받네......’

[솔직히 너도 그 아이처럼 도망칠 거라 생각했다. 제법 용기가 있더구나.]

‘너한테 가든은 어떤 곳일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하루를 살아남아야 하는 곳이야. 약해 보이면 안 돼. 그러면 당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


나도 모르게 나리가 그은 상처를 만지작거렸다.

.....사실 설명 따위는 필요 없나.

몸에 있는 상처들이 그 증거였으니.


가든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던 나는 그저 피해 다녔다.

다음에 설이가 들어와서 날 괴롭혔던 아이들을 다 찾아가 응징을 해줬을 때. 나는 깨달았다.

물리적인 힘이 곧 권력이라는 것을.


‘나리랑 사귀는 남자애가 있는데, 지들끼리 가든에서 최고라고 착각해. 대장이 떡하니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말이야.’

[네놈은 서율을 싫어하면서 대단하다고는 생각하느냐?]

‘사실이니까. 인정할 건 인정하는 편이라고.’


몇 년 전이었다.


나는 재화들이 머무는 숙소에서 지낼 수 없다.

입장 금지 당한 것이 아니었지만 목숨에 위협이 됐기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내가 자는 사이에 놈들이 뭔 짓을 할 줄 알고.

하지만 그날은 유독 추운 겨울이어서 그랬는지 설이가 몰래 숙소에서 잘 수 있게 도와줬다.


바로 그날 밤 숙소에 불이 났다.


그곳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불은 걷잡을 수 없이 아주 거대해 어느 누구도 쉽게 나서지 못했다.

문은 잠겼고 몇몇은 몸에 불이 옮겨 붙어 꼼짝없이 타 죽고 있었다.


때마침 서율이 나타난 것이었다.


첫 번째 재화답게 동마법인 바람을 자유자재로 다뤘다.

숙소 지붕을 드러내 아이들이 빠져나올 수 있게 했고, 바람을 토네이도 모양으로 만든 다음 근처 냇가에서 물을 바람에 싣고 와 불을 껐다.

건물이 불에 타 무너져내려 깔려버린 아이들도 구해냈다.

이 많은 걸 서율 혼자서 해냈다.


솔직히 그는 충분히 동경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가 싫다.


‘아! 생각을 좀 해 봤는데, 기생하는 것 치고는 단점이 너무 없는 거 같아서 말이야.’

[흠....]


늘 좋은 걸 가져본 적 없었던 내가 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내가 네놈 몸에 숨어있다는 걸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 헤벌레를 포함해서.]

‘왜? 자라지 않는 소년이 다시 나타난 걸 알면 재화들은 엄청 좋아할 텐데?’

[멍청한 놈. 저번에 말한 걸 금세 잊어버렸느냐?!]

‘뭐, 숨어 지내고 있었다고?’

[그래 이놈아!]

‘그거 하나 깜빡했다고 멍청이 취급이냐?’

[이 짜식이 예의라곤 밥 말아먹었구나.]

‘예예 할아버지.’

[이놈이!! 할아버지라니...!]

‘그럼... 어르신..?’


빠악!

“큽...!!”


브란이 배를 가격했다.

송곳으로 뚫어버릴 정도의 고통이었다.


“야! 뭐 하냐?”


찬은 싯벌게진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뭐...야 언제 왔어.”


열심히 신음을 삼키며 말했다.


“역시 나리가 넘어왔어. 지금 이쪽으로 오는 중이야.”


그러고 보니 아까보다 많은 아이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리고 미안한데, 너한테 안 걸었어.”

“무슨 소리야?”

“걔가 이렇게까지 빡친 건 처음 봤잖아. 독이 바짝 올랐던데? 이번 싸움은 길이길이 기억될 텐데 내기가 빠질 수 없지. 근데 계속 맞기만 하면 재미없으니까 요령껏 잘 피해 봐.”

“......그래, 너답다.”


찬은 싱긋 웃으며 엄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근데 뭐 걸었어?”

“응?”

“내기 걸 때 뭐 걸었냐고.”

“치킨.”


가든은 언제나 식량이 부족했다.

그래서 보통 내기로는 음식으로 안 거는데...

정말 이 싸움은 길이 기억될 거 같다.

아주, 매우 기대가 된다.


‘어르신 들었지? 오늘 저녁은 치킨이다.’

[......난 못 먹는다.]



잠시 뒤, 나리가 창을 들고 나타났다.

멀리서도 그녀의 살기가 한 번에 느껴졌다.

나리의 똑부러진 단발머리는 오늘따라 더 날카로워 보였다.


‘난 아무것도 없는데? 너무 무턱대고 나왔나?’

[넌 내가 있는데 왜 쫄고 그러냐.]


“너는 어떻게 매번 살아남냐? 내가 본 건 만으로도 죽을 고비를 여럿 넘기네. 참 신기하단 말이야.”

“이렇게 살아서 만나니 얼마나 좋냐?”

“좆 까. 네가 얘들한테 나 죽여버린다고 했다며?”

“솔직히 내가 너 죽일만하지 않아?”

“입을 확!!”


그녀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후아.... 오늘은 네놈 발목이 먼저야. 두 번 다신 내 앞에 못 나타나게 해 줄게. 내일은 손목, 또 다음 날은 입이고, 마지막으로 네놈 검은색 눈깔이 되겠지?”


창의 날카로운 부분으로 조목조목 짚으며 말했다.


‘정말 혹시나 하고 말하는 건데.... 얘 되게 쎄.’

[....나 안 도와준다?]

‘아뇨. 잘 부탁합니다 어르신.’


“도망치지 말고 제대로 싸워야 할 거야.”

“....!!”


나리는 나에게 대답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부웅-


빠르게 달려와 긴 창을 휘둘렀다.

가까스로 피한 나는 그녀가 진심이라는 걸 새삼스레 다시 깨닫는다.


‘말했지? 작은 소문 하나도 허투루 듣지 않는다고.’

[집중해라.]


붕- 부웅-


그녀의 창술 속도가 너무 빨라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처럼 보여도,

대장이 눈여겨볼 만큼 출중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크윽....”


지금까지 잘 피하고 있어도 이대로라면 곧 잡힐 거라는 걸 알았다.


[흠.... 뭔가 부족하단 말이지.]

‘뭐가?’

[한 박자씩 느리구나. 내가 네 몸을 움직이는 거랑. 실제로 반응하는 너의 속도 말이다. 역시 네놈 몸뚱어리는 똥이다!]

‘아놔.... 어르신. 어떻게든 해 보시지?’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거냐! 본격적으로 놀아보자꾸나!!]


파앗!


몸이 멋대로 그녀에게 돌진했다.


“어.... 어?”


빠악

“!!!!”


내 팔과 그녀의 창이 크게 부딪혔다.

짜릿한 진동이 팔에서 머리끝까지 전해졌다.

나리의 눈동자와 콧구멍이 팽창하고 있었다.

내 얼굴도 그녀와 다를 게 없었다.


‘내 몸이 그 사이에 이 만큼이나 단단해진 거야?’

[금 갔다.]


“지금.... 나리한테 안 밀리고 있는 거 맞지?”

“쟤가 저 정도였나?”

“.... 역시 소문이 사실인가 봐.”

“시든 꽃이 변했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는 유독 나리의 귀에 더 잘 박혔다.


‘시발.... 왜. 도대체 왜!!’


그녀는 빠득빠득 손의 핏줄을 치켜세웠다.


‘죽여버릴 거야!!’


침묵의 한줄기

나리는 호흡을 다듬고 창을 현란하게 돌렸다.

그녀가 뻗은 자리에는 얇은 선이 흔적을 남겼다.

선은 점차 짙어지면서 강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후우.....”


저 공격은 위험하다.

쓰윽

오른쪽 발을 뒤쪽으로 한 걸음 밀고 중심을 단단히 잡았다.


나리가 만든 선이 날아왔다.

독사 한 마리가 사냥감을 향해 달려가듯이 빠르게 덮쳐왔다.

분명 얇은 선이지만, 맞으면 바로 뼈가 으스러질 게 분명했다.


쏴아


파사삭...


‘우와......’


에너지는 몇 바퀴 내 손에 맴돌더니, 속수무책으로 땅에 흡수됐다.

유연하게 움직인 내 동작은 고수의 솜씨 같았다.


“으아아악!!”


나리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이걸 막았다고? 어떻게?’


그녀는 눈이 뒤집힌 상태로 불분명한 공격을 날렸다.


[미친년 같군.]

‘신이 그런 말 해도 돼?’

[신인데 내 맘대로 못하냐?]

‘끄응....’


접전은 계속됐다.

내가 막을수록 공격은 더 날카로워졌고 강해졌다.

솔직히 여기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였다.

체력도 거의 한계고 당장이라도 항복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오호!! 더 해봐라! 더!]


어르신이 너무 신나 하는 걸...?


“이러다가 진짜 나리가 지는 거 아냐?”

“에이 설마.”

“나리가 어떤 앤 데? 가만히 당하겠어? 규칙을 어겨서라도 도하 목을 딸 애지.”


가만히 듣고 있던 찬이 아이들에게로 다가갔다.


“이런 반응까지 나온거면 도하가 이긴 거나 마찬가지잖아? 안타깝지만 이건 완벽하게 시든 꽃의 승리야.”


그의 말에 아이들은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창을 휘두르는 것 말고 크게 움직이지 않던 나리가 갑자기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눈빛이 변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공기도 달라졌다.


[하! 날 더 자극하는구나! 좋다 오너라!!]

‘진정 좀 하자고 브란...?’


그녀는 다리를 축으로 삼아 공중으로 회전하며 뛰어올랐다.

그리고 다시 추진력을 얻으며 사선으로 회전을 반복했다.

빠르게. 더 빠르게.


두근두근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회전을 반복하더니 이내 들고 있던 창을 나를 향해 쐈다.


추와아아악!!


두근두근

나는 손을 뻗었다.


[이, 이놈이! 정신 차려라!!]


브란은 서둘러 몸을 잡고 틀었지만, 몸은 온통 나에게 단단히 붙잡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아, 안된다!!]


브란의 외침과 동시에,

몸이 한쪽으로 치우쳐지며 날아가는 창을 잡아챘다.


치지직-

“끄아아악!!”


하지만 손바닥에 뜨거운 마찰과 열이 일어나며, 창은 손을 뚫고 지나갔다.


“하악..... 하악.....”


타다닥!


“!!!”


나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눈 깜빡할 사이, 코 앞까지 다가왔다.

놀란 내 동공이 다 커지기도 전에 힘을 실은 손이 날아왔다.


브란은 서둘러 몸을 낚아챘지만, 내 반응이 한 박자 느렸다.


“으악...”


뒤로 넘어지며 머리가 땅에 부딪혔다.


코가 깨질 듯이 아팠다.

어쩌면 이미 깨졌을 수도.

코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나왔다.


“우욱....”


입안 속살이 찢어진 건지 아니면 코피가 목을 타고 흘러들어 간 건지 입에도 피가 흥건했다.

나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쟤 지금 순간적으로 기프트 쓴 거지?’

[그 와중에 그걸 봤느냐? ‘퍼스트 터치’다.]


아까 마지막 공격 때, 무작정 힘으로 밀어붙이던 나리가 순간적으로 기술을 집어넣었던 거였다.

금방 끝나야 할 싸움이 길어지니 마음이 조급했던 모양이었다.


[넌 왜 그런 거냐?]

‘뭘?’

[네놈이 저 공격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창은 내 등 넘어 나무에 깊게 박혀 있었다.


[만약 내가 손을 감싸지 않았다면 팔 전체가 그대로 날아갔을 거다.]


나리는 약간의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시발. 똑바로 기억해. 너한테는 이 자세가 가장 어울려. 알아들어?”

“꺼져.”


퉤.

입 안에 가득 찬 피를 토하며, 있는 힘껏 노려봤다.

머리가 핑 돌았다.


‘이봐, 어르신 나 이제.... 쓰러질 거 같은데.’

[우선 피부터 멈춰야겠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쏟아지던 피가 멈췄다.


“앞으로 설쳐대지 말고 조용히 찌그러져 살아. 아무리 재화가 되려고 애를 써도 넌 재화가 될 수 없어.”


브란은 아주 미세한 힘을 몸에 주입시키기 시작했다.

단위로 측정하기도 어려운 적은 힘이었지만, 충분했다.

아픈 걸 잊게 해 줄 만큼의 강한 힘이 느껴졌다.


“시끄러워. 누가 끝났대?”


서서히.

아주 서서히.


두 다리와 오른쪽 팔에 그 힘이 쏠렸다.


“장난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나리였다.

그녀는 재빨리 핸드를 깨웠다.


기합을 넣으며 돌진하는 그녀를 모두가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슈욱


첫 공격은 브란 덕분에 가볍게 피했다.

온몸에서 근육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공중으로 뛰어올라 있는 힘껏 내려쳤다.


꾸와아아앙!!


“......”

“......”


잠시 뒤 아이들은 기절한 나리와 힘겹게 서 있는 도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르시.... 아니 형. 사랑해.’

[......미친놈.]


작가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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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3. 자라지 않는 소년 23.05.10 22 0 10쪽
2 02. 어떻게 된 일이더냐 23.05.10 22 0 12쪽
1 01. 시든 꽃 +1 23.05.10 37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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